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9 2009-07-01   119

[심층분석1]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

이진석(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서울의대)



1. 2009년 금융위원회의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개선안

지난 6월 22일 금융위원회는 ‘실손형 보험의 최소 본인부담금을 설정하고, 보험상품을 단순․표준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인의료보험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로써 2005년 9월 생명보험사의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판매 허용, 2006년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의 『국민건강보험-민간보험 역할 설정 방안』으로 이어진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관련 논의가 일단락되었다.

최근의 급속한 시장 팽창에도 불구하고,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사실상 무규제 상태에 방치되어 있다는 문제 지적이 지속되어 왔다. 이번 금융위원회의 개선 방안은 이 같은 문제 지적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원회의 개선 방안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내용만을 담고 있기 때문에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로 인해 야기될 부작용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같은 문제점은 2006년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에서 논의되었던 내용과 이번 금융위원회의 개선 방안을 비교해 보면, 쉽게 드러난다. 금융위원회의 개선 방안은 2006년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에서 검토되었던 내용 중에서 실효성 있는 실손형 상품 관리 정책은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다.

실손형 상품 합리화의 핵심인 보장범위 제한의 경우에도 200만원 초과 부분에 대해서는 전액 보장을 허용하고 있고, 200만원 이하 부분 역시 90%까지 보장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사실상, 전체 본인부담을 실손형 상품의 영업 영역으로 내 준 격이다. 보험상품의 단순․표준화도 2006년 검토안에 비해 매우 제한적인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더군다나, 실손형 상품에 대한 합리적 거버넌스 체계나 보험가입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내용은 모두 실종되어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번에 발표된 금융위원회의 개선 방안은 보험사의 이해관계는 전혀 훼손하지 않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마련된 듯하다. 이런 정도의 내용이라면, 민간보험사에서 꺼려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이번 금융위원회의 개선 방안은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상품의 영업 영역을 공식적으로 획정함으로써 향후 민간의료보험 시장 확대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해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금융위원회의 개선 방안으로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은 그 동안 문제아 취급당하던 오명을 훌훌 떨쳐내고 우리 사회에서 공식적이고 안정적인 ‘시민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2.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진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려는 논의와 시도는 이루어진 바 있지만, 아직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촉발시키는 정책이 구체화된 것은 아니다. 금융위원회의 개선 방안 역시, 직접적인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지원 방안을 담고 있지는 않다.


가. ‘소극적인’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정책은 가장 ‘적극적인’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지원 정책
 
그러나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그 자체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의 넉넉한 자양분으로 기능하고 있다. 취약한 건강보험의 보장성으로 인해 국민의료비에서 사적 부담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2007년 현재, OECD 국가들의 국민의료비 대비 공공보건의료비 비중은 평균 73.1%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54.9%에 불과하다. 즉, 건강보험만 믿고 있다가는 고액 중증질환에 이환되었을 때 직면하게 될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연유로 우리나라 성인 인구의 60% 이상이 민간의료보험 상품을 구매하고 있는 것이다.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국민을 의학적, 경제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민의료비와 공공보건의료비의 간극을 줄이는 적극적인 정책, 특히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에 비해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에 머뭇거리는 사이에, 국민의료비는 날이 갈수록 가파르게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사적 부담의 크기가 팽창하면서,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국민의 의존성을 키우는 상황이 야기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의 ‘소극적인’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정책은 가장 ‘적극적인’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지원 정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 영리의료법인,병원경영지원회사(MSO)와 민간의료보험의 시너지 효과

민간의료보험만 놓고 볼 때에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영리의료법인과 병원경영지원회사 등의 의료민영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근본 성격을 뒤흔드는 ‘뇌관’이 될 공산이 크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의료산업 육성전략과 소비자의 고급의료서비스 요구를 배경으로 의료기관과 민간보험사의 시장 확대 요구가 점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부응한 병원경영지원회사(MSO)가 의료기관과 민간보험사를 연결하고 체계적으로 외부 민간자본을 의료기관으로 끌어들이면서, 비영리법인 의료기관들이 영리병원으로 전환되거나 신규 영리병원이 설립되고, 결국 요양기관당연지정제가 선택 계약제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영리의료법인, 병원경영지원회사(MSO) 등의 의료민영화 정책들은 개별 사안이 아니라 패키지 혹은 일련의 연쇄과정으로 작동하면서, 각각 사안들의 단순 합을 훌쩍 뛰어넘는 폭발력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진화의 시발점: 진료비 직불제도

보험업계를 중심으로 진료비 직불제도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정치권에서도 이에 공감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듯 하다. 보험가입자와 보험사 입장에서 볼 때, 진료비 직불제도 요구는 일견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보험가입자 입장에서는 의료기관에서 일일이 보험금 청구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로 제출하는 과정이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의료기관별로 상이한 진단서를 문서 형태로 관리하는 업무의 비효율성이 적지 않다. 특히,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면, 보험금 청구나 지급․심사 등의 업무량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존의 업무처리 방식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보험가입자인 환자를 거치지 않고, 의료기관과 보험사가 직접 보험금을 청구․지급하는 체계의 구축은 향후 민간의료보험의 기능과 역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간의료보험의 급격한 시장 확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의료기관과 민간보험사가 직접적인 연결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부 대형병원에 민간보험사의 상담창구를 개설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진료비 직불제도가 확립되면, 의료기관과 민간보험사가 직접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기존의 문서 형태가 아닌 전산청구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의료기관에서 민간보험사로 전달되는 정보의 양도 크게 늘어나게 된다. 초기 단계에는 민간보험사가 요구하는 정보의 양이 많지 않겠지만, 실비 보상을 원칙으로 하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의 특성상, 향후에는 비급여를 포함한 환자의 진료내역 일체가 보험사로 전달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의 급여항목에 국한된 정보를 제출받는 국민건강보험과 비교할 때, 정보의 양과 질적 측면에서도 민간보험사가 국민건강보험을 압도하게 되는 상황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의료기관에 대한 민간보험사의 영향력도 한층 공고해질 것이다.

최근에는 모든 의료기관과 민간보험사가 동시에 가입하는 개방형 통합네트워크 구축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의료기관과 민간보험사의 직접 연계가 이 같은 통합네트워크 형태로 이루어진다면, 이는 현재의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버금가는 명실상부한 제2의 건강보험공단으로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진화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3. 마치며

2008년 시중에 회자되었던 건강보험 민영화 논란에 대해 정부는 근거 없는 괴담이라며 일축했다. 그러나 정부의 한결 같은 부인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의 위축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은 여전하다. 여타 의료민영화 정책과 더불어,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급격한 팽창과 이를 방치․조장하는 정부의 민간의료보험 관련 정책은 이 같은 우려와 불안감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행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와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 그리고 획기적인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민의 우려와 불안감은 한층 증폭될 수밖에 없다. 특히, 여타 의료민영화 정책과 민간의료보험의 시너지 효과, 진료비 직불제도를 매개로 한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의 질적 진화의 가능성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난 6월 22일 금융위원회의 『개인의료보험제도 개선 방안』은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관련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아니라 새롭고 실질적인 논란을 재점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금융위원회의 개선 방안으로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둘러싼 논란은 새로운 국면, 제2라운드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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