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6 2006-01-10   385

丙戌年의 문턱에 서서…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즈음이면 으레 등장하는 언론매체상의 식상한 용어가 다사다난했던 지난해라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올 한 해처럼 이 어휘가 언론의 대량유포에 앞서 본 필자의 뇌리를 깊이 흔든 적은 아마도 없었던 것 같다. 통상 격동의 한 해를 보낸 후 차분히 일년을 돌이켜보면 이런 저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 반추하게 된다. 하지만 2005 을유년의 경우 12월에 이렇게 자연 환경과 사회 환경으로부터 제기된 총체적인 거센 도전과 함께 세계적으로 확산된 항전이 반복적이면서 지속적으로 전개된 해도 가히 드물다고 느껴진다.

자연환경은 수 십 년만의 기록적인 12월 혹한, 여름 태풍을 연상케 하는 매서운 겨울바람, 하늘이 뚫린 듯 쏟아지는 눈폭탄으로 온 세상은 눈보라의 융단폭격에 시달리고 무너졌다. 특히, 열악한 위기의 농업문제에 맞서기 위해 WTO가 열린 홍콩에까지 가서 우리 농업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며 타국의 국제법정에서 구속사태까지 맞는 농촌지역 활동가의 피눈물 나는 저항은 뒤로 한 채, 자신들의 고향을 너무나 뜨겁게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먼 타국으로 원정을 떠난 후의 그 고향 대지는 특별재해지역의 선포만을 기다리는 온통 하얗게 질린 암울한 운명을 맞고 있다. 그리고 두 농촌활동가의 싸늘한 주검 앞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다시 스쳐지나가는 것은 필자의 피해망상에 기인한 기우일까?

8.31 부동산 대책 이후 부동산 안정이 드디어 이루어지는구나 싶더니 연말에 도달하자 오히려 그 전보다 부동산 가격이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폭등하는 양상을 보인다. 후속조처가 심각한 저항에 부딪히고 이를 돌파할 뒷심을 잃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서민 대중들의 내집 마련은 저만치 가는 느낌이지만, “그러면 그렇지”가 슬프게도 우리를 익숙하게 길들여 적지 않은 위안거리가 되고 있다.

항상 개악되었다고 소란스러웠던 사립학교법이 마침내 개정되었다. 이는 어떻든 간에 학생들의 복지와 밀접한 연관을 지닐 수밖에 없는 법안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소위 힘 있고 가졌다고 생각되는 어른과 단체들은 한결같이 이 법안이 군중을 호도하고 사회 기본 질서를 유린하는 왜곡된 법이라고 대중의 높은 지지의사를 사정없이 폄하한다. 과거의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 하나의 중요한 깨우침이 생겼다. 역시 많이 배우고 많이 가져야 세상에서 무시를 당하지 않고 사물을 올바로 볼 수 있다는 과거 부모님 세대의 경험진리(?) 말이다.

연초 생명공학 분야의 석학이라던 황 모 교수는 대중들에게 묘한 애국심을 자극하는 여러 제스처들을 통해, 마침내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안착하는구나,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곧 배출되겠구나 하는 여린 희망의 빛을 심어주며 낙관적인 미래 전망만으로 힘있게 출발했다. 지금은 여전히 조사가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이 모든 과정과 몸짓들이 희대의 사기극이며 국제적인 망신의 주역(망신의 세계화인가?)으로 우리 대중들을 내몰고 있다. 오로지 전 국민이 생명공학 분야의 준전문가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으로 자위해야 할 것인가 보다.

무지한 필자의 시각으로는 덜 배우고 못 가진 우리 대중과 사회복지 활동가들은 이러한 역사흐름 속에 관철되고 있는 시대정신을 읽는 혜안이 오로지 필요한 시점일 것 같다. 즉, 유행어처럼 번진 우리나라 복지문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2080의 ‘양극화 사회’라는 용어를 다시금 성찰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한 앞서 우리 사회의 일련의 사건들에서 살펴볼 수 있는 반복된 귀납적 진실은, 사회에서 80% 이상을 차지하는 한쪽 극의 철저한 실패와 일방적 희생으로 종결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복지학도와 전문 활동가들이 상징적 변화의 시기인 乙酉年을 보내고 丙戌年을 맞이하는 현시점에서 찾아야 할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문국 / 안산공과대학 사회복지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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