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관계법 처리 지연으로 개정 선거법 적용 불가능
민주당의 지역구 챙기기와 한나라당의 방탄국회 개회 의도 이해가 일치돼 2일 기습적으로 무산된 정치관계법의 처리 지연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현행 선거법과 개정될 선거법 어느 규정에 맞춰 단속 활동을 해야 할 지 난감해 하고 있다. 특히 ‘돈선거’를 막기 위한 개정 선거법의 선관위 실사권 강화가 지연됨으로써 단속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행 선거법으론 선거비용 실사 어렵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2월 24일 정치관계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공문을 국회의장 앞으로 발송했다. “획기적으로 바뀐 정치관계법이 지켜질 수 있는 법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개정내용을 정당과 후보, 유권자들에게 충분히 알려야 함에도 법안이 확정되지 않아 계도·홍보기간이 촉박할 뿐만 아니라, 선거법 발효와 동시에 예비후보자 등록 등 법정사무를 관리·집행하기 위한 준비에도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 공문의 요지였다.
선관위가 정치관계법 처리 지연으로 단속활동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이 선거비용 조사다. 문병길 중앙선관위 공보실 사무관은 “현행 선거법은 후보자가 선거일 이후 30일 이내에 선거비용 보고서를 선관위에 통보하고, 이후 선관위가 신고된 비용의 사실 여부를 조사했지만, 개정될 선거법은 선거일 전인 지금도 필요한 경우 선거비용 관련 자료 조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서 “개정 선거법의 통과가 지연되면서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의 가장 큰 열망인 돈선거 철폐를 위해 필요한 선거비용 조사에 적극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또한 문 사무관은 “개정 선거법은 선거일 120일전부터 민간인들과 함께 구성된 선거부정감시단을 가동할 수 있게 했는데, 선거법 처리 지연으로 현재 감시단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효과적인 감시활동에 지장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현행 선거법이 후보자의 명함에 적힌 내용과 명함 교부 행위 등을 철저히 규제하는 반면, 개정 선거법은 이런 제한 규정을 풀고 있어 현행법을 기준으로 단속활동을 펴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선관위 설명이다. 실제도 거의 대부분의 후보들은 명함에 전직 직책을 기입하고 있으며, 명함 교부 역시 사실상 선거운동 목적으로 시행하는 상황이다. 결국 정치권의 야합으로 인한 선거법 처리 지연이 불필요한 불법 선거운동을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선거법 위반, 본격 선거운동 시작도 전에 16대선거 절반 육박
선관위 단속의 어려움과 별도로, 본격 선거운동이 개시되기도 전에 선거법 위반이 위험수위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3월 3일 기준 선관위가 집계한 ‘선거법 위반행위 단속실적’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3월 3일까지 2개월여 동안 선관위는 모두 1322건의 위반행위를 적발했다. 이는 지난 2000년 16대총선 전체 기간 동안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단속실적인 3017건의 44%에 달하는 수치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불법타락이 더 판친다는 것보다는 선관위 단속 의지나 유권자의 고발의식이 고양되는 등 선거풍토가 바뀌고 있는 것”으로 파악해 달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도 되기 전에 이 정도의 선거법 위반이 적발된 것은 이번에도 불법타락선거가 재현될 불길한 조짐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런 조짐은 금품타락선거 여부를 가리키는 하나의 지표 역할을 할 수 있는 ‘금품·음식물·교통편의 제공’에 의한 선거법 위반이 이번 선관위 자료에서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나타난 것에서도 감지된다.
16대총선에서는 전체 선거법 위반 3017건 가운데 ‘금품·음식물·교통편의 제공’에 의한 위반 사례가 594건으로 전체 위반의 20%를 차지했다. 이번 선관위 조사에서는 이 적발 건수가 전체 1322건 중 16%로 나타나 비율로는 다소 준 편이다. 그러나 본격 선거운동에 돌입하면 이 비율은 훨씬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17대 총선에서도 ‘돈선거’가 근절되지 않을 것이 우려된다.
정당별로는 열린우리당이 379건으로 가장 높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331건과 172건으로 나타났다. 고발건수를 기준으로 해도 3당의 선거법 위반 순위는 같았다. 열린우리당이 24건의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 고발됐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 18건, 9건의 사례가 고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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