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22-07-20   289

[판결비평] 군사주의를 넘어 차별 없는 사회로

군사주의를 넘어 차별 없는 사회로

 

지난 4월, 대법원은 합의 여부, 행위 장소와 무관하게 동성 군인 간 성관계를 처벌해온 기존 판례를 뒤집고 합의 하에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진 성관계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항문성교’ 처벌이라는 명목으로 동성애자를 탄압해온 군형법 제92조의 6에 작은 균열을 낸 판결입니다. 그러나 법 자체가 반인권적인 내용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군형법 92조의6 완전 폐지를 위해 여전히 나아가야 합니다. 판결의 의의와 차별적인 법조항의 문제에 대해 한상희 건국대 법전원 교수가 비평했습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 220번째 이야기

 

대법원 전원합의체 2022. 04. 21 선고 2019도3047

주심 김재형 대법관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주의와 군사주의

 

매우 후진적인 국가통치술수 중에 국가주의라는 것이 있다. 모든 가치판단의 중심에 국가를 두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 공동체의 일상의 문제 등은 그에 종속되거나 그를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만 인정하는 허위의식을 말한다. “멸사봉공”이니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이니 혹은 손끝을 모자 끝자락에 맞추면서 “충성”이라 외치는 동작의 메시지 등은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국가를 다시 특정한 인간이나 조직과 일치시키는 것은 이 국가주의의 가장 타락한 형태가 된다. 이승만 전대통령을 국부로 모시거나 박정희를 반신반인의 국가상징으로 통용시키는 것은 모두가 익혀 아는 사례이고, 국가의 안보는 곧 군의 안보이며 군의 안보는 일방통행적인 군기로써만 보장된다는 대한민국 국군의 ‘고집통’스런 군사주의는 그 다른 예가 된다. 그래서 정권이 보기에 좋지 않은 서적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거나, 군인의 비행은 군인만이 심판하고 처벌할 수 있다고 억지를 쓰거나, 군사행정은 세상 어떤 일이 있어도 공개되어서는 안된다는 아집스런 주장은, <군대는 곧 국가>라는, 그래서 그 앞에서는 모든 것이 ‘익스큐즈’되어야 하는 이 불가역의 군사주의에 기반한다.

 

작은 한 걸음: 대법원

 

지난 4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전원합의체 2022. 4. 21. 선고, 2019도3047)은 동성애에 대한 군간부들의 아집광스런 편견을 걷어내는 것인 동시에 저런 국가주의=군사주의의 패악에 자그마한, 그러나 의미 있는 균열을 낸 사건이었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 기타 추행”을 한 군인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데, 대법원은 11대 2의 판결로 그 적용범위를 대폭 축소하였다. 이 조항은 기본적으로 군인이 동성끼리 성행위를 하는 것을 처벌하기 위한 조항인데, 종래에는 그것이 합의에 의하건 아니건, 부대 안이건 바깥이건 관계없이 처벌대상으로 삼았다. 대법원도 2008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이런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런 종전의 입장을 바꾸어, 두 사람간에 합의가 있었고 부대 바깥에서 이루어진 관계라면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군형법 제 92조의6은 미국의 전쟁법(Law of War)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미국은 1916년 전쟁법에 동성성교를 하려고 폭력을 행사한 죄(제125조)를 두었다가, 1920년 합의에 의한 동성성교도 처벌하는 것으로 확장하였다. 이어 1951년 이 법을 군사형사사법법(he Uniform Code of Military Justice)으로 개편하면서 동성은 물론 이성간 혹은 동물에 대하여 “부자연스런 성적 교접행위(unnatural carnal copulation)”를 한 경우를 처벌하는 것으로 하였다.(이런 제도는 1993년 클린턴 정부에서 DADT(Don’t Ask, Don’t Tell)정책으로 폐지되었다가 2011년 오바마정부에서 그조차도 폐지되어 현재 미군내에서는 합의에 의한 동성애를 금지하는 제도는 없어졌다) 이런 규정은 해방 직후 미군정에 의해 우리나라에 이식되었다. 이어 제정된 군형법에서는 “계간(鷄姦)”이라는 모멸적인 단어로 바뀌었고, 민주화의 성과를 자랑하던 2013년에는 “항문성교”라는 말로 포장하여 지금까지 시행되어 왔다. 

 

이 처벌조항은 “군 공동생활의 건전성과 군기”를 위한 것이라 스스로 변명하지만, 애당초 명백한 차별이자 사생활 자체를 부정하는 반인권적 규정이다. 부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장시간 같이 생활하는 군의 기율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이성간의 성행위를 포함한 모든 성행위를 규제하여야 한다. 또 영내에서의 성행위만 처벌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군기와 무관한 영외에서의 성행위, 그것도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성행위는 굳이 처벌할 이유도 없다. 혹은 합의에 의한 성행위와 그렇지 아니한 성행위의 구분도 필요하다. 아울러 군기강의 문제라고 한다면 형벌이 아니라 징계벌로써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이 규정은 오로지 동성간 성행위에 대해서만 처벌할 뿐 아니라, 그것이 합의에 의하건 아니건, 군부대 안이건 밖이건, 근무시간중이건 아니건 공연성이 있건 아니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처벌한다. 민주공화국의 군대가 이불 속까지 들여다 보면서 성행위의 방법까지 규제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간단하다. 그 대상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다. 군기니 뭐니 이유를 내세우지만 저 미국의 옛 사례처럼 동성애 자체가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성애자를 차별하며, 그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 자체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런 질곡을 깨치는 첫 걸음이다. 겉으로는 중립적(?)인 “항문성교”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나 명백히 동성애군인을 무차별적으로 처벌하는 수단이 되어왔던 이 조항의 의미를 대폭 축소한 것만으로도 이 판결은 높이 살 만하다. 동성애자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적용되었던 이 조항을 입법된지 75년만에, <영외 + 합의>에 의한 성행위만큼은 면책이 되게끔 하여 그나마의 숨통이라도 터 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판결이 형법 규정의 사전적 의미-동성애에 대한 무차별적 처벌-를 넘어선 판단이라는 비판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나마 대법원이라도 나서 우리 사회에 드리운 억압의 한 부분을 덜어 내었다는 점은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아니된다. 

 

슬픈 배반: 헌법재판소

 

사실 이런 차별적 처벌규정이 횡행하게 한 궁극적인 책임은 입법자인 국회에 있다. 동시에 헌법재판소도 그 공범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2002년, 2011년, 2016년 세 차례에 걸쳐 이 계간조항 혹은 항문성교조항을 합헌이라고 판단하면서 헌법에 충실하게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여야 할 책무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군대라는 공간이 “동성 사이의 비정상적인 성적 교섭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제하면서 동성 군인 사이의 성행위는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고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고는 2016년에 형사기소되어 2017년에 위헌제청된 사건에 대한 후속 결정은 5년이 넘도록 미루며 일종의 직무유기의 상태에 빠져 있다.

 

헌법재판소의 이런 합헌판단에는 엄청난 실증적 오류가 존재한다. 군대라는 폐쇄공간에서 동성간 성적 교섭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고 하지만, 실제 이 경우 군대 안이 아니라 군대 바깥의 은밀한 사적 공간에서 발생한 성행위를 처벌하고자 한 사건이다. 심지어 성소수자에 적대적인 군간부에 의하여 함정수사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색출”작전을 통해 억지로 찾아낸 사건이다. 

 

요컨대, 이 사건 피고인들의 성적 교섭행위는 군이 조자룡 헌 칼 쓰듯 휘두르는 군기강과는 전혀 무관한 채, 아무도 알지도 못 했던 매우 사적인 일상에 불과하였던 것을 굳이 조사하고 다그치고 윽박지르고 쥐어짜서 세상에 드러낸 사건이다. 사적 행위이기에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줄 이유도 위험도 없었고, 합의에 의한 교섭행위이기에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이라는 자기기만적인 순결주의가 타당할 가능성도 없다. 아울러 민주사회에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그 행위자를 징역형에 처하는 경우가 어디 있으며(성적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공연음란죄를 처벌하나 이는 사람을 성적 쾌락의 도구로 삼으면서 인간의 존엄성 그 자체를 침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다), 종교경찰이 전횡하는 이슬람 신정주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이불 밑 속 사정을 형사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곳이 이 세상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군사주의=국가주의의 허위의식은 헌법재판관의 판단을 흐트려 놓는다. 천하의 헌법재판소도 군대 앞에서는 마냥 약해진다. 그 앞에서는 헌법도 정의도, 인권도 다 팽개쳐버린다. 모든 사람이 다 읽어도 되는 책이 군부대에 들어서기만 하면 불온서적이 되어 반입금지대상이 되어버리는 마술 같은 현실이 헌법재판소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합헌판단을 받게 된다. 국민적 합의도 없이 심지어 국회의 의결도 없이 정부가 미군기지를 서해안 지역으로 이전하여 국가안보의 개념을 남북 대립의 축에서 동(한국-미국) 서(중국) 대립의 축으로 변경하게끔 한 것도 헌법재판소는 애써 판단하지 않기로 작정한다. 전 지구촌사회가 동의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권리도 헌법재판소는 몇 번을 부정하다 마지못해 애매모호한 조건을 달아 인정한다. 군인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제한한 헌법규정의 의미를 축소해석할 필요성이 있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곳이 헌법재판소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 군이라는 존재가 자리한다. 

 

모든 것을 군사화, 병영화하면서 국가라는 이름으로 폭력적 지배를 일삼던 군사정권의 흑역사를 겪고서도 헌법재판소는 군이라는 망령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민주화의 경로를 거쳐 이제는 포스트 87년체제까지 거론되는 이 시점에조차 헌법재판소는 군-안보-국가로 이어지는 권위주의적인 지배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은 여전히 공안사건으로 남아있어야 하고, 재분배정책을 통한 사회적 정의보다는 생산성과 경쟁력의 자본담론이 우선하며, 생존권에 앞서 재산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우리 헌법재판소의 지체된 인식은 그 속에서 구성된다. 

 

“항문성교 그 밖의 추행”이라는 황당한 규정을 합헌이라 결정한 논리구조 역시 마찬가지다. 군대는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조직이며, 따라서 군의 판단은 언제나 합헌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중지의 우매함이 그 결정의 밑바탕을 이룬다. 군의 기강을 흐트러뜨리는 것이 동성애가 아니라 성폭력이며, 성적 도덕관념의 핵심에 대등한 두 사람의 사랑이 자리하여야 함은 헌법재판관의 뇌리에는 새겨들지 못한다. 그저 그들의 군사주의적 시각에서는 군 수뇌부의 의사가 곧 군 기강이며, 그에 어떠한 도전도 없는 상태가 국가의 안보이며, 이렇게 구성되는 국가의 안보는 인권이건, 일상이건, 혹은 시민사회의 공공영역이건 가릴 것 없이 압도해버리는 최고의 국가가치로 자리매김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스스로 인권과 평화의 헌법 이야기들을 만들지 못하고 오로지 국가 혹은 지배권력으로부터 부과되는 지배가치에만 추종하는 헌법재판소의 시대착오적인 논리구조가 빚어내는 필연적 결과에 다름 아니게 된다. 

 

차별을 넘어 권력을 넘어

 

차별은 그 본질상 권력이 폭력으로 변형되는 방식이다. 한 사회에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고 이 일그러진 힘을 가진 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자의적으로 분류하고 구분하며 그 한쪽의 사람들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행위가 바로 차별이다. “항문성교, 그 밖의 추행”를 비롯한 군형법상의 숱한 인권침해적 조항들도 마찬가지다. 군사조직 내에 자의적인 차별행위들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음은, 군사계급에 따른 위계를 초과하는 또 다른 폭력의 서열이 그 속에 자리함을 드러낸다. 군기, 군사기밀, 안보, 안정 등으로 추상화된 관념들을 국가목적으로 설정하고 인권이나 사람의 문제는 그 수단의 자리에 치부해버림으로써, 군부나 군수산업체, 혹은 보수라는 이름으로 그 배경에 자리하는 숱한 정치권력자들이 사회적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저 이상한 합헌결정이나 턱없는 재판지연의 모습은 이런 구조에 합법성이라는 외피를 동원하여 군사주의의 절대성을 재강화한다.

 

실제 어떻게 보아도 이 “항문성교 그 밖의 추행”은 위헌이다. 그것은 남성군인간의 성행위뿐 아니라 “그 밖의 추행”이라는 추가요건을 통해 여성군인간의 성행위도 처벌하고자 한다. 이성군인 사이에서도 이런 성행위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애초부터 관심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이 처벌규정은 동성애자들을 향한 것이고 사이버수사팀을 동원하고 각종의 함정수사, 유도심문, 불법적인 강압수사 등을 통해 이들을 “색출”해 내기 위한 법률적 근거에 불과하다. 엄밀한 군기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부 권력층들의 사회적, 종교적 편견에 기반한 가상의 군기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군기라는 이름의 폭력이 행사되는 경로일 따름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들은 군대 내에서의 권력을 구축할 뿐 아니라 사회내의 지배적인 정치권력 혹은 자본권력과 유착할 수 있는 틀을 전유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의 군대는 국민의 군대가 아니며 그들의 군기는 우리 사회의 가치-인권과 평화-를 따르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의 것이라는 사실 만으로 정당화되고 타당하며 또 실효적으로 집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만들어진 그들만의 리그를 감싸고 든다. 물론 대법원의 저 판결이 이런 질곡을 털어버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나, 실제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그 판결이 있다 해서 “항문성교, 그 밖의 추행” 조항이 사라지지 않으며, 이 조항이 존재하는 한 대법원의 구성이 바뀌게 되는 순간 군사권력이 만든 종교경찰들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 군인들의 이불 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압색영장을 신청할 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 처벌조항 이면에 깔려 있는 군사주의와 국가주의의 압력을 털어내는 일이다. 저 대법원의 판결에 환호하는 우리의 목소리가 이제 헌법재판소와 국회를 향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시대의 외침에 눈 감은 채, 오로지 이불 속 항문성교에만 집착하는 저 군상들의 군사주의적 성도착증을 하루빨리 고쳐내어야 할 것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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