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빈곤정책 2004-07-22   774

최저생계비에 대한 네 가지 오해

1. 정부는 최저생계비를 지급한다?

정부가 지급하는 것은 최저생계비가 아닙니다.

최저생계비는 최저생활이라고 생각되는 수준의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지출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비용을 말합니다. 따라서 최저생계비는 지출액수로 나타나며 거기에 기간이 표시됩니다. 그래서 한달 최저생계비, 하루 최저생계비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한달 최저생계비가 사용됩니다.

현재 4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월 105만 5천원인데 만일 어떤 4인 가구의 소득이 월 70만원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이 가구는 월 70만원을 전부 다 지출해도 자력으로는 정부가 말하는 최저생활수준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가구는 정부지원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이런 가구를 수급자라고 부릅니다). 이 수급자 가구에게 정부는 월 105만 5천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105만 5천원에서 70만원을 뺀 나머지인 35만 5천원만 지급합니다.

그래서 이 가구는 가구소득 70만원 + 정부지원금 30만 5천원 = 105만 5천원 해서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여기서 소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소득과 다르며 또 정부지원금도 지금 말한 것과는 약간 다르게 계산되는 부분이 있는데 일단은 이렇게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2. 최저생계비는 내가 받는 임금과 비교해서 별 차이가 없는데

그러면 나도 가난한 사람이 아닌가?

그럴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선 구분해야 할 것은 최저생계비는 지출을 말하는 것이고 임금은 소득을 말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부가 말하는 최저생계비는 최저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모든 지출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주거비와 의료비, 교육비, 내구재 구입비 등이 전부 포함됩니다. 따라서 2004년도 4인 가구 월 최저생계비 105만 5천원은 그 금액 속에 주거비 지출, 의료비 지출, 교육비 지출, 내구재 구입지출 등이 전부 포함된 금액입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려면 집도 있어야 하고 가구도 있어야 하고 병원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자녀교육이나 본인교육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최저생계비는 그 주거나 교육, 병원이용, 가구구입 등에 지출하는 것이 모두 최저수준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거도 최저주거, 교육도 최저교육, 의료도 최저의료, 가구도 최저가구, 식료품 지출도 최저수준 등으로 지출한다고 가정하고 이들 지출에 드는 비용을 전부 다 합한 것이 최저생계비입니다. 그래서 총지출액으로 표현되는 최저생계비와 소득개념인 임금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 반드시 타당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반드시 타당하지는 않다고 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금소득이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것을 가지고 모든 지출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그 점에서는 최저생계비 액수와 임금소득을 비교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인 가구 월 최저생계비 105만 5천원에 비해 본인의 임금액이 별로 높지 않은 경우라도 그 사람의 실제 주거환경은 정부가 말하는 최저주거보다는 높은 경우가 보통입니다. 집에 있는 내구재도 정부가 말하는 최저수준의 내구재보다는 수준이 높은 것이 일반적입니다. 4인 가구 월 최저생계비 중 주거비는 월 20만 5천원 가량 되는데 이 돈은 1년으로 쳐도 250만원이 채 안됩니다.

이 돈 가지고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주거는 도저히 마련할 수가 없습니다(최저주거비라고 하면 보통 일정한 주거가 이미 마련된 상태에서 그 주거를 관리유지하는 비용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그런 비용도 포함해서 주거 자체를 마련하는 비용까지를 다 포함한 것입니다).

3. 최저생계비가 1인 가구에게 36만 8천원이면 2인가구에게는 그 2배인 73만 6천원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월 최저생계비는 앞서 말했듯이 최저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지출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월 총지출액입니다. 그런데 이 지출에는 공동사용이 가능한 부분에 대한 지출도 있습니다. 예컨대 방을 생각해보면 1인 가구일 때나 2인 가구일 때나 방은 1개만 있어도 살 수 있습니다(최저생활이니까). 그리고 화장실도 1인 가구나 2인 가구나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이런 것들은 많습니다. 후라이팬도 그렇고 책상도 그렇고 밥상도 어느 정도 그렇고 등등. 그래서 가구원 수가 늘어나도 최저생계비는 가구원 수가 늘어나는 만큼 그에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2인 가구 월 최저생계비는 60만 9,842원이고(1인 가구 최저생계비의 1.66배), 3인가구는 83만 8,7978원(2.28배), 4인 가구는 105만 5,090원(2.87배)으로 책정되어 있습니다. 이를 뒤집어 이야기하면 가구원 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최저생계비가 그만큼 비례해서 줄지는 않는다는 의미도 됩니다.

4.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저생계비 전액을 지급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저생계비 전액을 지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오해는 최저생계비라는 총지출액과 최저생계비로 표현된 생활수준 이하의 생활을 한다고 정부가 인정한 사람(즉, 수급자)에게 주는 정부지원금을 혼동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최저생계비라는 총지출액수를 가지고 가난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기준으로도 사용하고 또 그 가난한 사람(수급자)에게 주는 정부지원금의 액수를 결정하는 기준으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저생계비는 개념으로 존재하며 정부의 정책기준으로 사용되는 것이지 정부지원금 그 자체와는 다릅니다.

우리가 가난한 삶은 어느 정도 수준의 삶인가를 개념적으로 결정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난한 삶(최저생활 이하의 삶)이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결정하는 것과 구체적으로 어디에 사는 누가 얼마나 가난한가를 파악하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찾아내기 위한 첫째의 작업이 최저생계비라는 총지출액을 정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회조사과정이나 이론적 논의과정을 통해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실제로 가난한 사람을 찾아내는 작업은 우선 그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를 알아내야 하고 그리고 거기에 사는 그 사람이 어느 정도나 가난한지 알기 위해 그 사람의 소득을 조사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소득을 조사한 결과 소득이 월 90만원인 것으로 파악되었다면 그 경우 그 사람은 정부가 정한 최저생계비라는 개념적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최저생활 이하의 생활을 한다고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그 사람의 가구가 4인 가구라고 가정할 때).

그래서 정부는 그 사람에게 105만 5천원 – 90만원 = 10만 5천원을 지급하게 됩니다. 결국 정부가 말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라도 본인의 소득(90만원)과 정부가 지원하는 지원금(최저생계비와 본인소득의 차액 10만 5천원)을 합쳐서 최저생활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 그 사람이 가난한가 가난하지 않은가, 그리고 가난하다면 얼마나 가난한가를 파악하기 위해 정부가 조사하는 소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득과는 다릅니다. 이 경우 소득은 공식적으로는 ‘소득인정액’이라고 하는데, 이 소득인정액에는 보통 말하는 소득에다가 재산까지 포함됩니다.

예컨대 ‘갑’이라는 가구가 4인 가구라고 하고 그 가구의 월소득이 70만원이며 전세가 4천만원이고 은행저축이 600만원 가량 있다면 그 사람의 소득인정액은 70만원만이 아니고 그보다 많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계산과정은 복잡하니 생략하고 말씀드리면 전세에서 월 8만 3,400원의 소득이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저축에서 18만 7,800원의 소득이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저축에서 발생하는 이자소득은 월소득으로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갑 가구의 소득인정액은 97만 1,200원이 됩니다(이 경우 은행저축은 정기적금 등이 아니라고 가정합니다).

여기에 만일 갑 가구가 중고시가로 20만원하는 승용차를 가지고 있다면 이 20만원은 전액이 그대로 소득으로 간주됩니다(이를 합하면 117만 1,200원).

그리고 갑 가구의 가구주에게 같이 살지 않는 아들이 있어서 그 아들이 소득이 일정액이 있다면 그 아들이 갑 가구를 실제로 도와주는가 아닌가에 상관없이 정부는 그 아들이 일정액을 매달 갑 가구에 지원한다고 가정하고 이것도 갑 가구의 소득으로 잡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지만 많은 경우 정부에 의해서는 가난한 사람이 아닌 것으로 다시 말해서 최저생활수준 이하의 생활수준을 사는 사람은 아닌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리고 설사 정부에 의해 최저생활수준 이하의 가구라고 파악되더라도 그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주는 지원금은 그 소득인정액을 최저생계비에서 제한 나머지 금액만으로 구성됩니다.

올해가 최저생계비 계측연도라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최저생활수준을 어느 정도 수준의 생활로 정할 것인가 하는 그 기준을 정하기 위해 사회조사와 이론적 논의를 전면적으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현행 법에 의하면 최저생계비 계측조사는 5년마다 한번씩 하게 되어 있는데 1999년에 했으니까 올해가 다시 돌아오는 계측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정부는 전국 단위로 표본을 추출해서 최저생계비에 관한 사회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중입니다(올해 초에 법이 바뀌어 내년부터는 3년마다 계측을 하도록 변경되었습니다. 따라서 올해 계측하면 바뀐 법에 따라 다음번 계측은 2007년에 하게 됩니다).

최저생계비를 계측하지 않는 연도의 최저생계비는 일정한 계산과정을 거쳐 그냥 정부가 책정하는데 이 때 정부는 그 계산과정에 물가상승율만을 반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최저생계비는 최저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 가구구입비, 식료품비 등 총지출액을 말하며 이는 생활영역 전반에 걸친 것이고 따라서 생활을 위해 필요한 모든 지출항목에서의 사회전반적인 지출행태를 반영해 주어야 합니다.

예컨대 교육비 항목에서 사회전반적인 지출행태가 달라진다면 이 부분을 최저생계비에 반영해 주어야 하고, 식료품 소비의 사회전반적 지출행태가 달라지면 이 부분도 반영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현재 하는 것처럼 물가상승만을 고려하게 되면 이런 일반사람들의 생활패턴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최저생계비가 시간이 지날수록 일반적인 지출행태와 멀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현재 적용되고 있는 최저생계비 액수가 현실성없이 낮아지게 된 원인입니다.

이렇게 하다보니 경제위기 이후 빈부격차 심화로 저소득층이 늘어나고 이들의 생활수준이 더욱 저하하였고 그래서 최저생활 이하의 가구도 늘어났으며 따라서 정부지원대상이 되어야 할 수급자의 수가 늘어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정부가 파악한 수급자의 수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이렇게 수급자가 줄어들게 만든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 수준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나라는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수급자를 선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최저생계비 수준을 기준으로 수급자를 선정하는 과정 자체도 문제가 많습니다.

이번 캠페인의 일차적인 목적은 최저생계비의 비현실성을 알리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간다면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하여 수급자를 책정하는 과정 자체의 문제점도 알리는 데 있습니다.

남찬섭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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