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기 후기] 한국사회와 젠더폭력 강연 – 참여연대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참여연대 18기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2016년 7월 4일(월)부터 8월 11일(목)까지 6주 동안 진행하게 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18명의 20대 청년친구들이 함께 참여하는데, 이 6주 동안 우리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친구들은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청년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직접행동을 기획하고 진행함으로써 미래의 청년시민운동가로 커나가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후기는 공석진님께서 작성해주셨습니다 🙂
 

* 청년공익활동가학교란?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그 동안 방중마다 실시되었던 참여연대 인턴프로그램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청년들의 공익활동을 위한 시민교육과 청년문제 해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배움 공동체 학교입니다. 

 

20160721_젠더폭력과한국사회(1)

 

그보다 더 우울할 수 없던 스무살, 책으로 도피하여 연명하던 나는 정희진씨를 알게 되었다. 많은 책을 읽고, 그 이야기의 맥락을 가지고 자아를 재구성하던 나날에, 비켜갈 수 없는 이름으로 그의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시험에 상처받고 공부를 의심하며 두려워하던 내게 일상의 공부와 시험공부를 구분하며 ‘다른 이야기’를 열어 놓아준 글을 기억한다. 이번 강연을 통해 그와 같은 공기를 마시고, 나의 몸으로 직접 그의 말을 느낄 수 있게 되어서 기꺼웠다.

 

정희진씨는 지각을 하셨다. ‘활자 중독증, 고집, 보상’ 그가 지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신 단어는 그 자체가 세계이고 우주인 듯 내재된 이야기들이 넘실거렸다. 낱말의 서사가 준 예감처럼, 강의는 두서없이 다가왔다. 주제를 가지고 뻗어나가는 나무를 듣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불편한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방식은 듣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껍다. 하지만 그의 거침없이 던지는 낱말들로 가지를 만들어 나가는 능력은 차별의 역사에 대항해서 부지런히 언어의 두께를 쌓아 온 정희진이라는 사람을 추측하게 했다.

  

1. 공익 활동가

그는 우리에게 “공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헌신과 희생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개인에게도 성장의 계기가 되는, 시너지효과를 가져올 때 바람직하고 또 오래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가진 ‘이 바닥’에서의 경험치가 있기에 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단언하는 문장 쓰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그 내용을 설명하는 데 있어 대가가 만만치 않았을 근거도 빠뜨리지 않으셨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존재를 결정하고 구속하는 현실의 자기장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희진씨의 말에서 묻어나는 솔직한 태도 때문에 그의 자기장을 알 수 있었다. ‘대화가 가능한 부모, 박사 학위 소지자, LGBT 친구들, 피해여성-정신질환-미군범죄 네트워크, 많은 강연료, 많은 일, 많은 언어, 많은 분노.’

 

2. 젠더

숱한 통념을 좋아하지 않고, 의문을 가지고, 불편함을 느끼고, 생각하는 그녀이기에 현실에 안착하며 살아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현실과 나의 존재 사이에 틈을 만들고, 자아가 숨 쉴 공간을 그렇게 확보하는 것 같았다. ‘여성학’이라는 관점과 ‘젠더’라는 개념 그리고 도구. 원인은 알 수 없으나, 그의 자아는 그렇게 호흡하는 것 같았다. 내가 느낀 ‘여성학’ 관점, ‘여성’이라는 개념은 살면서 끊임없이 차별을 느끼는 ‘약자’의 대명사로, 역사에 존재하는 최초의 ‘약자’이기에 우리에게 많은 사고의 지평을 열어줄 수 있는 개념으로 다가왔다. ‘젠더’라는 개념 그리고 도구는 인위적인 구별짓기가 당연하게 되는 것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그것의 한계와 모순을 지적하고 폭로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2-1. 전략

“약자는 똑똑해야 한다. 자신의 언어뿐만 아니라, 강자의 언어도 체득해야 한다.”

그는 약자가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지혜,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전략으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말했다.

<설득하려 하지 말기 – 그 대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기 – 자신의 언어를 만들기>  

내가 이렇게 비유만큼이나 위험한 것 같은 도식화로 그가 상처에서 배웠던 지혜, 성찰을 통해 얻은 전략, 즉 그의 진심에 오류를 묻히게 될까봐 무섭다.

 

  2-2. 꼭 하고 싶은 말

“여러분은 중요한 사람들.” 사회가 나아지는 데, 더 나빠지지 않는 데에, 일당백의 역할을 할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 그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 말은 우리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중요하게 혹은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의 언어도 의심하는 태도를 보여준 사람이기에 그런 사람이 기댈 곳은 다른 사람일 것 같았다.

 

  2-3 완벽한 B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강의가 끝날 무렵 구태여 질문을 했다. 몸으로 소리의 질감을, 언어의 한계를 느끼는 기회를 좀 더 붙잡아 두고 싶었다. “A를 남성, B를 여성이라고 했을 때, 가령 A가 아닌 이들이 언어를 만들어 나가서 자신의 언어를 가진 B가 되면, 결국 A일 수밖에 없는’ 남성’인 내가 A가 아닌 것을 넘어 B로 마주할 수 있을까? A의 언어로 사고할 수밖에 없는데..”

그녀는 “완벽한 B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각자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

“남성 페미니스트가 가능한가.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죠.”

“좌절하기 보다는 언어의 특성은 한계를 인정하는 거예요.”

뜨문뜨문 기억나는 그의 답은 아직 내게 방향성을 지니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치유의 언어를 발견한 시간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말은 사라졌으나 정신은 남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맴돌게 하는 아주 중요한 말을 전달했다.“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의 말이라고 했다.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선한 자보다 약자가 되어라.” 니체의 말이라고 했다. 강하면서 선한 자는 없다고 했다. 말의 힘이 강한 말이라서 푹 꺼져 있음을 느낀다. 언제 이 말들이 내게 꿈틀거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약자로 방황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나를 누군가가 죽이지 못하도록 하는 게 너무 힘이 들었다. 사회는 나의 언어를 기다려주지 않기에 무서워하고 두려워했다. 그 와중에, 정희진이라는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그가 남긴 말은 방황하는 것을 덜 두려워하게 되고, 약자인 지금을 더 긍정하게 된 그런 시간이었다. ‘치유의 언어를 발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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