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8-02-01   1022

[이명박 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 3] 사회복지, 시장의 과잉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명박 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 3.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새 정부의 기조 및 정책의 골간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는 ‘MB에게 보내는 편지’ 제하의 공개편지를 통해 새 정부가 각 분야에서 역점을 둬야할 중점 사항 등을 정리해 10여차례에 걸쳐 내보낼 예정입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이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그 세 번째 글은 김연명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이 썼습니다

지난 해 대통령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때로 기억합니다. 각 캠프마다 공약발표 전쟁을 치르던 시기입니다. 당선인께서 ‘생애희망 디딤돌 7대 프로젝트’ 라는 복지공약을 발표했고 기자들에게 논평을 부탁하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내친 김에 한나라당의 복지공약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적극적인’ 복지옹호론자에게도 별로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많은 영역에서 국가의 복지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묻어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공약대로만 되면 좋겠네요”.
                                                                             ▲ 김연명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하지만 뭔가 찜찜했습니다. 시장과 경쟁, 자율을 강조하던 이명박 후보 진영의 정책기조와 복지정책의 기조가 안맞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하고 싶은 정책이나 논란이 될 정책들은 피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인수위가 구성되었습니다. 인수위의 팀은 물론 복지부와 산하기관들도 새 정부의 기조에 맞는 정책을 만드느라 한바탕 난리들을 치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검토되고 있는 신정부의 복지정책 중에는 통합 의료보험의 조합간 경쟁체제 도입, 민간의료보험 도입, 보육료 자율화, 복지서비스의 민간 공급자 확대와 바우처 제도 대폭 확대, 국민연금기금의 경쟁체제 도입 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정책들이 아직 공식화되지 않았고, 당선인의 의중과는 무관하게 ‘관료들이 알아서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정권교체 이후로 시장과 경쟁, 자율이란 단어로 치장된 복지정책기조가 대세를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선거 당시 부각되지 않았던 이런 기조들이 이미 물밑에서 대세를 잡아가는 것을 보면 선거 당시 뭔가 찜찜했던 제 감이 맞아가는 것 같습니다.


국가복지가 완전히 시장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엉뚱한 해석을 논외로 하면 전통적인 복지국가에서 금기시되었던 시장 친화적 복지와 경쟁원리가 유럽의 복지국가에서도 부분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시장과 경쟁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고 적절한 수준에서 도입되고 합리적 규제가 이루어지면 복지제도의 운영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튼튼한 공공복지제도를 토대로 시장 친화적 원리를 도입하는 서구 복지국가의 정책기조를 우리나라에 선뜻 도입하기 어렵고 중장기적으로 상당한 사회적 폐해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 그런지는 복지영역에서 공공과 시장의 역할분담에 관한 몇 가지 지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민간보험이 판치는 한국, 시장은 ‘천국’, 공공부문은 ‘지옥’


우리나라의 부모님들이 선호하는 국공립보육시설은 2006년 기준으로 전체 보육시설의 5%에 불과하고 민간보육시설이 약 95%를 차지합니다. 공공의료기관의 비율은 2002년 기준으로 7.7%입니다. 병상수를 기준으로 하면 19.6%이지만 이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하면 턱없이 공공부문이 작은 것입니다.


공공주택은 2.5%로 OECD 회원국 중 꼴지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노인요양시설은 공공시설의 비중이 수치를 댈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합니다.


또 우리나라는 민간보험 천국입니다. 2005년 기준으로 민간생명보험의 보험료 수입은 GDP 대비 7.62%로 세계 4-5위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나라는 복지에 관한 한 시장은 ‘천국’이고 공공부문은 ‘지옥’입니다.


사정이 이럴진대 공공부문에서 시장원리를 강화한다는 것이 제대로 된 우선순위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대표적인 예 두 가지만 들겠습니다.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웹사이트(www.hira.or.kr) 초기화면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합 의료보험을 다시 몇 개의 조합으로 쪼개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의료보험 통합으로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과 지역간 재정격차 해소에 절대적 공헌을 한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입니다.


다시 조합방식으로 전환될 경우 도대체 얻을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백보 양보해서 관리운영비를 약간 줄일 수 있다고 합시다. 2006년에 건강보험이 약 23조원을 지출했는데 이중 관리운영비는 8천 5백억원으로 3.7%에 불과하고 94%인 약 22조원이 보험급여비로 병의원에 지출된 것입니다.


지출을 합리화시키려면 관리운영비보다는 22조원에 해당하는 보험급여비가 제대로 지출되는지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고령화로 인해 막대한 의료비 지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의료보장정책의 초점은 민간의료기관의 무질서한 경쟁에서 오는 의료비 낭비 요인은 없는지 어떻게 하면 비용유발적인 의료기관의 경쟁체제를 합리적 경쟁체제로 바꿀 것인지가 당연히 정책의 초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의 핵심은 민간의료기관의 무질서한 경쟁에 있지 건강보험의 관리운영체계에 있지 않습니다.


일본은 공공교육 95%, 우리나라는 5%


고급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보육료 자율화 좋습니다. 선진국에서도 보육료 자율화된 나라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들이 공공보육기관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일본은 영리법인을 허용하고 있지만 국공립과 비영리법인 보육소가 95%정도를 차지합니다. 공공보육시설이 5%에 불과한 나라에서 보육료 자율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너무 명확한 것 아닙니까?

▲ 맞벌이 부부를 위한 경기도의 한 자녀 보육시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남소연


유아기때부터 인적자본 축적의 격차가 더욱 확대될 것이고 사교육비 격차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민간이 다수를 차지하는 유아교유기관의 선택과 경쟁체제는 강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선택과 경쟁이 제대로 되려면 국가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어느 기관이 좋은지 지금처럼 학부모의 ‘입소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객관적으로 기관의 점수를 매겨 좋은 시설과 안 좋은 시설을 구분해주어야 선택의 원리가 작동될 것 아닙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보육정책의 초점은 부족한 공공보육시설을 강화하고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다수의 민간기관에서는 제대로 된 경쟁이 이루어지고 학부모의 합리적 선택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것입니다. 적어도 현재의 상황에서 보육료 자율화는 번지수가 맞는 정책이 아닙니다.


공공복지기관의 비효율성에 대해 신정부에서는 많은 문제제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감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문제는 그 방향이 반드시 민영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부분이던지 최소한의 공공부문이 있어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시장의 가격 왜곡효과를 막아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복지영역에서 최소한의 공공부문의 비중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지 영역에서 이미 다수파가 된 민간복지공급기관의 효율화도 공공복지기관의 효율화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민간 보험 상품에 대한 표준화와 정보비교 공시제도가 갖추어져야 선택의 장점과 시장의 효율이 살아납니다. 민간복지기관의 질을 제대로 평가하는 공공기관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제대로 된 경쟁이 이루어집니다.


‘시장과 경쟁’, 좋은 말이지만…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을 막으려는 정책의지 만큼 이미 존재하는 민간시장의 비효율성과 낭비를 줄이려는 정책의지가 있어야 한국의 사회복지가 발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새 정부는 민간시장의 효율성을 강화하려는 정책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시장과 경쟁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강조하다 보면 한국은 공공부문의 폐해가 극심한 나라로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공부문의 취약과 시장의 과잉이 한국의 사회복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한국의 사회복지에서는 공공부문의 확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경쟁체제의 확립은 공공복지부문에서도 적용될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경쟁원리에 대한 무차별적인 이념적 접근은 오히려 사회복지의 효율적 운영을 저해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특히 합리적 경쟁체제의 도입은 이미 다수파가 된 민간시장의 복지공급체제를 합리화하는데 오히려 더 필요합니다. 보험회사, 의료기관, 보육시설, 노인요양시설 등 각종 민간 복지공급 기관의 정보를 국가가 보다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서비스의 질을 평가해야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권이 작동하고 경쟁의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새 정부가 공공복지부분의 확대뿐만 아니라 투명성과 효율성 확보, 그리고 무질서한 민간의 복지공급체계를 바로잡아 한국 사회복지의 제2의 기틀을 잡은 정부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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