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7 2017-02-01   1179

[기획주제4] 청년 일자리 정책: 청년에게 일자리를, 청년에게 노동의 정의를

청년에게 일자리를, 청년에게 노동의 정의를

 

 

김민수 | 청년유니온 위원장

 

 

청년, 실업

 

 

한국에서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의 핵심은 실업으로 귀결된다. 최근 5년 사이 청년실업 통계는 IMF 이후로 매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는 당장의 심각성도 있지만 과거의 시점과 비교했을 때 추세적으로 나빠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청년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제기 된 것이 20년 정도가 되었으니, 이제는 수 없이 쏟아지는 통계를 봐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실업이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 노동 의사가 있는 주체에게 실업이란 자기실현을 위한 기회의 상실이자, 공동체라는 사회적 무대로부터의 축출을 의미한다. 또한 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실업기간이 길어지면서 ‘취업 준비의 끝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미지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개개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실업 기간에는 친구나 가족 등과의 사회적 관계가 상당부분 단절되는데, 이는 취업이 된 이후에도 사내 조직 내에서 원만한 공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주요 선진국 : 청년실업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이상의 근거들을 종합하면 청년기의 장기실업은 평생에 걸친 소득확보-경제활동 능력에 큰 위협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EU와 OECD 등 주요한 국제기구들은 청년층의 장기실업을 현대사회에서 가장 긴급하고 엄중하게 대응해야 할 아젠다 중 하나로 설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유럽과 오세아니아의 몇몇 국가들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 실업의 상태가 3에서 4개월이 지속되기 전에 국가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틀 안으로 청년들을 유입시키는 것을 정책의 원칙적 목표로 제시하기도 한다.

 

 

구조적 한계로 인해 노동의사가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모든 청년들이 실업에 좌절하고 직업적 미래를 포기하지 않도록, 자신의 진로적성에 기초한 직업훈련과 구직기간의 필요소득을 국가정책으로 보장한다는 접근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2008년 세계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이와 같은 정책기조를 보다 강화해나가고 있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면 나는 이와 같은 노력을 ‘글로벌 저성장 시대에서의 완전고용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를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해보려 한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기술의 발전과 산업구조의 변화는 고용 없는 성장 체제를 만들고 있다. 또한 국가 간 경쟁으로 인해 기업조직 내부의 유동성은 높아지고, 상시지속적인 업무로의 안정적인 고용의 규모를 확대하기 보다는 다양해지는 직무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임시‧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경향성이 드러난다. 이로 인해 개인은 노동시장으로의 진입과 이탈, 다시 말해 취업과 실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제환경 속에서 ‘일하고자 하는 의지와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원하는 때 취업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완전고용은 불가능한 과제로 여겨진다.

 

 

그러나 청년실업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접근 방식을 달리하고, 정부의 역할을 새롭게 설정하면 완전고용의 이상(理想)을 현대적 의미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복지정책이라는 수단을 노동시장의 안과 밖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면, 반복되는 실업이 개인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최소화 된다. 정책이 발전하는 정도에 따라 실업이 재충전, 숙련의 심화, 새로운 직무로의 이행과 같은 긍정적 개념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나는 이와 같은 정책구조 가리켜 ‘고용을 통한 복지’, ‘고용을 위한 복지’라는 말을 즐겨서 쓰는 편이다.

 

 

얼핏 간단해 보이는 논리이지만, 이는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발전 되는 과정에서부터 뿌리박혀온 인식체계를 뒤흔드는 일이다. 과거의 통념에 따르면 고용은 기업이 알아서 판단해서 만드는 것이고, 기업이 창출한 일자리에 진입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었다. 다시 말해 기업은 내키는 만큼 일자리를 만들고, 취업을 원하면서 다수와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개인들은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을 쌓는 것이다.

 

 

정부는 고용을 둘러싼 기업과 개인의 상호작용에 관여하지 않으면서, 근로능력이 없거나 긴급한 위기상태에 빠진 이들에게 잔여적 복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역할을 마쳤다. 특히, 일반적으로 근로능력이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청년은 정부의 실업대책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업과 정부, 개인의 역할이 철저하게 분리 된 경제구조에 균열과 공백이 발생하게 되고 그 중심에서 ‘실업으로부터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져 왔던’ 청년층의 다수가 취업을 위한 교육과 훈련을 포기하고 NEET(니트족)로 전락하는 사태가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다. 많은 국가들이 고용과 실업에 대한 통념을 뒤엎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핵심 대상으로 청년을 지목하게 된 데에는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이 존재한다.

 

 

실업을 반복하더라도 해당하는 기간에 충분한 안정과 미래의 가능성이 보장된다면, 그리고 이 상황이 특별한 개인의 행운이 아니라 정부가 보장하는 모든 시민의 권리라면, 이것은 현대적 의미의 완전고용(完全雇用) 상태이다. 우리는 고용과 복지를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세상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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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유니온

 

 

박근혜 정부 5년 : 어디에서 무엇을 했나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10년의 시간을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함께 보낸 것은 한국의 청년들에게 큰 불행이다. 사실 대한민국은 청년실업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한다. 공식 통계상 실업률은 10% 수준으로 최근에 극심한 위기를 경험한 남유럽 국가들에 비해 낮지만, 취업준비생의 다수가 비경제활동인구로 인식 되는 통계상 오류가 있어서 이를 보정하면 실질 실업률은 30% 대에 육박한다. 선도적인 실업대책을 추진해도 모자랄 시간에 허송세월을 해댔으니 원통하고 안타깝다.

 

 

솔직히 말해서 고용복지정책의 관점으로 박근혜 정부의 5년을 평가한다는 것은 지면의 낭비이다. 현 정부 들어서 의미 있게 규모화 한 정책이 뭐라도 있어야 평가를 할 텐데, 솔직히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부분적으로 좋은 정책들이 없지 않았겠으나, 총적으로 수행한 나쁜 짓들이 훨씬 많아서 긍정적 효과는 크게 반감 된다. 그럼에도 꾹 참고,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몇 가지 평가초점을 잡아볼까 한다.

 

핵심은 고용보험 제도이다. 한국의 경우 1993년에 고용보험법이 제정되고, 1995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법령에 따르면 고용보험의 목적은 실업예방, 고용 촉진, 근로자의 직업능력 개발 및 향상, 국가의 직업지도와 직업소개 기능을 강화하고, 근로자가 실직한 경우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지급하여 구직 활동을 촉진하는 데에 있다. 앞서서 주요 선진국들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라 소개했던 기능들이 현존하는 고용보험 체계에 거의 다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고용보험은 한국의 고용복지 정책의 로두스(Rhodus)이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연구에 따르면 실업 상태에 빠진 전체 임금노동자 중 실업급여를 받은 비율은 2012년 기준 16.7%에 불과하다. 실업 상태를 경험해 본 10명이 둘러앉아 있는데, 실업급여를 받아 본 사람이 한두 명에 불과한 오늘날 현실을 두고 “고용보험이 사각지대가 넓다”는 진단을 내리는 것은 무언가 부자연스럽다. 사각지대는 다수의 보편적 권리가 존재하고, 특수한 일부 예외가 있을 때 쓰는 말이다. 지금은 보편과 특수가 뒤집어져 있다. 이를 바로잡는 것이 고용보험 개혁의 목표이자 방향성이 되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사업장에서 고용보험에 가입한 이력이 없더라도 사후적으로 수급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피보험 자격확인 청구제도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지원해야 한다. 또한 고용보험 가입 이력이 충분하더라도 자발적 이직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로 인해 실업급여 수급에 제한이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용보험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수급자격을 인정하는 정당한 이직 사유들이 명시돼 있지만, 까다로운 입증 절차로 인해 사문화돼 있는 경우가 많다. 시행규칙을 개정하고 일선 현장에 지침을 내려 직장내에서 괴롭힘, 임금체불, 과도한 연장근로 등 부당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퇴사할 경우 실업급여 수급권을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입증 절차도 간소화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20년의 역사를 가진 고용보험 제도를 대다수 비정규·불안정 노동자의 삶을 포괄할 수 있도록 개혁하고, 사각지대는 실업부조를 도입해 해소해야 한다. 10명이 둘러앉으면 여덟아홉 명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공기처럼 일상이 된 실업의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것. 그것이 현대사회에서 국가가 해야 할 최우선 역할이다.

 

 

그러나 지난 5년, 고용보험 제도는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갔다. 내가 기억하기로 고용보험 제도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나온 뉴스는 ‘부정수급자 적발’ 관련 내용이었다. 국내 경제여건의 악화로 실업 인구가 늘어나고, 구직급여 신청자가 늘어나서 고용보험 기금이 부족해지면서 부정 수급에 대한 감독을 철저히 한다는 것이 정부 보도자료의 주된 스토리텔링이었다. 이 시기에 보험요율을 인상하거나 정부예산 지원을 늘리는 방법을 써서라도 구직급여를 확대 했어야 하는데, 정 반대의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개악을 추진하던 시기, 구직급여 수급자의 수급 기간을 1개월 씩 늘리는 개혁안을 제시했던 바 있다. 하지만 졸속을 넘어 날림으로 추진되던 노사정합의의 보완책이라고 볼 수 없는, 길가에 버려진 빵 부스러기 수준이었다. 수급 대상자의 확대라는 핵심 정책목표는 아예 상정하지도 않았다. 그마저도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노동4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에서 방황하다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박근혜 정부는 5년 내내 이론과 합리, 논리가 작동되지 않았다. ‘아’하면 ‘어’해야 비판과 토론이 작동되는데, 이게 되지 않으니 총적으로 말문이 막히는 현실이었다. 노동개악 추진으로 양대노총과 정부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던 시기, 박근혜 대통령은 뜬금없이 청년희망펀드의 구상을 내어 놓았다.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 사회지도층이 돈을 모아서 재단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재단이 무슨 일을 하니까 보니, 이미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에서 추진하고 있는데 그나마도 잘 못하고 있던 정책들이었다. 상담과 멘토링, 일자리 정보 제공과 같은 사업들. 이걸 예산이 아닌 앵벌이로 풀겠다니, 나는 크게 놀랐다.

 

 

17년 1월 기준으로 청년희망펀드의 누적 모금액은 1,500억 원이다. 하지만 정작 집행은 지지부진하다. 2015년 설립 첫해 9억 원을 지출했고 지난해 90억 원을 지출해 누적 기준으로 쓴 돈은 99억 원에 불과하다. 재단 직접 모금액의 9%, 공익신탁 포함 전체 모금액의 6%가 사용된 셈이다. 재단이 매년 사업계획을 통해 정하는 예산안 집행률도 5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청년희망재단은 지난해 예산 199억 원을 계획했으나 실제로 집행된 금액은 약 90억 원(45%)에 불과했다. 졸작이다.

 

 

보건복지부가 서울시의 청년수당, 성남시의 청년배당과 갈등했던 시기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특히 청년수당의 경우 직권취소까지 당했다. 정책 설계가 완벽하다고 볼 순 없으나 시범 사업이고 예산의 규모도 크지 않았다. 고용보험과 취업성공패키지와 같은 현행 고용복지 제도의 허술함을 생각할 때,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는 격려가 아닌 철퇴를 선사했다. 청년수당 논쟁이 이어지던 시기에 정부 여당의 주요 인사들은 이 정책을 두고 마약이나 아편 따위의 비유를 들며 비열한 공격을 자행했다. 두고두고 기억하겠다.

 

 

 

 

마치며 : 청년에게 일자리를, 청년에게 노동의 정의를

 

 

내가 2016년에 접한 통계 중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은 공무원시험에 관한 자료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구직자가 25만 명에 육박한다. 지난 5년간 꾸준히 늘어 왔다. 2015년 기준 4년제 일반대 졸업자(32만 명)와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다. 임금과 고용안정성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 때문에 청년들이 공무원시험에 몰린다는 진단은 전형적인 오해이자 왜곡이다. 공무원시험 준비에 관련된 자료를 살펴보면 공정한 취업기회에 대한 청년들의 간절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인맥이 없어도, 부모의 경제력과 압도적인 스펙이 없어도, 성실한 준비와 노력을 통해 공정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 기회가 공무원시험 외에는 거의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작년 연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포함한 직원들에게 90억 원 대의 임금을 체불한 것으로 밝혀진 이랜드 사태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사실 한국의 임금체불은 너무도 만연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경제규모는 일본이 한국의 세배가 넘지만, 임금체불 규모는 한국이 일본의 10배 가까이 된다. (2014년 기준 한국 1조 3,194억 원, 일본 131억 3천 엔(=약 1,335억 원))

 

 

눈길이 지나치는 모든 공간에서 슬픔과 원통함이 가득 흐르는 한국 사회에서 2017년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 본다. 87년 민주화운동과 노동자대투쟁으로부터 30년, 97년 IMF 외환위기로부터 20년, 그리고 향후 5년 간 행정부를 이끌어 갈 대표를 선출하는 해이기도 하다.

 

 

2017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일자리에 취업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의 노동에 정의가 깃들기를 바란다. 질투와 분노, 멸시의 감각을 넘어 서로에게 건넸던 촛불의 온기가 올해에도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의 소망은 우주의 기운이 아니라, 약자의 연대와 이에 대한 정치의 반응을 통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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