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4-01   12750

사회복지전문직의 정체성?

사회복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의사, 한의사, 약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 소위 잘 나가는 전문직들은 높은 사회적 지위와 함께 그들에게 고소득을 보장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서로에 대해 노골적으로 밥그릇 싸움을 일삼으며 때론 국민들을 자기 이해 관계에 끌어들이거나 국민의 뜻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야릇한 주장으로 자기 정당화에 혈안이 되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에 대해, 우리 사회복지사들은 일견 치미는 분노와 울화를 삼킨 씁쓸한 눈망울로, 어쩌면 내면 깊은 곳에서는 다소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 또 하나의 전문직이라고 그렇게 스스로 강조하는 우리 사회복지사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철저히 통제되는 저임금에 열악한 노동조건을, 그래도 그 잘난 인간에 대한 참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올곧은 전문직(professionals)이라거나 혹은 사회서비스 분야의 유일한 전문가(specialist)라는 허구적인 이데올로기를 가슴속에 하나의 알량한 자존심으로 새기며 버티고 섰다. 그 작은 자존심이 때론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고통스러워하면서, 사회복지 전문직의 영역이 일반직 공무원에 의해 또는 여타 전공 영역에 의해 비참하게 무너져 가는 모습을 현실이라는 이유로 말없이 지켜보아야만 했다.

현실을 그냥 방관하며 자포자기하는 그런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더욱 싫었을 것이다. 실력으로 승부하고자, 갖은 사회복지 관련 세미나와 심포지엄을 행여 나만 뒤떨어질 것 같은 막연한 가슴속 불안감에 손발이 동조하여 부단히 바쁜 와중에도 인간관계 형성을 위한 소주값을 아껴가며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그리고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학력인플레가 시대적 과제인양 착각의 세월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런 돈키호테식 현재의 행위와 우리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듯한 감각으로 다가오는 무심한 오감이 무척 원망스럽기도 하다.

도대체 사회복지사는 전문직인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청년학도로서의 뜨거운 가슴과 차디찬 머리가 꿈틀대던 사회복지 학창시절, 지겹게도 들어왔던 소위 명망 있다는 교수님으로부터의 반복되는 메시지는 우리가 사회복지 전문가, 때론 뭔가 있어 보이는 사회복지 전문직이라는 외마디였다.

현대 사회에서 전문직이란 무엇인가? 각기 다양하면서도 고유한 자신만의 영역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다. 비록 사람 고치는 인습적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정규적인 교육과정이라는 외나무다리를 제대로 건너지 못한 자는 돌팔이라는 낙인으로 도덕적으로 지탄받게 되거나 형사법으로 엄히 다스려지면서, 제반 서비스 공급자의 이해관계와 소비자의 권익을 철저히 보호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즉, 전문직에 대한 사회적 재가(sanction)는 어떤 전문적인 과업과 활동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권위·승인·허가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실천을 위한 재가의 주요 원천은 무엇인가? 사회복지 관련 법률이나 정부의 규제, 합법적인 인간서비스 기관, 사회복지전문직의 집합체, 사회복지서비스의 클라이언트나 소비자가 네 가지 주요 원천이라고 회자된다(서울대 사회복지실천연구회 역, 2001: 35). 그런데 우리는 이 네 가지 원천 어디에서 우리 자신을 인정받거나 우리 자신의 고유한 존재가치를 확인 받을 수 있는가? 보건복지부나 지방정부에서, 협의회나 협회에서, 사회복지기관에서, 아니면 적어도 사회복지 소비자로부터. 그런데 작금의 우리 자신의 전문직과 전문성에 대한 정체성을 냉철히 성찰한다면, 왜 이리 빈 가슴에 찬 서리로 흐느끼는 울음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환청과 환각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할까?

사회복지교육자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소위, 우리 사회에서 잘나간다는 그 많은 전문직을 가르치는 교수님들은 모두 해당 학문의 교육자이기 이전에 해당 전문직의 직함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그 사실 말이다. 의과대 교수이기보다는 그냥 의사로서, 약학대 교수이기보다는 그냥 약사로서, 한의대 교수이기보다는 그냥 한의사로서의 그 분명한 정체성 말이다. 심지어 요즈음 법학과 교수님들은 자신에게 변호사 자격을 부여해 달라고 변협에 간청하고 있는 형국은 또 무엇인가?

그런데 수업시간에 들려주던 그 대단한 전문직을 양성하기 위해 사회복지학을 교육하고 지도하시는 그렇게 훌륭한 사회복지 교수님들께서, 스스로를 “나는 교육담당 사회복지사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스스로의 전문직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음은 과연 현재 글쓴이의 인간관계 폭이 지독히 편협하거나 아니면 왜곡된 탓일까? 말씀으로는 대단한 직업인양, 어쩌면 세상에 빛과 소금을 전파하는 성직인 것처럼 그렇게 강조하고 가르치면서 왜 자신들은 함께 가는 사람이 되길 전혀 원치 않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에 이를 때쯤이면, 그들의 내면 속에 감추어진 파시즘의 그림자로 인해 들끓어 오르는 깊은 곳에서의 분노를 도저히 다스릴 길 없음은 지독히 못된 필자의 성격 탓일까? 도대체 누가 사회복지사의 자존심을 깔아뭉개고 있으며, 또한 학력인플레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집단은 누구인가?

제발 본 필자가 앓는 피해망상으로 인한 인지왜곡 현상일 뿐 실제로는 그다지 많지 않길 기대하면서, 혹시 존재한다면 그 소수의 교수님들께 꼭 한 번 되묻고 싶다. 특정 전문직을 양성하는 교육자 스스로가 정체성 갖길 거부하는 그런 형편없는 전문직을 과연 누가 인정해주고 누가 지켜줄 것인가? 여기에는 사회복지사의 알량한 처우문제만이 아닌 사회복지서비스를 소비할 권리자인 국민 전체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주는 반복지 행위임을 지적하고 싶다. 그래서 여러 사회복지학과 교수님들께 한 번 묻고 싶다. ‘나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당연히 소지하고 있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사회복지학을 가르치는 교수이기 이전에 나 자신을 사회복지사라고 당당히 내세우고 있는가?’

사회복지사는 과연 ‘사회’의 복지사인가?

계속해서 사회복지 교육자들에게 되묻고 싶다. 우리는 최근 타 학문분야에서 우리 전문직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분개하며 이를 막기 위한 노력들을 다소간 펼친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복지 교육영역에서는 사회복지사가 사회복지 실천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 적이 있는가? 무슨 당연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사회복지실천은 사회적 기능에 초점을 두고, 사회복지실천의 영역인 개인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향상시키기 위해 원조를 제공하는 것으로 재가 받았다고 한다. 즉, 이는 사회복지사가 인간과 환경의 공유영역에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가치, 기술을 획득하는 교육적인 준비를 갖춤으로써, 다양한 원조 전문직 사이에서 사회복지사가 인류의 행복과 진보에 공헌하게 되는 고유한 실천적 기여공간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회복지사는 한편에서는 값싸고 저급한 심리치료사이거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극단적인 인본주의적 사회환경계획가로 재가 받은 것이 아니라는 주장(서울대 사회복지실천연구회 역, 2001: 106)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연구자와 교육자를 포함한 우리 사회복지사는 혹시 심리치료 혹은 심리상담에만 관심이 있다거나 상담가나 가족치료사 혹은 갖은 형태의 치료사로서의 정체성만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은가?

비록 사회복지사 개인이 전문적 실천영역을 뛰어넘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복지 전문직에 재가된 범위를 넘어서는 서비스를 제공할 자격을 가진 것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영역이 불투명한 사회복지사는 인간문제와 변화에 관한 아주 중요한 과정을 클라이언트에게서 박탈(서울대 사회복지실천연구회 역, 2001: 106)하고 있다는 지적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복지 임상이라는 이름으로 타 영역의 침범을 무수히 진행하여 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회복지사가 전문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개별 상담에 능통해야 한다거나 가족치료사 혹은 집단치료사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오로지 필자만의 경험일까?

물론 통상적으로 사람을 마주 대해야 하는 휴먼서비스(human service)의 본질상 우리 사회복지사에게 상담능력이 필수기술로 요청되고 있다. 하지만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채, 타 영역을 무단 침범하고 있지는 않은 지 냉철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서비스 전달체계가 완전히 고갈된 지역사회가 아니라면 우리 영역을 벗어나는 실천내용에 대해서는 언제나 적절한 전문직에 의뢰하는 일이 보다 우리 자신을 지키는 활동이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 영역을 명확히 인식하고 타 영역을 존중할 때만이, 우리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당연한 상식,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 실천만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개인적인 학문적 열정이나 관심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치료(therapy)는 사회복지실천에서 우리 사회복지사에게서 “사회”를 상실케 한다. 환경의 결함이나 역기능을 극복하기 위해 또는 사회로부터의 다양한 기회의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사회환경에 직면함으로써 개인 및 가족뿐만 아니라 집단, 조직체, 지역사회를 돕고자 하는 “사회적” 기능회복에 우리 사회복지사는 전념하여야 할 것이다(D. A. Hardcastle, S. Wenocur, & P. R. Powers, 1997).

이런 측면에서, 미국이나 영국의 대다수 사회복지실천 서적들은 개인, 가족, 집단, 조직체, 지역사회와의 실천을 각 장에서 공히 일정하게 할당하여 기술하고 있다(이팔환 외 역, 2000). 그런데 우리의 사회복지실천 및 실천기술론의 교과 현실은 끊임없이 생태체계적 관점, 사회체계와의 관련성, 혹은 환경 내 인간(person in environment)에 대한 초점을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인 개입방법의 장에 가면 오로지 개별 치료적 논의만이 주요 영역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일관성을 상실한 교과내용 구성이 전문직의 정체성 확립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사회복지교육자와 사회복지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사회복지사는 단순히 좋은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을 위한 토대로서 목적·인가·가치·지식체계·기술을 가진 전문직(오창순 외 역, 2002)이라는 반향 없는 주장을 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입장 정리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먼저, 우리의 전문직이 그 정체성을 확보하고 사회와 사회복지 소비자로부터 분명한 재가나 인가를 획득하려면 무엇보다도 사회복지 교육을 담당하는 여러 교수님들이 사회복지사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복지 교육현장에서 사회복지 학도와 일선 사회복지사에게 실천현장에서는 오로지 사회복지 실천만을 수행할 것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복지사 역시 우리 전문직의 고유영역과 실천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이에 근거한 사회복지 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이 길만이 21세기 최고의 전문직으로서 한국 사회복지사가 위상을 차지하게 되는 지름길임을 본 필자는 주장하는 바이다.

[참고문헌]

서울대 사회복지실천연구외 역, 「사회복지실천 기법과 지침」, 나남, 2001.

오창순 외 역, 「사회복지실천론 -통합적 관점-」, 아시아미디어리서치, 2002.

이팔환 외 역, 「사회복지실천이론의 토대」, 나눔의집, 2000.

Hardcastle D. A., Wenocur S., & Powers P. R., Community Pratice: theories and skills for social workers,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이문국 / 안산공대 사회복지학과 교육담당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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