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비평]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는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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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시민들의 출퇴근 지하철 탑승 시위가 계속되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서 불만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장애인 이동권과 비장애인 이동권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1심 법원은 전장연 대표에게 미신고 집회 및 업무방해죄로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자유와 권리를 남용하여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는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정당화될 수 없고, 지하철 탑승 시위를 지속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장애인들의 기본권인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의 책임은 얼마나 될까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고 거리로 내모는 판결에 대해 윤현식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이 비평했습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 227번째 이야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업무방해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단독 양환승 부장판사, 2021고단5783 [판결문 보기]

판결비평 필자 윤현식

윤현식 /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2021년 4월 초의 어느 날 오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이라 한다)의 회원들은 사무실 인근의 한 노선버스 정류장에서 집회를 진행했다. 이들은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문구를 적은 피켓을 목에 걸고 집회하던 중 마침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 앞으로 나가 구호를 외치면서 버스의 운행을 막았다. 이날 전장연 회원들이 집회를 벌인 시간은 총 20분 남짓이며, 이 중 노선버스를 막아선 시간은 15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집회는 사전에 신고되지 않은 집회였다.

짧고 간결한 집회였으나 현행법을 어긴 대가는 준엄했다. 지난 10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 사건 집회의 주최자에게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했다. 죄목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이라 한다)에 따른 신고 없이 집회를 개최하였다는 것과, ‘위력’으로 운행 중인 버스를 막고 피해자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집회가 각 죄를 구성하지 않거나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피고의 주장을 전부 기각했다.

그런데 법원은 판결에서 미신고 집회를 처벌하는 규정이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을 ‘명백하게’ 초래하는 집회에 한정하여 적용된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대중교통수단인 버스의 운행에 대하여 피고인이 한 행위가 소극적인 실력행사를 벗어난 것으로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인 위력에 해당함은 지극히 분명하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의 이러한 판단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의 원칙을 충분히 견지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집회의 자유, 소수 의견 존중을 위한 민주공화국의 가치
헌법이 왜 집회시위를 보장하고 있는지를 보자. 절박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알릴 최후의 수단으로 집회를 선택한다. 바로 여기서 집회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집회의 가장 중요한 효능은 잠복해 있던 사회적 갈등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옥외집회는 통상의 제도적 절차를 통해 해소할 수 없는 사안을 대중에게 호소하기 위해 벌어진다. 법이고 돈이고 간에, 기댈 곳 하나 없는 사회적 소수자나 기득권에서 먼 사람들은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거리로 나온다. 이들이 거리로 나옴으로써 비로소 이들의 사정이 세상에 알려진다. 장애인들이 온몸에 쇠사슬을 묶은 채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었을 때에야 겨우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었다.

이들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이념에 배치된다. 민주주의에서 결정은 다수가 공동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만, 이 과정에서 소수의견을 배격한다면 그것은 다수의 독재로 귀결된다. 공동체 시민의 평화와 평등을 우선의 책무로 삼는 공화주의적 삶에서 소수라는 이유로 동료시민의 안위가 무시된다면 그것은 공화국 전반의 퇴행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헌법은 민주공화제의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다른 일반적 행동의 자유보다 더 우위에 있는 기본권으로 규정한다. 현행 헌정질서는 관용을 바탕으로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다원적인 열린 사회에 대한 헌법적 결단(헌재 2003.10.30. 2000헌바67)으로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 기본권은 특히 의사를 표현하는 통로가 봉쇄되거나 제한된 소수집단에게 의사표현의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대의제의 한계를 보완한다(헌재 2009.5.28. 2007헌바22). 즉 집회는 사회적 의제의 부각, 이에 관한 비판과 소통, 의사의 표시가 이루어지는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식으로 작동한다. 이로써 소수자의 이해가 사회적으로 수용되며, 결국 대의제의 한계를 보정하여 체제의 안정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재용, 윤석열이 아닌, 장애인 시민들의 외침의 의미
그런데 거리의 집회는 그 거리를 공유하고 있는 다른 이들의 통행권 등 기본권을 불가피하게 침해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주장하면서 버스를 세우거나 지하철의 운행을 멈추게 되면 대중교통 이용자들의 불편이 발생한다. 최근 전장연 등이 중심적으로 벌이고 있는 출퇴근 시간 전철타기 운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과정에서 대중교통 승객들은 불만을 표시한다. 대표적인 불만은 이렇다.
“장애인들의 요구는 이해한다. 그러나 굳이 출퇴근 시간에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면서까지 해야 하는가?”
만일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의 출퇴근 시간을 피해 전철 이용 승객이 별로 없는 시간대에 승하차 운동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놀랍겠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집회의 가장 큰 효능인 ‘잠재된 갈등의 확인 기능’이 발휘되지 않는 것이다. 갈등을 체감하고 공유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갈등은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다. 조용한 전철에서 누구에게도 물의를 일으키지 말고 집회를 하라는 건 골방에서 혼자 소리치라는 것에 불과하다.

혼자 소리치는 것도 뉴스가 될 정도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굳이 거리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침묵마저도 뉴스가 된다. 그래서 이재용 삼성 회장과 윤석열 대통령은 굳이 집회를 조직하여 거리로 나올 이유가 없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각각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큰 소리를 내는 건 장애인들의 현실을 타개하는 데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언론은 여론이 들썩거리지 않는 일에 카메라나 키보드를 제공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불편함이 야기된다는 것은 그가 원치 않는 힘이 작동함을 의미한다. 그 힘을 법적인 용어로 ‘위력’이라 한다. 옥외집회는 그 자체가 위력의 행사이다. ‘시위(示威)’라는 말이 곧 위력 또는 위세를 보여준다는 의미이지 않은가? 집회는 다수의 인원이 모여 다소간 일상적이지 않은 방법, 즉 확성기를 사용한다거나 피케팅을 한다거나 구호를 제창하며 팔뚝질을 하는 등의 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행위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불편을 넘어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집회의 위력이라는 것은 일종의 레토릭이며, 따라서 형사처벌이 동원되는 실체적 위력과는 세심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다른 기본권 주체의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일부 침해하더라도 이를 즉각적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위력의 행사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로 헌법이 명문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규정을 둔 취지이다. 결국 집회시위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위력의 효과는 다른 기본권 주체들이 느끼는 불편함의 다른 양상일 뿐이므로, 이를 이유로 바로 처벌이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집회시위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매우 제한적이며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공공의 안녕질서가 위험하다는 것이 직접적이고 명백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제 그 위험이 현실화되었거나 현실화될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야 비로소 공권력이 개입할 수 있다. 이런 기준이 신고된 집회에만 적용되어야 하는가? 오히려 미신고 집회일수록 이 기준이 더 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기본권과 기본권의 충돌, 그리고 국가의 책무
집회의 사전신고제는 크게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신고를 통해 공권력이 이를 인지하여 집회의 순조로운 개최를 보조함으로써 집회 주체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전에 대응을 준비하여 집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기본권의 충돌과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위협을 방지한다는 것이다(헌재 2009.5.28. 2007헌바22). 반면 미신고집회의 경우 공권력은 이러한 사전준비를 할 수 없다. 이때 신고되지 않은 집회라는 이유로 해산을 시키는 것은 집회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공권력의 입장에서는 사전 인지되지 않은 집회를 관리하고 기본권 보장의 취지를 충분히 감안하여 미신고집회에 대응하여야 하며, 결국 더 엄중하고 세밀한 기준을 적용해야만 한다.

대법원은 신고범위를 일탈한 집회에 대한 경찰의 해산조치에 대한 판결에서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하여 직접적인 위험이 초래된 경우에 비로소 … 취할 수 있되, 그 조치는 법령에 의하여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할 것”이라고 한 바 있다(대법원2001.10.9. 98다20929). 이는 미신고 집회에 대해서도 반드시 적용해야 할 원칙이다. 집회시위를 일반적인 민 · 형사법이 아니라 집시법을 따로 제정하여 규율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이상 검토만으로 보더라도, 이 사건에서 법원이 미신고집회를 처벌하는 규정에 대해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을 ‘명백하게’ 초래하는 집회에 한정하여 적용된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은 헌법의 원칙 및 집시법의 입법취지를 오해한 것이라 하겠다. 법원의 판단은 헌법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한 취지, 실정법인 집시법이 요구하는 엄정한 공권력 개입의 기준, 업무방해죄의 구성요소인 위력의 해석 등에서 법리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법원이 별다른 납득할만한 이유를 설시하지 않은 채 이 사건 집회를 “헌법에서 보장한 자유와 권리를 남용하여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로 규정하면서 “어떠한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질타하는 것이 충돌되는 기본권 간의 이익형량을 충분히 감안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헌법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배경에는 집회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유발된 일반적 행동의 자유 침해 등 일부 법익의 침해는 국가 및 제3자가 일정하게 수인해야 한다는 원칙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법원은 판결에서 이러한 원리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법원은 이미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순차적으로 저상버스 도입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장애인들로 하여금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취지다. 그러나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는가? 마침 법원은 판결문에 “사건 당시 바로 뒤따라오던 160번 버스도 저상버스였다”고 친절하게 부기해주고 있다. 160번 버스의 배차간격은 약 8분이다. 법원의 이야기는 결국 고작 8분만 더 기다렸으면 될 일을 가지고 그 난리를 쳤냐는 취지가 된다. 그렇게 급하면 어제 가지 그랬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다.

법원의 설명대로라면 서울시만 하더라도 2030년이 되어야 전면적인 저상버스 운행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그 이전에 해결될 수는 없는가? 저상버스 문제는 시내버스에 한정된 문제인가?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는 언제 저상버스로 바뀌는가? 서울시 외의 다른 도시에 저상버스는 언제 완전 도입되는가? 2030년에 장애인들은 서울시에서 저상버스를 타고 경기도로 가서 그곳의 저상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이러한 절박함을 배제한 채, 6분 후에 도착하는 160번 버스도 저상버스였다고 부연하는 것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희화화할 뿐이다.

물론 이러한 판결이 전적으로 판사 개인의 독단적 판단에서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미신고집회에 대한 제재와 처벌이 합헌이며 적법하다는 판례가 이미 존재한다. 예를 들어 “미신고집회의 경우 행정관청으로서는 해당 집회가 공공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기 어렵고, …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험을 초래할 개연성이 높으므로, 이에 대하여 행정제재가 아닌 형사처벌을 통하여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는 입법자의 결단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례(2009.5.28. 2007헌바22)와 같은 판례가 존재한다. 한국의 사법제도가 판례법 체계가 아닐지라도 선례의 구속력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법이 이런 판결을 유도하고 있다. 집시법의 규정에 따르면 집회를 열고자 할 때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하며, 이를 위반하여 집회 및 시위를 주최하게 되면 주최자를 처벌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처벌의 이유는 오로지 미신고된 집회를 주최했다는 것일 뿐이다. 그 집회의 성격이나 양상, 집회로 인해 발생한 구체적인 위협이나 피해의 정도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고, 단지 집회가 열렸다는 것만으로 처벌이 가능한 것이다.

이동은 인간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기 지위를 보장받고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최우선의 행위양식이다. 누구든 원하는 장소로, 필요할 때, 적절한 수단을 통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을 때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비로소 충족되기 시작한다.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역시 이동을 할 수 있어야 생계를 영위할 수 있고, 이동이 가능해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관계의 형성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동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비장애인과는 달리, 장애인은 이동의 환경과 수단에 매우 심각한 제한을 감내해야 한다. 바로 이 제한이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남게 만드는 요인이다.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이동권이 박탈되는 순간부터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시작된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위치에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역할할 수 있게 된다.

헌법의 사회국가원리에 따르면 국가는 적극적인 조건의 형성과 보장을 통해 국민이 실질적인 기본권의 향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의무를 진다. 장애를 해소하여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도 이러한 사회국가원리에 의해 국가가 져야 할 책무가 된다.

이러한 책무는 이미 국제적인 합의를 통해 그 기준이 확립되어 있다. 1993년 비엔나 선언 및 행동계획(Vienna Declaration and Program of Action)은 각국 정부로 하여금 장애인들의 사회참여를 배제하거나 제약하는 사회적 장애물을 전부 제거하여 평등한 기회를 보장할 것과 이를 위해 장애인의 접근을 보장하는 입법을 체계화하거나 채택할 것을 촉구하였다.

한편 2006년 채택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은 특히 전문에서 장애인이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접근성(accessibility)’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언급하면서, 제9조를 통해 당사국들이 비장애인들에 의해 제공되는 공개된 또는 공공의 시설과 서비스에 장애인들이 전면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각국이 이 원칙에 따라 장애인 관련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다. 예컨대 유럽은 2003년을 유럽 장애인의 해로 지정하면서 이때 ‘유럽 장애인 행동계획 2003-2010(EU Disability Action Plan : DAP 2003-2010)’을 수립하여 장애인의 동등 고용 기회보장, 장애인의 사회적 통합, 장애인의 접근성 보장을 2010년까지 계획으로 집행하였고, 이를 이어 ‘2010-2020 유럽 장애인 전략 – 장벽 없는 유럽을 위한 새로운 합의(European Disability Strategy 2010-2020)’을 수립하여 시행한 바가 있다.

우리나라도 꾸준히 법제를 정비하고는 있다. 이동권과 관련해서도 ‘장애인 · 노인 ·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등 관련 법률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교통약자법 제3조는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여 장애인의 이동권을 명문으로 보장하고 있다.

장애인 시민들을 거리로 내모는 판결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처럼 관련 법률이 있고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정책이 준비되어 시행되고 있지만, 장애인들은 그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장애인들은 “원하는 장소로, 필요할 때, 적절한 수단을 통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할 이동권을 적절하게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상버스만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들은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 철도나 항공을 이용할 때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장애인 콜택시는 대기시간이며 비용이 만만치 않다. 반면 정부의 노력은 매우 완만하게 진척되고 있으며, 재정 부족이나 시기상조 또는 대중적 이해 부족 등등을 부작위에 대한 알리바이로 동원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거리로 나온다. 이에 대해 법원은 미신고집회 개최와 업무방해 등 죄로 처벌한다. 처벌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기에 집회를 해야 할 이유는 그대로 남게 되고, 장애인들은 다시 거리를 향해 몸을 돌린다. 신고 여부를 가리지 않고 집회는 이어지며,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처벌은 반복된다. 악순환이다. 백 보 양보해서, 이 사건 판결의 주문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지라도, 당사자와 사회구성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좀 더 엄정한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었는지 모르겠다. 장애인을 다시 거리로 나가게 만드는 판결이 과연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인지 자꾸만 되묻게 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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