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법령·원칙 모두 저버린 행정법원 손태승 판결 금감원은 당연히 항소해야

지난 8월 27일 서울행정법원 제11부(강우찬, 위수현, 김송, 이하 “재판부”)는 DLF 사태와 관련하여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사 지배구조법”) 」제24조를 위반하여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문책경고를 받은 손태승 전 우리은행장 등이 제기한 「문책경고 등 취소청구소송(20구합57615, 이하 “이번 판결”)」에서 금융회사 및 대표이사 등은 금융사 지배구조법이 규정한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는 있으나, ‘준수’할 의무는 없다는 궤변을 앞세워 영업성과 확대에만 눈이 멀어 금융소비자 보호 의무를 저버린 손태승 전 행장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번 판결은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현행 법령의 전체적인 취지를 부당하게 축소하여 금융회사의 준법감시 의무를 사실상 형해화한 것일 뿐만 아니라, 내부통제기준을 앞서 도입한 나라들에서는 모두 실효적 작동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무시한 것이다. 그동안 금융회사의 준법 경영과 금융소비자 보호 의무를 강조해 온 우리 시민사회는 이번 판결을 개탄한다. 금융감독원은 이번 판결을 금융회사와 그 임직원에 대한 솜방망이 제재의 빌미로 삼으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금융소비자 보호와 준법경영 관행의 정착을 위해 즉시 항소해야 한다.

내부통제기준의‘마련’의무만 있고,‘준수’의무는 없다는 행정법원의 궤변

현행 법령을 “기준 마련”과 “기준 운영”으로 임의 구분하여 의무범위 축소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금융감독원에게 제재 권한이 적절하게 위임되었다는 점과 손 전 행장이 우리은행의 최고 경영자로서 감독자의 지위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은 과연 ‘금융회사 및 대표이사에 대해 적법한 제재 사유가 존재하는가’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금융사 지배구조법 <별표> 제25호는 “제24조를 위반하여 내부통제기준과 관련된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동법 제34조와 제35조에 따라 금융회사와 임직원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한 판단은 금융사 지배구조법 제24조에 규정된 “내부통제기준과 관련된 의무”가 무엇이고, 우리은행과 손 전 행장이 “그 의무를 이행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금융사 지배구조법 제24조는 제1항에서 “금융회사의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하여야 할 기준 및 절차”를 마련하도록 하고 있고, 제3항에서는 이를 위한 “세부적인 사항과 그 밖의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래 <그림 1> 참조)
 
<그림 1>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24조의 내부통제기준 관련 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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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금융회사가 제24조에 규정된 “내부통제기준과 관련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동조 제1항에 규정된 내용은 물론이고, 제3항이 위임하고 있는 대통령령의 내용 또는 그 위임에 따른 또 다른 하위 규정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여야 할 것이다.
 

“실효적 내부통제제도의 구축”을 기준 마련 의무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금융사 지배구조법 제24조 제3항의 위임을 받은 대통령령은 동법 시행령 제19조이고, 이 시행령의 위임을 받은 금융위원회 고시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 제11조와 해당 조문이 인용하는 <별표 2>와 <별표 3>이다. 이 구조를 간단히 도시하면 아래 <그림 2>과 같다.
 
<그림 2>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24조 제3항의 위임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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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에 간략히 제시된 하위 규정의 취지는 분명하다. 임직원이 준수하여야 할 내부통제기준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내용을 규정하는 것이다. 실효성 확보를 위해 세부사항을 규정하고(시행령 제19조 제1항), 대표자를 위원장으로 하는 별도 위원회를 설치하여 그 준수 현황을 감독하고(제2항), 내부통제의 실효적 작동을 위한 전담조직을 설치하고 금융회사는 이를 지원하도록 하는 것(제3항)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시행령 제4항의 위임을 받은 감독규정 제11조에서는 감독기준의 운영을 위한 세부사항을 <별표 2>로 규정하고(제1항), 추가로 포함되어야 할 세부 기준을 <별표 3>으로 규정하고(제2항), 기타 시행령이 규정한 각종 지원 조직이 실효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세부 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다.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적 작동 의무를 중시하는 외국 법리와도 부합하지 않아

이익에 눈멀어 금융소비자 보호 외면한 경영진, 엄벌은커녕 면죄부 발급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금융사 지배구조법 제24조 및 그와 관련된 여러 하위 규정의 취지는 전체적으로 미국 등 해외에서 운영하고 있는 ‘실효적으로 작동하는 준법감시제도(effective compliance program)’를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 도입하고 금융회사로 하여금 이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고 제24조 제1항의 ‘기준 마련 의무’의 본질적 의미 역시 ‘실효적으로 작동하는 준법감시제도의 구축 의무’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현행 법령의 취지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부당하게 축소·왜곡하는 잘못을 범했다. 
 
첫째, 재판부는 ‘제24조의 내부통제기준과 관련된 의무’를 전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행하여야 할 금융회사의 책임 범위를 ‘제24조 제1항에 규정된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로 부당하게 축소하였다. 
둘째, 재판부는 그 후 <그림 2>에 도시된 내부통제기준과 관련하여 법령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내용을 임의로 “기준 마련”과 관련된 규정 및 “기준 운영”과 관련된 규정으로 분류하였다.
 
셋째, 재판부는 법령의 명시적인 위임구조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가 ‘기준 운영’과 관련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제재할 수 없고, 오직 ‘기준 마련’과 관련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에만 제재가 가능하다는 궤변을 만들어 냈다. 
 
넷째,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 제11조 제1항과 관련된 <별표 2>의 내용은 내부통제기준의 ‘마련’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운영’에 관한 것이므로 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제재를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바로 여기서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는 있으나 ‘준수’할 의무는 없다는 재판부의 궤변이 탄생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런 궤변에 기반하여 손 전 행장등에 대해 5개 중 1개의 사유만을 제재 근거로 인정하여 실질적인 면죄부를 발급하였다. 
 
금융사 지배구조법 제24조에 도입된 내부통제기준 조항은 미국에서 운영 중인 「실효적으로 작동하는 준법감시 프로그램 (effective compliance program)」을 우리나라에 도입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당초에는 이 제도가 금융기관의 모범규준(best practice) 형태로 도입되었다가 금융사 지배구조법이 입법되면서 비로소 금융회사가 반드시 준수해야 할 법령상의 의무 조항으로 강화된 것이다. 이 제도의 핵심은 단순히 내부통제기준을 그럴듯하게 마련하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만일 재판부의 판결 내용처럼 ‘기준 마련’ 의무만 강제하고, ‘기준 운영’ 또는 ‘기준 준수’ 의무는 강제하지 않는다면 현실에서 그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다.
 
재판부의 이번 판결이 준법감시제도 일반에 대한 보편적 이해와 크게 동떨어진 편협한 것임은 이 제도를 먼저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미국 연방양형기준(US Sentencing Guidelines) 제8장에는 실효적 준법감시 프로그램의 기본적 의미가 잘 나타나 있다. (<그림 3> 참조) 이에 따르면 실효적 준법감시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회사는 범죄행위를 예방하고 탐지하기 위해 응분의 노력(due diligence)을 다하여야 한다.’ (§8B2.1.(a)) 그런데 내부통제기준을 설정하는 행위는 그런 ‘응분의 노력’을 구성하는 7가지 최소 요건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8B2.1.(b)(1)) 
 
<그림 3> 미국 연방양형기준에 나타난 실효적 준법감시 프로그램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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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적 준법감시 프로그램에서 특히 회사의 최고 경영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최고 경영진은 회사가 범죄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고 탐지하기 위한 응분의 노력을 다하고, 윤리적 행동과 준법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고위 경영진이 범죄 행위에 연루되거나, 이를 묵인하거나 또는 고의로 이를 외면한 경우, 미국 연방양형기준은 원칙적으로 ‘준법감시제도는 실효적으로 작동하는 데 실패했다’고 간주한다. (§8B2.1.(f)(3)(B), <그림 4> 참조)
 
<그림 4> 고위 경영진의 역할과 실효적 준법감시제도의 실패 간주 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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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실효적 준법감시 프로그램이란 내부통제기준 그 자체가 번드르르한 말의 성찬으로 마련되었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효적으로 작동’해야 하고, 그 판단은 개별 사례에서 경영진과 위법행위간의 상호 관련성이 얼마나 긴밀한 것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실효적 준법감시 프로그램이 단순히 화석화된 ‘기준 마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건에서 당사자들의 구체적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미국의 투자자문사법(Investment Advisers Act of 1940)의 관련 조문을 보면 더욱 명확해 진다. (<그림 5> 참조) 
 
<그림 5> 미국 투자자문사법상 감독자 책임의 면책 요건(15 U.S. § 80b–3(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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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조항을 보면, 하위 직급을 감독할 책임이 있는 상위 감독자는 감독자 책임(supervisor’s liability)를 부담하는 데 금융사고에서 이 감독자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①금융회사 내부에 합리적인 준법감시제도가 운영되고 있고, ②본인은 그 제도가 요구하는 책임을 다했고, ③이 제도가 준수되지 않고 있다고 합리적으로 믿을 만한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어야 한다.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실효적 준법감시 프로그램에서 합리적인 내부통제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은 여러 요소 중 하나의 요소일 뿐이고, 실제로 금융회사 또는 감독자가 준법감시 의무를 이행했는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행위와 준법감시제도의 실제 운영 실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는 것이다.
 

금감원은 금융소비자 보호와 준법경영 관행 정착시키기 위해 당연히 항소해야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피상적으로는 ‘내부통제기준이 실효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했지만, 그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는 근본적 무지를 드러냈다. 이번 DLF 사태와 관련하여 우리은행의 경영진들이 영업성과 지상주의에 눈이 멀어 적극적으로 부실상품 판매를 독려했다는 점은 사실로 인정되었다. 이처럼 경영진이 고위험 금융상품의 판매를 직원들에게 독려할 경우 금융소비자의 피해 가능성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은행은 경영진의 성과지상주의에서 파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불건전 영업행위 가능성에 부합하는 내부통제기준과 금융소비자 보호 구제 절차를 마련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부가 상세하게 적시했듯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내부통제기준과 절차조차 위반하기 일쑤였다. 결론적으로 우리은행과 손 전 행장은 금융사 지배구조법 제24조에 규정된 내부통제기준과 관련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금융회사의 준법감시 의무를 부당하게 축소 해석함으로써 준법감시 제도 자체를 실질적으로 형해화하고 금융사고를 일으킨 당사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이번 판결이 그대로 굳어질 경우 앞으로 금융회사들이 내부통제기준만 장황하게 마련해 놓은 채, 운영시 이를 준수하지 않아도 감독당국이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반드시 항소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시민사회는 금융감독원이 이번 판결을 금융회사와 그 임직원에 대한 솜방망이 제재의 빌미로 삼으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즉시 항소하여 금융소비자 보호와 준법경영 관행의 정착을 도모할 것을 촉구한다. 끝.
 
2021. 9. 6.
경제개혁연대⋅경제민주주의21⋅경실련⋅금융정의연대⋅참여연대⋅한국YMCA전국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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