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10-04-01   134

[기고] 보편적 복지, ‘불온한 상상’을 ‘엄연한 현실’로

베버리지의 교훈, ‘어설픈 복지’를 외치는 정치권에게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생경한 ‘보편적 복지’라는 용어가 금번 지방선거를 즈음하여 주요 이슈이자 선거쟁점으로 등장하는가 싶다. 일부 복지운동단체의 미션이나 사회복지학 강의시간에서나 등장했던 이 용어가 무상급식 논란을 타고 정치권에서도 회자되더니 전 사회적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보편적 복지(universal welfare). 보편주의(universalism)에 입각한 복지국가


사전적(辭典的)인 정의에 의하면, 보편적 복지란 경제적 능력을 따지지 않고 특정한 욕구(needs)가 인정되면 누구에게나 복지급여를 주는 복지제도를 말한다. 복지국가의 발달과정을 통해 굳이 연원을 따지자면 1883년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사회보험방식을 통해 노동자를 대상으로 복지제도를 구현한 이후 이들 노동자계층을 넘어 전체 시민을 대상으로 보험방식을 도입한 1914년 스웨덴의 연금방식이 보편적 복지의 시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1942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 내각 하에서 만들어진 베버리지 보고서(Beveridge Report)가 보편적 복지에 있어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된다. 전장에서 피를 흘리고 조국을 위해 죽어가는 영국 병사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킬 요량으로 이 보고서는 뿌려지고, 의외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전 영국 국민에게 알려졌으며, 다른 유럽국가에도 그 영향력은 적지 않게 발휘되었다.


이 베버리지 보고서에는 모든 노인과 실업자, 자식을 둔 어머니, 그리고 병자들에게 최소한의 급여(minimum benefits)를 제공하는 새로운 사회정책을 제안하고 있으며, 모든 시민들은 할 수만 있다면 사회보험체계에 가입하여 보험료를 납부하고, 그들은 필요에 따라 급여를 받을 자격이 부여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모든 사람은 예기치 않은 빈곤의 위험에 시달리기 때문에 급여는 보편적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사회복지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게 된다.


이러한 내용의 베버리지 보고서는 당시 베버리지에게 사회보험의 통합적 관리방안만을 주문하였던 처칠내각의 의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고, 또한 보수당의 정책 수용능력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베버리지 보고서 위원회 위원들 중 위원장인 베버리지만을 빼고는 아무도 사인을 하지 않을 정도로 집권 내각 내에서는 설 땅이 없던 이 보고서는 영국내 야당이었던 노동당에 의해 적극 지지되었으며 마침내 전후 1945년 선거에서 노동당이 승리함으로써 현실의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1945년 아동을 키우는 모든 부모에게 아동수당 지급, 1946년 노동자를 포함하여 모든 국민에게 사회보험 적용, 같은 해 무상의료라고 부를 수 있는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체계 도입 등이 발 빠르게 이루어진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강력한 복지국가로서의 청사진이 마침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노동당은 1951년 다시 보수당에게 정권을 내줌으로써 이러한 보편적 복지국가로서의 진전에 제동이 걸린다. 오히려 1932년 사민당이 집권하였으나 상원에서 번번이 적극적인 복지제도가 방해를 받다가 1946년 선거에서 내각과 의회를 사민당이 동시에 차지하게 된 스웨덴이 이러한 보편적 복지의 꿈을 현실로 옮기는 몫을 수행하게 된다.


1946년에 모든 노인에게 일정한 급여를 주는 기초연금제의 도입, 1947년 아동수당의 도입, 1955년 전국민이 포괄되는 의료보험법 도입, 그리고 마침내 1970년대 무상진료로서 국민보건서비스제도로의 전환, 그 외 완전고용에 입각한 안정적 일자리 제공 체제, 박사과정까지의 무상 공교육체제 등이 차근차근 실행되면서 인접한 스칸디나비아 여타의 국가에도 확산효과가 나타나게 되어 오늘날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강력한 복지국가체제가 유지되게 된다.


보편주의에 입각한 복지국가는 누군가에게는 불가능한 망상이거나 아니면 자본주의의 근간에 배치되는 불온한 상상이 될지 모르지만, 이렇듯 실제 지구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한국의 경우는? 아마도 65세 노인에게 토큰 대신으로 주던 교통수당, 한 달에 2만원 내외의 그 교통수당이 빈약하기 그지없는 보편적 복지제도의 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초, 중등학교의 의무교육에 따른 수업료면제도 보편적 복지제도이지만, 급여 내용이 포괄적이지 못하다는 측면에서는 빛바랜 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무상급식 논란은 이러한 허접한 무상교육의 내용을 제대로 채워보자는 욕구의 자연스런 발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뭐래도 보편적 복지국가의 구축은 한국 사회 정상화의 중요한 한걸음이다. 특히 경제지상주의 하나로 여기까지 온 한국 사회가 분출시키는 각종 부작용의 규모와 심각성을 놓고 볼 때 보편적 복지체제 없이 계속 간다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파헤쳐보면, 보편적 복지국가의 철학적 기초는 인권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누구나 육아, 교육, 의료, 주거, 노후 등에 있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졌다는 주장은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불안정한 삶의 광범위한 존재 앞에서는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라고 오히려 반박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염려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근거이다.


보편적 복지국가는 또한 스스로의 자립적 능력이란 것이 우리가 처한 자본주의 사회에는 근본적으로 제약된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시장 메카니즘과 자발적 근로정신이란 것이 우리 사회의 모든 이들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장치로서 안정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그러기에 그 어떤 이들도 스스로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실직과 가난, 질병, 장애, 노후 등을 이유로 고통의 늪으로 추락할 수 있고 그렇기에 미리부터 긴요한 생활 욕구에 대해서는 누구도 가리지 않고 일정한 수준을 사전적으로 보장받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이고 안전한 방책이라는 인식이 보편적 복지국가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국가는 평등의 사상에도 맞닿아있다. 누구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가운데 특히 아동과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경우 보호자의 유무, 빈부에 상관없이 같은 수준의 생활을 누려야 한다는 평등의 이념에 기초한다.


보편적 복지국가는 부유층이 누리는 부에도 자신의 능력만에 기초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들의 부가 마냥 정당하여 소위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입각하여 도덕심의 발로 정도로 사회에 기여한다는 소극적 생각을 벗어난다. 소득이 많고, 부가 많을수록 각종 외부비경제를 일으키며 얻게 되었을 가능성이 더 많고 그렇기에 소득과 부의 일정정도를 사회에 내놓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는 누진세의 정당성을 기초에 깔고 있다.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는 길은 이렇듯 시민들의 이념적 성숙이 깔려 있어야 한다지만, 우리에겐 당장의 양극화, 저출산, 노령화로 인한 파국의 위기가 현실적으로는 절실한 설득의 논거가 된다. 중산층을 보호하고 그들의 불안정한 생활을 안정화시킴으로써 빈부의 갈등이 줄어들고, 출산에의 용기를 내며, 품위 있는 노인들로 구성된 노령사회를 만들자는 절실함이 국민에게 더욱 가까운 현실적 이유로 추가된다.


이념의 성숙에 의하든, 현실적 위기의 타개라는 절실함에 의하든 한국에서의 보편적 복지국가의 꿈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고 이번 6.2 지방선거는 이를 위한 하나의 디딤돌을 놓는 역사적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1945년 집권하여 보편적 복지라는 베버리지의 꿈을 추진했지만 6년 뒤에 다시 국민으로부터 불신당하고 보수당에 정권을 내어 준 영국노동당은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려는 이들에게 교훈의 대상이다. 과감한 재정적 투자로 체감할 만한 수준의 급여가 이루어져야 하고, 치밀한 정책 기획력에 의해 대중에게 가장 절절한 효과를 띄며 다가가야 한다는 점이 교훈의 핵심이다.


이들 교훈은 혹 어설프게 보편적 복지를 레토릭으로 주장하는 이 땅의 정치세력들에게는 도전적 질문을 던지게 한다. 진정 그대들은 가슴과 머리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준비가 되어있는가라고. 준비되지 않은 채 주창하는 보편적 복지는 오히려 진보의 역사를 더욱 후퇴시킬 수 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태수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 이 글은 프레시안 4월 1일자 기사 <의제 27 ‘시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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