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6-02-01   1407

[03호] 내가 만났던 어떤 판사

이 글은 사법감시 1호에 실린 '우조교성희롱 사건 항소심판결에 대한 글'과 95년 10월 18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박용상 판사의 절차위법 해고인정'기사를 접한 박현옥씨가 사법감시센터에 투고한 글이다. 2호에 미쳐 게재하지 못하고 이번 호에 싣는다.

지는 게 너무도 당연했다. 이기리라 짐작했던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었다. 그런 점에서 나 역시 반성하고 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우조교가 패소했다니… 처음에는 나 자신도 멍청한 기분이었다. 왜 졌을까? 그러나 의문은 곧 풀렷다. 담당 판사의 이름 석자를 확인하는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박용상!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한숨처럼 배어 나왔다. 지는 게 당연하지… 꿈에라도 다시 볼까 두려워 기억에서 어렵사리 밀어냈던 그 얼굴이 함지박 만하게 내 앞에서 지분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본 적도 없던 우조교의 얼굴이 이상하리 만치 또렷하게 그려졌다. 그녀의 부끄러움, 절실함, 안타까운 용기까지도 가슴에 와 닿았다. 그녀는 이미 내 친구였다. 동병상린의 아픔을 겪은 동생이었다.

부당하게 한직으로 전직됐다. 전직의 부당함을 주장하자, 이번에는 해고로 답했다. 90년 당시 대학 졸업생들이 동경해마지 않던 프랑스 파리바은행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내가 당했던 일이다. 외국 은행 내에서 감히 노동운동을 했다는 죄목이었다. 돈 듬뿍 줄테니 나가라는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대가였다. 노조 부위원장, 쟁의부장을 맡았던 것이 큰 실수였다. 노조위원장을 내쫓을 대 부당함을 역설한 것도 괘씸죄에 해당됐다. 전직의 부당함을 노동위에 제소한 것을 용서할 수 없는 죄였다. 신문과 방송이 내 사건을 수 차례에 걸쳐 대서특필하자, 그들은 막바지로 치달았다.간단히 해고당했다. 그리고 사건은 은행을 떠나 법원으로 옮겨졌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겠다고 했다. 얼마나 고통이 크냐고도 했다.그런데 나는 태연했다. 너무도 당연히 이길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해고사유가 너무 엉뚱했다. 신문과 방송에 알려져서 은행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근로자의 충실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 해고사유였다. 나를 도와주던 변호사들도 실소를 금치 못했다. 업무능력의 우수성은 이미 여러 번 전임 지점장 때부터 인정받은 터였다. 은행도 이 사실은 부인 못했다. 은행이 파업상태로 간 적도 없었다. 신문과 방송은 내가 기사를 내라 마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와 변호사, 그리고 나를 도와주던 많은 사람들은 재판이 있을 때마다 웃으면서 만났다. 초조와 긴장이 서려야 할 법정 복도에서 태연하게 담소를 즐겼다. 당연히 이길 줄 알았다. 그런데 졌다. 나보다도 변호사들이 더 경악했다. 내 사건을 기사화했던 기자들도 어이없어 했다.

"분쟁을 회사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외부에 알려 회사의 대외적 신뢰도와 명성을 훼손했다." 판결문이 내세운 이유다. 믿을 수가 없었다. 고소고발권은 국민의 권리다.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를 위해 노동위가 존재한다. 신문과 방송은 자체적인 판단에 의해 사회의 정의를 요구한다. 그런데도 법으로 인정된 행위들이 해고의 사유가 된다고, 부당한 것이라고, 그래서 박현옥은 해고당해 마땅하다고 못박는 그 법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것도 판결문이라고 끄적거리는 판사도 있는가? 말도 안되는 논리를 동원해서라도 주어진 결론만 만들어 내면 되는 배짱을 지닌 판사는 누구인가? 내 사건이 가장 반노동법적인 사례의 하나로 법원판례집에 실려도, 일간지의 사설들이 판결의 부당함을 알리는 논설을 실어도 눈 하나 깜짝 않는 배포를 지닌 자는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담당판사의 얼굴과 이름이 내 기억 속으로 들어온 것이 그때였다.

의도적인 신체적 접촉이 지속적으로 있었던 건 사실이야. 그런데그런 행위들이 심각하고 철저한 것은 아니었어. 우조교가 이를 명시적으로 거부한 적도 없고… 머리를 만지고, 입방식을 하자고 하고, 몸매를 감상하긴 했지만, 그 정도야 한국남자 누구나가 그러잖아? 회사 가 봐. 거긴 더해. 뭘 그런 걸 가지고 법정으로 오나? 여자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계집애가 어떻게 행동했길…판결문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려운 용어들의 연속인 판결문을 나는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 판사의 모진 편견이 법적 권위를 등에 업고 우조교를 몰아세운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그 모진 편견들이 모아져서 "뒤집기의 명수", "소신있는(?) 판사" 등의 칭호를 얻은 그가 아니던가? 피의자를 간첩놈이라 닦아세우던 그 용기로 그 무엇은 못하랴 싶었다.

나는 법리적 해석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없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안다. 판사는 법을 만들지 않는다. 법을 주의 깊게 적용한다. 판사는 사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법적 저울에 올려놓는다. 판사가 재판하는 것이 아니다. 법이 한다. 그리고 법이란 잣대는 양심에 기초한 대중의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판사는 법을 만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나름의 편견을 법적 권위로 도배한다. 그래서 그 판사의 판결은 대중의 상식과 거리가 있다. 그런 판사가 있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우조교도 그 많은 정직한 판사들 중에서 하필이면 그 판사를 만났다. 그런 사람이 판사로서 승승장구하는 사법제도를 지닌 나라에서 무모하게 재판을 시작했다. 그게 우조교의 실수였다. 나도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있고… 우조교를 만나 따스한 커피나 한 잔 했으면 싶다.

박현옥 l 프랑스파리바은행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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