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22-08-31   188

[후기] ‘검사들의 나라’, 법치주의는 어떻게 왜곡되는가(상)

 

본 글은 참여연대가 2022년 5월 발간한 문재인정부 5년 검찰보고서 종함판 ‘표류하는 검찰개혁, 다가오는 검찰공화국’에 이어 준비한 특별강의 ‘검사들의 나라, 법치주의는 어떻게 왜곡되는가’의 후기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오병두 홍익대 교수가 진행한 강의 내용을 상편과 하편으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문재인정부 5년 검찰보고서 종합판 「표류하는 검찰개혁, 다가오는 검찰공화국」을 쓰는 작업은 지난했다. 복잡하고 다난했다. 줄지 않는 분량, 늘어나는 예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으로 다가왔다. 검찰개혁을 열망하는 시민들에게 지난 5년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나라에서 그가 몸담았던 검찰의 지난 5년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힘들었다. 아마 그래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고민하고 고뇌하고 꾸역꾸역 한 글자라도 더 써서 역대 최대 분량을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올해 검찰보고서는 예년에 비해 조금 늦게 발행되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이유도 있었지만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야 할 4월에,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에 온통 신경쓰느라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3월의 대통령선거와 4월의 ‘검수완박’ 법안 통과, 5월의 검찰보고서 발행까지 숨차게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자, 여기까지 일단 끝!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여러 주요 공직에 검사 출신 인사들을 등용했다. 친분이 있다는 것은 죄가 아니니, 친분있는 사람과도 얼마든지 같이 일할 수 있다. 능력과 자격을 갖추고 공정한 경쟁 기회가 보장되거나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인사였다면 문제될 것은 없었다. 문제는 ‘문제가 있다’는 데에 있었다. 대통령 비서실을 시작으로 검사 출신 인사들이 금융감독원 원장,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법제처장이 되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검사에서 장관으로 직행했다. 새정부의 ‘인사권’이라는 씨줄과 유별난 ‘검사 선호’라는 날줄이 교차되면서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검찰개혁은 표류를 시작했고 검찰공화국은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문재인정부 5년 검찰보고서의 제목을 잘 지은 걸까 아니면 잘못 지은 걸까.

 

이명박의 경제살리기, 윤석열의 법치주의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상이 현실이 되는 일이 언제나 가슴 벅차거나 기쁜 것만은 아니었다. 한국 최초의 달탐사선인 ‘다누리’가 달나라로 가는 순간에 땅 위에서는 법무부의 새로운 시행령이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었다. 그러리라 생각했고, 예상했던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참여연대는 검찰개혁을 열망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검찰보고서를 다운로드 받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구독하는 검찰개혁 단일 주제 뉴스레터 ‘끄의세계’(그사건그검사의 세계) 구독자를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모여서 검찰보고서에서 채 말하지 못한 지금 현재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해, 법치주의와 검찰공화국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명박 시즌2가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명박 정부는 ‘경제살리기’를 기조로 각종 규제완화 정책을 폈다. 공약이었던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여론과 함께 특별법 제정이 어려워지자 하천법 시행령과 국가재정법 시행령 개정으로 22조원을 쏟아 부었다. 선박연령에 대한 규제 또한 해운업법이 아니라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최대 30년으로 늘렸다. 그 결과 우리는 녹조라떼와 세월호 참사를 보았고, 지금도 겪는 중이다. 

 

과거 이명박정부의 ‘경제살리기’ 기조에 사람들은 “경제가 죽었어야 살리지, ‘경제살리기’를 위해 살아있는 경제를 먼저 죽이겠다는 뜻인가”, 라고 말하기도 했다. 윤석열정부가 강조하는 ‘법치주의’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이 든다. 법치주의가 (지난 5년간) 없어서 (앞으로) 법치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법치주의가 세상에서 제일 좋으니까 우선해야 한다는 뜻인지 헷갈리기 딱 좋다. 그렇다면 도대체 법치주의란 무엇일까? 법치주의란 국가기관을 구속하는 것이지, 국가기관이 국민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윤석열정부가 말하는 법치주의는 검사 등 법률가가 법으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법치주의는 법에 의한(rule by law) 통치를 의미하는 개념으로서 오늘날 법치주의는 단순히 국가가 법률의 구속을 받는 것을 넘어 법률을 비롯한 입법·행정·사법 등 모든 국가행위는 그 내용 역시 정당해야 하며 사회정의 실현에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는 원칙”(권한쟁의심판 청구서, 250쪽)

 

법학을 가르치는 대학에서 법치주의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닌, 법의 지배(rule of law)라고 배운다. 법을 통치의 수단으로만 악용하는 것(rule by law)은 잘못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말할 때, 그 법(rule)은 일반 시민뿐 아니라 입법자나 법집행자, 권력자 모두를 구속한다는 것도 배운다. 그래서 이 법(rule)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닌, 법의 지배(rule of law)라는 의미는 학생들도 배워서 알고 있다. 

 

전문가인 검사들이 그리고 법무부가, 법 전문가로 구성된 헌법재판소에 대학생도 배워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른, ‘법에 의한(rule by law) 통치’라는 내용을 제출한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왜 이처럼 왜곡된 법치주의를 주장할까?’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부터 생겼고 무엇이 이런 인식을 낳았을까? 

 

한편, 법치주의를 법에 의한(rule by law) 통치라고 기재한 권한쟁의심판 청구서의 그 다음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국가행위의 합법성 뿐 아니라 정당성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법치주의 원칙은 민주국가에서 자유권 보장으로 인해 제한되지 않는 민주적 다수의 절대적 권력은 곧 민주적 폭정으로 변질될 수 있으므로 다수의 절대주의에 대해서도 적용 되는 원칙이기도 합니다.”(권한쟁의심판 청구서, 251쪽)

 

얼핏 보면 모두 맞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항 또는 견제하는 ‘원칙’으로서의 법치주의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것은 또 우연일까?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 즉 법을 통한 통치를 내세우며 법을 지배의 무기로 삼고자 하는 태도와는 무관한 것일까?

 

윤석열식 법치주의 토대, 검찰공화국

특히 윤석열정부가 ‘역량’과 ‘적재적소’라는 이유를 들어 검사 출신들을 전방위적으로 임명하는 상황을 보면 더욱 의문이 든다. 금융범죄를 수사했다는 것이 곧 경제전문가라는 뜻이 아니고, 금융범죄 수사 검사였을 뿐 금융정책 전문가나 경제통이 아닌데도 검사 출신 인사들을 정부 요직에 등용하는 현상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검사들의 문화, 즉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알아야 한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얘기가 있었다. 이는 곧 사람이 아니라 조직에 충성한다는 뜻이고, 그 조직은 바로 검찰을 의미한다는 해석이었다. 조직을 배신하면 버티지 못하게 한다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소름끼치는 것은 곧 그들만의 세상, ‘검찰공화국’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 옛날 자본권력이 국가를 지배했다던 ‘삼성공화국’과 같이 그들 나름의 질서와 자원의 배분이 이루어지는 검찰권력이 지배하는 검찰공화국이라니, 처서도 지났는데 때늦은 납량특집이었다. 

 

‘공화국’이라는 세상 좋은 뜻을 이런 무시무시한 얘기에 붙여도 예의에 어긋나지는 않을까? 검찰공화국은 검찰 구성원을 중심으로 하는 자율적인 권력체계를 뜻하는데 물론 ‘검찰제국’이나 ‘검찰왕국’이 현재의 상황을 더 잘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공화국이 검찰권력에 의해 지배되는, 검찰구성원의 보호를 위해 민주공화국의 이익과 배치되는 결정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참여연대는 검찰공화국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정권 초기인 지금은 검찰권력과 행정권력의 협력이 필요할 때지만, 앞으로 5년 동안 허니문이 지속될 수 있으리라 믿을만큼 검찰권력과 행정권력의 불타는 사랑이 있었는지. 물론 검-언-정 네트워크도 잊어선 안된다. 언제든 심사는 뒤틀릴 수 있고, 배알이 꼴릴 수도 있으니 서로의 권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것이긴 한데, 왜 놀라는 것은 항상 시민들의 몫일까.

 

검찰공화국의 시민권은 당연히 검찰, 검사에게 있다. 온전한 시민권을 가진 검사만이 ‘역량’과 ‘적재적소’의 주인공일 수 밖에 없다. 시민권을 갖지 못한 누군가는 역량이 있어도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유배되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특히 최근에 가속되고 있는 법무부의 탈검찰화의 반대인 ‘법무부 재검찰화’ 현상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법무부의 외청에 불과한 검찰청에서 법무부에 검사들을 파견해 법무부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했던 문재인정부의 ‘법무부 탈검찰화’ 정책에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효율성이 떨어져서+인재가 없어서=검사파견’이라는 공식을 제시하며 ‘법무부 재검찰화’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역시 ‘역랑’과 ‘적재적소’라는 윤석열정부의 논리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다.

 

검찰공화국의 적은 누구일까? 답은 당연하게도 감히 검찰공화국에 반대하는, 무엄하게도 검찰공화국에 균열을 내려는, 검찰개혁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검사와의 대화를 애써 찾아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검찰공화국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에 저항하는 검찰조직을 보아 왔다.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에 반대하며 사표를 던진 윤석열과 문무일, 두 검찰총장을 통해서. 그리고 검사들의 집단행동을 통해서도.

 

법치주의란 국가기관을 구속하는 것이고 국가기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위의 근간인 규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식 법치주의는 단순히 법에 의한(rule by law) 통치가 아니라 법의(rule of law)지배라는 개념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법치주의의 근간인 규정이 아니라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이 먼저 보이는 윤석열식 법치주의가 탄생한 그 곳,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검사들의 세상인 검찰공화국에 대한 이해가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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