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12-03-26   2743

[평화에 투표하자 ④] 제주 해군기지, ‘DJ 노선’ 버리고 ‘MB 노선’으로 가자는 것

총선과 대선에서는 평화와 외교ㆍ안보 문제도 중요한 쟁점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외교ㆍ안보 현안이 갑자기 떠오를 때의 표심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긴장을 고조시켜 표를 얻으려는 시도는 이제 어림도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 졌습니다. 그러나 갈등 조장에 대한 유혹을 느끼는 듯한 움직임은 여전히 있습니다.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그러한 낡은 시도를 감시하고, 올바른 대외전략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평화에 투표하자’ 시리즈를 공동 기획했습니다. 여러 전문가들이 필자로 나서는 이 연재에서는 선거 전 불거지는 현안에 대한 대응은 물론 평화를 바라는 이들이 외교ㆍ안보 쟁점에서 가져야 할 기준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총선 전까지 매주 1~2회 찾아갈 예정이며, 대선을 앞두고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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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군기지, ‘DJ 노선’ 버리고 ‘MB 노선’으로 가자는 것

 

이시우 사진작가

 

중국 국가해양국장이 “이어도가 중국 관할구역”이라고 말한 것이 한국에서 논쟁을 일으켰다. 한국이 이어도과학기지를 건설했을 때 중국측이 격분했듯이, 이번에 논쟁을 가열시키고 있는 것은 한국측이다. 한국측에서 이어도 문제에 대한 결론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귀결되는 양상이란 점에서 논쟁의 본질은 이어도가 아니라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우선 이어도가 독도와 같은 영토 문제인지 보자. 이어도는 섬이 아닌 수중암초이고 수중암초는 영토가 될 수 없다. 국제적으로도 스코드라암초(Scodra Rock)로 불린다. 이어도과학기지에 대해 영토의 실효적 지배 운운하는 것 역시 우리의 왜곡된 희망사항일 뿐 섬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제로이다. 따라서 이어도를 중심으로 주변 해역을 영해로 주장하는 것은 현 유엔해양법 체제로는 불가능하다. 해양법협약이 정의하고 있는 섬의 조건인 ‘만조시에도 바다에 잠기는 않는 육지와 유인도’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어도가 섬이면 일본이 섬으로 인정받기 위해 수상암초 위에 조성한 10㎡의 인공섬 ‘오끼노도리시마’조차 섬이 될 것이다. 이어도에 대한 영토 운운은 나중에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점은 기억해 두자. 이어도에 대해 영토 운운하는 사람들은 사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일 뿐이며, 논쟁점도 아니기에 특별히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어도 문제는 배타적경제수역 문제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어도와 그 부근은 중국과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중첩지역”이라고 못 박았다. 유엔해양법협약에 의하면 맞는 말이다. 한국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EEZ 제도는 미국, 일본 등 해양선진국에 맞서 제3세계 연안개발도상국가들이 쟁취한 성과였다. 이로써 연안국인 제3세계 국가들은 자국의 해양관할권을 확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해양관할권의 확대’가 이 시대의 한 특징이 된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에게만 자유로운 독무대를 만들어준 자유해의 시대는 종결되었고, 자국의 바다는 자국이 직접 관리할 수 있게 구획이 그어졌다. 처음엔 반대하던 해양선진국들도 EEZ 제도가 발효하기 시작하자 재빨리 변화의 흐름을 쫒아갔다. 연안주권을 강조한 대표적인 국가가 중국이고, 공해의 자유를 강조한 나라가 미국과 일본이었다. EEZ 제도는 1990년대 소련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일방적인 패권이 작동하진 못했다는 증거 중 하나이다. 한·중·일의 해양 관련 갈등은 유엔해양법협약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체제조정기의 문제로 봄이 타당하다.(주석1)

 

EEZ는 영해와 달리 연안국 영역의 일부가 아니다. EEZ에 대해 해당 연안국은 주권적권리(sovereign right)와 관할권을 갖는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주권적 권리가 주권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권적 권리는 대륙붕협약 제2조에서 언급되었는데 이는 포괄적이고 배타적인 영토주권과 달리 특정 해역에서 일정한 목적을 위해서만 행사할 수 있는 제한적 권리를 의미한다.(주석2) 연안국은 EEZ 내에서 타국의 권리와 의무를 적절히 고려해야 하며 타국은 항행, 비행 등 일정한 공해의 자유를 계속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연안국의 배타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관할권은 주권적 권리에 비해 더 약한 의미를 갖는다. 집행관할권, 사법관할권이 제한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기국내지 기항국의 관할권과 경합되기도 한다. 한·중 어업협정에 의하면 중국 어선이 불법조업을 했을 때, 한국 해경이 중국 정부에 불법 사실을 통보하고, 중국은 자국법에 따라 조치하며 조치결과를 한국에 통보해주는 것으로 끝난다.

 

결국 주권적 권리나 관할권 등 EEZ의 법적 성격은 국가간 협약과 실천이 누적됨으로서 보완될 수밖에 없다.(주석3) 따라서 EEZ 문제가 국가간 담판의 문제라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다. 중국의 이어도 관할권 주장은 한국법에 따르면 틀린 말이지만 중국법에 따르면 맞는 말이다. 문제는 한국과 중국을 초월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초국가적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한ㆍ중간 합의뿐이다. 국제법이란 본질상 초국가(Transnational) 법이 아닌 국가간(International)의 법인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가 군사적 압박이 될 수 있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외교쟁점화했으니 외교적 압박도 가해진 셈이다. 그러나 이런 압박 전술이 중국을 강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국 입장에선 EEZ 경계획정 협상을 거절하거나 시간을 끌다가 무산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압박이 아닌 신뢰이다. 그리고 신뢰를 기반으로 한 헤게모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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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섬 제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플랭카드가 걸린 강정마을 ⓒ조성봉(독립영화감독)

 

네덜란드인 하멜이 1653년 제주에 표착하기 전 닻을 내린 암초가 이어도라고 추정되고 있다. 이때는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교황 중심의 질서가 무너지고 유럽의 근대국가 체계가 등장한 시기이다. 1648년은 병자호란을 치른 인조가 죽기 1년 전이다. 에스파냐와 프랑스 등이 새로운 전쟁기술을 발전시켜 결정적인 힘의 우위에 서 있던(주석4) 30년 전쟁 시기에 혼돈이 극에 달하자 “외교의 실타래는 헤이그에서 감겼다 풀렸다 하고 있었다.”(주석5) 유럽 체계를 대대적으로 재조직하자는 네덜란드의 제안은 유럽 통치자들 사이에서 많은 지지자들을 획득했고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과 함께 새로운 유럽의 통치 체계가 등장했다. 마키아벨리식 표현을 응용하면 네덜란드는 군사적 ‘강제’ 대신 ‘동의’로 헤게몬(헤게모니국가)이 된 것이다. 당시 조선은 병자호란 이후 북벌을 주장하며 군사주의 노선을 강화시켰지만 북벌을 준비한 군대는 청나라를 치기는커녕 청나라의 명령으로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나선 정벌에 동원되는 굴욕을 겪고 말았다. 네덜란드의 성공과 조선의 실패가 드러나던 시기에 이어도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유엔해양법협약의 EEZ 제도는 유럽 차원의 베스트팔렌 체제가 세계 차원의 체제로 확산되는 과정의 과도기적 체제로 보인다. 한·중·일간 해양 체제에서 본질적인 문제는 EEZ의 경계 획정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이 당장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님은 이미 그동안의 교섭사에서 증명되었다. 대신 한·중·일 3국은 어업협정을 통해 예민한 경계획정 문제를 뒤로 미루고 양국간 관심사를 중심으로 신뢰 조성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데 일정한 성공을 거두어 왔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중 어업협정이 체결된 이래 한·중 어업공동위원회가 11차 회의까지 진행되어 왔다. 이 위원회의 권한과 역할을 확대하며 양국 공통의 관심사인 어업자원 보호와 관리 등이 이루어진다면 해양법협약 74조 3항의 잠정협정 내지 조치로 상호 합의하는 것도 가능해 질 것이며, 양국간 경계 획정을 위한 신뢰 구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절실한 것은 유엔해양법협약에 기초한 동아시아해양 체제를 건설하는 것이다. 한·중·일 관계는 협력의 당위성과 갈등의 현실성이 항상 공존해온 관계이며 이는 외교정책에서는 결국 선택의 문제로 나타난다. 대양해군건설론 자체는 국내 문제이므로 중국이 그것을 이유로 내정에 개입할 순 없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해군강화론의 목표로 끝없이 이어도를 언급했다. 우리의 의도와 관계없이 중국이 자극받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어도를 최단거리에 두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무리하게 강행 추진하는 모습에서 중국이 우리 정부의 의도를 어떻게 읽을지도 자명한 일이다. 이어도가 중국의 개입 명분을 열어준 셈이다. 제주 기지 건설은 현 정부의 외교적 미숙함으로 중국과의 외교 문제가 되었다. 한·중 해양 체제의 건설도정에는 김대중식 경로와 이명박식 경로가 있다. 새로운 동아시아해양 체제 건설을 위해 평화와 협력의 헤게모니를 택할 것인가, 대치와 갈등의 군사주의를 택할 것인가?

 

이어도 논쟁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당위성 논쟁으로 향해 있다. 이것이 타당한 논리인가 보자. 1973년 7월 중국이 해저평화이용위원회에 제출한 ‘국가관할권 범위 내 해역에 대한 보고서’에서 중국은 EEZ에서 모든 국가의 선박이나 비행기의 정상적인 항행이나 상공비행은 방해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무엇이 ‘정상적인’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지넷 그린필드(Jeanette Greenfield)는 중국이 EEZ에 대한 군사적 이용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석했다.(주석6)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국은 유엔해양법의 정신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의 주권 사항이므로 우리가 문제제기 할 수는 있으나 강제할 순 없다. 한국은 영해에 대해서는 군함의 항행을 규제하지만 EEZ에서는 그렇지 아니하다. 중국 함선은 우리나라 EEZ에 규제없이 들어올 수 있지만 우리 함선의 중국 EEZ 항행은 규제된다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문제는 이어도 주변수역에 대한 경계획정이 안된 상태에서 우리의 주장대로 이어도 주변에 함선이 진입했을 때 중국은 자국의 법에 따른 관할구역임을 주장하며 공격을 해올 수 있다. 중국법은 EEZ에서의 군사적 이용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많지 않다. 중국법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면 중국의 주권을 부정하는 것이 되므로 갈등은 더 심화될 것이다.

 

중국 군함이 우리의 영해 안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제한적이다. 중국 군함이 우리 법을 어겼을 때 우리는 영해로부터의 퇴거를 요구할 수 있다. 그래도 퇴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자위권 발동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위권 발동 요건으로 볼 때 외국 군함의 퇴거요구 불응이 바로 무력을 사용할 근거가 된다고는 볼 수 없다.(주석7) 영해조차 사정이 이러하다.

 

EEZ에서는 이 보다 더 방법이 없다. 이어도 수역에서의 사고 발생시 중국보다 빨리 가기 위해 제주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자위권 발동을 염두에 둔 발상일 것이다. 우리의 상대가 해적일 때는 이같은 거리 논리가 적용될 수 있고 실효성도 일정 부분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상대는 중국이란 국가이다. 우리가 무리수를 두면 중국은 그것을 전례로 삼아 우리에게 더 큰 요구를 압박해올 것이다. 이어도 근처에서 중국이 군사훈련을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애초 EEZ는 연안국이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했던 국제 수역에 대해 협약을 통해 제한적인 권리를 제공한 수역이다. 때문에 연안국의 EEZ의 권리가 협약에서 주어진 것을 초과한다고 보기는 힘들다.(주석8) 따라서 해양법협약을 부정하지 않는 한 우리가 중국의 군사훈련을 막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제한적이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군사적 대응을 한다면 중국 역시 중국 EEZ에서의 우리 군함 이동까지 규제하는 조치를 합리화 하는 구실로 삼을 것은 자명하다. 양국 간 신뢰는 깨어지고 양국의 국력은 갈등의 늪에서 소진되어 갈 것이다. 단기적인 국익을 위해 군사주의가 외교의 전면에 나서는 순간 장기적인 국익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제주 해군기지는 이어도 주변에서의 단기적 국익을 위해서도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교적 해결이 우선인 것이다. 외교냐 군사냐를 선택한 뒤 제반 정책을 재편성해야 한다.

적정 군사력은 국제관계의 현실에서 필요하지만 외교를 군사로 대치하고자 한다면 이미 그 순간부터 전쟁은 예고되는 것이다.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 아니다. 아렌트의 말을 응용하면 ‘전쟁은 정치가 실패한 결과’이다.

 

<주석>

1) 김태완, 전용주, 김도경, 김상원, 「한중일해양갈등연구: 갈등완화와 해양협력을 위한 제안」, <국제정치연구> vol.13 No.1, (국제정치연구, 2010), pp.77-99참조)

2) 대륙붕협약에 주권적 권리가 규정된 배경에 대한 설명과 논의는 Myres S. McDougal and William T. Burke, The Public Order of the Oceans, 1987, pp.693-724 참조

3) 이창위, 「배타적경제수역의 법적지위와 국내적 수용: 한중일의 관련 국내법에 대한 비교를 중심으로」, <해사법연구> 제21권 2호, (한국해사법학회, 2009), p.278

4) William McNeil, The Pursuit of Power: Technology, Armed Force, and Society since A.D. 1000,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4), pp.79-95참조

5) Fernand Braudel, The Perspective of the World, (New York: Harper & Row, 1984), p.203참조

6) Jeanette Greenfield, China’s Practice in the Law of the Sea, (Oxford: Clarendon Press, 1992), pp.88-89, 92참조; 이창위, 「배타적경제수역의 법적지위와 국내적 수용: 한중일의 관련 국내법에 대한 비교를 중심으로」, <해사법연구> 제21권 2호, (한국해사법학회, 2009), p.273재인용

7) 정하늘, 「한반도해역의 법적지위와 해상작전법」, <Strategy 21> 제26호, (해양전략연구소, 2010), p.12

8) 정하늘, 「한반도해역의 법적지위와 해상작전법」, <Strategy 21> 제26호, (해양전략연구소, 2010),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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