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4-06-01   1043

<안국동窓> “국민연금 폐지 주장, 오해와 무책임한 비판”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킨 ‘국민연금의 비밀’이란 문건은 보험료 강제차압의 문제점과 급여 병급(*유족연금 등의 동시수령)조정의 개선 여지에 대해 의미있는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은 사회보험인 국민연금의 원리와 구체적 내용을 모르거나, 혹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왜곡한 악의적이라고 의심받기에 충분한 ‘선동’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

<관련칼럼> ▷ 국민연금 무엇이 문제기에…

▷ 012세대와 345세대 ‘연금 갈등’

가령 재벌총수가 봉급쟁이와 비슷한 보험료를 낸다는 질타는 국민연금의 기본원리도 이해하지 못한 수준 이하의 주장이다. 보험료 상한선을 없애고, 재벌총수나 고소득자에게 높은 보험료를 부과하면 결국 재벌총수나 고소득자가 더욱 많은 연금을 타가기 때문에 부자에게 더욱 많은 연금을 주자는 것과 다름없는 논리다.

장애나 사고를 당할 경우 본인이 사보험에서 보상을 받으면 연금을 지급정지 시킨다는 주장도 사실을 왜곡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국민연금은 본인이 가입한 재해보험(사보험) 보상과는 무관하게 연금을 전부 지급하고 있다. 병급조정된 연금의 일부를 ‘국민연금이 꿀꺽’ 한다는 구절은 가히 악의적 표현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무슨 돈을 꿀꺽하는가? 그 돈은 다 국민들의 연금으로 되돌아가게 되어 있다.

국민연금은 고쳐야할 부분이 산적한 불완전한 제도다. 필자는 지난 10여년간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수백만명에 달하는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문제, 불합리한 보험료 부과징수체계 문제, 그리고 국민연금기금운용 및 관리감독체계의 문제점 등 구조적 문제를 ‘미운털이 박힐 만큼’ 끊임없이 지적해왔으며, 정부의 미온적이고 불철저한 개혁을 누구보다 앞장서 비판해왔다.

때문에 최근에 국민연금으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당한 국민들의 항변에 그 누구보다 공감하고 있다. 최근의 사태는 국민들 스스로가 연금개혁의 동력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논란의 와중에서 제기된 일부 주장이 그동안 어렵게 쌓아 온 복지제도의 기본틀을 흔들어 놓아 다가오는 노령화사회에 대한 대책을 더욱 어렵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의 강제가입 대신, 원하는 사람만 가입하는 ‘선택제’로 바꾸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연금을 선택제로 바꿀 경우 생활에 쪼들리는 저소득층은 연금에서 거의 배제될 것이 분명하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물론 가입해서 연금을 받을 것이다. 노후생활의 빈익빈 부익부가 더 커지게 된다.

물론 현행 국민연금도 사각지대를 해소하지 못하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피할 수 없다. 연금 사각지대 해소는 현행 국민연금의 아킬레스건이다. 선택제를 도입할 경우 사각지대 문제의 해결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보험료 부담 능력이 없는 계층은 국고보조나 연금가입기간 인정제도 도입 등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

선택제는 중산층마저도 연금 가입을 배제시켜 중산층의 노후빈곤을 가속화시킬 위험성이 농후하다. 노후빈곤의 예방과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는 노인들의 사회적 부양비용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연금의 강제가입은 피할 수 없는 정책적 선택이며 사회 전체의 공익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것이다. 돈이 있는데도 보험료를 안내는 사람도 많지만, 생활비도 없는데 연금보험료를 강제로 징수한다는 저소득층의 불만은 분명 일리가 있다. 이 문제는 보험료 납부 능력을 판정하는 정부의 조세파악능력과 연금행정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며,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혁신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사회보험 가입의 강제성은 1893년 독일에서 처음으로 강제사회보험이 시행된 이래 100여년 동안 수많은 논쟁을 거치면서 확립된 근거 있는 원칙이다. 연금제도에 관한 한 시장을 중시하는 미국의 많은 학자들이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라 중에 칠레가 있다. 선택제에 가장 가까운 연금제도를 갖고 있는 칠레는, 1981년에 기존의 공적연금제도에 대한 개혁을 단행하면서 10개의 민간연금회사 중 마음에 드는 회사를 골라 연금에 가입하도록 하는 ‘강제’ 민간연금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이 제도에서도 가입하지 않을 자유는 없다. 국민들에게 연금회사를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은 보장하되, 가입의 강제성은 철저하게 강제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해도 연금가입자는 칠레 경제활동인구의 50%를 넘지 않고 있다. 인구의 절반이 연금사각지대에 놓여져 있고, 노후생활의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단언컨대 세계 어느 나라치고 사회보험에 가입을 강제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국민연금을 민간보험으로 대체하자는 주장도 있다. 국민연금이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사보험 역시 노후를 완벽하게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사기여부로 대규모의 법정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백수보험’은 80년대 초반 근로자의 평균월급이 15만원하던 시기에 3~4만원의 보험료를 내면서 100만명 이상이 가입한 보험이었다.

시중 보험회사들이 노후에 3~4억원의 지급을 약속하면서 보험을 판매했지만 결국 휴지조각이 되었다. 기껏해야 월 10만원씩 10년간만 지급하고 있을 뿐이다. 사보험 가입자들이 분노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안락한 노후를 위해서는 국민연금 혹은 개인보험 한곳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과 사보험의 역할을 적정하게 분담해야 한다. 노후에 국민연금과 보험회사에서 받는 연금을 합쳐 생활하는 것이 국민과 국가, 민간보험회사 모두가 상생하는 길이다. 또한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민간보험과 국민연금 중 양자택일이 아니라, 두 제도가 제 역할을 하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국민연금 등 모든 공적연금을 폐지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보험료는 고사하고 생활비도 없는 사람이 국민연금으로부터 어처구니 없는 피해를 당한 경우 낼 수 있는 당연한 목소리이다.

그러나 일부 시민단체의 이런 주장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책임 있는 시민단체라면 연금폐지 주장에 앞서 노인인구가 5백만명, 1천만명이 되는 노령화시대에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군인, 공무원연금, 국민연금을 폐지하고 그것을 기초연금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극히 의심스럽다. 수십조원의 돈이 소요될지도 모를 기초연금의 재원은 어디서 마련하고, 기존 가입자의 기득권이나 이미 연금을 받고 있는 노인들의 연금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등등의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구체적 대안도 없는 무조건적인 연금폐지 주장이 50대와 60대의 노인들에게 미칠 충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 나라의 노인인구는 이미 4백만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2030년이 되면 1천 1백만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지금 117만명의 노인들이 국민연금을 받고 있다. 액수는 충분하지 않지만 노후생활에 보탬이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117만명의 ‘말없는 다수’가 국민연금 폐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일부 시민단체의 무책임한 주장이 공적연금을 합리적으로 개혁하기 보다는, 우리 미래 사회의 무덤을 파는 ‘교각살우’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제대로 된 나라치고 연금제도 없는 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있는가? 시민단체는 국민들의 이유 있는 불만을 ‘개혁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야지 ‘파괴의 에너지’로 몰아넣으면 안된다.

이번에 드러난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 중의 상당수는 정부의 자영자 소득파악 능력 부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필자는 다른 곳에서(경향신문 5월 31자 칼럼 참조) 소득파악의 미비와 불합리한 보험료 부과징수체계 때문에 지역가입자 중 억울한 피해자가 양산되고, 불만이 구조화되며, 수급권 제약 논란도 국민의 욕구를 적극적으로 수렴할 수 없는 현행 연금행정체계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에 대한 정책대안으로 4대 사회보험료 부과징수 기능의 국세청 이관과 불합리한 수급권 관련 법규정을 ‘실시간’으로 고칠 수 있는 민간인으로 구성된 특별기구의 설치를 제안하였다. 불합리한 행정체계에 저항하는 국민들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가 진정되기만을 미온적으로 기다려서는 안된다.

이미 국민들의 불만은 비등점을 넘어선 것이다. 요행이 이번 사태가 진정된다 해도,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개혁이 없으면 비슷한 유형의 불만이 또 다른 계기를 통해 증폭된 형태로 표출될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민들의 이유 있는 반발을 적극적으로 수렴하여 4개 공적연금제도는 물론 노후소득보장체계 전반, 그리고 국민연금기금운용과 관리감독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혁하는 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2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김연명(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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