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09-10   642

낡은 집에서 살지 않겠다

내게 괴로움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문제에 대한 답을 아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현실을 뛰어 넘지 못한다. 순간적으로 포착한 절망을 아득하고 영원한 것으로 믿는다. 알고 있으면서도 체념하는 내가 괴롭다. 희망에 대한 믿음이 어느 순간 무너지더니,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해야할 일만은 붙들고 절대 놓지 않겠다….

사회복지의 길을 걷어 온 지 3년, 나는 대학 졸업 이후 지금도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마음에 간혹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내 피는 급하게 요동친다.

사회복지사로서의 신념과 반성

이러한 나의 고백이 젊은 날 누구나 겪는 일에 대한 몸살정도로 들릴 수 있겠다. 눈앞에 당장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조급함 정도로 말이다. 사회복지에 대한 긴 안목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부끄럽게 흔들리는 내 모습을 스스럼 없이 내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신에 대해서, 자기 내면에 대해서 분명히 볼 줄 아는 사람만이 가야할 길을 올바르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념이 흔들릴지라도 부끄러운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 자신에 대한 반성이 삶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회복지사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행복해진다.

내가 일하는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사회복지협의회 직원들의 농성이 지난 7월초까지 이루어 졌다. 농성의 핵심은 지역사회복지협의체 입법 철회와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퇴진요구에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이번 농성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각 사회복지협의회의 개혁과 변화를 위한 자기반성에 있다고 본다. 물론 이 같은 생각은 다른 성과나 한계를 공식적으로 이야기할 만큼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내게는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찌됐건 기존의 낡은 사람, 낡은 사업방식이나 운영 등을 개혁하기 위한 노력에 뛰어든 사회복지협의회 직원들만큼은 자신과 각자 속해 있는 협의회의 낡은 틀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겠는가 생각된다. 사실 나는 어떤 불합리한 사회복지제도와 정책이 새롭게 생길지라도 그 제도에 압사 당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

시설의 이해와 시민의 복지욕구

사회복지협의회에서 오래 일하지 않았지만 지역복지사업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협의회에 대한 기대가 사회복지학계나 사회복지생활시설이나 이용시설 등에 따라 서로 다르고 복잡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기대와 요구의 핵심에는 사업의 대상을 어디에 둘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었는데, 즉 사회복지시설을 우선 대상으로 삼고 권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과 시민의 사회복지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지역복지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점이 늘 공존하고 있었다.

사회복지시설을 위한 사업, 사실 각종 직능협회의 약진과 등장으로 사회복지시설의 권익을 대변하거나 정책변화를 요구하는 측면이 약해져 있다. 또한 지역마다 편차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광주의 경우 공동모금회나 자원봉사센터 등장 등 사회복지협의회가 그동안 수행해 왔던 덩치 큰 부분이 세분화되면서 기존의 사업이 상당히 위축되었다. 그리고 사회복지도우미 외 시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사업이 마땅치 않는 현실은 협의회의 입지를 더욱 좁혀 놓았다. 푸드뱅크 운영으로 사회복지시설에 지원하는 타지역과 달리 안타깝게도 광주는 푸드뱅크 사업의 주도권도 갖지 못한 실정이다.

시민을 위한 사업, 이 문제 역시 부끄러운 점이 많다. 아동이나 어르신의 문제, 장애의 문제 등 사회복지의 문제가 갈수록 일반화되고 있다. 또한 찾을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예방에 소홀하여 생겨나는 다양한 복지문제에 대처하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 한해동안 광주시사회복지협의회에서 수행해 왔던 사업은 분기별 실시한 자원봉사자교육과 사회복지시민대학이 고작이었다.

이러한 사정은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 때가 있다. 내 명함을 받은 친구가 내게 "사회복지협의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물을 때, 이해하기 쉽고 간결하게 곧바로 대답할 수가 없다. 사람을 만나 차분하게 이야기를 할라치면 대답이 궁색해 진다. 반세기 역사를 지닌 사회복지협의회에서 근무하면서 왜 나는 대답이 마땅치 않는가?.

길은 애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라는 노신의 말처럼 현재의 내가 느끼는 한계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직의 성장발전을 이루는 사람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신규사업이 늘어나고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점은 많으나 사회복지시설 중심의 사업에서 시민들에게 보다 밀접히 다가서는 사업으로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새 집을 짓는 마음으로

새롭게 시도한 제1회 사랑의 인형나누기 운동은 시민들의 호응과 관심 속에 목표를 두 배 초과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운동은 쓸모를 잃고 집에 방치한 인형을 수선하고 세탁하여 복지시설의 아동이나 저소득가정의 아동, 그리고 병마와 싸우는 아이들에게 전달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하여 2만여 인형을 모집하고 아동들에게 나누었다. 시민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종교기관을 비롯한 광주의 대형 마트의 협조와 언론홍보가 조화를 이룬 것도 있지만 봉사자 600명이 인형을 새 인형과 다름없이 세탁하며 재생하였고, 아동들을 돕는 마음과 자원을 재활용하자는 뜻에 후원금까지 든든하게 얻을 수 있었다. 지역에 있는 자원을 바탕으로 하여 다시금 광주의 어려운 아동들에게 나눈 이번 인형나누기운동은 지역복지의 전형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음을 믿는다.

이 밖에도 지난해 이어 연속사업으로 실시하고 있는 사회복지시민대학이나 우리지역 컴퓨터 관련업체 임직원들이 참가한 정보화봉사단 구성은 전문봉사활동 및 사회복지시설지원의 이중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리고 새로 설립된 광주 남구와 광산구 사회복지협의회는 시민 속으로 파고들어 이용시설이 없어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한 어려운 주민들 속에서 성장할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의 첫걸음에 불과하다. 그동안의 타성과 관성에 길들여졌던 낡은 틀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새롭게 거듭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회복지협의회의 낡은 집을 다시금 리모델링하거나 신축을 위한 진단과 도전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 많은 사회복지인들의 지지와 관심을 기대한다.

김영진/광주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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