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7-04-11   1203

<안국동窓>유시민식 연금개혁 실패는 예고된 것이었다

‘하루 잠재부채 800억 원 주장’의 실체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연금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혔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은 반려도 수리도 아닌 ‘유보’라는 다소 이례적인 해답을 내 놓았다. 장관직 사의표명의 결말이 무엇이건, 유시민 장관이 최대 정치현안으로 부각된 연금 문제에서 손 떼는 상황은 분명해 보인다. 손 떼는 마당에 인색한 언사인지는 모르겠으나, 유시민식 연금개혁의 실패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정치적ㆍ사회적 합의 취약한 유시민식 연금개혁은 예고된 실패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된 국회 차원의 연금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한 동안 시민사회에서는 줄곧 사회적 합의를 통한 연금개혁을 주장해 온 바 있다. 그런 제안은 현실로 진전됐다. 정부와 경제계, 노동계, 종교계, 여성계,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각층을 망라해 국무총리 산하에 구성되어 있던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는 2006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논란 중에도 조금씩이나마 이견을 좁혀가고 있었다.

시종일관 이 논의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온 유시민 장관과 보건복지부는 국회를 통해 정부· 열린우리당 안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5일 대한노인회, 조계종, 천주교 주교회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참여연대, YMCA,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연석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12개 단체는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독단적인 법 개정 추진을 비판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연금개혁을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평소에 목소리가 큰 진보성향의 단체들만이 아니라, 보수적인 성향의 종단과 대한노인회까지 한 목소리로 유 장관의 연금개혁 추진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틀 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표결로 법안을 처리했다. 형식적으로는 국회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법이었지만, 정치적, 사회적 동의를 전혀 얻지 못한 불행의 예고편이었다.

유시민의 실패는 독선ㆍ조급증ㆍ무능력의 결과

부담주체와 수혜주체가 다른 연금제도는 본질적으로 세대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정치적 의제다. 우리가 연금제도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을 아직은 예상할 뿐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제도의 연혁이 짧기 때문이다. 연금급여를 받는 수혜계층이 본격적으로 나타나지 않았고, 연금 재정의 위기 또한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눈에 띄는 갈등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연금의 역사가 길고 인구 고령화가 진전된 많은 나라들의 사례에서 확인되듯 연금 제도가 성숙될수록 부담과 수혜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의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사회 문제가 된다.

연금제도가 정치적 인화성이 큰 주제이다보니, 제도의 변경과 개혁이 때로는 정권의 운명을 가르는 이슈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금개혁을 진행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에서 연금 제도에 대한 사회적 협의(social consultation)는 필수적인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OECD나 ILO와 같은 국제기구들도 권고하는 프로세스다. 정치적 난제 중의 하나인 연금개혁에 성공한 나라들의 공통점은 연금개혁은 단 한 번에 완성할 수 없다는 명제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길게는 수 십 년에 걸쳐 정치사회적 설득과 합의를 만들어가며 조금씩의 제도변화를 통해 이룬 결과다.

유시민식 연금개혁의 실패의 이유는 연금개혁 결과에만 집착했을 뿐 그 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독선과 조급증, 그리고 무능력의 결과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연금법이 부결된 현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국회 표 대결의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과 정치적 득실을 현명하게 타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정부 개혁안도 하루 잠재부채 650억, 2065년 기금고갈

본론으로 들어가 정부가 연금개혁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 제시하고 일부 언론도 호재를 만난 듯 되뇌고 있는 ‘하루 잠재부채 800억 원’이라는 매우 자극적인 슬로건의 타당성을 분석해 보자.

현재와 같이 9%의 보험료를 내고, 급여수준을 60%로 고정할 경우 정부 자료에서 나타나듯 2040년대 후반 연금기금이 고갈된다. 보험료와 급여수준을 현재 수준으로 고정시킨다는 것이 다소 작위적이긴 하나 특정시점에서 연금기금이 고갈된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더 이상 연금을 안주는가? 아니면 가입자는 더 이상 연금을 받지 못하는가? 적어도 한 나라가 문을 닫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노인인구에 대한 부양은 해야 한다. 기금이 고갈되면 미래세대는 노인부양을 위해 더 높은 보험료를 내든지 아니면 세금을 높여 노인부양을 책임지게 될 것이다.

기금고갈 우려에 근거해 정부가 연금개혁의 중요한 목적으로 제시하는 재정안정화는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의 균형을 맞추자는 ‘보험수리론’에 입각해 있다. 현 제도의 기여율 9%와 급여율 60%를 그대로 유지하면 들어오는 보험료 수입보다 지급되는 연금 급여액이 크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특정시점에서 기금이 고갈되는 재정불안정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루 잠재부채 800억’이라는 셈법도 여기서 도출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개정안은 이러한 재정안정화의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고 기금고갈을 막는 방안일까? 정부의 개정안대로 기여율을 12.9%로 높이고 급여율을 50%로 낮춘다 하더라도 기금은 2065년에 고갈되며, 현 시점에서 잠재부채는 하루에 650억 원씩 쌓이게 된다. 연금법 부결로 하루 800억 원씩 잠재부채가 쌓이는 제도가 조금이라도 연장된 것은 국가적 위기를 증폭시키는 것인데, 하루 650억 원씩 부채가 쌓이는 제도로 바꾸는 것은 획기적 재정안정화인가?

기금 고갈 막는 것이 연금개혁 본질 아니다

현 시점에서 연금개혁의 불필요성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이 기금 고갈에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논점은 연금으로 지급되는 총량이 한국경제가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가에 있다.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되는 것은 노인을 부양하는 여러 수단 중의 하나인 국민연금의 기금이 고갈된다는 것이지 노인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 총량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 시점에서 노인들을 부양하기 위해 소비되는 경제적 총량이 그 사회에 어떤 수준의 경제적 부담을 주는가에 있다. 기금고갈이 발생하더라도 보험료와 세금으로 충당하는 연금지급 총량을 경제가 무리 없이 부담할 수 있다면 국민연금은 재정적으로 안정적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국민연금기금의 고갈을 막는 것이 연금개혁의 본질이 아니라 노인부양에 소요되는 재원의 총량을 사회 전체가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통제하는 것이 연금개혁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지난 2003년 연금발전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9%의 보험료와 60%의 급여수준을 고정시키더라도 43년 뒤인 2050년에 국민연금의 지급총량은 우리나라 GDP의 7%에 수준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대략 2050년경에 우리나라 GDP(잠정치) 대비 연금급여 지출 비중은 현재 OECD 국가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금 급여 수준을 깎지 않아도 2050년경에 2000년대 초반 유럽 수준의 연금급여를 지출하는 것이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까? 경제적으로 부담 가능한 노인부양의 총량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가의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이미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이라는 한국경제의 위상으로 볼 때 2050년에 현재의 유럽국가 수준의 GDP 대비 연금지출 규모를 감당할 수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단순히 보험수리상의 계산에서 나온 기금 고갈이 연금개혁의 근거이자 목적이 된다는 논리는 타당성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연금개혁 논의의 출발은 노인부양의 총 부담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연금지출의 규모는 어디까지인가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재정안정성, GDP대비 연금지출 총규모 관점에서 봐야

아울러 국민연금제도의 목적을 다시 한 번 환기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노후빈곤을 예방하는 것이지 재정안정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광범위한 노후소득빈곤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재정이 아무리 안정적이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는 연금을 위한 연금이지 노후빈곤 예방을 위한 연금이라고 보기 어렵다.

현행대로 국민연금 급여수준을 60%로 유지해도 짧은 가입기간 때문에 가입자의 절반 이상은 최저생계비 이하의 연금을 받게 된다. 20년을 가입기준으로 할 경우 평균소득자의 실질 연금액은 40만 원 수준에 불과해 1인당 최저생계비에 비슷한 수준이 된다.

정부안대로 별도의 기초보장 없이 50%로 연금액을 인하하면 가장 평균적인 소득을 가진 가입자의 연금액이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떨어지며, 이는 공적연금의 근본 기능을 훼손하게 될 것이다. 노인들에 대한 적정소득보장을 후순위로 돌린 채 피상적인 재정안정화 논리에만 기대 연금제도 개혁을 논하는 것은 연금을 위한 연금으로 제도의 목적과 기능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국민연금법 개정은 부결된 채, 기초노령연금법만 기형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에서 연금개혁을 위한 재논의는 불가피해 보인다. 기초노령연금법은 그대로 놓아둔 채 국민연금법만 논의하자는 주장은 전체 논의과정으로 보면 억지스럽다.

다시 연금을 논의하는 출발점은 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연금재정의 안정화는 잠재부채 800억 원과 같은 자극적인 선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가입대상의 절반 이상을 배제하고 있는 연금의 사각지대의 문제 해소와 적정한 노후소득보장 수준 유지를 위해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의 정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합의를 이루고 그에 합당한 연금구조의 개혁을 도출함으로써 달성되는 목표일 것이다.

* 4월 11일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에 실린 글 입니다.

박원석(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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