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4-05-12   664

<안국동 窓> 노숙인 의료구호비 중단과 도덕적 해이

최근 노숙인 의료구호 문제(?)와 관련된 논란이 많다. 5월초부터 시청 서소문 별관 등지에서 여러 단체에서 노숙인의 의료권 보장을 주장하는 피켓이나 시위진행의 모습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이는 얼마 전인 4월 말 서울시가 의료구호비와 관련된 새로운 방침을 전달함으로써 비롯되었다.

지난 4월 26일 서울시는 “중증질환자 노숙인의 무분별한 의료구호비 사용으로 과다지출이 문제가 돼 새로운 노숙인 의료구호방안을 시행한다”는 명목으로 노숙인 의료구호비 지급제한 방침을 개별 노숙인 쉼터와 노숙인 의료를 담당해 온 6개 의료기관에 통보해왔다. 입원진료비 부분은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서울시 담당자는 노숙인에게만 특혜가 되는 의료구호를 진행하다보니 의료이용에서 노숙인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어 예산이 과다지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건강보험과 의료보호라는 전 국민 의료보장의 틀을 통해 의료급여가 주어지도록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10여 억원에 달하는 서울시의 노숙인 의료구호비가 현재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노숙인에 대한 의료지원은 1997년부터 현재까지 의료보호체계에 포함되지 못한 채 독립적인 의료구호비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의료지원시스템은 사실상 노숙인들의 입원진료시 발생하는 비용을 책정된 예산이 감당 못하는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예전에도 책정된 의료구호비 예산이 모자라 추경예산으로 위기를 넘겼던 바 있다.

전 국민 의료보장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지만 건강보험과 의료보호가 거리에서 생활하는 그리고 쉼터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에게 의료를 보장해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고정된 주거의 부재 상황 속에서 실제 이들은 사회보험이나 공공부조 어느 쪽으로부터도 의료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노숙생활이 가지는 험난함은 건강에서의 치명적 문제와 각별한 의료수요를 파생시키고 있다. 노숙인 관련 단체들에 따르면 1998년 479명, 1999년 467명, 2000년 413명, 2001년 313명의 노숙인이 사망했다.

현실을 생각하지 않고 논리적으로만 볼 때, 직장과 소득이 있다면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쉼터를 주소지로 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의료보호를 받도록 조치하라는 서울시나 복지부의 말은 타당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쉼터의 사회복지실천가들이 자신의 쉼터에 있는 노숙인들이 안정적인 의료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숙인’에게만 적용되는 별도의 의료보장 체계를 가진다는 것도 부적절하다. 게다가 노숙인의 범주는 아직 불분명하다. 당연히 공식적인 의료보장 체계가 사각지대를 갖지 않게끔 하면서 의료보장의 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그 의료보장 개편은 국민들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의료보장이 존재하는 근본 이유이다. 현재 극도의 빈곤과 무주거, 지지망 결여에 시달리는 노숙인들의 대부분은 건강보험의 적용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최소 2개월 이상의 일정 거주지를 가지고 있은 다음에야 고려의 대상이 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의료급여에 노숙인이 대상이 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애당초 노숙인 쉼터는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단기의 보호를 추구하도록 사회적으로 주문받고 있어 빈번한 입퇴소가 나타나는 곳이다. 또한 거리 노숙인은 더욱 주거가 안정적이지 못하므로 현재의 건강보험이나 공공부조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현재는 없더라도 궁극적으로 기존 의료보장 시스템의 보완이나 수정을 통해 노숙인에 대한 적절한 의료보장의 방법이 정규화되어야 한다. 이 정규적인 방안이 마련되는 동안 과도기적으로 ‘구호’의 형태를 취하고 의료보장의 틀이 마련되면 이 ‘응급구호’는 보완된 정규적 방식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이 정규적 방식을 재편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 관계부처의 몫이다.

그런데 새로운 방안의 모색이나 유예 없이, 관련 단체들과의 협의도 없이 대뜸 ‘예산부족’을 핑계로 의료구호를 제한한다는 것은 노숙인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다. 기껏 민간단체들의 힘을 빌어 구축해 놓은 거리진료 등의 시스템을 완전히 백지화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서울시의 예산부족 논리에 대해 시청 앞 잔디 조성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억지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상황을 정리해보자. ‘전 국민 의료보장의 시대’에 의료보장을 받을 수 없어 자꾸만 의료구호로 진료를 받고 있는 노숙인이 있다. 이들에게 적절한 의료보장의 방식을 모색해야 할 책임이 있는 관계부처의 공무원이 있다. 그런데 노숙인이 예상보다 너무 진료를 많이 받고 있다는 판단에 다른 의료보장방법의 현실성에 대한 고민없이 의료구호비에 따른 의료보장을 갑자기 중단하여 노숙인의 생존권에 직접적인 위험이 나타나는 상황이다. 기존의 의료보장 방법이 효과적이지 못하여 의료구호방식을 활용하였는데 다시 아무런 변화 없는 원래의 방법에서 의료보장을 받으라고 한다. 혈세를 낭비하지 않는다는 미덕을 논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다. 도대체 어느 쪽이 도덕적 해이를 범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가?

몇 개월 후면 노숙인 쉼터와 노숙인 복지체계가 정규적인 사회복지사업의 한 분야로 재편된다. 이 과정 속에서 노숙인에 대한 의료서비스의 방법도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점을 눈 앞에 두고 아무런 유예와 관련 당사자들과의 협의 없이 이루어진 의료구호비 지급제한 방침은 유감스럽다.

남기철 동덕여대 가정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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