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3 2013-04-15   3907

[심층분석2] ‘시혜와 동정’을 걷어치우고 ‘권리’의 시대로 움직이다

‘시혜와 동정’을 걷어치우고 ‘권리’의 시대로 움직이다

 

박경석 ㅣ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힘내세요!

 

얼마 전 대전에 갔다가 휠체어를 밀고 지나가는데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분이 나를 ‘아저씨, 아저씨’라고 불렀다. ‘아저씨’라고 불리니 기분은 괜찮았다. 보통의 사람들은 나의 머리가 하얗다는 이유로 ‘할아버지’ 또는 ‘어르신’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아저씨’라고 부른 그 사람은 내게 다가와 머리와 어깨를 몇 차례 쓰다듬듯 치면서 ‘힘내세요!’ 하더니 손에 ‘망고’를 하나 쥐어주고 가버렸다. 갑작스러운 ‘망고’ 덕분에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는 복잡미묘한 상황이 되었다.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했나? 갑자기 불쌍한 장애인이 되어버린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 사람은 이미 저 멀리 자기 갈 길을 가버렸다.

 

박근혜 정부도 ‘장애인여러분, 힘내세요!’라고 속삭인다.

 

역대 대통령 취임사에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직접 언급된 것은 몇 차례 되지 않는다. 대략 장애인의 존재는 ‘노약자를 비롯한 소외받는 사람들, 그늘 속에 살아온 사람들, 어렵고 힘없는 사람, 진정한 복지사회라는 단어의 언저리에 대상으로 표현되었다. 장애인이라는 존재는 그 정도로 언급해도 되는, 소외받고 그늘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힘없는 대충의 집단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특별히 장애인을 언급하면서 장애인들에게 최고의 복지가 일자리라 생각했는지, 일자리를 주겠다고 큰소리 쳤다. 그리고 일을 못하거나 할 수 없는 장애인들은 따뜻하게 감싸주고, 눈물도 닦아주며 국가가 책임지고 보살핀다고 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은 장애인의 날 즈음에는 장애인생활시설에 가서 중증장애인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닦아주려다 오히려 눈물 흘리며 감동받았다고 울었나보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 기조에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누구라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사회’, ‘사회적 약자에게 법이 정의로운 방패’라는 표현으로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였다.

 

역대대통령들은 취임사에서 장애인을 언급하든 하지 않던 사회적 약자이고 소외된 장애인의 눈물도 닦아주고, 보살펴주고,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일자리를 주겠다고 공언했다.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했나?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의 표현을 다르게 이해하면, “중증장애인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사회”란 지역사회보다는 장애인에 대한 성폭행이나 폭력 등의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공금 및 후원금 횡령과 같은 시설비리가 여전히 존재하는 장애인생활시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의문이 아닌 현실적인 사실이다. 정부와 사회 그리고 장애인을 사랑한다며 보살피는 시설장님들과 종사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그러하다는 것을 장애인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실이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는 장애인을 장애인생활시설에 안전하게 보호하라고 시설장들을 통해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고 있다며 생색내고, 장애인들에게는 ‘망고’하나 주면서 ‘힘내라’고 주절거린다.

 

물론 일반적인 사적관계에서 한 개인에게 ‘망고’를 받는다면 고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장애인을 보살펴주고, 위로하고, 눈물 닦아준다며 ‘망고’ 하나 달랑 주고 ‘힘내세요!’라며 가버리는 것은 많이 곤란하지 않나?

 

88년 장애인등록이 시작되다.

 

나는 83년에 행글라이딩 사고로, 재수 없게 장애인이 되었다. 그 때는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살길을 찾지 못하고 죽음을 생각하면서 5년의 세월을 집구석에서 보내다가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처음 간 곳이 88년에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이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첫 장애인이용시설 복지관이었던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은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취업을 위해 컴퓨터교육을 받으면서 열심히 재활과 장애극복을 준비하는 착한 장애인이었다.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이 ‘진정한 사회복지’를 운운하며 장애인들의 첫 번째 법률인 ‘심신장애자복지법’을 만들었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 장애인들은 그 법을 법이라 부를 수 없었다. 그 법의 실체는 휴지조각과 같은 도덕책에 불과했다.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 제정, 1982년 장애등급기준 발표, 1987년 장애인등록제도 시범 실시, 1988년 11월1일부터 전국적으로 장애인등록제도 시행된 이후, 1989년 ‘장애인복지법’ 전면 개정을 통해 일본 방식과 같은 장애등급제가 제도화 되었다.

 

초기에는 5가지 장애유형(지체, 시각, 청각, 언어, 정신지체)에 대해 그 중증도에 따라 1급에서 6급까지로 분류되었고 2000년과 2003년에 장애영역이 확대되어, 현재는 15개 장애유형으로 분류되었다. 1989년 약17만 명에 불과했던 장애등록인구는 2011년 251.9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61%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당시 정부는 장애인에게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복지를 전달한다는 명목으로 장애등급제를 시작했다. 그러나 88서울장애자올림픽을 치렀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장애인들에게 제공하는 복지서비스란 것은 눈뜨고 찾아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선생님의 손을 잡고 가장 먼저 장애인등록을 하였다. 장애인을 위해 노력하는 국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장애를 순수하게 내 자신이 극복해야할 문제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기꺼이 등록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장애인등록 현황이 매우 저조했다. 장애인등록을 통해서 받을 수 있는 혜택도 없을 뿐더러 스스로 낙인을 인정하는 장애인등록의 필요성을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모범이 되고자 가장 먼저 장애인등록을 했던 것이다. 이는 물론 선생님이 나를 열심히 훈계하며 교육했던 결과이다.

 

88서울장애자올림픽을 통해 ‘인간승리’의 눈물과 ‘재활의지 장애극복’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 수많은 장애인들은 생존조차 힘겨워 먹고살기 위해 거리에서 찬송가를 틀어놓고 바짝 엎드려 구걸해야 했다. 또한 중증장애인들은 집구석이나 장애인수용시설에 폐기물처럼 그 존재조차 찾기 힘들게 존재하고 있었다.

 

1989년 11월, 7명의 젊은 장애인들이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하고 장애인을 노동시장에서 의무적으로 고용하는 내용의 장애인고용촉진법을 제정하느 두 가지 법안의 입법을 ‘죽음’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공화당 당사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이 농성을 시작한 장애인들은 빨갱이 장애인이 되었다.

 

‘이곳을 거쳐 가는 者여, 祖國은 너를 믿노라’는 그 당시 공화당 당사의 팻말 아래 7명의 젊은 빨갱이 장애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과연 그들에게 조국은 있었을까. 그 조국은 의학적으로 장애인의 정체성을 나누면서 장애인을 위한다고 ‘88장애자올림픽’을 치렀다. 또한 ‘장애인여러분, 힘내세요!’, ‘장애인 여러분, 재활의지를 높이세요’라고 더 큰소리로 외치면서 대한민국을 세뇌하고 있었다.

 

그 대한민국 한가운데 젊은 빨갱이 장애인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미약하고 배가 고팠다. 그들의 주장은 ‘장애인들이 일을 하면서 먹고 살 권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장애등급제가 은폐하고 있는 비밀을 밝혀내거나 건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80년 장애인운동에서 너무나 부끄러운 ‘심신장애자복지법’의 시대를 투쟁으로 끝장내고, 90년 ‘장애인복지법’ 시대를 열어나갔다. 당시의 나는 침묵하는 불쌍하고 착한 대다수 장애인이었고, 그들은 소수의, 말을 듣지 않는, 빨갱이 나쁜 장애인들이었다.

 

장애등급제 폐지 운동을 시작하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장애인 추락 참사를 계기로 장애인이동권 투쟁이 시작되었다.  이후 지난 10년간 장애인교육권 투쟁,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투쟁, 사회복지시설 비리투쟁과 공익이사제 도입, 장애인 탈시설운동 등 장애인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수많은 운동들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투쟁의 특징은 그동안 집구석 또는 장애인시설에서 ‘폐기물’로 존재했던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투쟁 현장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점이다. 중증장애인들이 역사 전면에 등장했으며 중증장애인 권리를 찾기 위한 역사를 스스로 치열하게 만들어갔다는 점이다.

 

또한 중증장애인들이 장애인생활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투쟁이었다. 중증장애인들이 ‘때로는 반인권적인 일도 발생하지만 안전하고 사랑스러운’ 장애인생활시설이 아닌 ‘위험한 자본주의적 약육강식이 생선처럼 펄펄 뛰는’ 지역사회로 나오겠다는 탈시설의 선언을 온몸으로 말한 시기였다.

 

이러한 투쟁은 중증장애인들이 마이너스(-) 삶에서 영(0)의 삶을 살기 위해, 기본적인 시민권을 얻기 위한 실천이었다. 그래서 투쟁한 만큼 조금씩 전진하면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장애등급제 폐지라는, 장애인 문제에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의 문턱에 와있다.

 

장애등급제 폐지 구호는 중증장애인들이 2010년 장애등급제 재심사로 인해 장애등급 1급에서 2급으로 떨어지면서 그동안 받던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되자 한국장애인개발원과 국민연금 장애심사센터를 점거한 이후, 본격적으로 대중적인 물리적 힘을 동반한 문제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2011년, 2012년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의 과정에서도 거리농성을 통해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며 투쟁하였다. 그리고 2012년 8월21일 뜨거운 여름, 경찰들과 10시간을 온몸으로 대치하면서 우리는 광화문광장 해치마당 지하차도에 천막을 쳤다.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와 ‘빈곤의 사슬,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기 위해 광화문 한가운데서 농성을 시작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비웃었다. 그리고 장애등급제가 당연히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우리를 훈계했다. 장애인문제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장애인당사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장애인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전문가와 사회복지사들, 주류의 장애인단체연합들 조차 이해하지 못하거나, 비웃거나, 반대하거나, 헛소리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2012년의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추운겨울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추운겨울보다 더 혹독한 추위가 휩쓸고 있는 2013년 봄, 광화문광장 해치마당 지하도에 있는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천막농성이 220일이 넘어가는 지금, 많은 것이 달라졌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모든 대선후보들은 대선기간 동안 ‘장애등제 폐지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장애인정책의 첫 번째 공약으로 내걸고 정책협약까지 진행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약속했다. 이후 인수위 때 ‘장애등급제 폐지’를 ‘장애등급제 단계적 개선’으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검토’로 살짝 바꾸는 꼼수를 부렸다. 그러나 진영 복지부장관의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장애등급제 폐지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이라는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바야흐로 이제 모두가 장애등급제 폐지를 노래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입장에 따라서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떤 이는 6등급을 중·경정도의 2등급으로, 어떤 이는 최중·중·경 정도의 3등급으로 바꾸려하고 어떤 이는 전달체계 개편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도 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 제정 이후 90년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이어져 왔던, 장애인을 의학적으로만 판정하고 장애인의 정체성에 급수를 매기는 장애등급제가 사라지려 하고 있다. 거짓과 기만의 ‘심신장애자복지법’과 시혜와 동정의 장애인복지법 시대인 구시대가 사라져가고 있다.

 

장애인복지법의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에게 무엇이었나?

 

장애등록은 장애인복지제도에 진입하기 위한 절대적 조건이다. 등록하지 않으면 장애인이 아니고, 서비스도 없다. 등록을 위해서는 유형과 등급기준을 충족시켜야 하고, 유형별 등급으로 구분되어 등록 된다. 결국 장애인은 장애등급기준이라는 의학적 장벽과 소득기준(게다가 부양의무자 기준까지!)이라는 2중, 3중의 장벽을 통과해야만 장애인복지서비스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는 장애등급이 동일하면 서비스 욕구도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어 동일한 서비스가 지급되는 것을 의미한다.

 

‘관주도 일제등록’ 형태를 띤 장애등급제는 ‘선등록 후서비스’라는 행정편의적 방식에 불과하다. 개인의 사회적 환경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오직 의료적 기준만이 적용된다. 이러한 장애등급판정기준이 장애인의 서비스 필요도에 부응하지 못함이 당연한 것에도 불구하고, 무려 25년 동안이나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절대기준으로 작동해왔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우선적으로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로 포장해왔던 것이다.

 

정부가 장애등급제를 옹호하는 또 하나의 논리는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한 제도라는 것인데, 이는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무시무시한 논리이다. 이를 통해 정부가 소위 ‘가짜 장애인’을 잡아내고, 장애등급판정의 형편성과 객관성을 높이겠다며 ‘장애등급심사’를 강요하고, 예산삭감을 위해 (중증)장애인을 축소하는 것마저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장애등급제가 기능하는 영역은 단순히 서비스 적격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장애등급제는 장애란 무엇이고 장애인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사회적 정의의 문제이며, 누구에게 어떤 서비스를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 것인지에 관한 총체적 질문이기도 하다.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몸에 등급을 매겨 구분하는 낙인화’의 문제도 있다. 장애등급제가 존재하는 한 장애인은 손상된 몸을 가진 사람으로만 정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의료적 장애등록판정 기준’의 문제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손상(impairment)과 장애(disability)는 다르다. 우리나라의 장애등급제는 ‘손상등급제’일 뿐이다.

 

이렇게 장애등급제가 그동안 기능해왔던 부정적인 요소들과 그 본질을 인식하고, 장애등급제 폐지와 대안적 전달체계, 즉 장애인중심의 개인별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장애인계 모두의 운동과제이다.

 

장애등급제가 은폐하고 있는 소득보장 제도의 문제

 

장애등급제 폐지로 인한 감면·할인제도의 혼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장애인계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정부는 장애인계에서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며, 가장 변동이 적은 2단계 구분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장애인소득보장제도와 장애등급제의 기능을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장애인의 소득보장을 위해서야말로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감면·할인제도는 간접적 소득보장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상당한 소득보장 기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감면·할인제도는 소득보장제도의 핵심이 아니다. 오히려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구분 짓고 장애인의 낙인화 및 장애인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등 부정적 기능을 감안하면, 직접적 소득보장제도를 통해 충분히 적정한 삶을 보장하는 방향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직접적 소득보장제도의 대안을 모색하고, 그 속에서 감면·할인제도의 개선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장애등급제 폐지의 방향을 ‘장애인권리보장법’에 담아야

 

장애등급제 및 그 대안논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장애등급제는 단순히 하나의 부분으로 기능하던 제도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장애인복지체계를, 아니 장애에 대한 모든 담론을 지배해온 거대한 구조를 관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등급제에 관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장애등급제와 구시대적 차별구조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장애등급제란, 장애를 개인적 신체의 결함으로 규정하고,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개인의 불행 혹은 고작해야 가족의 책임으로만 전가하는, 전문가와 보호자 중심의 알량한 복지체계로,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시설보호를 구조화하여, 결국은 장애인을 배제함으로써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구조를 보호하고자 하는, 이 땅의 구시대적 차별구조를 관통하는 동력이다.

 

따라서 장애등급제는 완전히 폐지되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장애등급제 폐지의 방향이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를 새롭게 정의하기 위한 담론과 새로운 전달체계를 구축하고, 개인의 욕구와 환경에 따른 개인별 지원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장애등급제 폐지는 그동안 그것이 은폐해왔던 장애인의 권리를 전면에 부각하는 것이어야 하며, 탈시설화와 자립생활, 권리옹호라는 현실운동의 의제와 함께 표현되어 장애인복지의 새로운 기초를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산확대를 통해 구체적 장애인의 소득보장 대안을 만들어내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바로 장애등급제 폐지운동을 통해 제시되고 있는 장애의 재정의, 장애인중심의 새로운 전달체계 및 개인별 지원체계, 탈시설화와 자립생활 실현, 권리옹호체계를 담아낼 제도적인 그릇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지금의 과제이다.

 

대안은 있다. 대안을 실현할 힘이 우리에게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제 곧 4월 20일이다. 동정과 시혜와 허위와 기만의 저들의 ‘장애인의 날’이 아닌, 우리의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날’에 수십년 장애인을 옭죄었던 등급제의 사슬을 끊어내고 장애인권리의 시대를 열어젖히는 투쟁이 필요하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에게 ‘혁명’이며,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은 그 결과 이어야한다.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 ( McKnight, 1995)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문제로 정의된 장애인들이 장애인의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수많은 투쟁과 광화문 천막농성을 통해서 모았다. 이제 장애인에 대한 의학적 정의를 다시 정의하려고 한다. 혁명인 것이다.

 

대선 이후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많은 사람이 힐링을 이야기했다 한다. 힐링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레미제라블의 역사적 배경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통해 왕정을 몰아내고, 제1공화정이 선포되지만 다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등장한다. 이후 1815년 프랑스에서 다시 부르봉 왕가가 다시 등장하여 왕정이 복고된다. 그 과정에서 산업혁명으로 도시화,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부를 가진 자와 못가진자는 더욱 격차가 벌어진다.

 

부르주아, 공화파, 노동자, 학생, 오를레앙파 등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연합해서 1830년 7월 혁명을 일으켜 부르봉 왕가를 이을 정치체제를 영국식 입헌군주제로 하기로 하고 루이 필립을 시민왕으로 추대한다. 그리고 2년 뒤인 1832년 6월, 부르주아의 이익만 옹호하는 정책을 펼치던 루이 필립에 반발하면서 공화파와 학생 세력이 추축이 되어 반란을 일으킨다. 그 반란은 철저하게 진압되고 그 과정은 ‘레미제라블’에 잘 표현되고 있다. 이후 1848년 2월 혁명으로 비로소 저항은 사라지게 되었다.

 

장애등급제 폐지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투쟁은 장애인계에서 1830년 7월 혁명과 비슷한 상황이다. 여러 다양한 세력이 장애등급제 폐지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 목표가 서로 다르다. 지금 이 순간 그들과 함께 또 다른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합의하면서 루이필립 왕을 추대할 것인가? 아니면 장애인을 차별하는 상징적 제도인 장애등급제를 완전폐지하고, 이를 실현할 제도적 장치인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하여 공화정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 결과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장애등급제폐지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약속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망고’하나 던져주면서 ‘장애인여러분 힘내세요!’라며 맞춤형 복지를 속삭이고 있다.

 

[레미제라블]과 같은 슬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지금 1830년 7월 혁명을 수행하고 있다. 장애계의 다양한 세력과 연합하여 또 다른 왕정을 만들 것인가, 우리가 분명한 목표와 투쟁의 지점을 가지고 다양한 장애인계에 전망을 제시하고 함께 투쟁으로 나아갈 것인가는 우리의 결정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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