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3 2013-05-15   1883

[심층분석5] 가족과 다문화

가족과 다문화

 

설동훈 ㅣ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문제 제기

 

한국사회에 외국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이제는 “다문화사회”라는 단어가 별로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외국인과 이민자, 또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외국국적동포들을 생각해보자. 가족 성원들이 국경을 넘어 흩어져 거주하는 ‘분산가족’이 늘고 있다. 자녀 교육을 위해 가족 분산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기러기가족이 대표적인 예다. 본국에 배우자와 자녀를 남겨두고 단신으로 한국에 건너와 일하는 이주노동자들 역시 분산가족의 한 형태다. 한편,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가족도 적지 않다. 100년 이상의 이주 역사를 가진 화교 가족이 그러하고, 외국인 전문기술자와 유학생들도 가족을 동반하여 이주한다. 한국인과 국제결혼하여 삶의 거처를 국내로 옮긴 이주자들도 있다.

 

그런데 한국의 다문화가족지원법은 오로지 결혼이민자 가족만을 대상으로 한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은 여러 유형의 이민자들 중에서 다문화의 정도가 가장 덜한 결혼이민자가족만 대상으로 삼고 있고, 나머지 유형의 가족은 정책 대상에서 철저히 배제한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다문화가족 개념은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힘든 특수 용례로 사용된다.

 

2000년대 초부터 국제결혼이 급증하였고, 그 결과 국내 결혼이민자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그들을 한국사회로 순조롭게 통합하는 것이 시급한 정책 과제가 되었다. 국회에서 결혼이민자 가족 지원을 위한 법률을 만들면서, “다문화가족지원법”이라는 과도한 수사법을 사용한 것이 그와 같은 현상을 초래하였다. 그 폐해는 적지 않다.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다문화가족 개념을 규정하는 한, 한국에서 일하는 저숙련 이주노동자의 가족 동반 금지라는 정책은 은폐될 것이고, 기러기가족 문제에 대한 본격적 정책 대응은 한없이 미루어질 것이며, 국내 거주 이민자 또는 외국인 가족의 현실은 무시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국내에 거주하는 결혼이민자 가족을 집중 지원하는 현재 정책의 의의가 무시될 수는 없다. 그것은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 공동체인 가족 안에 들어온 외국 출신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다. 더욱이 상당수 결혼이민자 가족이 매우 열악한 생활환경에 방치되어 있다는 점도 고려하여야 한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결혼이민자 대상 사회복지 정책의 실태를 살펴보고, 그에 대한 평가를 한 후, 대안적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결혼이민자 대상 사회복지 정책의 내용과 평가

 

한국정부는 합법 체류 외국인에게 한국 국민과 동등하게 사회복지제도를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회보험은 외국인에게 한국인과 동등하게 가입자격을 부여하고 있으나, 외국인의 공공부조 수급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결혼이민자도 그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나, 몇 가지 특례조항이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2005년 12월 법 개정을 통해 외국인에 대한 특례조항을 도입하였다. 그 조항을 통해 외국인 중 대한민국 배우자와 결혼 중이거나 이혼·사별한 결혼이민여성으로서 한국인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빈곤층은 수급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긴급복지지원제도 또한 원칙적으로 외국인을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지만, 한국인 자녀를 양육하거나 임신 중인 결혼이민여성은 예외적으로 긴급지원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또 장애수당·기초노령연금·근로장려세제 역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와 혼인한 자 즉, 결혼이민자에 한해서만 적용하고 있다.

 

정부는 2015 가족행복 더하기: 제2차 건강가정기본계획, 2011∼2015에서 ‘다양한 가족의 역량 강화’를 천명하였다. 다문화가족만을 대상으로 한 정책보다는 한부모가족·조손가족·장애인가족·입양가족·북한이탈주민가족 등 다양한 가족 유형을 고려하여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가정이 처한 상황과 욕구에 부합하는 맞춤형 지원책을 모색하고 잠재적인 문제예방을 통해 가족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정책은 결혼이민자 가족 지원에 집중되어 있다.

 

정부에서는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가족생애주기별 맞춤형 서비스를 네 단계에 걸쳐 제공하고 있다. 결혼이민자 가족을 위한 가족교육·상담·문화 프로그램 등 서비스 제공을 통해 결혼이민자의 한국사회 조기 적응을 돕고, 그 가족의 안정적 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제1단계는 ‘입국 전 결혼준비기’로, 국제결혼 과정의 인권 보호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을 통해 단체 관광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집단국제결혼의 폐해를 줄이려 노력한다.

 

제2단계는 ‘입국 초 가족관계 형성기’로, 결혼이민자 대상 지원 프로그램을 다수 개발하여 운용하고 있다. 그것을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대별된다. 첫째는 결혼이민자의 조기적응 및 안정적 생활지원 사업이다. 정부에서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한국어교육, 다문화가족통합교육, 다문화가족 취업연계 및 교육지원, 개인·가족상담 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의사소통 지원을 위한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둘째는 다양한 매체를 통한 한국어교육 사업이다. 전국 204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집합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어교육지도사를 파견하여 방문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교육, EBS 방송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셋째는 위기개입 및 가족통합교육이다. 가정폭력 피해 상담·보호를 위해 이주여성 긴급전화 및 전용쉼터, 법률구조기관 등 관련 기관 간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1577-1366), 이주여성쉼터, 다누리콜센터 등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결혼이민자 가족 구성원 간 가족 내 역할 및 가족문화에 대한 이해 향상을 위한 가족통합교육도 시도하고 있다.

 

제3단계는 자녀양육 및 정착기로, 결혼이민자 자녀의 양육·교육을 지원한다. 부모의 자녀 양육 능력 향상을 위해 부모교육서비스를 실시하고 있고, 학업성취가 낮고 자아·정서·사회성 발달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결혼이민자 자녀를 대상으로 가족생활 서비스를 제공한다. 언어발달지도사들이 결혼이민자 자녀의 언어발달을 진단하고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보육시설에서는 아동의 사회정서증진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으며, 엄마(아빠)나라 언어습득지원을 위한 언어영재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한편, 교육부에서는 학교에 다니는 결혼이민자 자녀를 대상으로 다음 세 가지 방향의 다문화교육 정책을 펴고 있다. ① 다문화교육 기반 구축: 다문화교육 지원 협의체 구성, 다문화교육 정책 평가 체계 구축, 다문화교육 전담조직 및 예산 확보, 다문화 존중 교육 과정 마련 및 제도개선, ② 지역별 다문화교육 역량 강화: 현장 중심의 연구 및 사업 관리, 교육감 중심의 다문화교육 지원 강화(시·도별 다문화교육 계획 수립 및 자체예산 확보), 지역 네트워크 구축, ③ 맞춤형 다문화교육 실시: 다문화가족 학생 대상 보수교육·이중언어교육, 일반학생의 다문화 이해·수용성 제고.

 

제4단계는 결혼이민자 가족의 역량 강화기로, 결혼이민자의 사회·경제적 자립 등을 지원한다. 인력양성 및 취업연계 등 맞춤형 취·창업 지원 사업을 일부 시행하고 있고, 취업·창업능력 향상 교육프로그램 제공, 해당지역의 일자리제공기관과 결혼이민자 연계 활동 등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포괄 범위가 매우 작아서 시범사업 정도로 파악하는 게 적절하다. 정부에서는 통·번역 요원 및 다문화강사 등 결혼이민자 적합 직종을 발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출신국별 결혼이민자 자조 모임을 지원하고 있다.

 

이상의 모든 단계에 걸쳐서 정부에서는 국민의 다문화 역량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일반 국민의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결혼이민자 가족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정부의 다문화가족 정책성과는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다문화가족 정책 예산은 2007년 60억 원에서 2011년 1,281억 원으로 20배 이상 증가하였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한 사업에 그 예산의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문화가족 정책의 투입 예산 대비 성과 평가가 엄밀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치명적 한계다. 다문화가족 정책 전체 예산의 약 50% 정도를 차지하는 방문교육사업은 그 목표가 결혼이민자 가족 지원인지, 내국인 일자리 창출 사업인지, 그 경계가 애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현행 다문화가족정책이 동남아시아 출신 여성 결혼이민자 가족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조선족(한국계 중국인) 여성 결혼이민자와 남성 결혼이민자 등은 정책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다. 몇몇 결혼이민자들은 여러 프로그램들에서 중복 수혜를 받는 반면,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결혼이민자 가족 대상 프로그램에 주력하다보니, 한국인 가족이 역차별 당하는 사례도 더러 발생하고 있다.

 

다문화가족정책의 개선 방향

 

현재 우리나라의 다문화가족 복지 정책은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별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선진 복지국가와 한국의 이민자 통합 정책을 비교할 경우, 한국의 현행 정책은 매우 세분되어 있는 데 반해, 유럽 선진국의 정책은 체류자격과 국적 관련 정책과 이민자를 위한 언어와 적응 교육만이 두드러질 뿐, 나머지 정책은 특별히 드러나지 않거나 아예 없다. 그 나라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국민과 외국인 합법체류자)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 서비스’에 의거하여 이민자 통합 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많은 결혼이민자 가족 정책은 부족한 복지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궁여지책의 결과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평가일까?

 

지금부터라도 결혼이민자 사회통합 정책의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여야 한다. 정부에서 결혼이민자의 한국사회 적응과 자립을 지원하되, 이민자와 그 가족의 자발적 참여를 북돋우는 형태로 다문화가족 복지정책의 기조를 확립하여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이민자를 통합하기 위하여 채택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내용과 운영방식을 참고하면, 현재 우리나라 정책의 문제점은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세계 어느 선진국에서도 채택하지 않는 프로그램은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 대신, 이민자의 초기 적응을 위한 한국어 교육, 한국사회 이해 교육의 내실을 기해야 한다. 나머지 영역은 보편적 사회복지 제도로 해결해야 한다.

 

아울러, 다문화가족이라는 명칭과 정책 대상 규정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다문화가족을 한국인의 가족만으로 제한하는 가족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여야 한다. 현재 정책은 다문화가족 복지대상을 국민(귀화자 포함)과 결혼한 외국인, 특히 그 사이에서 자녀가 있는 경우 등으로 제한하여, 내국인과의 결혼(가족)과 출산(혈통)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의 현실은 물론 전 세계적인 추세와 어긋난다. 그러한 특수주의 정책이 다문화사회에 걸맞을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다문화가족정책의 대상, 즉 ‘다문화가족’을 결혼이민자뿐 아니라 외국인·이민자와 그 가족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확대하여야 한다. 결혼이민자는 한국인의 가족 성원인 이상 자녀가 없고 외국 국적을 유지하더라도 공공부조 제도 적용에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한국인의 가족이기 때문에 복지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정부로부터 합법적 체류자격을 부여받은 외국인·이민자 전체에 복지제도를 적용하여야 한다. 국제 관행을 좇아, 합법체류 외국인에게 한국인과 차등 없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부여하여야 한다. 예산 제약은 핑계일 뿐이다. 현재 한국보다 경제 발전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도 벌써부터 정책을 채택한 나라의 사례를 여럿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한 선진복지국가는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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