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2004총선연대 2004-01-26   1283

[16대 국회 해부④ 개혁성] 개혁법안에는 ‘흠집’, 인권 분야는 ‘후퇴’

개혁의제 주도권 전혀 발휘 못 해

의회의 본질적 기능인 법률안 제·개정에 대한 평가야말로 의회의 개혁성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개혁과 반개혁의 기준을 ‘시민사회의 가치’로 잡았을 때, 16대 국회가 처리한 제·개정 법률안의 개혁성은 몇 점일까?

결론적으로 낙제점이다.

16대 국회가 처리한 제·개정 법률안의 반개혁성은,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개혁법안의 제·개정을 외면하거나 수용하더라도 핵심 취지를 왜곡시키는 방식으로, 또는 시민사회가 반대하는 개악법안의 제·개정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자의 대표적인 이슈들로 정치개혁, 재벌개혁, 경제·조세개혁, 사법개혁, 양성 평등, 보건복지, 노동정책, 환경정책 등을 들 수 있다. 후자의 대표 법안 또는 이슈로는 집시법 개악, 테러방지법 제정, 파병안 처리 등을 꼽을 수 있다.

16대 국회의 반개혁성은, 일부 수용한 개혁법안들조차 의회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여론의 거센 압력에 의해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이라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16대 국회가 처리한 개혁법안(또는 개악법안)의 성격과 그 처리과정을 살펴보면, 군사독재 시절 재야와 함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한 축을 이뤘던 의회가 오늘날 시민사회의 개혁 요구를 막아서는 대표적인 기득권 세력으로 고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속증여세 개정 등 일부 성과 불구, 개혁 취지 훼손 잇달아

16대 국회의 총체적 보수 기류 속에서 그나마 건진 개혁법안이 있다면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도입, 증권집단소송법 등 경제 및 조세개혁 분야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상속·증여세 개정안은 완전포괄주의 원칙에 따라 재벌을 비롯한 부유층의 세부담 없는 부의 무상이전을 금지시켰다는 점에서 사회통합의 측면에서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른 개혁법안과 달리 완전포괄주의 본래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고 통과됐다는 점도 상속·증여세 개정안을 16대 국회 최대의 개혁법안으로 부를 만하다.

조세분야의 중요한 개혁 성과는 그러나 법인세 인하로 빛이 바랬다. 16대 국회는 법인세 인하 시행시기를 정부안보다 1년 늦은 2005년으로 늦춘 대신 세율은 정부안 26%보다 1%포인트 낮은 25%로 잡았다. 2005년부터는 법인세가 현행보다 2%포인트 인하되는 것이다.

정부정책을 논외로 한다면, 사실 법인세 인하는 재벌이 극구 반대해 온 상속증여완전포괄주의, 증권집단소송법 등 두 법안의 통과에 대해 16대 국회가 재벌에게 준 반대급부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여론의 뭇매로 거둬들이기는 했지만 법인세 인하와 두 개혁법안의 바터(교환)를 꺼내들었던 한나라당의 태도는 법인세 인하가 이뤄진 정치적 배경의 일단을 보여준다.

증권집단소송법 역시 개혁법안임에는 분명하나 제도의 취지와 관련해 개혁성이 상당 부분 훼손됐다는 평가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소 제기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 것이 그런 평가를 받는 이유다.

우선 시행시기가 2005년 7월 1일로, 빨라도 앞으로 2년이 지나야 소송이 가능하다. 또 소 제기의 대상이 되는 기업의 불법행위 중 허위기재의 대상이 되는 서류의 범위(예를 들어 수시공시)를 축소시켰다. 인지대 최고 상한선이 5천만원이나 되어 초기 소송 대표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높인 것도 소 제기 가능성을 크게 낮추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피해자에 대해 법원이 일간지 공시와 개별 통지를 병행하도록 한 점도 집단소송의 실효성을 살리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개혁의 핵심들이 재계의 집중적인 견제로 상당 부분 왜곡된 것이다.

조세분야에서 16대 국회의 또 다른 반개혁성으로는 정부의 10·29 부동산종합대책에 대한 대응을 들 수 있다. 특히 한나라당이 정부의 보유세 강화방안을 ‘특정 지역 죽이기’로 묘사하며 강력 반대하고 나선 일은 공당이 앞장서서 부동산투기세력을 비호한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후 빗발치는 국민들의 질타 여론에 밀려 한나라당의 반대 당론이 약간 수그러진 상태지만, 올해 이루어질 종합부동산세 입법화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전면적인 반대 입장을 쟁점화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치개혁에서는 시민사회의 거센 항의와 여론의 반발에 떠밀린 국회가 초기의 개악 시도에서 방향을 전환해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 돈선거·조직선거 규제 강화 등에서는 개혁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러나 선거구제도에서는 각 당이 개혁 원칙보다는 자신들의 첨예한 이해만을 내세우고 있어 16대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현 정치권의 대폭적인 물갈이를 희망했던 시민사회의 기대는 여전히 난망이다.

정보공개법 개정, 생명윤리법 제정 등은 ‘시기적으로’ 16대 국회에서 이뤄진 성과지만 ‘내용적으로’ 16대 국회가 점수를 딸 사안은 아니다. 정보공개법은 시민단체의 요구를 참여정부가 수용한 측면이 강하고, 생명윤리법은 의원들의 전반적인 무관심 속에 국회 과기정위 소속 한나라당 이상희 의원의 반대로 무산될 뻔하다가 당시 같은 당 소속이었던 김홍신 의원의 적극적인 법안 주도로 통과됐다. 몇가지 개혁법안 역시 철저하게 시민사회가 주도권을 쥐고 의회는 수동적인 대응으로 일관한 것이다.

인권 후퇴 법안 심각한 수준

미약하나마 몇몇 분야의 성과에 비해 인권 분야에서 16대 국회가 역사를 후퇴시킨 발자취는 뚜렷하다. 물론 인권 분야의 후퇴나 답보에 대한 모든 책임을 16대 국회에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효율성의 논리를 내세우는 국가기관의 반인권 정책을 국민의 입장에서 제동을 걸어야 할 입법부 본연의 기능을 생각하면, 16대 국회는 반인권 국회라는 오명을 자처했다.

가장 대표적인 법률안이 이미 본회의를 통과한 집시법 개정안, 그리고 법사위에 계류중인 테러방지법 신설이다. 집시법 개악안은 경찰청의 의견을 대폭 수용한 법안이 행정자치위 안에서 약간의 문구 수정을 거쳐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했다. 주요 내용은 ▲집회 신고를 30일 전으로 제한하고 ▲집회에서 폭력 발생시 남은 집회와 같은 목적의 다른 집회 금지 ▲외교기관 주변 집회 선별적 허용 ▲관할 경찰서장이 고속도로와 전국 95개 주요도로의 행진 허용 판단 ▲소음 규제 ▲초중고교, 군사시설 주변 집회 금지조치 가능 등이다. 이런 조항이 개정되거나 삽입되면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된 집시법이 사실상 집회시위 금지법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다.

집시법 개악안 통과 과정에서 처음에 ‘법사위 통과를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열린우리당이 법사위 표결 과정에서 보인 태도나, 한나라당과 민주당 법사위 의원들의 태도는 인권보호와는 거리가 멀었다.

제2의 국가보안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테러방지법은 참여정부 국정원이 적극 추진했고, 의회에서는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주도로 법사위에 계류된 상태다. 가공할 반인권 조항을 담고 있는 이 법안은 참여정부와 16대 국회 수구냉전 대표 정객들과의 긴밀한 협조 속에 추진되고 있고, 그 추진 배경 역시 16대 국회가 압도적으로 찬성한 이라크 파병동의안과 연계돼 있어 현재로선 국회 통과가 유력하다는 전망이다.

참여정부가 취한 대표적인 인권 개선책으로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짓밟는 전향제도의 변형인 준법서약제 제도를 폐지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송두율 교수의 귀국을 둘러싸고 재현된 마녀사냥에 적극 가세한 16대 국회의 인권지수는 냉전시대에서 한치도 나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국회에 인터넷의 성장과 함께 중요한 인권 개념으로 부각한 정보인권을 제도화할 프라이버시기본법 제정을 바라거나, 자신의 임기 동안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본 국회이니 국가보안법 폐지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했던 시민사회의 기대가 무색할 지경이다.

16대 국회가 수행한 인권 개선안을 한가지 찾는다면, 국가보안법과 함께 대표적인 반인권 법안으로 지적돼온 사회보호법의 폐지 가능성이 높다는 것 정도다.

노동·복지·사회 분야 개혁 절규에 눈 감고 귀 막아

노동 문제는 진보-보수의 개념틀로 바라보는 노동계의 시각과 개혁-반개혁 구분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분별한 손배·가압류 제한과 비정규직 차별 철폐는 노동계와 시민단체가 공감대를 형성한 이슈였다.

그러나, 16대 국회는 대립하는 이해의 조정이라는 정치 본연의 기능을 팽개쳤다. 노동정책과 관련해, 대선 공약이나 인수위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노무현 정부의 ‘우향우’를 논외로 한다면, 16대 국회는 연이은 자살이라는 극단의 저항과 절규로 자신들의 절박한 처지를 알린 노동자들의 호소에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농촌 지역구 의원들의 강력한 저지로 농민들의 최대 현안인 FTA특별법 처리가 유보되기는 했으나, 이를 16대 국회의 개혁성으로 평가하기는 무리다.

보건복지 분야에서도, 시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16대 국회는 이렇다할 개혁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우선 복지 예산과 관련해 국회는 정부 원안대로 전년 대비 7.4% 증가한 보건복지 예산을 통과시키는 데 그쳤다. 7.4%의 예산안 증가는 수치상으로 상당한 증액처럼 보이나 복지 패러다임의 전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에 기인하는 광범위한 신빈곤층 문제의 해결 등에 대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법률로 보면, 가입자 권리를 약화시키는 등 정부의 국민연금법 개악안이 1월말 현재 다행스럽게도 한나라당의 반대로 보건복지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지만, 16대 국회는 자신들의 임기 4년 내내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연금법의 개선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기초생활보장법 역시 국회는 차상위계층 보호를 강화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수용한 개정안 논의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양성평등을 위한 여성계의 비원이 담긴 대표적인 2개 법안도 총선 일정 속에서 표류하면서 16대 국회에서 입법화가 어렵게 됐다. 법사위에 계류 중인 호주제 폐지는 1월 공청회를 거쳐 2월 임시국회에서 다룬다는 일정이지만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면담한 여성계 쪽에서는 “총선 전에는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절대 과반 정당의 총선전략에 휘말려 16대 국회에서는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얘기다.

역시 정치관계법 개정의 핵심 개혁안이었던 비례대표 50%, 지역구 30%의 여성할당은 각 당이 정당법에 명시하는 법제화 방식을 꺼리고 ‘당에서 알아서 하자’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OECD 가입국과는 댈 것도 없고, 웬만한 개도국 수준보다 떨어지는 여성의 정치대표성은 16대 국회를 넘겨 17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개혁의제로 남아 있게 됐다.

이밖에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와 열린우리당이 강력하게 추진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은 국회 법사위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위원장 김용균 의원)의 저항에 부딪혀 16대 국회에서는 사실상 무산됐다.

장흥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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