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22-08-31   160

[후기] ‘검사들의 나라’, 법치주의는 어떻게 왜곡되는가(하)

 

본 글은 참여연대가 2022년 5월 발간한 문재인정부 5년 검찰보고서 종함판 ‘표류하는 검찰개혁, 다가오는 검찰공화국’에 이어 준비한 특별강의 ‘검사들의 나라, 법치주의는 어떻게 왜곡되고 있나’의 후기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오병두 홍익대 교수가 진행한 강의 내용을 상편과 하편으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바로가기]

 

검찰공화국의 주적, ‘검찰개혁’

검찰개혁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수사는 수사대로, 기소는 기소대로. 간단한데 간단하지가 않다. 첫번째로 수사권에 대한 정의가 없다. 무엇이 수사인가? 조사를 받고 사건에 대해 조서를 쓰고, 출석을 요구하고, 압수수색 영장을 받는 모든 활동들이 수사의 개념에 포함된다. 경찰이 하는 것만 수사고 검사가 기소를 위해 증인을 출석시켜 질문하는 것은 수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구분이 안되는 일이니까.(물론 직접수사권과 보완수사권이 있지만 모두 합쳐 큰 개념의 수사권이라고 보자) 그렇다면 수사권을 왜 검사에게서 분리해야 할까? 자백의 선수라는 검사, 수사의 달인이라는 검사를 내세운 정의구현이라는 얘기를 들어봤다. 그리고 그 이면에, 검사가 다른 사건을 빌미로 자백을 받아내려 했다는 얘기도, 전혀 다른 사건으로 피의자를 구속시키는 경우도, 돈이나 권력의 유무로 운명이 갈리는 이른바 ‘먼지털이식 수사’나 ‘표적수사’, ‘답정너 수사’는 물론 ‘봐주기 수사’ 사례들도 보았다. 우리는 70년 검찰의 역사에서 수 많은 ‘수사권 남용’ 사례를 보고 들었다. 

 

검찰이 직접수사권을 행사했던 70년 역사가 자랑스러울 수 있지만, 그 역사의 모든 면이 찬란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잡아간다는 망태 할아버지도 아니면서 70년 동안 수사권과 기소권을 무기로 휘두르며 사람들을 잡아갔던 그때 그 시절의 영광이 그립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망태 할아버지 설’이 어른들에게 대를 이어 비밀리에 전수된 전국 규모의 세대통합 대어린이 사기극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70년 동안 길들여진 것이 아닐까? 검찰의 수사권 오남용은 정의구현을 위해선 무시해도 좋을만큼 아무일도 아니고, 검사는 수사를 무척이나 잘하며 그래서 수사와 기소권은 검사에게만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70년 동안 해봤더니 이대로는 안되겠구나.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도록, 공정한 수사를 하도록 최선의 방법을 찾자.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자. 그래서 ‘검찰개혁’을 말하는 이들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주장한다. 70년간 검찰이 온전히 지켜온 수사권과 기소권 중에서 기소권만 남기고 수사권은 다른 기관(1단계로 경찰, 2단계로 독립적인 수사기관 설립)으로 이관하자는 것이다. 이로 인해 70년간 검찰이 공고하게 지켜온 권한에 대해 감히 입에 올리고 균열을 내려는 자, 감히 검찰공화국의 시민권이 없는 그들(우리) 모두가 검찰공화국의 주적이 되어 버렸다.

 

수사와 수사 아님, 수사와 기소는 어떻게 분리해야 할까?

그런데 여기는 수사, 저기는 수사아님이라고 구분할 수는 없다. K-수사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라마다 범죄의 수사 범위도 체계도 다 다르기 때문에 글로벌 스탠다드도 없다. 검찰이 검사의 수사권의 예로 내세우는 독일만 하더라도, 독일의 검사는 수사권이 있지만 직접 수사를 하지 않고 경찰에게 수사를 맡긴다고 한다. 검찰 수사관 같은 직접 수사 인력이 없어서다. K-검찰은 부패범죄, 경제범죄에 한해 직접 수사(직접수사권)할 수 있지만 시행령을 통해 실제로 모든 범죄를 수사 개시(수사개시권)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약 6천여명의 검찰 수사관이 있다. 그러니 ‘독일 검사는 직접 수사권이 있어요’ 운운하려면 검찰 수사관부터 내 놓아야 할 것이다. 문제의 핵심 두번째는 바로, 검찰의 수사 인력 즉 검찰 수사관이다. 그리고 여기에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에 대한 참여연대의 답이 있다. 바로 조직의 분리라는 것이다.

 

수사와 수사아님을 기능으로 구분해 검찰의 수사기능을 떼서 공소기능만 남겨두자는 수사-기소의 기능 분리에 대한 것이 검찰분권론이며, 현재 통과되어 시행을 앞두고 있는 검찰청법 개정안의 토대이다. 그런데 수사와 수사아님을 기능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어려우니, 검찰의 수사-기소의 조직을 분리하자는 수사기소조직분리론이 참여연대의 입장이다. 이 두가지 모두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점, 검찰에게서 분리한 수사권을 별도의 수사기관을 만들어서 부여하자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한번 더 들여다보면 입장이 다르다. 검찰은 기소권은 당연히 검찰에게 있고, 직접수사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직접수사강화론을 앞세우고 있다. 모법(9/10 시행 예정검찰청법 개정안)을 무력화한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시행령을 떠올리면 된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직접수사권을 갖되, 그 범위를 축소하자는 직접수사축소론 입장이었다. 이 두 가지는 검사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있으면 경찰이 뭐가 되든 상관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9월 10일 시행 예정인 검찰청법, 형사소송법은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이나 국가수사청 설치를 염두에 둔 것이다. 1단계로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제한해서 그 권한을 경찰에 이관하고, 2단계로 중대범죄수사청이나 국가수사청을 만들어 수사인력을 한 군데에 모아서 수사만 전담하게 한다는 구상이 검경수사권 조정이다. 검찰 수사관 6천여명과 함께 경찰 중 수사경찰이 이 안에 포함될 예정인데, 이 구상에서 반발하고 있는 것이 법무부다. 검찰은 지난 70년간 그래왔던 것 처럼 검찰 구성원의 당당한 한 축인 검찰 수사관 인력을 2020년 1차 검경수사권 조정에서도 2022년 ‘검수완박’ 사태에서도 소중히 지켜왔다. 근로감독관 같은 특별사법경찰을 포함한 경찰 수사인력은 6만여명이고 검찰은 수사관 6천여명과 검사 1,500여명을 수사인력으로 갖추고 있다. 어림잡아도 6:1의 비율인데 ‘수사기관은 조직으로 수사한다’는 그 동네 격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런 얘기가 있었나 싶다면, 검찰이 무슨무슨 대규모 수사단을 꾸렸다거나, 수사단에 검사를 보완했다는 등의 기사를 검색해 보면 된다. 이런 류의 기사 대부분은 검사를 늘렸으니 앞으로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추측된다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시행령으로 수사 개시 범죄 범위를 확대했으니 검찰 수사관이 필요한 것은 검찰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다. 검경수사권 조정 당시 이들을 분리시키지 못해 검찰의 직접수사권 제한의 의미를 희석시킨 것은 크나큰 실책이었다. (1-그러니까 계속 얘기했지만, 수사-기소 조직을 분리했어야 했다. 2-그리고 국가경찰위원회를 무력화시킨채 내버려 둔 것도 엄청난 실책이었다. 이로 인해 경찰국 신설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왜곡과 모순이 함께할 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서민 괴롭히는 깡패 수사, 마약 밀매 수사, 보이스피싱 수사, 공직을 이용한 갑질수사, 무고수사를 도대체 왜 하지 말아야 합니까.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추가 보도자료에서 이렇게 물었다. 시행령의 문제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니 날 잡고 각 잡아서 따로 얘기해야 한다. 그러나 한동훈 법무부장관에게 되묻고 싶다. 검찰은 시행령에 나온 범죄를 모두 수사 개시 할 수 있습니까? 

 

물론 모든 수사를 개시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사 개시는 하더라도 계속 진행은 될 수 있을까? 수사 개시 된 사건은 언제쯤 종료가 될 수 있을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선별’할 것이라는 추측을 제기하고 있다. 법무부가 일단 넓혀 놓았으니, 검찰은 그 중에서 원하는 수사만 골라서 할 것이라는 추측이 힘을 받는 것은 검찰이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모두 하지도 않고 선별할 거면서도 마치 이 땅에 경찰이나 공수처는 없고 오로지 검사만 있는 것처럼, 왜 수사 못하게 하냐는 질문은 무슨 의도였을까?라는 질문은, 앞서 ‘왜 법치주의를 왜곡할까’라는 질문과 함께 생각해봐야 한다. 그들은 ‘일국의 검사들’이고 우리는 ‘일개 시민’에 불과하니 그 뜻을 감히 헤아리기조차 어렵지만 법치주의를 왜곡하고, 검사만이 수사할 수 있고 또 모든 사건을 수사해야 하는 것처럼 ‘선전과 선동’으로 왜곡하는 그들의 모습을 함께 두고 보면 이 모순이 이해되는 역설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들만의  법치주의를 토대로 한 검찰공화국에서 시민권을 가진 자들은 ‘일국의 검사, 장관, 대통령’이지, 시민권 없는 우리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경험은 불쾌하고 불편했다. 정치적인 이유가 다분했지만 자신이 수사했던 피의자에게 “면목이 없다, 굉장히 죄송하다”던,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으며,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건넸다는 얘기를 떠올리면서.

 

언제나 옳은 깨어있는 시민의 힘 그리고 참여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검찰공화국의 시민권자인 검찰이나 법무부도 검찰개혁이 싫지만 직접 반기를 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튼튼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검찰개혁 이슈에 한정해서 보수언론의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의 행태를 지켜보는 시민들과 대법원의 공소권 남용 판결도 그 근거가 아닐까. 검찰개혁은 단순히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과 경찰, 공수처까지 전체 수사기관을 보면서 시민들의 의사를 얼마나 반영하는지, 시민들이 얼마나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지도 함께 눈여겨 봐야 한다. 시민들의 참여로 전문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법조 관료들이 주장하는데 법 전문가가 아니니까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고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변호사를 조력자로 함께하도록 하고 시민의 공정과 상식으로 해결할 일이지 법 전문성이 없는 것이 잘못이나 죄는 아니다. 또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법조 관료의 입장일 뿐 참여하는 시민들의 책임이 아니다. 검찰개혁은 시민의 참여와 감시가 알파요 오메가이자 시작과 끝이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안심이 되었다. 우리에겐 참여연대 입장을 지지해주는 회원들과 시민들이 있었다.  검찰개혁을 열망하던 이들과 주고받았던 공수처에 대한 진지한 질문, 금융범죄수사를 확대한 검찰로 인해 공정거래 사건, 금융위 사건 등 법조계의 새로운 블루오션의 탄생과 전관예우, 법무부 시행령에 대한 이야기가 시종일관 진지하게 이어졌다.

 

그리고 숙제가 남았다. 경영계 민원을 담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을 소관인 고용노동부가 아닌 기획재정부가 마련했다는 내용에 마음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행정안정부의 시행령 개정으로 탄생한 경찰국이나 법무부가 검사의 직접 수사 개시 범죄 범위를 확대하는 것처럼, 행정부가 모법을 무력화하거나 이를 시도하고 있다는 정황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래도 괜찮을까. 이명박 시즌2라는 우려는 우려에 그칠 수 있을까. 우리는 5년 후 어떤 결과를 마주하게 될까. 앞날을 내다보는 힘이 있다면 좋겠지만 불안한 미래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참여연대의 모토인 ‘깨어있는 시민의 힘’은 지난 참여연대 창립 이후 지금까지 28년간 언제나 유효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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