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10-04-09   1252

[칼럼] 무상급식은 건강이다

무상급식은 건강이다


이진석(서울의대 의교관리학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밥이 보약이라는 말은 예사말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거친 삶의 지혜가 오롯이 녹아 있는 명언이다. 밥과 생명을 짝지은 속담과 비유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밥과 건강의 관계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의 번커 교수와 미국 하버드대의 프레이저·모스텔라 교수의 공동 논문에 따르면, 지난 한 세기 동안 사람의 평균 수명은 약 30년이 늘어났는데, 이 같은 수명 연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영양상태 개선’이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에서는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이 미국 성인 사망의 51%를 결정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생활습관에는 운동, 흡연, 음주, 수면 등도 포함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식습관이다.


우리가 먹은 밥을 소화시켜 성장과 발달, 건강을 위한 영양분으로 바꾸는 역할은 위장, 소장, 대장과 같은 소화기계 장기들이 담당한다. 그런데 이 소화기계 장기들은 매우 예민하다. 특히, 신경생리 계통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흥분하거나 혹은 우울한 상태에서 밥을 먹으면 곧잘 체하는 주위 사람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1명 꼴로 기능성 소화불량을 앓고 있고, 과민성 대장 증후군도 전체 국민의 10%가량이 경험하고 있다. 이런 소화기계 질환이 신경과민이나 스트레스에 의해 유발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의학상식이다. 즉,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균형잡힌 식단으로 밥을 먹어도 소용없다. 도리어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사람 진만 빠진다.


건장한 어른도 이럴진대, 신체 장기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고, 심리적으로도 예민한 아이들이야 오죽할까? 눈칫밥은 아무리 잘 챙겨먹어도 살로 안 간다. 아이들의 정신을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신체 발달과 건강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아이들을 평생 괴롭힐 고질적인 소화기계 질환만 안겨줄 수 있다.


외부 자극에 무던한 기성세대와는 달리 요즘 아이들의 오감은 세계로 열려 있다. 자존감이 강해서 일견 사소해 보이는 상처에도 격한 반응을 보인다. 그들 세계에서 ‘사회적 죽음’에 해당하는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친구들에게 흠 잡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빈곤을 입증하는 대가로 밥을 주는 현행 급식체계는 시대착오적이다. 이렇게 눈칫밥을 먹어야 할 아이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4%가 ‘지속적 빈곤층’, 16%가 빈곤과 탈빈곤 상태를 수시로 오가는 ‘반복적 빈곤층’, 15%가 ‘일시적 빈곤층’에 해당한다. 국민의 35%가량이 빈곤 혹은 그 경계선 상에 놓여 있는 셈이다.


설사 다른 아이들이 알 수 없도록 은밀하게 신청을 받아서 밥을 먹인다고 해도, 아이 본인은 알고 있다. 친구들과는 달리, 자신은 급식비를 내지 않고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행여 그 사실을 친구들에게 들킬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그 아이에게 밥 먹는 시간은 고역이 된다. 이렇게 먹는 밥이 아이의 살이 되고, 피가 될까? 소박한 한 끼의 밥이라도 마음 편하게 먹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의 정신과 신체가 고루 건강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미래의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다. 무상급식은 현 세대가 미래 세대에 줄 수 있는 건강한 선물이다.


* 이 칼럼은 4월 9일자 경향신문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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