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2년 07-08월 2022-06-28   6078

[인터뷰]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 – 양선우(홀릭)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

양선우(홀릭)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월간 참여사회 2022년 7-8월호 (통권 297호)

ⓒ박상환

 

“송해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함께여서 즐거웠습니다.”

 

‘국민 MC’ 고 송해를 추모하는 현수막에서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종로 이웃 성소수자’ 명의로 제작되어 서울 종로구 송해 동상 옆에 걸린 이 현수막은 생전 방송에서 성소수자와의 공존을 언급했던 고인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2018년 KBS<대화의 희열>에 출연한 송 씨는 퀴어문화축제에 관해 “여기(종로)에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젊은이들도 남녀 쌍쌍으로 있지만 그렇지 않은 모임에 관한 운동이 세계적으로 있지 않느냐”며 “이런 변화도 체험을 해보는구나란 생각에 배울 게 또 많다. 그러니까 참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그의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진짜 어른’을 떠올렸달까. 

 

그렇지 못한 어른도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지난 6월 15일 서울시가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신청한 서울광장 사용안을 가결하자 보수 기독교단체들은 “퀴어축제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정면 도전하는 행위”라며 반대 집회를 예고했다. 올해로 23회째인 서울퀴어문화축제는 광장 사용에 있어 엄격한 심의를 받고 있으며 행사 때마다 반대 단체들의 노골적인 방해와 공격을 감내해야 했다. 그럼에도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는 2년 만에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현장으로 축제의 무게중심을 옮기며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6월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서 양선우(홀릭)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을 만났다. 양 위원장은 “축제 바깥에는 혐오하는 목소리들이 넘치지만 축제 안에선 내 옆에 함께 하는 수만 명이 있다는 안전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며 시민들의 축제 참여를 독려했다.

 

 

– 오는 7월 15일부터 31일까지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공식 슬로건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작년 슬로건은 ‘차별의 시대를 불태워라’였다. 큰 호응이 있었다. 아무래도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 성소수자 차별에 힘들었기 때문에 그런 강한 슬로건에 호응했던 거 같다. 올해는 어떤 기치를 내걸까 고민을 많이 했다. 작년에 많은 성소수자들이 세상을 떠났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우리는 2년 동안 제대로 만날 수 없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잘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성소수자로 사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도 전달하고 싶었다. 함께 일상을 살아가자는 의미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당신이 어떤 일을 겪든 함께 할 것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세상은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에 비춰봤을 때 역사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올해 슬로건을 정했다.

 

– 어떤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나? 기대할 만한 이벤트를 소개해준다면.

무엇보다 많은 분이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를 주목하는 것 같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는 참여자가 15만여 명이었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모았던 대표 행사다. 작년, 재작년에도 당국 방역 지침에 따라 행진을 짧게 하긴 했지만. 올해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오실 것 같다. 

 

또한 닷페이스와 함께 진행했던 ‘온라인 퀴어퍼레이드’를 올해는 우리가 맡아서 7월 7일부터 열린다. 한국퀴어영화제 역시 작년까지 온라인 중심이었는데 올해는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열린다.

 

–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뿐 아니라 차별에 반대하는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는 것으로 안다. 올해 처음 참여하거나 관심 갖고 있는 이들에게 축제를 즐길 수 있는 팁을 준다면?

이미 성소수자만 참여하는 축제가 아니다. TV에 비치는 모습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쪽으로 그려지다 보니 축제에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을 어떻게 바꿀까 계속 고민한다. 미디어에서 말하는 것처럼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축제’는 결코 아니다.(웃음) 축제에 참여하면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오후 4시 정도에 시작하는 프라이드 퍼레이드인데, 참여하실 때 어떤 트럭 뒤에 있으면 더 재미있을까 미리 파악해보셔도 좋을 것 같다. 필수템은 선크림 정도다.(웃음)

 

월간 참여사회 2022년 7-8월호 (통권 297호)

성소수자뿐 아니라 차별에 반대하는 모든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오는 7월, 2년만에 오프라인 개최 예정이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 지난 6월 15일, 서울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의 서울광장 사용 신청을 조건부 가결했다. 

서울광장을 사용하려면 조례1에 따라 90일 전에 사용신고서를 제출해야 해서 4월 13일 광장사용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면 서울시는 신고 후 48시간 이내에 수리통보를 해야 하고 수리 여부를 달력에 공지하는 게 절차다. 만약 심사를 거치더라도 달력에 ‘접수중’이라고 띄웠어야 하는데 그런 공지를 전혀 안 했다. 아마도 개인적인 추측은 우리 행사 날짜가 공개되면 시청에 항의 전화가 빗발치니까 그런 것에 부담이 있는 듯하다. 우리는 서울시 열린광장시민운영위원회가 6월 15일 안건을 논의한다는 사실도 통보받지 못하고 언론을 통해서 알았다. 

 

조직위가 2015년부터 서울광장 사용 신청을 해왔는데, 서울시는 2015년 한 해 빼고는 제때 수리하지 않다가 행사 한 달 전에야 통과시키고 있다. 부당한 처사다. 우리 행사만 심의 대상에 올리는 것도 차별 행정에 다름 아니다. 시민사회 축제를 관이 조건을 걸어 승인하는 게 합리적인가? 이번 조건부 승인 소식도 기사를 통해서 알게 됐다. 우리에게는 알려주지 않는다. ‘조건’의 내용이 무엇인지 언론에는 보도됐지만 우리는 공식적으로 받은 내용이 없다. 서울시에 공문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 보도에 따르면, 행사 기간을 7월 16일 토요일 하루로 줄이면서 ‘신체 과다노출과 청소년보호법상 금지된 유해 음란물 판매·전시를 안 하는 조건’을 달았다. 

참여자들 복장을 우리가 어떻게 규정하고 관여할 수 있나? 문란의 기준은 또 무엇인가?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어떤 법적 근거로 이 같은 조건을 걸었는지 의문이다. 조직위 입장에서는 축제 한 달 전에 행사 장소를 공개해야 하는데, 서울시가 언제 광장 사용 승인을 내줄지 모르니까 매번 장소를 제때 공개하지 못했다. 광장을 사용할 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니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 서울시는 작년 9월, 조직위의 비영리법인 설립도 불허했다. 불허 근거는 무엇이었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는 20년 넘게 이어진 조직이다. 보다 지속적이고 탄탄하게 운영하기 위해선 사단법인 설립이 필요하다. 2019년 신청서를 넣었는데 아무 소식이 없다가 2년 만에 불허 통지를 받았다.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을 불허하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세력의 논리, 즉 축제가 유해하다는 식의 논리로 불허했다. 서울시는 성소수자 권리 보장이 헌법에 어긋나 신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2하기도 했는데 아무 생각이 없구나 싶었다. 

 

불허의 또 다른 사유는 ‘반대 단체와의 물리적 충돌’을 들었는데,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주체는 서울시와 국가다. 그 책임을 왜 우리에게 넘기는지 모르겠다. 결국 행정심판을 청구해 서울시의 법인 불허 처분은 취소됐으나, 서울시가 법인 설립을 이행하라는 청구는 기각됐다.

 

–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올해도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를 예고했다. 안전 대비책은 마련돼 있나?

20년 넘게 진행해온 행사이다 보니 이제 축제를 열기 전 경찰과 긴밀하게 미팅을 한다. 행사를 안전하게 무사고로 치르기 위함이다. 우리가 경찰에 요구하는 건 차벽을 칠 거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분들과 행사 참가자들이 마주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다만 돌발적인 상황이 걱정이다. 지하철 주변, 지나가는 길 등 곳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튀어나와 폭력적인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 사실 물리적 충돌이 아니어도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분들의 고성을 들어야 하는 상황 자체가 폭력적이다. 이렇게까지 나를 싫어하거나 내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 성소수자들이 겪는 충격은 상상 그 이상이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운동인데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 그래도 변화가 있지 않나?

이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주변에 ‘성소수자 친구가 있느냐’고 물으면 예전과는 다른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거다. 대다수가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다고 답할 테니까. 체감상 시민들의 의식은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거나 서울시 차별 행정이 여전한 것을 보면, 사회의 공적 기관과 정치인들이 가장 안 변하는 것 같다.

 

–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올해로 23년째를 맞는다. 오랜 역사만큼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가장 큰 위기나 고비의 순간은 언제였나.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2014년이었다. 신촌에서 열린 행사였다. 보통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하면 4.5km의 길을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걷는다. 근데 행진을 시작하려는 순간 처음 보는 무리들이 우리 앞에 의자 3,000개를 깔았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이들이 처음으로 조직화해 등장한 사건이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그분들이 없는 쪽으로 코스를 바꿔 행진을 마친 기억이 있다. 조직위 구성원들 충격이 컸다. 그때부터 뭐랄까, 같이 성장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반대 세력 쪽도 점점 화려해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복장으로 난타를 치면서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데 정작 그들이 우리보다 더 퀴어스런 복장을 하고 다니는 것도 같고.(웃음) 

 

나는 기독교인이기도 한데 어쩌면 교회가 더는 사람을 끌어모을 수 없는 상황에서 동성애 혐오 기제를 통해 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믿는 하나님과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다르지 않을 텐데…. 물론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렇진 않다. 우리와 함께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들도 적지 않다.

 

월간 참여사회 2022년 7-8월호 (통권 297호)

 

–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송해 씨가 2018년 한 방송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발언이 회자됐다. 그는 ‘제2의 고향’ 종로를 언급하며 “새로운 문화”로 축제를 언급했다. 

종로에 오랜 역사를 가진 성소수자 바bar가 100곳 넘는다. 송해 선생님 말씀은 소중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일생동안 정말 많은 분을 만나오신 분이다. 그의 삶에 녹아있는 다양성에 관한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우리 사회 소수자 인권과 차별에 대한 인식 변화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무엇일까?

성소수자는 매일 같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살아간다. ‘이곳에서 나를 드러내도 될까’ ‘이곳에서 내 직업을 이야기해도 될까’ ‘나를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가’. 서울퀴어문화축제는 그런 고민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성소수자가 네 옆에 있고, 우리 주변에서 같이 일하고 있고, 결국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축제를 통해 전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또 퀴어 문화를 함께 만들어 공유하고, 퀴어 문화 활동가들을 지원할 수 있는 장을 구축하는 게 장기 목표이기도 하다.

 

– 축제를 찾아올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퀴어문화축제에 그릇된 시각을 갖고 질문하는 분들에게 ‘와 보신 적 있느냐’고 묻곤 한다. 축제 바깥에는 혐오하는 목소리가 넘치지만, 축제 안에선 내 옆에 함께 하는 수만 명이 있다는 안전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꼭 와보시면 좋겠다.

 

1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말한다. 2009년 6월 참여연대가 주도한 광장조례개정운동으로 주민발의를 거쳐 서울광장 사용이 허가제(허가신청)에서 신고제(신고수리접수)로 바뀌었다.

2 서울시는 불허 근거로 헌법 36조 1항(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을 인용했으나,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이에 대해 “헌법 36조 1항에 명시된 양성평등이라는 말이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며 “헌법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라고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다.  

 


김도연 <미디어오늘> 기자

사진 박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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