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4-11-03   726

<안국동 窓> 최저생계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해와 편견

최근 국정감사나 언론 등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깊어가는 빈곤현실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한 자료에 의하면 여성이 가구주인 가구 중 빈곤가구는 43.3%로 남성이 가구주인 가구의 빈곤율 17.3%의 3배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감자료에 의하면 2002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 가구는 약간씩 증가하였으나 수급가구의 월평균소득은 2002년 25만원에서 2003년 24만원, 2004년에는 23만 7천원으로 계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여성가장 자녀와 동반 자살, 20대 노숙자 증가 … 빈곤현실 심각

며칠 전에는 어느 여성가장이 자식 둘과 함께 자살을 택했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게다가, 최근의 한 르포기사는 근래 들어 20대 노숙자가 증가추세에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실의 이면에는 빈곤의 심화와 분배구조 악화가 놓여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도 1/4분기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하위 1분위와 2분위 가구의 절반가량이 그리고 중상위층 가구의 20% 가량이 가계수지적자를 기록하여 전체적으로는 30% 가량의 가구가 적자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수지폭의 계층간 격차는 더욱 커서 상위 10%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가계흑자가 17% 가량 증가한 반면, 하위 10%는 같은 기간에 적자폭이 29%나 증가하였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모름지기 공동체라 할 때 그것은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 즉 그 사회가 정한 최저수준의 생활은 보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삶을 외면한 헌법재판소

빈곤으로 인한 시름이 깊어가는 이 때, 비록 그 수준이나 구체적 내용에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이른 바 최저생계비라는 것이 갖는 의미는 자못 새로운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0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장애로 인한 추가지출을 고려하지 않는 현행의 최저생계비는 인간다운 생활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며 2002년 5월 제기된 위헌소송에 대한 판결에서 현행 최저생계비는 위헌이 아니라는 최종판결을 내렸다.

헌법 제34조제1항에 명시된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와 이에 기초한 헌법 제31조부터 36조에 걸쳐 규정된 노동권·사회복지에 관한 권리·환경권 등은 이른 바 사회권적 기본권으로서 다른 기본권(자유권이나 정치권)과 달리 유독 그 법적 지위에 관한 학설이 대립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학계의 다수설에 따라 사회권적 기본권은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가 아니라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권리로만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한 것이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필자로서는 요즘 세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헌법재판소가 이런 판결을 한 데 대해 한편으로는 과거부터의 헌법재판소의 판결상의 ‘관습’(헌재는 1990년대 중반 생활보호지침 위헌소송에서도 유사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는 ‘습관’적인 생각과 함께 또 다른 한편으로 요즘처럼 빈곤이 심화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제는 좀 더 전향적인 입장전환이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관습’적인 아쉬움(이런 종류의 아쉬움은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하도 많이 느껴서 이제는 관습화한 것 같다)을 금할 길 없다.

더욱이 올해는 최저생계비 실계측연도이며 헌법재판소 판결의 주 대상이었던 바로 그 가구구성원의 특성에 따른 추가적 지출요인을 반영한 최저생계비를 산출하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장애인의 추가적 지출요인을 반영하지 않는 것이 위헌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을 정책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은 아닐 터이니 이번에는 최저생계비의 수준도 현실화하고 가구원 특성에 따른 추가지출요인의 반영도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지난 여름 최저생계비 체험 때 있었던 최저생계비에 대한 몇 가지 오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최저생계비에 대한 오해1.-최저생계비를 전부 지급한다?

흔히 사람들은 정부가 최저생계비를 지급한다고들 표현하는데 이런 표현보다는 최저생계비가 나타내는 생활수준을 보장한다는 표현이 더 나을 것 같다. 최저생계비는 최저생활수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지출액을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그 액수만큼은 지출해야 최저수준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최저생활에 관한)이다.

정부는 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생활수준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지 최저생계비로 표현된 액수를 모두 지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올해 4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는 약 105만 5천원인데, 예컨대 갑이라는 사람이 80만원의 소득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하면 정부는 갑으로 하여금 105만 5천원이 나타내는 생활수준을 보장해주기 위해 갑에게 25만 5천원을 지급하게 된다.

그래서 갑은 자신이 이미 가진 소득 80만원과 정부지원금 25만 5천원을 합하여 105만 5천원의 최종소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급방식을 보충급여라 하는데 이런 식으로 급여가 지급되기 때문에 급여수준이 상향되거나 최저생계비가 상향되어도 실제로 증액되는 재정지출분은 생각만큼 많지가 않다.

최저생계비에 대한 오해2.- 최저생계비는 순전히 생활비다?

또한, 사람들 중에는 최저생계비를 자신의 임금과 직접 비교하여 4인 가구 최저생계비 105만 5천원은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임금과 최저생계비를 비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을 정할 때에도 최저생계비를 고려하고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임금소득을 가지고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것들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저생계비와 임금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최저생계비는 주거나 내구재 등의 재산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고 난 이후에 필요한 지출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모든 면, 즉 주거, 의료, 식료품, 의류, 난방 및 전기 등 모든 면에서의 생활을 영위(비록 그 수준이 최저수준이기는 하지만)하는 데 필요한 지출액을 전부 말하는 것이다.

대개 최저생계비 액수가 많다고 하는 사람들의 경우 주거나 내구재 등이 제법 갖추어진 것을 당연히 전제하고서 그에 더한 추가비용이 최저생계비라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최저생계비는 그 액수로 주거나 내구재도 해결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행 4인 가구 최저생계비 월 105만 5천원 중 주거나 내구재 등을 마련하고 남는 지출액만 말한다면 그것은 아마 월 50만원도 채 안될 것이다.

최저생계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최저생계비는 우리 사회가 공동체로서 의미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기 위한 첫 발걸음이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피를 나누고 사는 사람들 중 어찌 누구는 생활고로 목숨을 걸어야 하고 누구는 명품만을 소비해야 하는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저생계비에 대한 권리조차 적절히 인정하지 못하고 최저생계비의 수준조차 현실화하지 못한다면 공동체로서의 우리 사회의 자격은 없는 것이라 할 것이다.

남찬섭(사회복지위원회위원.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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