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주거 2022-01-12   922

[대선넷 2022] 주거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① 열악한 청년 세입자 주거환경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주거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거와 부동산 정책은 집을 소유하거나 구입할 여력이 되는 계층에 집중돼 있다. 청년 등 세입자와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대책은 도드라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주거 대책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무엇인지 ‘주거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5회에 걸쳐 싣는다.집걱정을 끝내고, 주거권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80여개 단체로 구성된 ‘집걱정끝장 대선주거권네트워크’가 연쇄 기고에 참여했다.

 

주거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① 열악한 청년 세입자 주거환경

 

곰팡이집도 곰팡이 만두처럼 규제가 필요하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첫 독립을 준비하거나 민간임대차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주거 교육과 상담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다양한 집 이야기를 듣는다. 일례로, 한 청년은 집에서 요가를 하다가 이웃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한 청년은 숨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웃의 불평을 들어야 했다. 청년들 역시 기침 소리에서부터 성관계 소리까지, 옆집에서 나오는 소음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소음을 하소연하는 일이 청년 세입자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다.

 

어느 날, 주거교육을 마친 뒤 한 청년 참석자는 “아까 보여주신 사진들, 내가 그런 나쁜 집에서 산다. 소음도 큰데, 그런 조건을 다 알면서도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로 이런 집을 원했을까? 아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그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청년들을 위한 주택 다수는 이처럼 애초부터 불량인 경우가 많다. 지옥고로 통칭되는 반지하·옥탑방·고시원을 비롯해 방 쪼개기를 한 위반건축물, 최저주거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수많은 ‘불량주거’들이 이에 해당된다. 

 

열악한 조건 다 알면서도 입주했어요

 

“임대인은 방을 쪼개지 않고 한 층 전체를 사용한다. 그러면서 임대용 방은 적게는 5~6호, 많게는 10여호로 쪼갠다. 한 평도 채 안 되는 좁은 방, 침대에서 책상으로 가는데 두 걸음이면 족하다. 분리형 원룸이라며 보여준 방은 말 그대로 분리만 됐을 뿐 주방과 방문 사이의 공간이 한 걸음 폭도 안 되는 크기였다.”

 

“지하방에서 살 때, 유일한 창문을 열면 바로 앞이 주차장이었다. 타이어 가루, 먼지, 모래, 각종 쓰레기가 날아들었다. 오래된 저층 단독주택의 지하를 개조한 터라, 사계절 내내 습기가 심해서 벽에 맺히는 물방울을 닦지 않으면 며칠 만에 곰팡이가 자랐다. 그 집의 월세는 48만 원이었다.”

 

“고시원에서 바깥으로 난 창문이 있는 방에 살기 위해서는 4만 원을 더 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창문 없는 방을 골랐다. 24시간 내내 볕이 들지 않는, 작은 형광등 하나에 의지해야 하는 복도 방이었다. 침대에 누워 두 팔을 뻗으면 양쪽 벽이 닿았다. 시계를 보지 않으면 아침인지 저녁인지 알 수 없었다.”

 

“공인중개사가 ‘아파트라 안전하다’고 말해 집을 보러 갔더니 거실을 열 개로 쪼갠 방들 중 하나였다.”

 

“너무 싼 집은 중개사가 안 보여준다. 소위 ‘아가씨’들은 못 산다는 거다. 성범죄 우발 지역이거나, 주거침입이 너무 쉬운 집은 아무리 저렴해도 선택지에서 바로 제외된다.”

 

저소득, 저자산, 첫 독립, 불안정노동 등의 현실에 놓인 청년들이 민간 임대차 시장에서 만나는 집들은 불량하기 짝이 없다. 방음은커녕 추위와 더위를 막지 못한다. 곰팡이가 피고, 물이 새며, 때로는 주거침입 등 생존 위협에 내몰리는 사건도 발생한다. 불량한 주거, 집답지 못한 집은 주변에 널려 있다. 특히 방 쪼개기를 한 위반건축물은 ‘원룸’이라는 이름으로 ‘퉁’쳐 주택임대차시장에서 손쉽게 거래되고 있다. 심지어 저렴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를 ‘문제’ 삼지 못하거나, 개선 대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런 집이 너무 많고, 보증금이 적으면 당연하게 그런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여긴다. 불량주거라는 걸 알면서도 들어갈 수밖에 없다.”

 

청년들의 바람은 이런 집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다. 빚을 내어서라도 조금 덜 불량한 집으로 옮기는 방법밖에 없다. 시장은 변화를 거부하고, 공공은 현 시스템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불량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책임이 전적으로 청년 개인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빚지고 오피스텔 가는 게 답인가요

 

대선 후보들이 청년주거공약을 말할 때 ‘지옥고’가 아닌 ‘청년주택’이라고 부르곤 한다. 다수의 청년들이 지옥고를 포함한 ‘불량주거’에서 거주하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있다.

 

곰팡이 핀 만두 판매자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곰팡이 핀 집을 내놓은 사람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곰팡이 핀 만두는 판매할 수도, 먹을 수도 없지만 곰팡이 핀 집은 임대해도 되고, 심지어 그곳에 살기도 한다. 곰팡이 핀 만두를 파는 경우, 제조자와 판매자를 탓하지 구매자의 경제적 능력을 탓하지 않는다. 그러나 ‘곰팡이’가 핀 집의 경우, 즉 주택임대차시장에서 집이 문제가 될 때는 해석이 180도 달라진다. 곰팡이 핀 집을 탓하기보다, 곰팡이 핀 집에서 거주하는 세입자의 경제적 무능을 탓한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세입자가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 시장의 논리다.

 

불량주거 탈출을 위해 빚을 진다고 해서 매번 더 좋은 집을 얻는 것도 아니다. 보증금은 매년 오르고, 보증금 마련을 위한 개인의 악전고투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보증금을 1천만 원이나 더 높였는데도 지상층에서 반지하로 이사했다는 청년의 증언은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일부 대선 후보들은 이 무자비한 시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불량주거 최전선에 있는 청년들로서는 헛웃음만 나온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불량주거 근절 공약

 

부모 등의 자산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 소득이 불안정한 사람, 이제 막 사회에서 첫 독립하는 사람이 불량주거에 내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취향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므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이 불량주거 해결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상황이 아쉽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 조사를 보면, 비거주용 건물 내 주택, 주택 이외 거처의 비율은 2010년 2.3%였지만 2019년에는 6.2%으로 늘었다. 주택으로 취급되지 않는 오피스텔 공급의 대폭 증가를 고려해도, ‘집다운 집이 늘어나고 있는가?’ 의문이 남는다.

 

2020년 민달팽이유니온이 특정 자치구에서 위반건축물 표본조사를 진행한 결과, 조사 매물 중 78%가 실질적인 위반건축물이었다. 불량주거를 당연하게 여기는 시장, 이를 방조하는 공동체 틈바구니에서 적은 주거비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선택지는 불량주거뿐이다. 불량주거를 벗어나는 수단인 오피스텔 중에서도 최저 주거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대상들이 함정처럼 숨어 있다.

 

이는 공공이 주거환경을 책임지고 개선하지 않은 결과다. 주거환경이 열악한데도 주거권이 없는 세입자에게 고액의 월세와 관리비 부과 의무만 주어지는 사회에서, 누군가의 인간다운 삶이 방치되고 있다. 개인의 빚으로 불량주거를 벗어나는 것이 최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불량주거문제 해소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선 안 되는 이유다.

 

불량주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로 다뤄야

 

‘청년주택’ 수십 만호를 짓겠다는 공약을 내건 대선 후보들에게 청년주거 문제를 무엇이라 규정하는지, 왜 청년주택이 필요한지 묻고 싶다. 이들이 짓겠다는 청년주택이 불량주거에 노출된 청년 세입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최근 서울시는 고시원 거주자의 인간다운 삶과 안전한 거주환경 보장을 위한 최소 실면적 기준, 창문 의무 설치 규정을 신설한 건축 조례 개정안을 공포했다. 하지만 이런 법 개정으로 더 높은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불량한 주택 환경을 개선하는 비용이 세입자에게 대부분 전가되어선 안 된다. 개인이 더 비싼 임대료를 부담하는 방식으로 일상의 최전선인 주거환경을 지키게 만드는 사회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최저 주거기준 개선과 함께 임대차시장의 임대료 규제가 필요한 이유다.

 

불량주거가 버젓하게 거래되는 민간 임대차시장에 대한 규제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시장보다 인간다운 삶이 더 존중을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불량주거 환경을 개선하되, 그 비용이 높은 임대료의 방식으로 개인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신규 임대차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또 저렴하고 튼튼한 공공주택 공급도 확대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대선 후보들이 청년들의 주거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한겨레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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