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8 2008-11-02   1343

[동향 1]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방안, 어떻게 볼 것인가.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방안, 어떻게 볼 것인가.


 


이재훈
민주노총 정책부장
ljh8172@nodong.org


지난 10월 27일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뜻밖의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성은 2005년 이후 조금 나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64.6%(2007년 기준)에 불과하다. OECD평균에도 못 미칠 뿐 아니라, 주변의 일본이나 대만도 80%가 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보장성을 강화한다는 것은 환자가 병원에 가서 추가로 부담해야하는 비용을 줄인다는 말이기도 하다. 의료시장화정책(영리병원도입,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등)으로 촛불에 혼나더니, 이제 정신 차렸나 싶었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니, 경증질환의 본인부담을 인상해 보장성에 필요한 재정을 절감하고, 나머지 모자란 재원은 보험료 인상을 통해 마련하겠다고 한다.

정부안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했다.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엉터리 방안으로 당장 폐기해야’한다는 주장이 있기도 했고, ‘적정보장’을 위해 오히려 보험료 인상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정부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할까.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안 내용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방안은 크게 네 가지 안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고도비만 치료’를 제외하면 그동안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해 온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은 보장성 항목과 보험료 인상을 연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료 인상에 동의하는 만큼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셈이다.


또 하나는 재정절감방안으로 ‘경증질환의 외래본인부담 인상’을 제시하고 있다. 경증환자에 대해 각 종별로 의원 5%, 병원과 종합병원 10%, 종합전문병원 20%씩 본인부담을 인상해 최대 약 3.3%까지(7,700억) 보험료 인상부담을 줄인다는 것이다.


정부안은 폐기의 대상?


먼저, 보장성 강화와 보험료인상을 연계한 것 자체가 ‘국민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 것’이므로 ‘폐기해야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건강보험제도는 소득재분배기능이 높다. 예를 들어 노동자(직장가입자)의 경우, 보험료를 낸 것에 비해 급여로 받는 비율이 평균 1.85배(2007년)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보험료대비 급여비는 높고, 소득상위 5%만 0.84배로 내는 것이 많다. 민간보험과 달리, 공적제도가 가지는 제도적 우월성이다. 더욱이 다른 것도 아니고, 보장성 강화를 위해 쓰인다면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2004년 이후 건강보험료와 수가를 결정하는 역동적인 정치적 협상공간에서 민주노총은 ‘보장성강화’를 보험료와 수가를 판가름하는 우선변수로 고려해왔고, 그동안 추진된 급여확대 역시 이에 대한 나름의 결실이라 평가한다.


보험료를 인상해 보장성을 강화하자?


그렇다고 “보험료를 인상해 보장성을 강화하자”라는 단선적 주장 역시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반기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며 들었던 촛불은 공적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라기보다 의료비폭등에 대한 우려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경제위기와 물가폭등으로 살림살이가 더욱 어려워진 상황에서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처방이 중요하다. 지난 7년간 급여비는 연평균 10.4%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중·장기재정추계에 따르면(2007년) 2030년에는 급여비지출이 100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료 수입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고 2001년 재정위기처럼, 그때 다시 급여를 축소할 것인가.

낭비적인 지출을 통제하고, 수입을 다양화시키는 방안이 전제되어야 한다.


전제되어야 할 것 1 : 낭비적인 지출구조 개편 (지출부문)


지출부문에서 시급히 개선해야할 낭비적 구조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진료비지불제도(현행 행위별수가제)의 개편이다. 일부 공급자단체만을 제외하고 개편의 당위나 필요성에 대한 공감도는 높은 편인데, 도통 진도가 안 나간다. 포괄수가제(DRG)는 현행 단순 질병군 위주의 시범사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적극적인 시도도 부족하다.

둘째, 비급여 통제다.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 의료서비스를 무제한 개발해 제공하도록 방치하고 있다. 비정상적인 비급여 구조는 곧 의료기관의 수익구조이기도 하다. 이를 그대로 존속시키는 한, 막대한 재원을 쏟아부어도 국민부담은 경감될 수 없다.
 
셋째, 약제비 절감이다. 약제비는 2007년 기준 건강보험 진료비의 27.5%수준으로, OECD평균인 17.7%에 비하면 매우 높다. 그나마 2006년 12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시행되어 이제 걸음마를 뗀 정도지만, 갈 길이 멀다. 기등재약 목록화도 제약회사의 딴지걸기로 속도가 안나고 있고, 제네릭 의약품(특허가 만료됐거나, 특허보호를 받지 않는 의약품) 가격문제나 리베이트와 같은 불투명한 유통과정개선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이러한 낭비적인 지출구조만 제대로 개선하더라도, 국민이 낸 소중한 보험료가 온전히 국민건강을 위해 되돌아오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이고 적극적인 방안은 제쳐두고, 정부가 선택한 재정지출절감 방안은 오히려 ‘경증환자의 본인부담을 인상’하는 것이다. 이미 2007년 경증질환자의 본인부담이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바뀌면서 환자의 부담이 높아졌다. 그런데도 또 다시 외래본인부담을 인상하는 것은 취약계층의 의료접근에 대한 경제적 장벽만 더욱 높일 뿐이다.


전제되어야 할 것 2 : 적절한 사회적 분담구조 마련 (수입부문)


건강보험에 대한 재정적 책임은 국민에게만 ‘전담’시킬 것이 아니라, 정부도 ‘분담’해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정부는 이를 방기해왔고, 이 몫 또한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 되고 있다.

먼저 국고지원 문제다. 건강보험재정은 보험료수입에 대한 의존이 높다. 국고지원이 있으나, 프랑스(총재정의 38%)나 대만(총재정의 28%)에 비하면 미흡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법으로 규정된 국고지원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2002~2006년 특별법 당시에는 5년 평균 44.3% 수준으로 법정지원율인 ‘50% 상당’에는 크게 미달했다(약 2조 2,2521억).

더욱이 2007년부터는 국고지원 기준과 규모가 ‘예상보험료 수입의 20% 상당’으로 변경됐는데, 예산안 편성할 때는 낮게 책정해 국고지원을 과소 편성했다가 이후 보험료 인상이 결정되더라도 인상분만큼 반영되지 않고 있다(약 3,354억).

또한 ‘예상보험료 수입의 20%’ 가운데 6%는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충원되는데, 기금에서 ‘담배부담금 예상수입액의 65%’를 초과할 수 없도록 되어있어 국고지원 규모를 더욱 줄이고 있다.

차상위계층의 건강보험 전환도 문제다. 2009년 정부의 의료급여비 예산안을 보면 전년대비 12.2%가 감소했다. 작년 희귀난치성질환자에 이어, 내년부터 차상위 2종 의료급여수급권자(만성질환자, 18세 미만 아동)가 건강보험으로 전환시킬 계획이기 때문이다(약 7,248억) 선진국의 경우, 정부예산으로 운영되는 의료보장에서 인구의 10% 이상을 책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3%에 불과한 수준인데, 이마저도 국가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건강보험재정으로 전가시킨 것이다.


마치며


올해 건강보험 재정은 2004년 이후 최대 규모의 당기흑자가 예상된다. 당초 정부는 1,433억 당기적자가 날 것으로 전망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누적으로 따지면 흑자규모는 2조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이 낸 보험료가 남은 돈으로 보장성 강화를 통해 당연히 국민에게 되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서로가 조금만 의지를 보여도 건강보험의 질적 수준을 한층 높일 수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 참여와 합의를 원한다면 돈 낼 수 있냐고 따져 묻기 전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방안과 계획을 먼저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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