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2000총선연대 2001-07-12   1323

낙선운동 유죄판결에 대한 입장

서울지방법원은 총선연대 지도부 6인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였다. 재판부는 실정법 위반으로 낙선운동의 지도부를 정죄하였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정죄된 것은 낙선운동이 아니라 선거법 그 자체이다. 유권자들의 자구적 참정권 운동에 유죄판결이 내려지는 순간 국민의 참정권을 법으로 보장하는 것을 그 본래적 목적으로 하는 선거법의 기본정신은 질식당하였고, 법으로서의 정당성과 권위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말았다.

우리가 가장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재판부가 국민 대다수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평화적인 참정권 운동인 낙선운동의 헌법적 정당성 여부를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외면했다는 점이다. 총선연대 변호인단이 요구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총선연대에 적용된 선거법 조항이 과연 무엇인가? 선거 전 또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시민단체는 인터넷 자료게시와 기자회견 이외에 집회·유인물 배포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종류의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한 독소조항에 의한 것이다. 문제의 조항들에 대해서는 국민의 참정권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제한다는 법조계 내외의 문제제기가 계속되어 왔고, 시민단체들도 지난 5년간 일관되게 그 개정을 요구해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독소조항이 개정되지 않은 것은 정치인들의 고의적 직무유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러한 정치인들의 태도가 낙선운동의 한 원인이 되었었다.

따라서 잘못된 선거법의 기계적 적용이 가져올 국민의 참정권의 침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선거법의 독소조항에 대한 헌법적 논의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이러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자는 최소한의 제안조차 거부한 것은 낙선운동을 지지하고 이 운동에 동참했던 대다수 유권자들의 정치참여 요구와 정치개혁의 열망을 질식시키는데 동조한 것이며 이를 법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당한 노력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선거법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재판부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번에 낙선운동에 대해 내려진 벌금 500만원, 300만원의 형량은 정치인들에게 적용되어온 선거법 위반 죄의 형량과 커다란 대조를 보이고 있다. 16대 총선 선거법 위반 관련 정치인 중 1심 판결을 마친 당선자 중 본인이 100만원 이상의 벌금에 처해지거나 회계책임자 등이 징역형을 받아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은 이는 12명이며, 이 중 1심에서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에 처해진 의원은 단 두 명에 불과하다. 또한 1심에서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3명 모두 2심에서는 80만원으로 감형, 의원직을 유지하게 되므로써 이른바 ’80만원 정찰제’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이번에 80만원으로 감형된 장영신 의원의 경우는 총선연대가 직접 장 의원이 회장으로 있던 애경그룹 직원들의 조직적인 불법선거운동 관련 자료 일체를 근거로 장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무혐의’로 처리되고 말았다. 더욱이 일단 당선된 의원들은 선거법 재판을 기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재판에 불출석하거나 심지어 방탄국회를 열면서 판결을 지연시키는데 성공하고 있어 “일단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상식 아닌 상식이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불법을 일삼는 낡은 정치인들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정치개혁을 위해 나선 유권자들의 자구적 행동에는 철퇴를 가한다면, 이런 선거법이 과연 무슨 소용이며 재판부는 어떤 정의를 위해 존재한단 말인가?

총선연대는 지난 2000년 1월 12일 발족기자회견을 통해 “총선시민연대가 변화한 시대와 성숙한 유권자의 편에 서고자 한 것이 불법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법정에 설 용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최대한 법의 권위를 존중할 것이며 총선이 시작되는 그 날까지 낡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낡은 선거제도는 변화되지 아니하였고 그 결과 총선연대의 합헌적인 실천은 위헌적인 낡은 법과 이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재판부에 의해 정죄되고 말았다. 낙선운동을 지지한 국민 80%도 낡은 제도와 재판부의 낡은 사고에 의해 함께 정죄된 것이다.

우리는 이 판결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오늘의 판결은 몇몇 시민운동가에게 내려진 판결이 아니라 정치개혁을 향한 국민의 열망 전체에 내려진 유죄판결이기에 더더욱 승복할 수 없다. 비록 낡은 법과 왜곡된 적용의 문제점이 온존하는 현실이라 하더라도 하지만 우리는 최종적인 순간까지 법정에서의 투쟁을 계속하여 유권자들의 참정권회복 운동의 정당성을 일관되게 주장할 것이다. 또한 국민에게 약속한대로 시대에 역행하는 낡은 선거법을 국민을 위한 선거법으로 되돌려놓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유권자의 정치개혁 열망을 최선두에서 대변한 결과로 오늘 우리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낡은 제도와 낡은 사고로는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잠재울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는 것을 세계 민주주의 운동의 역사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참여정치의 시대는 이미 열렸고 낡은 정치개혁을 위한 유권자들의 행동은 시작되었다.

2001. 7. 12

지은희 최열 박원순 정대화 김기식 김혜정

의정감시센터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