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20-03-20   1078

[언론기고] 집단생활시설의 비명, 이번에도 외면할 텐가

집단생활시설의 비명, 이번에도 외면할 텐가

김형용 | 동국대 교수 참여연대 ·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청도 대남병원 폐쇄병동을 시작으로 장애인거주시설, 요양원, 요양병원 등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연이어 발생했다. 그 이유로는 시설 거주자의 취약한 건강상태나 높은 밀집도가 거론된다. 과연 그럴까? 집단생활시설에서 생명 유린은 언제나 되풀이돼 왔고, 감염은 2020년 발생한 또 다른 유형의 참사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노령이나 장애 그리고 돌볼 가족이 없어 사회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을 오래전부터 시설에 격리해 왔다. 그러나 시설은 학대, 착취, 성폭력, 운영비리 등 다채로운 오명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간 사육에 가까운 가혹행위로 수백명이 사망한 부산 형제복지원과 대구 희망원 그리고 화재로 집단 사망한 밀양과 장성의 요양병원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시설 거주가 선호되는 이유로, 흔히 부족한 예산을 말한다. 탈시설을 위한 정부 보조금과 인력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현재도 열악한 시설환경과 근로환경에 사회복지 종사자만 고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원인은 다른 데에 있다. 첫째, 복지시설의 사유화다. 보건복지부 산하 사회복지시설은 전국에 약 6만개인데, 이 중 정부가 직접 운영하거나 민간에 위탁한 시설은 약 1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민간 사업자가 소유하고 있다. 사유화된 복지시설의 관심은 정부로부터 나오는 재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정부는 한 해 사회서비스에 36조원 그리고 건강 및 요양 보험에 55조원을 지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요양병원 병상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10배나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청도 대남병원만 보더라도, 소유자 가족 구성원들이 부산과 대구 일대에 사회복지법인과 의료재단을 통해 노인요양시설과 정신요양병원 등 십수개의 시설을 운영해 온 거대 복지기업이다. 둘째, 포획된 정부다. 오랫동안 복지를 민간에 의존해온 정부, 특히 지방정부는 복지서비스에 무능으로 일관하고 있다. 돌봄과 보호 등 복지서비스의 정보 제공, 신청 접수, 이용자 선정, 서비스 결정을 민간 복지시설이 스스로 한다. 규제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오히려 정부의 대리자 역할로 인정받고 여러 규제 정책이 그들의 이익에 맞게 설계된다. 관련 법령조차 기괴하다. 우리나라는 사회복지를 ‘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회복지시설은 1970년 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에 근거하고 있고, 현재도 이 법에 따라 개인 누구나 신고만 하면 시설을 운영할 수 있다. 당초 법의 목적이 사업자의 공급 관점에서 마련되다 보니 복지 수급자의 사회적 권리와 존엄한 삶은 사업자의 사업성에 밀려 있다. 

 

돌봄의 사회적 부담을 오로지 복지 사업자에게만 맡긴 집단적 무책임을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 현재 시설 거주자들은 약 84만명에 달한다. 이들이 거주하는 시설은 복지 선진국과 같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소규모 일반주택이 아니다. 예컨대 정신장애인시설은 평균 172.6명이 거주하는, 그야말로 거대 수용소다. 해결책은 단순하다. 시설 입소를 줄이고 지역사회마다 탈시설 공공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노인과 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 공간을 마련하고, 개인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지원하며, 타인과 일상적 관계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일은 당연히 사업성이 없기 때문에 국가와 시민사회의 적극적 역할을 필요로 한다. 국민의 절반이 피부양 인구가 된다는 조만간 닥쳐올 미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탈시설은 서둘러야 하는 과제다. 우리는 시설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싶지 않다.

 

>> 경향신문 원문보기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