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2 2012-01-16   6015

[동향1] 도가니 사태로 본 사회복지시설의 인권문제

임성택│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

 

도가니.jpg

 

소설과 영화 속의 도가니, 현실의 도가니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읽는 내내 수긍이 되질 않았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렇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인권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픽션(fiction)이라 여겼다. 소설을 읽으면서 속상하고, 화가 치밀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현실은 소설이나 영화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실제 사건의 판결문과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문을 보면서, 난 어른으로, 남자로, 아버지로, 변호사로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청각장애 특수학교와 사회복지시설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 법인 이사장의 장남인 교장이, 차남인 행정실장이 가녀린 장애아동에게 저지른 처참한 성적 유린. 복지시설의 생활재활교사가 자신의 방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추행했고, 특수학교의 선생은 어린 남학생을 강간했다. 수화를 모르는 선생들이 구화를 모르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최근에는 오래 전 강제노역과 암매장이 이루어졌다는 폭로까지 이어졌다. 

 

사회복지시설의 인권 문제

 

잊을만하면 터지는 사회복지시설의 심각한 인권침해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시설 거주자들이 ‘입소하고 퇴소할 자유’를 빼앗긴 채 강제로 시설에 들어가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설 수용은 강제노역이나 임금착취로 이어지고, 성폭행 등 각종 폭력의 기초가 되었으며, 통신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이 억압되는 출발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불쌍한 사람으로 보호의 대상이 될 뿐, 지역사회와 격리된 채 아무런 꿈을 가질 수 없는 물건 같은 존재로 살아야 했다.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은 재판절차를 통해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부여받은 후 법원의 판결에 따라 그곳에 수용된다. 이들은 적어도 언제 교도소를 나가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범죄를 범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기 위해 교도소에 구금되었다. 구금시설에서도 이들의 인권은 세심하게 보장된다.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가족이 돌볼 형편이 안 된다는 이유로,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다. 이들은 언제 그곳을 나갈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기대 없이 일생을 보내야 했고, 각종 인권 침해를 감수해야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년에 장애인 생활시설 인권실태를 조사했다. 장애인 생활시설 중 22곳을 선정하여 생활인들을 직접 면담조사했다. 그 결과를 보면 시설은 자기결정권이 보장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아래 표를 보면 누구나 누리는 삶을 시설에서는 누리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항목

백분율

항목

백분율

본인 스스로 시설입소를 결정했다

22.1

노동에 따른 임금을 받고 있으며, 개인이 자유롭게 관리한다.

3.4

개인 일정에 맞추어 스스로 결정한다

6.5

미래 직업을 희망하며 적극적으로 알아보는 중이다

7.3

언제든지 식사할 수 있다

5.6

가족모임에 자유롭게 참석한다

6.5

먹고 싶은 것을 언제든지 직접 가서 사먹을 수 있다

10.3

원하는 종교생활을 할 수 있다

15.3

원할 때 자유롭게 목욕 한다

31.0

주민등록증 등 개인정보를 본인이 관리하고 있다

18.0

자유롭게 미용실을 이용한다

2.2

기초생활수급권자인지 알고 있고 본인이 수급권 통장을 관리한다

7.7

가지고 있는 돈으로 외출하여 자유롭게 구매한다

10.5

개인재산은 본인이 직접 관리한다

14.2

근린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한다

6.8

생활인 대표기구를 통해 생활인의 의견 및 욕구가 시설운영에 잘 반영된다

1.6

자유롭게 개인의 취향에 따라 문화생활을 한다

5.0

주기적으로 상담을 하고, 원하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6.6

개인적 용무로 자유롭게 외출한다

12.3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영화 도가니가 나온 후 국민들의 관심이 모인 가운데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 추진되었다. 그 결과 2011년 12월 27일 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에는 사회복지시설의 인권개선을 위한 여러 장치들이 마련되었다. 사회복지법인의 이사를 최소 5명에서 7명으로 늘리고, 그 3 분의 1(단, 소수점 이하는 버린다) 이상을 외부인사로 선임하도록 했다. 외부이사는 사회복지위원회, 지역사회복지협의체에서 2배수로 추천한 사람 중에서 선임된다. 이른바 ‘공익이사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사회복지법인 또는 시설 임직원의 결격사유가 확대되었고, 직무집행 정지사유를 신설했다. 중대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사회복지법인 또는 시설의 임직원이 될 수 없게 하였다. 사회복지법인 및 시설의 운영에서 투명성과 공익성을 높이기 위해 이사회 의사록을 공개하는 등 여러 장치가 마련되었다.

 

공익이사제도는 뜨거운 감자였다. 사회복지법인들은 내가 설립한 법인인데, 왜 내 맘대로 못하느냐, 왜 외부인사를 이사로 임명해야 하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사회복지법인은 사회복지서비스라는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인데다, 대부분의 재정을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의존하고 있다. 사립학교도 개방형 이사제도가 있고, 심지어 주식회사조차 사외이사를 통해 투명성을 높이는 시대이다. 대부분의 재정을 국가에 의존하는 사회복지법인의 경우 공익이사가 임명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복지사업법이 개정되었지만, 이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시설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제도개선이 요구된다.

 

탈시설과 자립생활

 

사회복지시설은 가난한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 가족이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 곳이다. 그런데 도가니 사건을 보면 인화원이라는 시설에 장애인들을 수용하고, 기숙 형태로 특수학교를 운영한 것이 문제의 출발이었다. 시설은 각종 인권유린 사태의 주범이었다. 사랑으로 운영되어야 할 사회복지시설에서 각종 비리와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자기 방어가 취약한 사회적 약자를 폐쇄적인 공간에 대규모로 수용하는 한 인권침해와 비리 근절은 불가능하다.

 

장애인을, 노인을, 버림받은 아동을 지역사회와 분리하여 시설에서 단체생활을 하도록 하고, 오로지 보호의 대상으로만 삼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이런 삶은 보편적, 정상적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도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함께 살면서 친구도 사귀고, 재활이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러한 자립생활이야말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 시설 중심의 복지정책을 폐기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자립생활을 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시설 중심의 정책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들을 집단으로 수용하는 시설정책이 유지되는 한 제2, 제3의 도가니 사건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사회복지서비스 이용자의 권리 강화

 

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적합하고, 양질의 사회복지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이 제대로 보장되어야 한다. 사회복지사업법에 관련 조항이 있으나, 법전 속에 잠자고 있었다. 여전히 복지는 국가의 시혜적 조치의 대상이지, 국민의 권리로 인식되지 못했다. 장애인, 노인, 아동 등은 보호의 대상이지, 당당한 시민이 아니었다.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서비스 센터를 시군구 단위로 구성하고, 예산이 지원되어야 한다. 아울러 사회복지서비스 신청제도가 널리 홍보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복지서비스는 시혜가 아닌 권리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나아가 획일적 복지가 아닌 개인의 상황과 요구에 맞는 맞춤형 복지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당사자의 개별적인 상황과 욕구에 맞는 개별화된 계획을 세워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를 정기적으로 점검하여 부족한 점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가정에서, 지역사회에서 그런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실효성 있는 복지가 제공되기 위해 행정청이 법률에 근거를 둔 것에 제한하지 않고, 이용자에게 필요로 하는 생활비, 주거, 의료 및 재활 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주거지원이 시급하다.

 

권리옹호시스템 도입

 

도가니 사건은 한국 인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인권국가라고 자부해온 이 땅에서 이런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끔찍하고 시대착오적인 인권침해사건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특성상 스스로 인권옹호나 권리구제를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과 맞물려 있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권보호 및 옹호시스템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웅변한다.

실례로 아동복지법, 노인복지법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있다. 이 기관들은 아동 또는 노인에 대한 학대, 유기, 인권침해와 관련한 권리옹호기관이다. 사회복지사업법에 장애인, 노인, 아동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리옹호기관, 긴급전화 등의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장애인복지법에 장애인 권리옹호기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두어야 한다. 
 
권리옹호기관은 시ㆍ군ㆍ구 단위로 전국에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권리옹호기관은 미국의 P&A(Protection and Advocacy)처럼 법률상 기관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하도록 하되, 민간에 위탁하여 운영하는 것이 좋다. 장애인 권리옹호체계는 그 특성상 장애에 관한 깊은 이해와 전문성이 요구되며, 자발성과 헌신성이 요구된다. 

 

근본적 변화의 시작

 

1970년대 미국에서는 Willowbrook이라는 대형 복지시설의 문제가 뜨겁게 제기되었다. 이를 계기로 탈시설과 인권보장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영화 도가니 이후에 장애인시설을 비롯한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 결과 사회복지사업법도 일부 개정되었다. 전에는 도저히 관철할 수 없었던 공익이사제도도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는 출발에 불과하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러한 관심과 열정이 영화로 인한 한 때의 흥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에서 정말 획기적인 변화로 이어지면 좋겠다. 그럼 좀 덜 부끄러울 것 같다.  

첨부파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