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4월 2011-04-01   1634

김용민이 만난 사람-인간본성 일깨우는 정갈한 판화, 나뭇잎편지

이철수 화백

인간 본성 일깨우는 정갈한 판화,
나뭇잎편지

김용민 시사평론가 사진 김은진 작가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로 이철수 화백을 만나러 간 3월 16일, 인터뷰에 앞서 일행과 먹은 점심은 솔직히 불편했다. 우선 음식점이 쓰는 쇠고기의 원산지가 ‘미국’으로 돼 있다는 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판정 결과 “장자연의 편지는 허위”라는 스마트폰으로 날아든 소식 때문인 듯하다. 혹자는 ‘진실은 불편하다’고 말할지 모르나, ‘진실은 부당한가’라고 자문케 한다.

  이철수 화백도 자신이 발행하는 메일링 서비스 ‘나뭇잎편지’를 통해 “제 직위와 권력을 흔들면서 어린 여성들을 농락한 언론사 사장놈·방송사 PD놈·기업 회장놈에 간부놈에, 기획사 사장놈이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라고 질타했다. 이 좁아터진 나라에서 전도유망한 여배우의 미래를 산산이 조각낸 놈 하나 못 잡아내나 하는 속 끓는 마음이다. 관련한 언급을 하자 이철수 화백은 담배를 물며 곰곰이 생각한다. 짐작컨대 같은 분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내용과 성격이 달랐다.

  “내가 그 편지 앞부분에서 했던 이야기는, 현장에서 유독물질에 중독돼 죽은 젊은 여성 노동자들의 죽음보다 안쓰러울 건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언론은 장자연에게 권력과 직위를 흔들면서 성적인 가해를 한 무슨 놈, 무슨 놈, 무슨 놈 이렇게 비속어를 쓰면서 지목한 점 또 ‘요절해야 한다’는 주장만 옮기더군요. 아마 그 대목에만 통쾌함이 있다고 느꼈겠지요. 글을 그런 식으로 읽는 난독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어요. 왜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읽고 싶은 얘기만 읽으려고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철수 화백이 강조한 원문 내용을 본다.

  “땀 흘려 일하다 직업병으로 숨져간 젊은 여성의 죽음보다 더 안타까울 것은 없습니다. 배부른 자들, 식욕은 미식으로 채우고 색욕은 미색으로 채웁니다. 그 접시에 올리면 제 허황된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꿈을 버리지 못하다 죽은, 미색이 돋보이는 젊은 여성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가 만드는 포르노가 생산되고 있을 지도 모르지요. 몸매 좋고 인물 고운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인의 꿈을 버리라고 할 건 아니지만, 그쯤 눈치 챘으면 떠날 줄은 알아야지요.”

  이다음 바로 ‘무슨 놈’ 부분이 나오는 것이다. 주장하는 바의 주와 부는 명백하게 달랐다. 그렇다. 미모가 출중하지 않고 어리지 않은 ‘장자연’이 도처에 있다면, ‘놈들’ 즉 특권층이 아닌 평범한 ‘장자연 가해자’도 넓게 산재해 있으리라. 이철수 화백은 바로 그 지점으로 논의를 옮겨갔다.

  “가해자로 등장하고 있는 몇몇 파렴치한 권력자들만이 아니고, 밤마다 룸살롱을 드나들며 호주머니 끄르는 평범하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까지. 다들 한통속이잖아요. 그리고 그게 우리 사회의 엄연한 문화이고. 그 잘못된 문화를 총체적으로 반성하고 뿌리 뽑겠다는 태도가 그 안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날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시민사회의 건강한 눈초리가 그걸 지켜보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제는 그만하라는 사인을 분명하게 보여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우리 사는 것 자체가 죄이자 고통”

올해는 이철수 화백에게 특별한 해이다. 등단 30년이면서 귀농 25년이다. 25년 전에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방사성 물질 유출 사고가 있었다. ‘나뭇잎편지’의 요즘 단골 소재는 일본 지진 또 이에 따른 원전 이야기이다.

  “그 얘기는 어제 저녁에 썼어요. 우리가 평소에 원전에서 보내온 전기로 저녁 식탁을 비추고, 소비도시의 쇼윈도에 조명도 하지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기를 누리고 사는 것 뒤에 무엇이 숨어있는지에 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온 겁니다. 그러다가 그날 그 순간이 되고 보니까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사나운 재앙이 숨어있던 것을 알게 됐어요. 우리가 누릴 만한 것들을 누리고 살 때에도 그 뒤에 뭔가 비극적인 요소들이 있을 수 있다는, 때로는 범죄적인 것이 숨어있을 수 있다는 걸 같이 생각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했던 것이지요.”

  어느 고해성사 자리에서 신부가 ‘뭐 잘못 하신 게 있냐’고 묻자, 찾아온 할머니가 “아이고, 그냥 사는 게 다 죄지”라고 했다고 한다. 이철수 화백은 이 해학을 인용하며, 우리가 사는 것 자체가 죄고 고통이라고 이야기를 강조했다.

  “우리가 편리하다고 생각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이대로 누리고 살겠다고 사는 한, 우리가 또 어디서 이런 재앙을 직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단계까지 가기 이전에 남의 고통스런 재난을 통해서도 확인하고 성찰하면 좋지 않을까요. 이웃의 문제거나,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고, 우리 문제로까지 읽을 수 있어야 하는 시점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범凡생명체에까지 눈을 돌린다면 ‘남의 고통스런 재난’은 굳이 대한해협을 건너지 않아도 여기게 되는 인근의 문제이다. 구제역 파동을 반추해 물었다. 이철수 화백의 답.

  “구제역 걸리거나 걸릴 우려가 있는 소 돼지를 각각 살 처분 뒤 매몰하거나 더러는 생매장 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봤어요. 그야말로 지옥이었지요. 그걸 보면서 다들 가슴 아파 했는데. 거기에 제가 한 마디 보탤 때에는, 소 돼지들 저렇게 잔혹하게 죽이기 전에도 그들의 결론은 같았다고요. 수태하지 못한 상태에서 적절한 무게가 나가면 도살 처분해 우리 입으로 들어오게 되지 않던가요.”

   전기로 충격을 줘서 소를 쓰러뜨리고 이를 기계적인 공정을 통해 정육으로 만드는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냉혹해지고 연민을 가지지 않는 이중성을 짚은 것이다. 지나친 냉소일까. 아니다. 앞선 ‘행복과 재앙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논리의 연장이다. 사실 쉽게 고기를 접하는 편리함은 재앙의 근간이다. 공장식 축산을 위해 곡물이 집중되는 것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아사餓死의 이유가 되고 있지 않은가. 부요한 나라에게는 광우병 및 구제역 창궐이라는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있고.

 

본질을 바라보며 삶의 실감 키운다

이철수 화백은 초면이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십자가에 올라, 면류관을 쓴 채 넋을 잃고 달려있는 예수를 끌어안고 울던 한 사람의 장면이 담긴 판화, 대학 1학년에 접한 이후로 ‘판화가 이철수’를 잊지 못한다. 그때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었던 신학과 학생이었다.

  “내가 그런 그림을 그렸나요? 아마 아닐 걸요.”

  그 그림을 찾아 ‘필적감정’을 시도하려 했지만 종적을 쫓기 힘들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서 그런 그림과 이철수 화백을 엮었던 것일까. 잠시 귀신이 씌웠나. 가만, 지금 내 입에서 귀신을 운위했나. 큰일날 소리다. 귀신을 믿는 탓에 지축이 흔들려 일본에 재앙이 임했다는 한 대형교회 목사의 ‘말씀’이 있었으니 말이다. 바로 ‘종교집단의 권력화에 대한 단상’으로 화제를 이어갔다.

  “개인적으로, 교회가 곧 기독교로 이야기 될 필요가 없다, 또한 절이 곧 불교라고 이야기 될 필요가 없다는 데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어요. 일종의 면허가 있으면 다 진실한 신앙인이라고 믿어야 할 근거가 없다고도 생각하고요. 따라서 예수한테 실망할 이유가 없었다면 기독교에 실망할 이유가 없겠죠. 석가의 삶의 궤적에 실망한 이유가 없으면 불교를 부정할 이유가 없을 거고요.”

  최근 목사님들이 사회면 사건 사고 란에 자주 등장하는 사안은, 종교가 세속의 틀 거리 즉 체계 확립, 재정 운용, 세력 확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고유의 원리를 훼손한 현상이라는 이야기이다. 하긴 신앙인인 나로서도 교리상 맹점이 있다면 온전치 못한 인간에 의해 정립된 탓이지 신의 섭리에 하자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예수의 가르침이 현세에서 의미를 발하려면 그의 이름을 오용해 세도를 누리기보다 제자로서의 실천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이철수 화백은 개신교계의 온갖 추문에도 불구하고 예수로까지 그 원성이 번지는 양상에 회의적이다. 실컷 아무개 목사는 저렇고 모 종교는 그렇고 하는 답을 기대했던 나를 부끄럽게 한다. 이런 깊은 통찰을 이철수 화백은 참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풀어낸다. 그의 그리기 못지않은 ‘쓰기’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이다.

  “조심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면 삶의 실감은 키우고, 뜬구름 잡는 소리는 버리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 개념어, 전문용어, 난해한 표현도 줄일 수 있는 대로 줄여야 할 거란 생각도 하고. 그러면서 독선적으로 흘러가게 될 것도 늘 경계해야 할 요소들이 되겠다는 생각도 하고.”

본성을 잃지 않기를, 울타리를 치지 않기를

나의 독서량은 걸출한 지성에 비해 박약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독서량이 많고 적은지를 감별할 수 있는 눈은 점쟁이의 경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철수 화백의 서가에 생각보다 책이 없다. 이럴 리가 없는데. 부인 이여경 씨가 답해줬다. “때마다 다 나눠줘요”라고. 기천 권 넘는 책을 1년에 한 번꼴로 후학 제자에게 나눠준다는 것이다. 그걸 모두 소장했다면 아마 도서관 수준의 장서가 됐을 것이다. 그 엄청난 독서의 산물이 짧은 ‘나뭇잎편지’에 녹아있다. 이 메일링 서비스 신청자들, 지성의 엑기스를 아침마다 무료로 받는 셈이다.

  “어떤 책에 ‘산하대지가 일권경’이라는 말이 있어요. 제가 자주 인용하지요. 산과 물, 큰 땅이,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이 모든 세계가 한 권의 경전이라는 표현이에요. 사실 세상을 아는데 그렇게 난해한 책들을 수없이 읽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할 때가 많거든요. (중략) 쓸데없이 복잡한 책을 읽으면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책일까, 같은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게 해줄 수는 없는지도 생각하고요. 학자라고 하는 사람들 특히 전문용어들 많이 동원하지요. 권력입니다. 자기들 울타리를 치는 것이에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예술인인 내가 하는 것들이 어떻게 못 알아들을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네요.”

  ‘울타리를 없앤 책’을 물어봤다. 주저 않고 장일순 선생의 『나락 한알 속의 우주』, 권정생 선생의 『우리들의 하나님』을 추천했다. 그 두 권이 쉬운 말로 감동을 주는 길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철수 화백과 부인 이여경 씨.

  시민사회에 대한 바람 또한 아주 간결하고 선명했다.

  “시민사회조직의 현실적 활동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뒤에서 본질적 변화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림을 그리는 저에게는 농사가 바로 그러했어요. 20년 넘게 텃밭농사부터 시작해서 요즘은 자급자족하고 있거든요.”

  “초월적인 관심이라고 하는 것이 현실 속 다양한 고통들에 외면하게 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버려야 하는 거겠지요. 하지만 그런 통찰들이 깊으면 깊을수록 남이 시키지 않아도 자기 안에서 끓어오르는 연민이나 애정 때문에라도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손 내밀기 마련입니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견제한다면서 현실에 몰두하다보니 무엇을 위한 운동인지 ‘본연’을 실종하는 우愚를 범해왔던 것이다. 이타적이며 초월적인 관심, 큰 화두를 안고 인터뷰를 마쳤다. 이 와중에 잘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봤다. 정원이 참 넓었다.

  “정원만은 이건희 회장급이지요.”

아무렴. 정원뿐이겠나. 이철수 화백 부부의 아름다운 삶 그 안에서 나오는 진실한 웃음은 백만 불 이상이다. 아니 그 100배이다. 그렇다면 1100억 원 정도 되는데. 공교롭게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조세포탈 혐의로 선고받았다가 면한 벌금 규모이다. 이를 훨씬 초과하는 넉넉함이 평동마을에 있다.
 

이철수 화백 등단 30주년 전시회

지역            전시장                       일정

서울        관훈갤러리               6.22(수)~7.5(화)
광주        광주신세계갤러리      7.12(화)~7.21(목)
원주        원주한지테마파크      7.26(화)~8.7(일)
전주        전주한옥마을            9.9(금)~9.18(일)
제주        제주저지현대미술관   10.1(토)~10.25(화)
부산        민주화공원전시관      10.28(금)~11.10(목)(변동 가능)
청주        청주예술의전당         11월 3, 4주
고양        어울림누리               12.02(금)~12.1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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