월간복지동향 2016 2016-05-01   1436

[동향2] 가정폭력방지 정책은 가정폭력전문가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가정폭력방지 정책은 가정폭력전문가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현진희 l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1997년 12월에 제정되어 1998년 7월 시행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정폭력특례법) 이후, 우리나라에서 가정폭력은 사적인 가정 내 사안에서 사회적 문제로 시각이 전환되었다. 이제 가정폭력특례법이 시행된 지 18년이 되었다. 특례법이 시행되었다는 것은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초기대응부터 피해자보호, 행위자 처벌 등의 가정폭력근절과 예방은 국가의 책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2013년 6월 정부의 ‘가정폭력 방지 종합대책’ 발표 후, 가정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더욱 더 증가하였다. 그렇다면 과거 18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의 가정폭력에 대한 정책은 얼마나 변화해왔을까. 본고에서는 먼저 독자의 가정폭력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가정폭력의 임상적 특성에 대해 살펴보고, 우리나라 가정폭력의 실천현장에서 제기되는 현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문제로서의 가정폭력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가정폭력에서 이해해야할 특성들

가정폭력 행위자는 왜 학대행위를 사용하는가?

대부분의 행위자는 배우자에 대한 통제를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 학대행동을 사용한다. 행위자는 배우자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강요하기 위하여 다양한 전략을 사용하는데, 보통 이러한 전략들은 전체적인 부부 관계에 영향을 주고 부부 관계를 왜곡시킨다. 행위자들이 사용하는 폭력은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그들의 선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동을 표현한 것이 ‘힘과 통제의 바퀴 (Power and control wheel)’라는 개념이다. 다음의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각 수레바퀴의 축들은 행위자가 사용하는 다양한 폭력의 형태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폭력은 바퀴가 굴러가듯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국가가 나서서 강제로 중단시키지 않는 이상, 이 힘과 통제의 수레바퀴라는 가정폭력은 지속적으로 재발되며 피해자를 고통에 빠뜨리게 된다.
또한 행위자들은 그들의 폭력을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전 세계적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개입은 행위자의 자발적 선택에 맡기기 보다는 치료나 상담명령을 통하여 강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의 초기개입이 증가하면서 사법경찰이 가정폭력 행위자에게 전문상담을 받도록 권유하고 훈방조치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은 가정폭력의 기본적 특성에 대한 교육과 훈련의 부족으로 인한 치명적 문제라 할 수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는 왜 스스로 학대관계를 못 떠나는가?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피해자가 왜 부부관계를 떠나지 못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만성적인 폭력에의 노출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우울, 불안, 수면장애, 신체화장애 등의 여러 가지 정신건강문제를 경험하게 되며, 그 결과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심리상태가 나타난다. 학습된 무기력이란 통제불가능하고 고통스런 사건들에 반복적으로 노출됨으로서 나타나는 심리적 특성(Seligman, 1975)으로서, 이러한 학습된 무기력의 결과로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은 순종적이 되고 학대관계를 떠나는 것을 꺼려하게 된다.
또한 가정폭력은 특성 상 그 과정에서 주기를 가지고 나타난다. 가정폭력은 1년 365일 매일 발생하기 보다는 일련의 주기를 반복하는 과정상의 특성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폭력이 발생하기 전 부부는 일상생활의 갈등과 스트레스가 증가되면서 긴장이 고조되는 단계를 경험한다. 이 (1) 긴장고조 단계(Tension-building)에서 피해자는 칼날 위를 걷는 듯 한 느낌을 지니며, 어떤 것도 배우자에게 부정적이 됨을 느끼고 초조해지며 배우자를 달래기 위한 일들을 한다. 이러한 긴장고조단계 동안 쌓여있는 스트레스의 수준은 상당히 높아지고, 보통 아주 사소한 일을 구실로 배우자는 분노를 폭발하고 폭력행동을 하는 (2) 폭발단계(Explosion)에 도달한다. 가정폭력행동이 발생하는 이러한 폭발단계 후에는 많은 경우 (3) 신혼단계 (Honeymoon phase)가 찾아온다. 행위자는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다짐을 하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피해자를 비난한다. 이 신혼단계는 행위자와 피해자 모두가 가정폭력에 대해 부정하고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상황은 다시 긴장이 고조되고 다시 (4) 긴장고조단계가 찾아오며 가정폭력의 사이클은 반복되고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많은 경우, ‘신혼단계’에서 보여준 배우자의 모습이 진실이라 믿으려 노력한다. 가정폭력이 발생한 ‘폭발단계’의 모습은 배우자가 합리화하고 비난한 것처럼 피해자 자신의 책임이라 믿고, 자신이 변화함으로서 폭력행동의 발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책임의식까지 가진다. 게다가 자녀가 아직 미성년이거나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피해자들은 더욱 더 학대관계를 떠나지 못한다.

가정폭력의 예방과 개입에 종사하는 지역사회 유관기관과 사회복지기관의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가정폭력의 역동과 특성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어야한다. 이러한 중요한 2가지의 특성을 인지하지 못할 경우 현장에서 자칫 피해자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가정폭력방지정책, 무엇이 필요한가?

가정폭력사건에 대한 초기대응

가정폭력 사건이 신고 되면 경찰이 초기대응을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피해자의 안전확보이다. 피해자의 안전확보를 위해 필요한 과정은 현장에서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분리시키는 것, 필요시 피해자에게 임시보호를 제공하는 것, 가해자에 대한 신속정확한 위험평가를 통하여 필요한 법적 구속과 조치를 시행할 근거자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건의 초기대응 시 경찰은 가정폭력전문가에게 의뢰하여 전문가에 의한 위험사정과 안전확보, 이후 사후관리로의 연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현 상황은 최근 가정폭력방지 종합대책 발표 후 경찰이 가정폭력에 집중적으로 개입하면서, 여성긴급전화 1366의 양적 부족으로 가정폭력상담원에 의한 피해자에 대한 초기 심리 상담과 긴급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긴급피난처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경찰이 피해자들을 모텔과 같은 임시보호소를 이용하도록 함으로써 많은 피해자들이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양수옥, 2015).
초기 대응에서 중요한 피해자와 행위자에 대한 심리사회적 문제 사정과 학대위험평가가 경찰 인력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으로 인하여, 가정폭력 행동의 복잡다양한 역동과 피해자의 심리사회적 상태, 정신건강문제, 행위자의 폭력발생에 기여하는 음주, 정신질환, 분노, 기타 심리사회적 문제들과 재발 가능성에 대한 위험평가가 정확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경찰에 의해 이루어지는 위험평가의 결과에 의해 행위자에 대한 임시조치의 종류와 가정보호사건으로의 송치여부, 이후 보호처분(상담위탁, 치료위탁, 사회봉사수강명령, 접근행위제한 등)에 대한 권고 등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고려할 때, 초기대응에서의 위험평가의 전문성은 이후 피해자의 안전확보와 행위자의 폭력행동교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가정폭력사건처리단계 중 가정폭력상담원의 전문성이 가장 요구되는 단계는 초기 대응의 위험평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찰이 초기대응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가정폭력상담원에게 연계하여 최소한 행위자에 대한 위험평가와 피해자의 안전확보 방안에 대한 위기개입은 가정폭력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현재 양적으로 부족한 1366센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에 위치한 가정폭력상담소와의 네트워크와 협약, 재정적 지원을 통하여 초기지원 시 전문가에 의한 현장동행상담과 긴급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예는 실제로 경상북도의 경우 2014년부터 ‘경북형 원스탑지원체계’를 마련하여 지역 기관간의 네트워크로 부족한 현재의 인프라를 보완하고 있다(양수옥, 2015).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향후 전국적으로 1366센터의 양적 확보와 국가에서 위탁한 가정폭력 전담 민간기관 또는 정부기관이 가정폭력문제에 대한 초기 위험사정과 안전계획수립은 담당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가정폭력이 발생한 가족에 대한 사례관리

현재 우리나라의 가정폭력 대응체계는 경찰, 여성긴급전화 1366, 가정폭력상담소, 사법기관, 의료기관,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 사회복지기관 등 다양한 지역사회의 기관들의 연계와 협력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가정폭력의 특성 상 어느 특정기관이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문제는 가정폭력 사건의 발생 시점부터 전 과정에 관여하는 기관과 전문가의 수는 많으나, 한 가정의 사례를 처음부터 종결까지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문제에 대한 위험사정과 적절한 개입을 판단할 사례관리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정폭력은 지속적으로 재발생하는 특성이 있으며, 다양한 심리사회적 요인이 문제발생에 기여하는 등의 특성으로 사례관리가 적극적으로 요구되는 영역이다. 따라서 사건발생부터 종결까지 관여하는 기관의 수는 많을지라도 가정폭력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한 기관이 한 가족의 가정폭력문제에 대한 사례관리를 수행하지 않으면, 피해자의 안전확보와 저항하는 행위자의 문제해결을 해낼 수가 없다.
현재 가정폭력사건에 개입하는 기관 중에서 1366은 가정폭력의 초기 위기개입을 하는 기관이며, 각 지역의 가정폭력상담소는 피해자 상담과 상담위탁 보호처분을 받은 행위자에 대한 상담을 하도록 되어있다. 경찰은 사건에 대한 초기대응과 사건조사를 통한 임시조치 청구, 가정법원은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호처분을 결정하고 형사사건으로 송치된 사건의 처벌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 중에서 가정폭력 사건의 처음부터 종결까지 사례관리를 수행할 수 있는 책임 있는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정폭력 피해자와 행위자에 대한 서비스는 분절될 수밖에 없으며, 한 가족에 대한 지속적 모니터링을 통한 위험사정이 이루어지기 힘든 구조이다. 최근, 정부의 가정폭력방지 종합대책의 시행에 따라 경찰청에서 각 지역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사건에 대한 솔루션위원회도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솔루션위원회는 다양한 지역사회유관기관이 참여하는 통합사례관리회의이다. 최소한 심리사회적 전문가로 구성된 사회복지기관이 가정폭력사건의 통합사례관리를 주관해야한다.  따라서 가정폭력사건을 처음부터 종결까지 사례관리하고 다양한 지역사회유관기관 간의 협력을 조정할 수 있는 국가에서 책임을 부여한 가정폭력전담기관이 필요하다.

 

가정폭력 행위자에 대한 상담과 치료

가정폭력 사건의 행위자에게는 자신의 폭력행동에 대한 축소 및 부정뿐만 아니라 알코올중독, 분노조절, 정신질환, 의사소통문제, 성역할 관념, 가부장적 사고 등 폭력행동을 유발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사정하고 치료하는 영역은 지극히 심리사회적 특성을 지니며, 특히 정신건강에 관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그러나 현 우리나라의 상황은 초기 대응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행위자에 대한 위험사정을 시행한 후 각 사건이 가정보호사건인지 형사사건인지에 대해 법원에 권고를 담당하는 중요한 업무를 가지고 있다. 가정법원에서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된 경우, 상담위탁 또는 치료위탁을 결정할 수 있으나, 이 또한 경찰이 어느 위탁을 권고하느냐에 대부분 의존하는 실정이다. 행위자의 알코올중독이나 정신질환이 가정폭력에 기여하는 요인일 경우, 이 문제를 사정할 수 있는 전문가가 초기대응을 해야 권고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경찰은 대부분의 사례를 상담 위탁 또는 사회봉사수강명령으로 권고한다는 점은 특히 가정폭력의 재발의 위험요인인 알코올중독 또는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위탁이 거의 이루어지기 힘든 현실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역시 심리사회적 전문가의 초기대응 체계에 관여하지 못함은 장기적인 개입에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 심리적 회복과 자립

가정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안전확보와 장기간의 학대로 인해 야기된 심리사회적 문제의 회복과 학대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있는 자립을 위한 원조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상담은 여성긴급전화 1366, 가정폭력상담소 혹은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현황을 보면, 경찰청에서 대부분의 피해자에 대한 위기개입과 보호를 제공한 이후 상담이나 사례관리에 대한 사후관리와 모니터링은 정확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피해자 상담을 주관해야 할 지역의 가정폭력상담소들은 정부의 예산지원이 제공되는 행위자 상담 위탁사업과 가정폭력예방교육에 대부분 전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피해자에 집중되어야 할 가정폭력상담소는 행위자에 집중하고, 행위자의 처벌과 행동교정에 집중되어야 할 경찰청은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위기개입과 보호에 집중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민간 가정폭력상담소의 운영의 어려움은 그들이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피해자 상담과 치료에 집중하기도 어렵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가족부는 가정폭력상담소가 피해자 상담에 대한 업무를 투입할 수 있도록, 경찰청은 행위자의 처벌과 행동교정에도 보다 더 인력과 예산을 투입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가정폭력서비스에 대한 조정과 지도감독, 부처간의 조율과 협력에 대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양수옥 (2015).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체계 현황 및 과제. 2015 해외 전문가 초청 가정폭력방지 토론회.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가정폭력방지본부.
Domestic abuse intervention project. www.duluth-model.org
Seligman, M. (1975). Helplessness: On depression, development and death. San Fransisco: Freeman.
Walker, L. (1979). The Battered Woman. New York: Harper and 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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