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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인상
  • 2019.02.26
  • 470

이탄희 판사의 사직서가 헛되지 않으려면

[2018 의인상 수상자 이야기] ① '사법부 블랙리스트' 업무 거부한 이탄희 판사 

 

참여연대는 오늘부터 2018년 참여연대 의인상 수상자 5인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로 '사법부 블랙리스트' 업무를 거부하고 사직서를 내 양승태 사법농단이 드러나는 계기를 연 이탄희 판사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참여연대는 1994년 창립 때부터 공익제보자들을 보호하는 법제도들을 만들고 여러 가지 지원 활동을 변함없이 펼쳐 왔습니다. 그리고 국가·공공기관의 권력 남용, 예산 낭비, 기업·민간기관 등 조직의 법규 위반, 비윤리적 행위 등을 관계기관에 신고하거나 언론·시민단체 등에 알린 공익제보자와 권력남용을 공개하거나 맞서 민주주의 후퇴를 막는 데 노력한 시민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고자 2010년부터 의인상을 제정해, 매년 12월에 상을 드리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25일부로 민간인 신분이 된 판사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바로 이탄희 판사입니다. 이탄희 판사는 2017년 2월 9일, 2월 20일자로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 겸임 인사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인사명령 나흘 뒤인 2월 13일에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이상한 공지가 올라 옵니다. 법원행정처에서 '법원 전문분야연구회 관련 예규의 중복가입 금지 원칙'을 들며, 법관들에게 중복가입한 전문분야 연구회를 정리하고, 만약 정한 기한 후에도 중복 가입되어 있을 경우 나중에 가입한 연구회는 전산상 탈퇴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힙니다.

법원 안에는 법관들이 각자 자신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픈 분야를 정해 함께 모여 공부하는 전문분야 연구회들이 있습니다. 법관들은 몇 개의 연구회에 중복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법관들의 연구회 중복 가입을 양해해 오던 법원행정처가 갑자기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요?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인 김형연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의 이 공지에 대해 전문분야 연구회 중 제일 나중에 설립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활동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로 의심된다'며 법원 내부망에 공개 항의했습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대법원장에 제왕적 권력이 집중된 사법부의 개혁을 주장하던 법관들의 연구 모임입니다.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을 함부로 휘둘러 왔던 양승태 대법원장과 그를 뒷받침하는 법원행정처의 이른바 '엘리트 판사'들에는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같은 연구회에 모인 개혁적 법관들이 눈엣가시였습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2심의관 겸임 발령을 받은 이탄희 판사는 근무를 앞둔 2월 14일에 이규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판사)을 만났습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2017년 기획팀장을 맡았던 이탄희 판사에게 이규진 상임위원은 2015·2016년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연이어 맡았던 선배 법관이었습니다.

이규진 상임위원은 이탄희 판사에게 "판사들 뒷조사 파일이 있다. 이탄희 판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음 날인 2월 15일, 이규진 상임위원은 이탄희 판사에게 전문분야 연구회 중복 가입 해소조치와 관련하여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인 김형연 부장판사의 이의 제기에 대한 반박 논리를 국제인권법연구회에 전파하라고 지시합니다.

또 이탄희 판사는 전임자로부터 "(법원행정처의) 전문분야 연구회 중복 가입 탈퇴 조치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타겟으로 한 것이고, 이 조치에 대해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주저했지만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밀어붙였고, 이 판사는 연구회 때문에 기조실에 온 것"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알고 보니 믿었던 선배 이규진 상임위원도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일부 회원들의 논의사항과 활동 내용을 상세하게 파악해 법원행정처장 등에게 보고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법원행정처에서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의 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심어 둔 '프락치' 역할을 맡았던 것입니다.
 
판사가 해서는 안 되는 일

 

▲ 2018 참여연대 의인상 수상자 이탄희 판사 지난 2018년 12월 7일(토)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2018 공익제보자의 밤과 제9회 의인상 시상식>에서 정강자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이탄희 판사에게 시상하고 있다. <사진=참여연대>

▲ 2018 참여연대 의인상 수상자 이탄희 판사 지난 2018년 12월 7일(토)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2018 공익제보자의 밤과 제9회 의인상 시상식>에서 정강자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이탄희 판사에게 시상하고 있다. <사진=참여연대> 

 

이탄희 판사는 이규진 상임위원과 전임자의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할 판사가, 그것도 동료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양 전 대법원장의 성향에 따라 나누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는 일을 맡으라니...

판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 이탄희 판사는 2017년 2월 16일, 상관인 인사제1심의관과 기획조정실장에게 전화로 사직의 뜻을 밝히고, 안양지원에 출근해 지원장에도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이탄희 판사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의 전화를 받고,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개입을 중단해달라 요구했습니다. 결국 이탄희 판사에 대한 법원행정처 인사명령은 철회됐습니다. 그 뒤 안양지원으로 돌아갔지만, 이상하게도 이 판사에 대한 인사발령문이 법원 내부망에 올라오지도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탄희 판사 인사 발령의 배경에 관한 내용을 언론이 보도하기 시작합니다. 2017년 3월 7일, 당시 법원행정처장이던 고영한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는 해당 판사에게 연구회 활동과 관련하여 어떠한 지시를 한 적이 없고, 해당 판사에 대한 겸임해제 인사발령은 해당 판사의 의사를 존중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구체적인 불희망 사유는 개인의 인사문제로서 본인이 공개되길 원하지 않으니 언급할 수 없다"는 해명을 내부망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거짓 해명이었습니다.

다음 날인 3월 8일, 이 판사는 "법원행정처가 본인에게 관련 경위가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지 정식으로 확인한 사실이 없으며, 자신이 경험한 부분에 대하여 어떤 방식으로 공개할지 고심하고 있다"는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립니다. 이날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인 김형연 부장판사가 '대법원 차원에서 공정한 조사기구를 만들어 진상을 조사해 달라'는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렸습니다.

결국 3월 9일,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전국 법원장 간담회에서 법관에 대한 인사발령을 둘러싼 문제의 중대성과 심각성에 대하여 인식하고, 공정·명확·신속한 해결을 위하여 중립적 조사기구를 구성하여, 제기된 의혹과 문제점을 신속히 조사하기로 했다"고 법원 내부망에 밝힙니다.

이어 3월 13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인복 전 대법관(사법연수원 석좌교수)에게 진상조사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1차 진상조사위원회는 법원행정처의 컴퓨터와 이메일에 접근조차 못하고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결론을 내려 버립니다. 시민은 물론, 일선 법관들조차 그 결론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직후인 11월 13일, 추가 조사위원회(2차 조사위원회)는 '판사 동향파악 문건'이 실제 존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양승태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의혹 문건들을 줄줄이 확인합니다. 대법원이 2018년 2월 12일 구성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3차 조사위원회)에서는 이 법원행정처의 재판개입 의혹 문건을 다수 조사해 발표했습니다.

이탄희 판사가 '법관 사찰' 업무 지시를 거부하며 던진 사직서는 나비효과로 이어졌습니다. '양승태 사법부 블랙리스트' 문건 의혹으로 번졌고,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양승태 사법농단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주도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30여 개 혐의로 2018년 10월 27일 구속기소됐습니다. 이어 2019년 1월 2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고, 2월 11일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함께 사법부 최고위직인 고영한·박병대 두 전직 대법관도 기소됐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이탄희 판사의 용기가 없었다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저지른 사법농단의 진실은 묻히고 말았겠지요. 이 판사의 용기에 시민들은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는 까닭입니다. 참여연대에서도 지난해 말 '2018년 참여연대 의인상' 수상자 다섯 분 가운데 이탄희 판사를 선정해 시상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탄희 판사는 올해 초 결국 두 번째 사직서를 냈습니다. 법관이자 시민으로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법관 사찰' 업무를 거부하고 사직서를 던질 수밖에 없던 이탄희 판사는 결국 사법부를 떠나게 됐습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기소되는 장면을 지켜보는 사법부의 법관으로서 그 괴로움을 가늠하기 쉽진 않습니다.

사법부를 바라보는 우리 시민들 마음 속에는 더 깊은 시름이 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의 공소장에서 이들의 사법농단에 가담한 것으로 지목된 판사들이 사법부에 버젓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손과 발이 되어 법관의 양심조차 내던진 판사들이 법원에 남아 감히 판결을 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국회가 탄핵해야 할 판사, 반드시 법복을 벗게 해야 할 판사들로 적어도 16명을 꼽고 있습니다. ([카드뉴스] 사법농단 필수탄핵 대상 16인은 누구?).

이들 가운데 3명은 오늘부터 법복을 벗고 민간인 신분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들은 법원의 징계조차 피하게 됐습니다. 이런 판사들로부터 판결을 받게 될 우리 시민들이 과연 사법부를 믿을 수 있을까요? 더는 법봉을 휘둘러선 안 될 법관들을 사법부 밖으로 몰아내는 일은 시민들 손으로 뽑은 입법부, 국회의원들이 마무리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사법부에 남아있어야 할 이탄희 판사가 사직서를 던질 수밖에 없던 아픔이 결코 헛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판사로서의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퇴청하여 귀가하는 길입니다. 그동안 제 공직생활을 지켜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딱 한 문장이 떠오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공직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판사가 되기 위해 몸부림친 11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삶이 이어지는 한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겠지요.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탄희 판사의 페이스북, 2019.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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