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3 2013-05-15   6132

[심층분석3] 한국의 일·가정 양립 현실과 대안 : 우리, 행복하기 위한 조건

한국의 일·가정 양립 현실과 대안 : 우리, 행복하기 위한 조건

 

김영미 l 동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우리, 지금 행복한가?

 

“국가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국민의 삶이 불안하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 될 때 국민 행복시대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근심 없이 각자의 일에 즐겁게 종사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할 것입니다.”

-2013년 2월 25일 제 18대 대통령 취임식 연설문 중

 

올해 초, ‘국민 행복시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축복이 되는 사회,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일과 가정을 잘 양립하는 것은 개인, 가족 차원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새 정부 첫 여성가족부 장관은 취임연설에서 “일하는 엄마 대신 국가가 엄마가 되어주겠노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고 교육하고 먹이는 것과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문제들이 정치라는 공적인 장에서 주요 정책의제가 된 것은 놀라운 변화다.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은 철저히 가족 안의 사적인 문제였고, 전적으로 가족이 부담하고 책임져야 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적 관심은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며,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과 그 속에서 증폭되고 있는 시민들의 삶에 대한 위기의식과 불안, 그로부터 터져 나온 복지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 안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출산과 양육, 일·가정 양립에 대한 공적 관심이 급증한 데에는 다양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상황이 놓여 있겠지만, 무엇보다 2000년대 이후 확산된 ‘저출산 위기 담론’이 있다. 2002년 합계 출산율이 1.17명으로 OECD 국가들 중 최 저수준이라는 통계청 발표와 함께 위기의식이 고조되었고, 2011년 현재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4명으로 인구대체수준인 2.1명에 한참 미달하는 수준이다. 저출산은 고령화와 함께 노동력 부족, 평균 노동연령 상승에 따른 생산성 하락과 경제성장률 저하, 그로 인한 국가 경쟁력 약화, 세수 기반 및 사회보장재정 악화 등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사회문제로 학계, 언론 등 여러 공론의 장에서 그 심각성이 강조되고 있다(김영미, 2011).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가?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된 이후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덜어주고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이 도입, 실시되었다. 2013년 올해부터는 만 0세부터 5세까지 아동들에게 보육료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양육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성의 양육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3일의 무급휴가로 주어졌던 남성의 출산휴가를 한 달로 확대하는 소위 ‘아버지의 달(daddy month)’를 도입, 실시하기로 했다.

 

물론 정책의 효과가 사람들의 행동 변화로 이어지기까지는 단시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약 십여 년의 시간 동안 소위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은 꾸준히 지속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정책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러한가? 그 이유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문제는, 몇 가지 출산 및 양육과 관련된 단편적인 정책의 도입과 개선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삶 전반의 조건과 얽혀 있는 것이고, 그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과 남성, 그리고 이들이 꾸려가는 가족의 행복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남성과 여성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삶이 고단하고, 미래의 삶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긴 시간 노동하는 상황에서는 남녀 모두 자유롭게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없고, 양육비와 사교육비 부담이 높은 상황에서는 여러 명의 아이를 낳기를 주저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실업과 비정규 고용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상황, 높은 주거비용으로 내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 일과 양육을 양립하는 문제가 전적으로 여성의 문제인 상황, 출산과 양육이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선뜻 결혼과 아이 낳기를 선택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김영미, 2011). 현재 일하는 엄마들은 직장에서는 업무에의 몰입을, 가정에서는 집중적인 엄마 노릇을 강요받으면서 자신을 돌볼 최소한의 시간조차 없이 혹독한 시간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아버지들 역시 장시간 노동, 야근과 회식, 고용불안 등에 시달리고 시간압박을 받으며 일·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주은선·김영미, 2012).

 

한국 일·가정 양립의 현 주소

 

최근 OECD는 그 사회의 발전수준을 측정하는 지표로 ‘삶의 질(well-being)’에 주목하고, 국가별 ‘삶의 질’의 수준을 측정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사회의 삶의 질 즉, 더 나은 삶(Better Life)을 보여주는 다양한 영역의 지표들을 포함했는데, 그 영역에는 주거, 소득, 일자리, 공동체(community), 교육, 환경, 시민사회 참여, 건강, 삶에 대한 만족도(life satisfaction), 안전, 일·가정 양립(work life balance)이 포함되었다.

 

이 중, 일·가정 양립을 보여주는 지표로는 ‘주당 50시간 이상 일하는 장시간 노동자의 비율’과 ‘하루 중에 먹고 잠자면서 자신을 돌보는 시간과 여가시간’을 제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주당 50시간 이상 일하는 장시간 노동자의 비율은 22.48%로 36개 국가들 중, 33위이다. 장시간 노동자 비율은 일본보다 낮지만, 노동자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으로 보면, 2,090시간으로 전체 OECD 국가들 중 2,249시간인 멕시코를 제외하고 가장 길다(일본은 1,728시간). 하루 중 여가와 자신을 돌보는 데 사용하는 시간은 14.63시간으로 36개 국가들 중 21번째이다.

 

사실 일·가정 양립의 문제를 논할 때 주로 이야기되는 대상은 ‘어린 자녀를 둔 여성’이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문제는 단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와 ‘모’ 양자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양육의 역할과 책임이 전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져 있었던 탓에, 그리고 아이는 엄마가 직접 돌보는 것이 가장 좋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여전히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까닭에, 여전히 여성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성의 교육수준 증가로 직업을 갖고 경력을 쌓는 것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커졌고(실제로 2008년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을 넘어섰고, 2010년 여성은 80.5%, 남성은 77.6%가 대학을 진학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실제 경제활동참가수준도 꾸준히 증가해 왔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게 되면, 경력이 단절되는 현상은 여전한 문제로 남아 있다.(그림4 참조). 2009년 15세 미만 어린 자녀를 둔 여성들의 고용비율이 84%인 덴마크, 80%인 스웨덴, 78.5%인 네덜란드와 대조적으로 한국의 경우, 최연소아동이 영아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9.9%에 불과하다(2009년 전국보육실태조사 결과).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여성들을 더욱 행복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 같은 비용을 지불하고 동일한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 내에서는 채용, 승진, 임금상의 차별을 받고 있고, 가정 내에서는 전통적 성별분업이 유지되면서 가사와 양육의 책임을 전담하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의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다.

 

물론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들이 많이 도입되었고 개선되었다. 여성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90일 간의 출산휴가와 남성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30일 간의 배우자출산휴가, 초등학교 취학 전 자녀를 둔 노동자들에게 1년 동안 주어지는 육아휴직과 육아 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등은 한국의 출산 및 육아휴가정책이 제도의 내용상으로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현행 출산, 육아휴직제도는 포괄하고 있는 대상자가 협소하여 출산·양육이라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위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고용보험법 상,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신청하여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여 피보험기간이 180일 이상인 임금 근로자들이다. 따라서 고용보험 미가입자(학생, 실업자, 자영업자 등)와 고용보험 사각지대(비정규직 등)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원천적으로 이 제도에서 배제되고 있다. 고용보험 피보험자 비율이 전체 취업자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할 때, 현행 고용보험 내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제도가 들어있는 것은 상당히 많은 한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쓰지 못하는 여성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자신의 휴직이 동료들의 업무 부담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육아휴직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울 수 있다. 2011년 기준으로 출산휴가 신청자의 경우 90,290명인데 반해 육아휴직 신청자는 58,137명으로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 중에서 남성 신청자는 1,402명으로 전체의 2.4%에 불과하다. 앞으로 남성 노동자에게 한 달의 출산휴가를 부여한다고 하지만, 신청자가 얼마나 될 것인지, 그리고 육아휴직 사용까지 이어질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근로시간 단축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현재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사람은 300여명에 불과하다.

 

우리, 행복하기 위한 조건

 

그렇다면, 여성과 남성이 행복하기 위해,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여기에서는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정책 개선방안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필요한 대안을 중심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남녀의 일·가정 양립을 가장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출산 및 육아휴직제도가 실효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현행 제도는 고용보험의 틀 안에 놓여 있어 출산·양육이라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위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데, 비정규직, 자영업자, 학생, 실직자 등은 아무런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행 고용보험이 아닌, 그보다 대상자 포괄범위가 넓은 국민연금이나 국민건강보험을 활용하거나, (가칭) ‘부모보험’과 같은 별도의 사회보험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스웨덴은 1974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를 ‘부모보험’으로 통합해 별도의 사회보험 제도로 운영하고 있다(김영미, 2011). 부모보험의 신설은 실업, 산재, 은퇴, 질병 등과 함께 ‘출산과 양육’이 새로운 사회적 위험으로 등장했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의미도 갖고, 이런 새로운 위험에 대해 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의미도 가질 것이다.

 

두 번째로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사실 기준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운동의 고전적인 의제였다. 처음에는 노동자의 건강 및 안전을 위해 제기되었지만, 지금은 일·가족 균형 혹은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조명되고 있다(주은선·김영미, 2012). 긴 노동시간은 일·가정 양립과 결코 ‘양립’할 수 없음을 여러 실증자료들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특히, OECD 국가들 중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가장 절실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전반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단시간 노동을 확산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단시간 노동을 늘려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이룬 네덜란드 사례는 이런 방식의 노동시간 단축이 가질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보여준다. 네덜란드는 노사 간 대타협을 통해 1993년 단시간 노동자 활용을 통한 노동 유연성 확대와 단시간 노동자와 정규시간 노동자 사이의 시간당 임금 및 각종 사회보장의 동등 보장을 결정한 바 있다. 그리고 2000년 모든 네덜란드 노동자들은 고용주에게 단시간 노동으로 변경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물론 고용 불안정화 및 노동조건 하락 가능성, 성별 불평등 유지라는 어두운 이면은 여전히 경계의 대상이다.

 

표준노동시간 및 초과노동시간 제한을 통해 기준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유급휴가를 확대하고 단시간 노동의 활용을 제고하는 것은 일·가정 양립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그래서 노동세계를 중심으로 생활세계가 맞춰지던 것에서 두 세계의 균형을 회복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고유의 삶의 리듬과 행복을 찾을 수 있기 위한 의미 있는 출발이자 조건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간정책의 전환과 그에 조응하는 사회보장제도의 변화, 그리고 양육과 가사노동의 일차적인 책임은 여성이라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고 일하는 부모를 비롯한 다양한 집단의 다양한 요구를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지원하는 관용의 문화를 형성하는 문화적 변화 또한 필수적이다(주은선·김영미, 2012).

 

누구나 자유롭게 일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가지며, 필요에 따라서는 자녀의 돌봄이나 여가를 위해, 혹은 자기 개발을 위해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이러한 일들이 여성과 남성 사이에 적절히 배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인간적인 노동시장, 보다 평등한 가족, 돌봄의 부담을 사회화하는 복지국가이다. 지금 현재, 이러한 지향을 현실 속에서 실현해나가기 위한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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