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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13
  • 2013.05.15
  • 3350

우리나라 공공병원 현황진단

 

문정주 ㅣ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지원단

 

상업적 의료가 우리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번화한 도심마다 병의원이 즐비하고 버스나 전철에 의료기관을 홍보하는 광고가 가득하며 TV에는 기계로 빼곡한 대형병원 현장에서 첨단 의료에 관해 전문의와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OECD 회원국 중 유례가 없을 정도로 병원 대부분이 사립기관이고, 고가 의료장비가 과잉 이용되며, 훌륭한 의사와 돈을 많이 버는 의사를 동일시하고, 정부조차 의료는 시장에 맡겨두면 된다고 생각하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 환경은 1970~80년대에 시작된 정책의 산물이다.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여 의료 수요가 팽창하기 시작하였을 때 이에 대응책으로 정부는 공공적 기반을 강화하는 대신 사립병원 증설을 유도하였고 그 결과 ‘건강보험은 국가가, 의료는 사립병의원이, 예방보건은 보건소가’ 담당하는 지금의 틀이 짜였다. 당시 정부는 손쉽게 병상을 늘리는 방법을 택했던 것인데, 이대로 과연 괜찮은 것일까.

 

경상남도 진주의료원의 폐쇄 논란 덕분(?)에 공공병원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논란이 우리나라 의료 문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서 공공의료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공공병원 전반의 현황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공공병원 숫자는 적다. 그러나 적정진료, 건강안전망, 돈 안 되는 분야에서 역할은 크다

 

우리나라의 공공병원은 모두 200개로 전체 병원의 6.4%에 해당한다. 많지 않은 기관 중에서도 상당수가 결핵․정신․노인병원 등 특정 질환을 대상으로 하거나 산재․보훈․군(軍)․경찰 등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병원이어서 일반적인 종합적 진료를 하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은 61개로 정말 적다.

 

우리나라에서 공공병원의 기능은 첫째, 수익 높이기가 목적이 아니므로 검사 건수를 늘리거나 불필요한 시술을 하지 않고 적정 진료를 한다. 이는 영리적 경향이 날로 심해지는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둘째, 그러한 진료의 결과로 진료비가 상대적으로 싸고 상급병실료 등 비급여 수가도 낮게 책정하므로 취약계층이 큰 부담 없이 이용한다. 취약계층의 건강을 보호하는 안전망 기능이다. 

 

셋째, 사람에게 꼭 필요한데도 수익성이 없다고 사립병원이 기피해서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분야를 떠맡아 진료한다.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 의료의 본질이니만큼 수익성이 있는 분야가 사실상 일부에 불과해서 응급․감염병․재활․호스피스 외에도 질병예방과 건강증진 등 여러 분야에서 수익성이 낮거나 거의 없다. 게다가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병원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필수 진료과조차도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운영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분야나 지역일수록 공공병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공공병원이 의료 질에서 더 우수하다

 

공공병원 의료 질이 낮다는 통념은 막연한 과거 기억이나 막연한 정보를 배경으로 한다. 실제로는 서울대학교병원 등 국립대학병원이 최고 수준의 의료를 제공하며 국립암센터, 국립재활원 등도 해당 분야에서 가장 우수한 병원이다. 통상 ‘공공병원’이 이런 큰 병원이 아닌 지방의료원 등을 뜻한다면 이때는 비교 대상도 호화로운 대형병원이 아닌 비슷한 규모로 비슷한 기능의 병원이라야 옳다. 지방의료원은 평균 230병상으로 중소 규모 종합병원에 해당한다. 병원 규모를 구분하여 시행한 평가 결과를 보면 중환자진료․감염관리․시설관리․환자안전․의무기록․검사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립병원보다 우수하였고(2006년) 3년 후 재평가 결과도 같았다(2009년).

 

진료비를 적게 받고 비수익적 분야도 소홀히 하지 않으니 경영적자가 불가피하다

 

경영수지 관점에서는 공공병원이 비판의 대상으로, 수익성이 낮고 경영이 비효율적이라 한다. 지방의료원을 예로 들면 병상이용율이 2008년~2010년에 평균 84%로 사립병원의 86%와 비슷하고 100병상당 환자 수도 30,500명으로 31,700명인 사립병원과 큰 차이가 없으나 100병상당 의료수익은 사립병원의 74%에 불과하고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 비율은 사립병원의 1.5배이다.재무제표만 본다면 사립병원에 견주어 돈은 적게 벌고 인건비는 많이 쓰는 것이 공공병원이다.

 

그러나 지방의료원 일반직원의 평균 인건비는 연간 3천5백만원으로 그리 높은 수준이라 할 수 없고 그럼에도 인건비 비율이 높은 것은 분모(의료수익) 값이 작은 데에 기인한다. 의료수익이 작은 것은 사립병원에 견주어 진료비가 60~78%로 적고 의료급여 환자가 1.5배 더 많으며 비수익적 분야까지 진료한다는 사실과 동전의 앞뒷면 관계에 있다. 공공병원의 핵심적 기능이 곧 경영의 비효율 요인인 것이다. 앞서 기술하였던, 의료 질이 사립병원보다 높다는 것조차도 경영의 시각에서 본다면 질 관리에 투입되는 비용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부정적 요소로 구분될 것이다.

 

수익성을 높여 경영수지를 호전시켜야 한다면 공공병원도 사립병원처럼 진료할 수밖에 없다. 의료급여 환자를 줄이고 불필요한 검사를 많이 하고 돈 안 되는 진료과는 없애고, 간호사를 대폭 줄여 간호조무사로 바꾸고 감염관리 등 질 관리는 등한시하고, 농어촌 지역에 소재한 병원은 아예 문을 닫고. 이같은 ‘효율적’ 경영은 실상 공공병원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고 공공의료를 뿌리째 흔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공공병원의 경영 적자가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고 인정하고 ‘건강한 적자’에 대해 예산을 지원하자는 논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공공병원을 위축시키는 것(1) - 우리나라 의료정책의 지역 중심성 부족

 

지역 공공병원이 의료기관 정책에서 소외당하고 있다. 의료기관에 관해 대표적 정책인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2011)의 내용이 주로 상급종합병원(대형 대학병원)과 의원을 대상으로 하여, 의료전달체계의 3차와 1차의 기능 확대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가운데 단계인 2차에 해당하는 종합병원급의 기능에 관해서는 내용이 거의 없으며 특히 지방의료원 등 지역 공공병원의 기능에 대해서는 백지와 같다.

 

지역 공공병원은 질병정책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심뇌혈관질환 정책을 보면 2011년에 3차인 상급종합병원 심뇌혈관질환센터 지원에 약 110억원, 1차인 의원의 고혈압․당뇨병 등록관리사업에 26억원, 보건소의 건강생활실천통합서비스에 118억원, 건강보험공단의 사례관리사업에 15억원이 투입되었다(아래 그림). 그러나 2차인 종합병원급을 활용하는 사업이 전혀 없다. 암 등 다른 질병 분야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건강정책도 마찬가지다. 정신건강 정책에 따라 보건소가 지역 정신건강사업을 시행할 뿐, 국공립 정신병원이나 지역 공공병원은 정책 추진체계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재활의료 정책도 마찬가지로 보건소가 지역 재활사업을 시행할 뿐, 공공 재활병원 및 지역 공공병원을 활용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국가 등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공병원이 국가 정책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 언뜻 듣기에 어불성설이라 할 것이나 실제 우리나라 의료정책의 현주소이다. 이런 여건에서 지역 공공병원이 위축되지 않을 길이 없으니 변화가 시급하다.

 

공공병원을 위축시키는 것(2) - 지배구조의 관료적 폐쇄성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이사회가 정관․사업․조직․재산․제규정 등을 심의 의결하는(제9조) 최고 권한을 갖는데 이와 동시에 이사장이 원장을 겸임하고(제8조) 원장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임면한다(제10조). 즉, 지방자치단체장이 원장을 임명하거나 해임할 때마다 이사장까지 자동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으로 이사회에 자율성이나 독립성을 애초에 기대할 수 없게 한다. 이사회 구성도 지자체가 주도해서, 표 2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임원 중 다수가 지자체의 전현직 공무원이거나 지역 유지이다.

 

이사회가 관청의 지배를 관철하기 위한 통로일 뿐이니 권한은 모두 지자체 손 안에 있다.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관청의 정치적 지향이나 관료사회의 이해가 공공병원에 미치는 힘은 막강하다. 경남도청이 주장하기로 의료원이 ‘강성노조의 해방구’라서 폐쇄해야 한다고 하나, 노동조합의 실제 영향력은 관청의 권한에 견주면 미미할 뿐이다. 이러한 지배구조에서는 공공병원에 유능한 원장이 선임되기도 어렵고 선임된다 해도 소신껏 일하기는 더욱 어렵다. 갑인 지자체와 을인 공공병원이라는 구도가 병원의 발전을 더디게 하는 것이다.

 

관청이 일방적 권한을 행사하는 지배구조가 지방의료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립병원에는 정부의 관할 부처가, 산재․보훈병원에는 해당 부처의 산하 공단이, 적십자병원에는 대한적십자사가, 시도립병원에는 해당 시․도청이, 시군립병원에는 시․군청이 독점적 권한을 행사한다.

 

사회의 문화, 정치 환경이 바뀌었으나 공공병원의 지배구조에 재설계 또는 혁신이 거의 없이 낡은 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수평적 네트워크가 지배권한을 공유하는 ‘거버넌스’로 바뀔 수 있도록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공공병원 없이는 의료의 공공성도 없다

 

공공병원이 굳이 없어도 된다는 말은 대개 공공의료를 가난한 사람에 대한 시혜적 진료 정도로 생각하는 데에서 나온다. 그러나 병원의 이윤추구 행태 및 건강불평등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은 병원이 일부 의료진을 동원해 이따금 다녀오는 무료이동진료 정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보건의료의 당면 과제는 이보다 훨씬 크고 무겁다.

 

최근 여수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를 보면 지금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70년대보다 나을 게 과연 무언지 의심스럽다. 4월 14일 여수 산업단지 화학공장의 폴리에틸렌 저장시설의 폭발로 6명이 숨지고 11명이 중경상을 입었는데 심한 화상 환자를 치료할 병원이 가까이 없었다. 환자들은 여천과 광주의 병원을 거쳐 결국 서울에 옮겨졌고 433km를 이동하느라 9~15시간을 허비하며 상태가 악화되었다. 지역민들은 40년이 넘도록 사고로 몸살을 앓은 ‘화약고’인 석유화학단지에 전문병원이 없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 그동안 병원이 많아졌다지만, 치료에 손이 많이 가고 낫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며 수익은 기대할 수 없어 기피 대상인, 중화상 치료를 할 병원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은 건강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헌법과 보건의료기본법에 명시되어 있다. 수익 높이기에 골몰하는 상업적 병원에 의존해서는 필요한 의료를 충실히 공급할 수 없다.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지키려면 보건의료 전반을 아우르는 체계적 공급망을 만들고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건의료 서비스의 단계에 따라 보건소․의원(1차), 병원․종합병원(2차), 대학병원(3차)이 각기 기능을 분담하도록 체계를 구성하고 단계별 비용이 적절히 통제되어야 하며 어떠한 의료수요든 자기 지역 안에서 상당한 수준까지 충족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보다 수준 높고 효율적인 의료체계를 갖춘 유럽에서는 나라마다 공공병원이 의료의 60~100%를 담당하며(2010년 기준)지역 중심의 의료체계가 확고하다. 우리나라에 공공병원이 지금처럼 드문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많고, 공공병원의 기능에 걸맞는 지원책을 갖추고, 공공병원을 의료정책 추진의 중심으로 활용하고, 공공병원 관리에 민주적 거버넌스가 자리 잡을 때에, 의료의 공공성을 튼튼하게 하고 국민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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