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2004총선연대 2004-02-12   1627

“국민들이 선정한 기준에 따라, 골라내는 작업만 대신 했을 뿐”

[인터뷰] 2000년에 이어 두번째 낙천리스트 만든 이지현 정책부팀장

2004총선시민연대의 낙천명단 발표에 한국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특히 정치권의 반발은 거세다. 그러나, ‘형평성’ 시비는 있을지언정 사실관계가 틀렸다는 지적은 없다. 2000년에 이어 2004년에도 총선연대 낙천낙선명단 자료조사를 맡은 이는 바로 이지현 정책부팀장. 그녀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이기도 하다. 2차 낙천명단을 발표한 다음 날인 11일 오후 총선연대 발족 후 처음으로 ‘책상 앞에 자료 없이’ 차를 마시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이제 2차 낙천명단까지 발표했는데, 정치적 파장이 엄청나다. 그래도 일단 한 고비는 넘은 것 아닌가. 지금 소감이 어떤가.

“지금 당장은 홀가분하다. 그렇지만 총선연대에 쏠린 국민적 관심과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생각하면, 휴… 부담감과 책임감이 크다. 낙천명단이 큰 주목을 받으면서 발표 후에 제보와 소명자료가 밀려오고 있다. 명단에 포함된 의원들은 소명자료를 다시 보내기도 한다.”

명단발표 후 낙천대상자들의 항의전화와 방문이 많은가.

“총선연대는 반론권을 충분히 보장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재차 삼차 소명기회를 주고 그에 대한 확인을 거쳤다. 그런데도, 낙천명단에 포함된 정치인들은 소명까지 했는데 낙천명단에 포함시키냐는 심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무실 전화와 개인 휴대폰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를 걸어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붓는 이들도 있다. 판결문까지 있는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계속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성희롱 때문에 낙천대상자가 된 한 정치인은 피해자인 여기자를 찾아가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해달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와서는 ‘그건 성희롱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뻔뻔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소명자료를 담당한 간사는 거의 미칠 지경이다.”

추가정보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들었다. 그에 따라 이미 발표된 낙천명단이 변경될 가능성이 있나.

“현재 1,2차에 걸쳐 발표된 109명의 낙천대상자와 관련해서는 없을 것이다. 자료가 오는대로 훑어보고 있는데, 낙천 사유를 번복할 팩트는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가 이미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해놓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제보나 소명자료 등을 통해 추가로 들어오는 정보들은 기존 발표내용을 보완해주는 자료들이 대부분이고, 그게 아니면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거나, 상대후보를 비방하는 악의성, 음해성 정보들이다. 추가로 들어오는 정보나 낙천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정치인들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고려 중이다. 유권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글쎄. 다 어려웠던 것 같은데.(웃음). 일단 우리가 봐야할 자료가 너무 많았다. 물리적으로도 힘든 일이었다.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설날 당일 말고는 쉬어본 적이 없다. 1차 낙천명단 선정 검토대상자가 303명이었고, 2차 대상자는 500여 명이었다. 결과적으로 한 달 사이에 800명 가량의 데이터를 본 것이니까, 정말 물리적으로도 힘든 기간이었다.

명단 발표 임박해서는 하루에 2-3시간 자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료만 봤다. 식사도 책상 앞에서 자료를 보면서 해결했다. 사발면이나 도시락을 모니터 앞에 놓고 먹으면서 자료를 봤다. 백번 검색하고 허리 한번 펴자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웃음) 우리 스스로를 수험생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사실 대입시험 준비할때보다 더 열심히 했다.

낙천명단은 정치적인 사형선고일 수 있다. 그래서 신중하고 철저해야 한다. 리스트 작업을 했던 모두가 작업 기간 내내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다. 발표 시점이 다가오면서 긴장감때문에 자주 체했다. 덕분에 손을 따는 실력이 많이 늘었다.(웃음). 그렇게 긴장한 상태라 쉬지않고 강행군을 하면서도 다들 쓰러지지 않고 견뎌낸 것 같다.”

낙천명단 선정 작업 실무를 했던 정책팀은 팀장을 포함해 4명 뿐이다. 그 인원으로 한 달 사이에 800명 데이터를 모으고 검토했다는 것이 ‘미션 임파서블’로 들린다.

“자원활동가들이 있어 가능했다. 사법연수원생 등 10여 명의 자원활동가들이 방대한 자료검색을 전담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거의 우리와 생활을 같이 하다시피 했다. 그렇게 같이 고생해서 그런지, 기자회견 보면서 감격스러웠다고 하더라. 사회적인 주목과 파장의 크기만큼이나 그들이 느끼는 책임감도 컸을 것이다. 우리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낙천명단도 없었을 것이다.”

2000년 낙천낙선운동 때도 총선연대 간사로 활동했다. 2000총선연대 활동을 마치고 대표진과 활동가들이 “나 다시는 낙선운동 안 해”라고 말할만큼 험난했던 과정이었다고 들었다. 다시 낙선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어땠나.

“솔직히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나. 나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다. 참여연대가 이번 총선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하고 낙선운동을 하기로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은 내가 나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두렵고 피하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설득해갔다.”

2000년에는 어떤 일을 했나. 4년 전과 지금 어떤 점이 달라졌나.

“2000총선연대에서도 자료조사팀으로 활동했다. 그때는 인터넷 환경이 지금같지 않았다. PC통신으로 갈무리해서 자료를 받았다. 또 2000년 이후로는 국회나 주요 공공기관들이 인터넷에 자료를 공개해서 이번에 작업할 때 큰 도움이 됐는데, 2000년에는 그런게 없었다. 그래서 자료를 찾으려면 국회에 가서 복사해 온 것을 다시 타이핑했다. 제보도 우편물로 오거나 직접 방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요즘엔 거의가 이메일을 통해 온다. 불과 4년 전 일인데, 지금 돌이켜보니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그때와 비슷하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정치판만 그대로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두번의 낙선운동을 계기로 정치인들에 대한 일상적인 모니터 시스템이 구축되길 바란다. 정치인들에 대한 시민사회의 평가는 아직 체계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참여연대가 구축해놓은 의원DB부터 제대로 운영할 생각이다. 시민들도 관심이 많다. 구체적인 정보가 제시되니 유권자들도 달라진다. 전에는 부패 정치인이 싫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의정활동에 무능한 정치인이 싫다고 한다.”

한국 정치판에서 800명이라면 현역 정치인에 대한 정보는 거의 다 봤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원 자료를 검토한 소감이 어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부패사건이나 법원의 판결을 받은 전과기록 등 분명한 사안들보다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인상깊었다. 국회에서 했던 막말들, 그리고 비뚤어진 사고방식과 편견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말과 행태들이 기억에 남는다. 기본적인 자질이 안된 정치인들이 많았다. 사기, 성희롱 등의 전과를 가진 이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를 대표해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2차에 걸친 낙천명단 발표에 대해 정치권은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명단의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총선연대가 특정 정치세력을 이롭게 하고 야당을 음해한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선정과정에서 인물 개인이나 소속 정당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기준을 만들고 나서 해당자를 추려내 명단을 작성한 것 뿐이다. 일부 정당들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일체의 정치적 판단은 없었다. 공정하게 했다고 자부한다.

지표선정부터 여론조사 과정을 거쳤다. 국민들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퇴출되어야 할 정치인을 골라내는 작업을 우리가 대신 한 것뿐이다. 각 당들은 무조건 발뺌하거나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고 총선연대 낙천명단을 공천에 반영하길 바란다.

정치인들은 건망증이 심한 것 같다. 차떼기, 방탄국회 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분노는 대단하다. 대형 비리사건이 터질때마다 당대표가 나와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잘못을 인정해놓고, 선거가 임박하면 자기합리화하고 당리당략에 이용한다. 개혁적인 기준으로 공천을 하겠다고 해놓고 막상 공천시점이 되니 과거랑 다를게 없다.”

유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결국 최종선택은 유권자의 몫 아닌가.

“그렇다. 낙천낙선명단을 내놓기는 하지만, 시민단체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유권자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의 문제는 남는 것이다. 정치판의 고질병들을 없애고 제대로 일하는 국회가 되려면 유권자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피곤해 보인다. 그렇지만 갈 길이 멀다. 총선이 끝나야 가능하겠지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뭔가.

“일단 사무실을 떠나고 싶다.(웃음). 사무실과 집만 왔다갔다 하고 있다. 새벽 3-4시에 택시타고 집에 가서, 잠깐 눈붙이고 9시에 출근하면서 지하철에서는 내내 신문보면서 모니터링하고, 사무실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켜면서부터 다시 새벽3-4시까지는 내내 일만 하고 있다. 설 연휴 때도 일하면서 답답해서 잠깐 사무실 건물 옥상에 올라갔었다. 눈이 많이 내려서 고향에 내려가는 사람들은 힘들었지만, 풍경은 근사했다. 옥상에서 보는 눈덮인 인왕산 풍경이 특히 멋졌다. 산에도 가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다. 물론 총선이 끝날 때까지는 꿈이라고 생각한다. 과로 덕분에 돈 안들이고 한쪽 눈에 쌍거풀이 생겼다. 총선때까지 남은 기간을 보내고 나면 다른 눈에도 생길 것 같다.(웃음).”

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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