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결국 ‘개악’으로

독소조항 수두룩한 선거법안 27일 본회의 의결 절차만 남겨

4당 원내총무 및 원내대표가 의원정수 문제의 표결처리와 함께 국회 정개특위에서 논의해온 선거법 개정안을 27일 본회의에서 의결한다는 데 합의함에 따라 지역구 증가, 비례대표 확대 무산, 선거연령 인하 및 부재자 투표소 확대 무산, 노조 정치자금 기부 금지 등 각종 독소조항을 담은 선거법의 본회의 통과가 현실로 다가왔다.

국회 관계자는 “사실상 27일이 본회의 마지막으로 법사위의 문구수정 작업을 거치면 선거 및 정치관계법이 본회의 의결 절차를 밟게 되며, 다만 정개특위에서 합의가 안된 의원정수 관련 의안만 표결에 따라 결정된다”고 밝혔다.

27일 본회의 표결을 앞둔 의원정수 문제는 현재 지역구 의석을 현 227석에서 15석을 증원하고, 비례대표는 현행 46석을 유지한다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 등 야 3당의 안과,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현행대로 유지하자는 열린우리당의 안을 놓고 표결이 이뤄질 전망이다. 각당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현재로선 다른 타협의 가능성은 낮은 전망이다.

본회의 표결 결과, 야 3당 공조안으로 통과되든 열린우리당 안으로 통과되던 비례대표 확대는 불가능하다. 비례대표 여성 50% 할당에 따라 비례대표의 대폭 확대를 통해 여성 대표성을 강화하려했던 여성계가 크게 실망하는 대목이다. 처음 실시되는 정당명부 비례대표를 통해 원내 진출을 최대화하려 했던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 역시 정개특위 선거법 논의를 ‘진보정당 죽이기’로 규정하며 반발하고 있다.

민노당은 특히 애초 기업의 불법정치자금을 근절시킬 목적으로 논의된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 금지가 노동조합까지 포함된 것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안에 대해 정개특위 정치자금법 각당 소위 위원들은 “기업의 불법 정치자금을 규제할 목적으로 논의됐던 것이 문구상 착오로 노동조합까지 포함됐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나 로비활동을 펼친 관계자들은 이 법안이 문구상 착오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양태조 민주노총 정치국장은 “천정배 열린우리당 의원의 경우 이 법안의 불합리성은 인정했으나 면담 약속을 수차례 무산시켰고,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은 기업과의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며 사실상 법안을 수정할 용의가 없음을 내비쳤다”고 말하며 “상황을 종합하면 다분히 민주노동당을 의식한 의도적인 개악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가 위헌성을 권고했고, 거의 대부분의 인터넷 언론과 1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반대 및 불복종운동을 선언한 ‘인터넷 실명인증제’도 야 3당의 당론에 따라 다른 선거관계법과 함께 일괄 처리될 전망이다. 시민단체는 법사위에서 위헌성 문제를 집중 다루게 한다는 방침이나 상황은 비관적이다.

인터넷 국가검열반대 공동대책위 관계자는 “반대 당론을 가진 열린우리당 법사위 위원실에 확인한 결과 상임위에서 처리된 법안을 법사위에서 거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면서 “특히 법사위 소속 위원 상당수가 이번 기회에 인터넷을 ‘손봐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어 막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전했다.

젊은층의 선거참여 확대를 위한 선거연령 인하, 부재자 투표서 설치기준 완화 등의 요구도 정개특위에서 현행 선거법을 유지하는 안을 선택함으로써 사실상 무산됐다.

이에 따라 각 법안에 이해가 걸린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은 27일 표결까지 남은 이틀 동안 대규모 저항을 조직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국회는 선거법 개악안의 본회의 의결 절차만 남겨놓고 있다.

민주당-열린우리당의 의원정수 설전

민주당-열린우리당의 의원정수 설전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포함한 의원정수 문제가 결국 야 3당의 안과 열린우리당 안의 표결로 가닥을 잡음에 따라, ‘지역구 증가-비례대표 현행 유지’라는 야 3당안의 국회 통과가 확실시된다.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이 거센 가운데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책임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23일까지 국회 정개특위 선거법 소위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각각 13석씩 증가’시키는 안을 놓고 4당간의 합의가 이뤄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민주당이 지역구 14석 증가를 들고 나오고, 열린우리당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합의는 무산됐다.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는 ‘어차피 열린우리당도 지역구 13석 증석을 수용한 협상을 벌이면서, 민주당이 들고 나온 지역구 1석의 차이가 비례대표 10여석을 무산시킬 만큼 중요한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찬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실 기획행정실장은 “민주당이 1석을 추가로 들고 나온 것은 고흥 지역구를 살리겠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명분 없는 특정 지역구 살리기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열린우리당 당론은 처음부터 지역구 199석-비례대표 100석이었으나 그것은 불가능했고, 그렇다면 차라리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현행대로 묶는 것이었다”면서 “그러나 야 3당이 지역구를 늘리자는 것을 계속 요구했고, 그렇다면 비례대표도 그에 비례해서 늘리자는 것이었으나 그마저도 민주당의 무리한 요구로 무산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 실장은 “결국 표결 절차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며, 그 전에 다른 타협의 여지는 어렵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은 “열린우리당이 여론을 의식한 이미지 정치에 집착해 당론을 계속 바꾼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강선구 민주당 정개특위 전문위원은 “열린우리당이 특정 지역구 살리기로 언급한 고흥 지역구는 어차피 현 인구상하한선 기준으로는 살릴 수 없는 지역구”라고 반박했다. 강 위원은 “민주당이 반드시 지역구 14석에 집착했던 것은 아니며, 몇 석이든지 간에 인구 상하한선에 대한 합의 원칙에 따라 잡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지역구 14석, 그리고 지금 한나라당과 함께 15석 증석을 들고 나온 것은 이미 선거구 획정에 대한 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열린우리당 안과) 1석 차이가 났던 것에 불과하다”면서 “열린우리당은 인구 상하한선, 여성전용선거구제, 의원정수 등 문제에서 여론에 따라 계속 합의를 번복했으며, 의원정수 확대를 전제로 한 협상을 벌이다가 지금은 의원정수 동결이라는 대국민 이미지 효과만 노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 위원은 “인구 상·하한선 중 하나는 허물어야 위헌의 문제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선거구획정위의 의견”이라며 “비례대표 확대가 정치개혁이고 그렇지 않으면 반개혁이라는 시민단체 주장도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흥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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