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대선유권자연대 대선자금 1차 실사 결과 발표

대선자금시민모니터단 각 당 선거자금 실사 착수

불법적인 선거자금 사용이라는 관행을 깰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대선유권자연대의 선거자금 실사 작업이 각 당의 불성실한 자세로 인해 벽에 부딪혔다.

12월 4일, 2002 대선유권자연대(이하 대선연대)가 각 정당 선거자금 실사에 착수해 각 당이 공개한 내용을 검토한 결과, 불투명한 선거자금 운영이라는 기존의 구태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민주노동당만이 대선연대에서 요구한 기준에 대체적으로 부합하도록 선거자금을 사용하고 있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경우, 이중장부 사용 등 각 정당의 불법적인 선거자금 운용을 따지기 전에, 대선연대에 공개한 자금사용 내역조차 스스로 약속한 선거자금 공개 기준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이 대선자금시민모니터단(이하 모니터단)의 평가다. 민주·한나라 양당이 1차 공개 때와 같은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실사 자체가 무의미해 질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민주, 단일계좌 사본 공개 거부… “시간 없어 못 한다”

이날 실사는 대선연대가 대통령 선거 전까지 진행할 세 차례 실사 작업 중 그 첫 번째로, 각 당을 책임진 모니터단이 민주당과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을 방문해 해당 서류를 검토했다.

가장 먼저 실사를 받은 정당은 민주당으로 오전 10시 당사 소회의실에서 실사작업이 진행됐다. 실사를 위해 대선연대측에서는 박원순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을 팀장으로 8명이, 민주당에서는 배기운 총무위원장을 포함한 3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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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선거자금을 실사하고 있는 대선자금시민모니터단

실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민주당쪽은 모니터단에게 선거자금 공개에 대한 한나라당과의 형평성 문제를 따지고 나왔다.

배기운 총무위원장은 “우리 당은 11월 18일 노무현 후보가 선거자금 공개를 약속한 이후, 21일부터 3일마다 인터넷에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7일마다 공개하고 있다”며 “선거는 실전이다. 선거자금을 공개하는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다. 공개 기준이 한나라당과 다르다면 형평성이 맞지 않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모니터단은 “애초에 우리가 각 당에 요구한 것은 7일 단위 회계장부 공개였지만, 노무현 후보가 좀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3일마다 공개를 약속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원순 대선연대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은 “민주당이 한나라당보다 자주 선거자금을 공개하는 것은 투명성이라는 부분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에 비해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지점”이라고 답한 뒤 “오히려 3일마다 성실한 공개가 계속된다면 대선연대에서도 그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며 더 적극적이고 투명한 선거자금 공개를 당부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한나라당과의 형평성을 따지면서까지 선거자금 공개에 대한 자신감을 보인 것과는 달리,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노무현 후보가 선거자금 공개를 약속한 바로 이튿날인 19일부터 선거자금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해 온 민주당이 밝힌 선거자금 지출 총액은 41억6천4백여 만원으로, 특히 지난 달 27일 후보등록 이후 지출 총액은 28억2천5백여 만원이었다. 세부적으로는 지구당 유세차량 제작지원비 9억 8천여 만원, 정책개발연구원 활동비 4억 3천여 만원, 대통령 후보 연설차량 임차비 3억여 원 순이었다.

3시간 동안 진행된 실사는 민주당이 노무현 후보가 서명을 통해 이미 약속했던 공개 기준을 이행하지 않아, 결과적으로는 이에 대한 대선연대의 문제제기와 민주당의 해명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각 당 후보에게 선거자금 공개 약속을 받으면서 대선연대가 가장 강조한 것이 발생주의 원칙에 입각해 외상이나 가지급금 형태의 거래까지 회계장부에 기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정당활동비 단일계좌 사본 공개 자체를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공개한 내용에는 외상 내역과 가지급금, 가지급금 수령자 명단 등 필요한 증빙자료가 누락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무통장입금액은 있는데 거래명세서가 없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없게 만들어 놓는 식이었다.

대선연대의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민주당쪽은 “선거로 너무 바빠서 사람과 시간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하는가 하면,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선관위에 보고하는 수준에서 서류를 준비했다”며 자당(自黨) 후보가 약속한 내용과는 동떨어진 답변으로 문제를 피해갔다.

모니터단의 박정식 부장은 “‘선관위 보고를 기준으로 공개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선관위 보고 과정에서 사용 내역을 짜집기해 왔던 그 동안의 관행 때문에 우리가 발생주의 원칙으로 공개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반박한 뒤, “거액의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에서 구멍가게 수준에도 못 미치게 회계를 처리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하면 선거자금 운용의 투명성 확보라는 애초의 목표 달성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한나라, “우리가 시민단체를 위해 존재하나?”약속과는 달리 선거자금 사용 내역을 불성실하게 공개한 것은 한나라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한나라당이 밝힌 11월 27일 이후 일주일 동안 사용한 지출 총액은 35억6천여 만원이었고, 구체적으로 시·도 및 구시군 선거사무원 수당 14억 5천여 만원, 정강·정책 신문광고 10억 7천여 만원, 방송광고 제작 및 광고료 6억 8천여 만원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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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자금시민모니터단에 한나라당 선거자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최연희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

신철영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을 팀장으로 한 10명의 실사팀이 오후 4시 최연희 제1사무부총장실에서 최 부총장이 중심이 된 한나라당 관계자들과 진행한 실사에서도 역시 민주당과 동일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다음은 실사 진행 과정에서 양측 사이에 오간 내용들 중 한나라당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모니터단 : 발생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외상 거래도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나라당 : 정당 회계는 아주 단순하다. 10원 썼으면 10원 썼다고 하고, 100원 썼으면 100원 썼다고 하면 된다. 외상 거래는 전혀 신경 안 쓴다. 그건 양해해 줘야 한다.

모니터단 :예를 들어 외상으로 한 달간 거래해 놓고 외상이라고 기재 안 하면 밝힐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한나라당 : 내가 컨트롤해야 하는 선거 관련 연락소가 전국 299개소다. 외상거래까지 기재하라고 요구하면 (바빠서 못 한다).

모니터단 : 자금 관리를 맡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 어떤 식으로든 기록해야 한다.

한나라당 : 내가 지금 너무 바빠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 우리는 시민단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선관위 회계보고를 위해 존재한다.

실사를 마친 후 모니터단에 참여한 윤종훈 회계사는 “평가고 뭐고 할 게 없다. 장부가 워낙 엉망이었다. 외상거래 뿐 아니라 유세 진행 비용도 다 빠져 있었다”고 지적한 뒤, “2차 실사 때도 개선이 안 되면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국민을 상대로 투명한 공개를 약속한 정당이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다”며 반짝 인기만 노리고 실천은 없는 한나라당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공개 항목 수로만 보자면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더 자세하게 공개하긴 했지만, 정작 필요한 내용은 모두 빠져 있었다는 점에서 민주·한나라 양당 모두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연희 사무부총장이 실사를 주관한 한나라당의 경우, 정 부총장이 누락된 부분에 대한 모니터단의 추가 공개 요구를 모두 수용함으로써 이후의 개선 사항 이행 여부에 대해 대선연대가 책임 추궁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반면, 이상수 선대위 총무본부장이 인사말만 하고 자리를 떠 책임자가 부재했던 민주당의 경우, 모니터단의 개선 요구에 “고려해 보겠다”고만 답변해 앞으로 실사가 제대로 진행될 지 불투명한 상태다.

민주노동, 지출 뿐 아니라 수입까지 공개

한편, 같은 날 오후 4시에 김상희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을 중심으로 진행한 민주노동당 실사의 경우, 가지급금 기재는 물론 이를 수령한 40여 명의 명단도 빠짐없이 기록하는가 하면 자체 계좌추적까지 하는 등 대선연대의 요구 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단 1백만 원 이상의 지출 금액 중 세금 계산서가 미비한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보완하기로 했다.

애초에 지출금액을 중심으로 한 대선연대의 선거자금 운용 공개 요구에, 민노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입사항까지 추가로 공개하기도 했다.

권영길 후보가 선거자금 공개 서명을 한 11월 20일 이전인 11월 6일부터 1주일 단위로 선거자금을 공개해 온 민노당이 이 기간 동안 사용한 총액은 3억3천9백여 만원이었다.

실사를 마친 모니터단은 “민노당이 양당과 마찬가지로 현금이 지출된 부분만 회계장부에 기록했지만 미지급된 외상내역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고, 가지급금 대상자도 명확하게 제한하는 등 전반적인 선거비용을 파악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1차 선거자금 실사 결과에 대해 대선연대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선자금 1차 공개는 그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가지급금 거래 내역을 누락시킨 것으로 사실상 의미 없는 수치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는 동시에 “한나라당이 대선자금을 공개하면서 공개 수준을 인터넷을 통해 앞서 공개한 민주당 수준에 맞추어 버린 듯한 의혹을 지울 수 없고, 민주당은 당초 약속된 정당활동비 단일계좌 사본 제출조차도 꺼리는 불성실을 범했다”며 비판했다.

아울러 대선연대는 민주·한나라 양당을 상대로 2차 실사가 예정된 12월 11일까지 대선연대가 요구한 지적 사항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2차 실사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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