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4 2014-03-10   4444

[칼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과 최저생계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과 최저생계비

 

문진영|서강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권리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평가의 핵심에는 최저생계비가 있다. 한국에서 최저생계비는 헌법에서 규정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향유하기 위해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을 말한다. 즉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유지할 권리가 있으며,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이러한 국민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여야 하는데, 그 보장의 기준이 바로 최저생계비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최저생계비란 한 사회에서 최저수준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을 말하며, 대개 가구 단위의 지출액으로 표시되고 기간은 보통 한 달이 기준이 된다. 다시 말해서, 어떤 가구의 자산(소득과 재산)이 최저생계비로 표시된 금액보다 적다면 그 가구의 구성원들은 그들이 가진 자산을 아무리 합리적으로 사용해도 최저수준의 삶을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이 가구의 가구원들은 가난한 것이고, 헌법에서 부여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제34조)’가 침해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저생계비는 한 사회에서 빈곤한 가구와 빈곤하지 않은 가구를 공식적으로 결정하는 기준, 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 선정기준과 급여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외에도 최저생계비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중요성은 다른 사회정책의 기본 자료로 사용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최저생계비는 각종 사회수당의 수준을 결정하고, 조세제도에서의 면세점과 노동시장에서의 최저임금을 결정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더욱이 노사간의 임금단체협상의 과정에서도 기본 자료로 사용되는 등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매우 폭넓게 사용된다. 따라서 최저생계비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사회적 의미를 고려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법)에서는 정부 관료와 시민단체 대표 그리고 전문가가 참여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서 보건복지부장관이 매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법 제6조).

 

하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제정된 1999년부터 최저생계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이 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집요하게 공격을 가했던 보수주의자들은 이 제도가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최저생계를 보장함으로써 근로의욕을 감퇴시켜서 복지병을 유발한다고 공격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평균임금 근로자의 연금급여와 고용보험의 구직급여의 수준과 비교하면서 최저생계비를 하향조정할 것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서, 보수주의자들의 불만을 넘어서서, 아예 최저생계비 제도 자체를 폐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집권 여당은 인수위 시절부터 기존의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한다고 공언하였고, 개편을 이끄는 두 개의 축으로 ‘생활영역별 맞춤형 급여체계 구축’과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을 설정한 바 있다. 그리고 그 개편의 시발점으로 작년 5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법률(안)을 발의하였는데, 그 골자는 급여체계를 욕구별로 다층화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함으로써, 제도의 사각지대를 축소하는 한편으로 수급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마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복지국가의 도덕적 기초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제도적 골간에 해당하는 ‘최저생계비’ 제도를 폐기함으로써 국민의 생존권적 기본권을 박탈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원칙은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선정기준과 급여수준을 일치시켜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정법률(안)에 따르면 이러한 최저생계비의 기능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다. 즉 최저생계비 계측을 포기하고 빈곤실태조사로 대체하도록 하고 있으며(안 제6조의 2), 더욱이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최저생계비가 아니라 “소득인정액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기준 이하인 사람”(안 제8조)으로 규정하여, 행정부의 재량급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 하는 절박한 생존에 관련된 권리는 정부의 재정적인 여건이나 혹은 선의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법률적 근거를 가진 제도를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다.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이라도 최소한도의 인격적 존엄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바로 문명사회라는 점을 고려할 때,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개편방향은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문명성을 부정하는 것이고, 우리 사회의 도덕적 토대를 허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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