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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5대 재벌백서 표지 (1999.2.)

한국재벌에 대한 연구보고서 1호를 자임할 수 있는 『한국 5대 재벌백서』는 발간 그 자체가 이슈였다.

 

 

┃ 배경과 문제의식 ┃

 

1997년 외환위기로 초래된 한국경제의 총체적 위기는 재벌체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재벌문제가 한국경제의 주요 모순임이 확인된 것이다. 재벌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당시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나 참여사회연구소에는 진보개혁적인 경제학자들이 포진해 있었는데, 이들은 오래 전부터 재벌과 대기업에 의존하는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제기해왔었다. 이들은 재벌체제 극복의 필요성이 한참 대두되고 있을 당시 구체적인 재벌개혁의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었다. 재벌개혁의 방법론을 두고 두 단위 사이에는 이견이나 긴장이 없지 않았지만, 연구소와 경제민주화위원회는 공동으로 경제청문회 모니터와 재벌개혁 감시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경우, 1998년 당시 이론분과, 통일분과, 경제분과 등 몇 개의 연구분과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연구소는 이사장 주종환 교수부터, 소장 김대환 교수, 경제분과를 이끄는 김균 교수 등 경제학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고(1999년 후임 소장인 박진도 교수도 경제학자였다), 시민사회운동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이 결합되어 있었다.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휘청거리고 있을 즈음, 연구소는 무엇보다 재벌문제를 공론화하고 재벌개혁의 방향성을 제시하겠다는 활동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경제분과가 그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다. 1998년 경제분과는 두 가지 사업을 기획했는데, 하나는 재벌개혁의 평가와 전망을 담은 연구서를 발간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재벌백서를 발행하는 것이었다.

 

 

┃ 주요 활동 경과 ┃

 

전년도 계획에 따라 1999년 2월 김대환, 김균 교수는 한 권의 책을 출간했다. 『한국재벌개혁론』(김대환, 김균 공저, 나남출판)이 그것이다. 책 발간을 위해 집필자들의 토론과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재벌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 그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재벌개혁의 방향과 소액주주운동을 포함한 시민운동의 현황과 전망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백서를 준비하기 위해서 경제분과 구성원을 중심으로 백서간행팀을 구성하였다. 팀원은 김대환(인하대 교수), 김진방(인하대 교수), 김동운(동의대 교수), 이윤호(순천대 교수), 신금석(회계사), 강병구(인하대 강사), 조영삼(산업연구원 수석연구원), 정중호(고려대 박사과정), 권혁진(고려대 박사과정), 김균(고려대 교수) 등 10명이었다. 내부토론을 통해 작업방침도 정리했다. 한국의 재벌문제는 사실상 5대 재벌의 문제라는 판단에서 분석대상을 5대 재벌(현대, 삼성, SK, LG, 대우)에 국한했다. 그리고 연구인원이나 기간의 제약으로 분석기간을 1995~1997년 3개년에 한정했다. 기업의 자료공개나 공정위 자료가 98년 후반에나 입수 가능한데 반해 백서 작업시간은 상당히 필요했기 때문에 불가피했다. 또한 재벌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분석보다는 자료를 최대한 수집하여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자료로 1차 가공하고, 이 자료를 이용한 기초적 분석을 제공하는 것을 백서작업의 실질적 목표로 잡았다. 표와 그림, 숫자 스스로 드러내는 객관성보다 더 강력한 재벌비판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서작업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매번 재검토되거나 재조정되었고 그러다가 지연되기를 반복했다. 작업에서 가장 큰 장애는 자료와 정보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재벌관련 자료들은 기본적으로 부실한데다가, 그나마 있는 자료들도 정부부처에서 제공하기를 거부하곤 했다. 심지어 타기관에서 이미 공개한 자료조차 제공하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예컨대 재벌정책에 관한 한 주무부처 중 하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보유하고 있는 재벌기업 정보의 일부만을 공개하고 나머지는 철저하게 비공개로 일관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을 고려할 때, 더욱이 재벌이 개혁의 첫 번째 대상이 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공정위가 재벌관련 정보를 기업경쟁력 보호 차원에서 공개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었다. 지나친 정보 비공개로 고생했던 김균 교수는 백서 머리글에 “공정위를 비롯한 정부기관들의 정보독점이 하루 빨리 지양되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자료는 한국신용평가(주)의 기업재무관련 기초자료를 제공받았고,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의 당시 이승희 간사로부터 삼성관련 자료를, 당시 의정감시센터로부터는 국정감사 자료를 제공받았다. 자료조사에는 김균 교수가 재직 중인 고려대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이 대거 투입되었다. 재벌총수 가계나 혼맥, 채무보증이나 내부거래 흐름, 언론기사 등의 자료들이 수집되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작업의 결과물은 1999년 8월 『한국 5대 재벌백서(나남)』로 발간되었다. 백서가 발간되었던 1999년 여름은 때마침 ‘대우사태’로 한국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던 때였다.

 

백서는 5대 재벌의 영업현황, 계열사 현황, 진출업종, 기업규모 등을 데이터로 담았고, 상장사와 비상장사들의 현황을 보여주었다. 산업별로 이들 재벌이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독과점 실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각 재벌들의 소유 구조도 들여다보았는데, 특히 총수와 특수관계인의 소유 현황, 계열회사 출자, 지주회사의 소유구조, 주요 계열회사의 소유구조, 그리고 각 재벌들의 지배, 경영구조를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전체 계열회사 주식 중에 재벌총수나 친인척이 소유한 주식의 비율은 높지 않았다. 재벌의 소유는 소수의 계열회사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 계열회사들이 지주회사 역할을 함으로써 전체 계열회사에 대한 재벌의 절대적 지배가 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백서는 정부의 대기업 중심 수출주도형 산업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저금리정책 등으로 기업의 위기가 국가위기로 직결되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대기업들로 하여금 더 높은 부채비율을 추구하게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이런 경제구조 하에서 재벌들은 기업집단을 형성함으로써 계열사간 상호출자와 지급보증을 활용하여 부족한 금융자원을 동원해온 것이다. 그 결과 재벌은 비재벌 기업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부채비율의 자본구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백서는 이들 재벌의 재무적 안전성이 낮고, 자금 내부거래가 더욱 빈번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5대 재벌들의 은행대출금 점유 비중도 분석기간 중에 다시 높아지는 등 자본시장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곧 높아지고 있음도 보여주었다.

 

『한국 5대 재벌백서』의 발간은 참여연대 창립 5주년 기념 심포지엄으로 기획되기도 했다. 8월 27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한국 5대재벌 개혁,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는 백서팀에서 활동하던 강병구, 김진방, 이윤호 교수가 각각 재벌정책 및 법규, 5대 재벌의 소유구조, 5대 재벌의 금융소유 및 자금 조달 실태를 발표하기도 했다. 2부 재벌개혁 현안과 정책방향에 대한 토론은 당시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고려대 장하성 교수 사회로 김상조 당시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 단장 등이 함께 토론에 나서기도 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재벌문제 연구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분석대상도 30대 재벌로 확대되었다. 2002년 8월부터 당시 연구소 소장이었던 김균 교수와 인하대 김진방 교수를 주축으로 참여사회연구소와 인하대 산업경제연구소는 공동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3개년 재벌연구 프로젝트 〈한국의 재벌: 기초자료 수집, 분석 및 평가〉를 진행했던 것이다. 대학 교수들과 11명의 박사들을 포함 40여 명이 참여했던 이 연구 프로젝트는 30대 재벌의 소유·재무·사업구조는 물론 노사관계, 가계, 혼맥, 경영진 등 재벌에 관한 모든 것을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각종 인물DB와 문서자료는 물론 1991년 이후 일간지에 나온 인물 동정란을 추적하고, 여성지까지 뒤져가며 자료수집이 이뤄졌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유태현 박사(당시 참여사회연구소 연구실장)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확인한 재벌가 혼인사례만 700여 쌍에 이르는데, 한 헤어아티스트가 혼사 때 머리를 해 준 재벌가의 신랑, 신부 이름을 인터넷사이트에 올려놓은 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던 2004년 1월에는 MBC ‘PD수첩’을 통해 재계에서 가장 두터운 혼맥을 구축하고 있는 LG그룹과 조선일보, 노태우 전대통령 등의 혼맥도 3개를 우선 공개하기도 했다. 직후 2004년 1월 20일 참여사회연구소는 ‘30대 재벌 혼맥도’를 발표했는데, 이는 ‘52개 재벌가의 친인척과 3천여 명의 정관계 지도층’을 대상으로 조사한 혼맥관계 중에서 혼인관계가 뚜렷한 2백 명을 연결한 것이었다. 특히 삼성, LG, 현대, 롯데 등 4대 재벌을 중심으로 언론사 조선, 중앙, 동아, 그리고 정관계 인사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음이 확인되었다. 재계와 정.관계, 언론계 등 한국사회 지도층이 혼인관계를 통해 기득권을 대물림하고 지배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 중 LG는 가장 두터운 혼맥을 구축하고 있었고, 삼성은 조중동 언론 3사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언론사 중 조선일보가 가장 여러 재벌기업과 혼맥을 유지하고 있음도 드러났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2005년 『한국의 재벌(전5권, 나남출판)』로 빛을 보게 되었다.

 

 

┃ 성과와 의미 ┃

 

경제위기 이후 재벌개혁 논의가 무성했다. 재벌 중심의 경제정책의 모순과 부당성이 제기되었고, 재벌개혁의 방향과 방법이 집중 논의되었다. 재벌의 문어발식 영업구조, 과다한 부채로 인한 파산 위험뿐만 아니라 상호지급보증으로 연쇄부도의 위험을 안고 있는 재무구조, 그리고 총수 등 경영진이 전횡을 해도 이들을 제어할 수 없는 지배구조 등을 해소하는 것이 재벌개혁의 핵심과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개방된 시장경제에서 기업이 경쟁력을 갖고, 중소, 영세 상공업자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으며, 재벌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의 위험성을 완화시키는 길이었다.

 

이를 위해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가 소액주주운동을 채택했다면, 참여사회연구소는 자료와 통계에 근거한 과학적 연구, 분석에 집중했고, 궁극적으로 재벌의 문제를 실증적으로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참여사회연구소의 활동은 과학적 재벌연구의 토대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재벌개혁의 근거를 제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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