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8-11-25   495

[칼럼] 9개월이면 충분하다?


“만일 아직도 누군가가 미국은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란 걸 의심한다면, 우리 선조들의 꿈이 아직도 이 시대에 살아 있다는 것을 의심한다면, 민주주의의 힘에 의문을 가진다면, 오늘 밤이 당신의 의문에 대한 답입니다.”

지난 11월4일 버락 오바마의 미합중국 44대 대통령 당선 연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는 여기서 미국의 변화를 역설한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전지구적 위험 그리고 금세기 최악의 경제위기를 논하고, 그 속에서 고통 받는 ‘용감한 미국인’을 걱정한다. “자식들이 잠든 후에도 잠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걱정하는 부모들”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와 새 학교, 새로운 의료보험제도를 약속한다. “조국의 진정한 힘이 무기나 부의 규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상을 지탱하는 힘에서” 온다는 것을 강조하며 민주주의와 자유, 기회, 굴하지 않는 희망을 “미국의 비범함”이며 변화의 힘이라고 역설한다.


이미 그는 지난 8월27일 미 민주당 대통령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서도 긴 시간 자신과 가족의 인생 역정이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어떻게 꽃피어 왔는지, 그리고 이것이 지난 8년간의 실정으로 현재의 미국인들에게는 어떻게 좌절로 돌아오고 있는지를 격정적으로 표현하였다. 어느새 국가의 역할은 간데없고 일자리가 없는 것은 운이 나쁜 것을 탓해야 하고, 건강보험은 시장에, 가난한 것은 자기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야만의 사회가 되었다고 통탄한다. “8년이면 충분하다”(Eight is enough)라는 함축적 표현이 나온 것도 이런 가운데에서다.


그는 “노동의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는 경제”를 말하고, 시장과 기업이 노력과 혁신에 보답해야 하며, 미국 근로자와 중소기업에 보답하는 세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천명하였다. “모든 아이에게 세계적 수준의 교육을 제공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 유년기 교육에 투자하며 유급 병가와 가족휴가 제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보장 등 세부적인 공약사항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어김없이 4700만명이 제외되어 있는 의료보험을 전국민보험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미국인은 수백년의 질곡이었던 인종간의 장벽을 넘어 드디어 오바마를 선택하고야 말았다. 그것도 미국의 정치·경제·사회적인 위기가 가장 정점에 오른 시점에서. 물론 오바마가 미국의 슈퍼자본주의가 맞이한 숙명적인 위기를 해소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군산복합체의 강고한 공생구조가 단절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인종사회가 교묘히 계급구조와 맞물린 채 미국의 통합이 결국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미국인들은 이들을 문제로 삼고 해결하겠다고 나선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나이를 선택했다는 것, 그것 자체의 의미는 시간이 가도 퇴색하지 않는다.


여기에 우리의 상황이 겹쳐지지 않을 수 없다. ‘잃어버린 10년’을 구호로 해서 바뀐 새로운 정부는 아직 국민에게 이렇다 할 어떤 희망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취임한 지 만 9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실은 혼란이고 고통이다.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갈 것이 확실한 마당에 아직도 적실한 정책 입안 없이 이런저런 짜깁기용 서민대책으로 비켜가고 있다. 예의 ‘동절기 서민생활 지원대책’이란 왕년에 많이 본 레퍼토리만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술 더 떠 보건복지가족부는 얼마나 한가한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길들이기’에 나서며, 경쟁적인 전문모금기관을 정부가 직접 승인하여 결국 민간성금까지 관치용으로 사용하겠다는 발상이나 하고 있다.


이렇게 가다간 국민들이 ‘아홉달이면 충분하다’(Nine is enough) 하고 나오지 않겠나? 제대로 된 ‘전대미문’의, 실로 담대한 경제·사회정책의 변환이 요구되는 바이다.













이태수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 이 글은 한겨레신문 11월 25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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