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10-10   486

[편집인의 글] 희망을 키우는 계절에

지난 여름, 한달 가량 외국에 머물면서 국내 소식은 거의 듣거나 보지 못한 (않은) 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접속한 인터넷을 통해 너무나도 충격적인 보도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에서 투신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생계를 비관한 끝에 자살을 선택한 이웃들의 사정이 여러 건이나 있었다. 나는 한동안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아니, ‘내가 무엇을 해 왔던가?’ 하는 자괴감과 죄책감을 떨쳐버리기가 힘들었다. 그들과 같은 시대에,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었다는 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무엇보다 개강 후 학교에서 사회복지를 ‘가르칠’ 일이 부담스러웠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이내 그런 자책을 모면할 길을 찾아냈다 – 놀라운 것은, 비교적 쉽게, 그리고 익숙하게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문제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것이었다. 특히, 그것이 특정한 인물이나 조직을 지적하지 않는 모호한 것일수록 나에게는 편안했다. 가장 좋은 대상은 이른바 ‘사회구조’이다. 천민자본주의, 허술한 사회보장체계, 혹독한 노동시장,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지식인 집단, 부패한 언론, 무능한 정부, 무엇이든 갖다 대는 대로 나름대로의 이유가 되었으며, 나는 조금씩 죄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나는 애초에 죄의식을 느껴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야말로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 무기력하게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나는 ‘그들’과는 달리, 살아야 할 이유를 확신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희망이 문제였다. 현재의 상태만큼이나 예측 가능한 미래를 갖고 있느냐가 문제였다. 지금 괴롭고 힘들어도, 미래가 보인다면 살아갈 수 있다. 우리들은 결국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해 오던 일이라 약간 둔감해졌을 뿐, 희망에 대한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여름 내내 햇살 한줌 제대로 쬐지 않아 가뜩이나 작황이 좋지 않은데, 매미인지 귀뚜라미인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농민들 시름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이리라.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차라리 악몽이라는 제자들에게,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의 착취를 못내 견디는 여성근로자들에게, 아파서 가난해진 이웃들에게, 그리고 젊은 시절 자식들 키우느라 자기 앞가림 못한 노인들에게 우리가 주어야 할 것은 희망이 아닌가. 우리 사회의 제도와 정책은 희망이라는 이름을 가져야 한다.

복지동향이 어느덧 발간 5년을 맞았다. 지령 60호, 발간 준비호까지 치자면 63호째이다. 어떤 이는 복지동향을 손꼽아 기다린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이제 너무 지친 것 아니냐며 다소 늘어진 편집포맷을 위로하듯 꼬집는다. 그래도 만 5년 동안 우리사회의 복지 ‘동향’을 전달하고자 고군분투해왔다고 자평한다면 지나친 자만일까. 이번 호를 위해 별도의 특집을 기획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기약없이 발간되어야 할 복지동향에게 5년이라는 세월은 특집으로 기념할 만한 의미있는 세월이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다. 이야말로 자만이라면 자만이리라.

한동우 / 강남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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