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 쏟아져도 선거 때면 극에 달해
이번 총선을 통해 구성될 17대 국회는 과연 국민들이 기대하는 대의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부패무능정치와 함께 국회에서 사라지길 바라는 것들이 또 있다. 색깔론, 지역감정, 욕설, 몸싸움 등 수준 이하의 정치행태들이다. 이에 인터넷참여연대는 16대 국회 평가 2탄으로 ’16대 국회를 망친 말말말’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한국정치에서 지역감정을 몰아내기는 불가능한가. ‘망국적 정치행태’로 비난받는 지역감정은 이번 16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지역감정 자극은 특정의 당파적 목적과 정략적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국민동원의 최악의 형태라고 비난을 받아왔으며, 최우선 퇴출대상으로 꼽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때만 되면 오뚜기처럼 오똑 서서 지역주의 정치를 온존시켜 왔다.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를 속여서 여러분 주변에 침투하고 있다”
16대 국회에서 지역감정 발언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때는 2002년말 대선시기였다. 지역감정 자극 역시도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도했다.
2002년이 밝아오기가 무섭게 한나라당은 ‘영남지역 대단결을 통한 정권재탈환’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아예 ‘지역감정에 기반한 정치가 뭐가 잘못되었냐’고 따지기까지 한다. 김만제 의원은 “정작 지역감정을 기반으로 표를 얻는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일부러 지역얘기를 하지 않는다. 내 말은 지역주의에 기대자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기반으로 정치세력화하자는 것인데 뭐가 그리 이상하냐”고 주장했다.
대선후보 유세과정에서는 더욱 당당하고 원색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유흥수 의원은 지난 대선 열흘 전 부산역 광장에서 “노무현이 대통령 되면 호남정권 아니고 무엇이냐”며 “노무현을 찍으면 김대중이가 또 대통령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김대중 저격수’를 자처했던 정형근 의원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2002년 대선당시 한나라당 선본의 브레인으로 활약한 정의원은 아예 직접 나서 유세현장에서 “현 정권이 부산항을 내려 앉히려고 광양항 예산을 매번 더 많이 줬는데 노 후보는 무엇을 했는가. 부산 사람이 이것을 잊으면 사람도 아니다”며 부산시민들을 자극했다.
심지어 홍사덕 의원은 “DJ가 JP를 속여서 충청도 표를 가져갔듯이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를 속여서 여러분 주변에 침투하고 있다”며 지역감정에 음모론까지 결부시켜 본다.
“영호남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충청인의 자존심을 걸고 심판해 달라”
‘보수우익’ 정당을 자처하는 자민련도 매 선거마다 지역주의에 호소하기를 주저하지 않아왔다.
김종필 총재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영남과 호남에 각각 기반을 두고 있는 마당에 자민련이 충청도에 기반을 만든다고 뭐가 나쁘냐”(2002년 5월)고 주장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영남은 단결돼 지난 총선때 단 한석도 내주지 않았고 호남도 마찬가지였지만 충청도는 마음이 좋아 여기 조금, 저기 조금 나눠주다 보니 분열됐다”며 “이번에도 또 그럴거냐”(2002년 1월)며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이인제 부총재도 뒤지지 않는다. 이 부총재는 “영, 호남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다른 당 후보들은 발도 못 붙인다. 한나라당은 영남지역 패권을 가지고 충청도를 점령, 정권을 잡아 야욕을 채우려 한다”며 “충청인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심판해 달라”(2002년 6월)고 주문했다.
변웅전 의원은 2000년 4월 13일 총선 전날 “충청도민이 핫바지를 입느냐, 명주바지를 입느냐는 내일 결정된다”며 지역주의 거부가 곧바로 손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파했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에 비하면 다소 약하다고는 할 수 있으나 민주당 역시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정치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한화갑 전 대표의 경선자금에 대한 검찰수사로 위기상황에 처한 민주당이 비장의 카드로 선택한 것은 결국 ‘호남에서의 집회’다. 이를 두고 “당을 살리려고 망국병인 지역주의를 자극한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으나 민주당은 강행할 방침이다.
“지역감정에 호소한 득표 점점 불가능해져, 그러나 이번 17대 총선에서도 지역감정 자극은 극에 달할 것”
이에 대해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는 “유감스럽게도 15, 16대 국회에서 지역감정 자극은 고조되어 왔다”고 평가했다. 손 교수는 국민적 비난을 감수하고서도 국회의원들이 결국 지역감정에 기대는 것은 “표가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별다른 정책이 없는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에 편승하고, 이를 일부 언론이 확대하고, 그것을 유권자들이 받아들이는 과정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지역감정이 표가 된다’는 발상이 굳혀져 왔다고 평가했다.
손 교수는 “아예 드러내놓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최근 행태”에 주목했다. “안보이는 뒷마당에는 쓰레기를 가득하게 쌓아놓고는 마치 깨끗한 척 해왔던 의원들이 이제는 아예 앞마당에 쓰레기더미를 내놓고 배째라는 식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긴다”고 비유한 뒤, 대표적인 예로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되면 영도다리에 빠져죽자!”(14대 대선, 초원복집사건)는 발언과 “지역감정은 자기 지역 사람이라고 병신 같은 놈을 찍어주는 게 지역감정이며 큰 사람을 밀어주는 것은 지역감정이 아니다.”(2000. 3. 6일 경북 구미 지구당창당대회에서 행한 김광일 전 의원의 발언)을 예로 꼽았다.
손 교수는 “국민들의 지역감정은 약화되고 있다. 지역주의 정치는 청산될 수 밖에 없다”고 예견한 뒤 “지역감정에 호소한 득표가 점점 불가능해지는 상황에서, 지역주의에 기반한 후보들의 행동은 점점 과감하고 원색적이 될 것이다”라며 “결국 이번 17대 총선에서도 지역감정 자극은 극에 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만이 ‘망국적 지역주의’를 청산할 수 있다”며 지역감정 자극에 현혹되지 말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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