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의사표시를 선거운동으로 간주하는 과도한 규제는 개선 과제
탄핵표결 참가 의원 명단 게재 및 퍼나르기 단속 등 국민과 네티즌의 정치적 의사표시에 대한 선거법 규제가 선거운동기간인 4월 2일부터 풀리게 된다. 이에 따라 탄핵표결 참가 의원, 총선연대 낙선 대상자 등에 대한 정치적 반대의사 표시가 인터넷에서 활발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그 기간 전까지 국민의 기본권인 정치적 의사표시를 사전선거운동으로 규정, 단속하고 있는 선관의의 과도한 규제는 개선 과제로 남게 됐다는 지적이다.
“선거운동기간에는 자유롭게 퍼나르고 댓글 달 수 있어”
중앙선관위 지도과 윤석근 사무관은 “선거운동기간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가 아닌 한 인터넷에 자유롭게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해 지지 또는 반대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면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탄핵 표결 참가 의원들의 명단 퍼나르기 역시 선거운동기간에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이 추진하는 각종 온라인 탄핵무효 운동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또 조만간 발표될 총선시민연대의 낙선 리스트나 물갈이국민연대의 당선 리스트 등 총선운동 단체의 각종 리스트가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생산, 유포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알권리,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현행 선거법과 선관위 규제의 문제점은 선거 이후에도 개선 과제로 남게 됐다. 특히 인터넷에서 정치적 의사표시와 선거운동의 구분 기준에 대한 선관위의 자의적 판단 여지가 높다는 지적이다.
“정치적 의사 표시를 선거운동으로 규정해선 안 돼”
선관위가 최근 탄핵 표결 참가 195명 국회의원에 대한 이른바 ‘인터넷 퍼나르기’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단속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 함께하는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지난 18일 선관위에 11가지 구체적 상황을 설정하고, 각각의 경우에 선거법 위반 여부를 질의했다.
시민행동은 “현재 수많은 공간에서 소통되고 있는 탄핵 표결 참가 국회의원 명단은 ‘말할 권리와 알 권리’에 속하는 문제이지 ‘사전선거운동’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면서 “개방적인 네트워크인 인터넷에서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견해를 표방하는 것은 언제 어느 때라도 가능하다”며 선관위 단속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시민행동이 질의한 구체적 내용은 A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탄핵소추 참여 의원 명단을 싣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행위, 이 명단을 복사하여 나를 것을 촉구하는 행위, A의 홈페이지에서 게시물을 보고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 옮긴 B의 행위, A의 홈페이지에 탄핵소추 참여 의원 명단을 보고 B가 댓글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행위 등 네티즌의 11가지 행위의 위법성 여부다.
그러나 선관위가 보낸 25일 답변서는 이런 구체적 상황에 대한 답변 대신 “누구든지 선거운동기간이 아닌 때에 특정 단체가 공표한 낙천낙선대상자 명단 또는 그 사진을 인터넷상에 유포하는 것은 선거에 있어 특정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유·불리하게 하는 행위이므로 선거법 규정에 위반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대신했다.
선관위 답변에 대해 김영홍 시민행동 정보인권국장은 “선거운동의 정의에 대한 선관위 잣대가 모호하다”면서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선관위가 구체적으로 답변을 못하는 것을 볼 때 선관위의 자의적 해석에 따른 단속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탄핵표결 참가의원 명단과 관련, 인터넷에서의 정치적 의사표시와 선거운동의 구분 기준 대해 윤석근 사무관은 “단순히 명단만 나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국회를 바꾸자’ 등 이런 구호가 들어가는 경우는 문제가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준으로는 정치적 의사표시와 선거운동의 구별이 모호하고, 때문에 실제 단속과정에서는 선관위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가장 단적인 예가 현재 국민행동 홈페이지(안티312닷넷)에 오른 댓글에 대한 선관위의 단속활동이다. 이 사이트 관리자는 “지금까지 선관위가 삭제요청 공문을 보낸 경우를 보면 ‘탄핵안 표결에 참여한 의원들을 심판하자’는 댓글은 문제삼지 않으면서 ‘탄핵안에 참여한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의원들을 심판하자’는 댓글에 대해서는 삭제요청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관위 규제에 따르면,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의원들이 탄핵표결에 참여한 것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지만, 당명을 구체적으로 거론해 심판하자고 하면 사전선거운동이고, 당명을 거론하지 않으면 사전선거운동이 아닌 정치적 의사표시인 셈이다.
이에 대해 윤 사무관은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은 시기, 내용, 양태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서 결정한다”면서 “자꾸 자의적 기준이라고 하는데 선관위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판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 사무관은 또한 “선관위는 네티즌 선거운동을 자유롭게 보장하자는 개정의견을 국회에 냈지만 국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현행 선거법에 따라 단속활동을 해야하는 선관위의 고민도 이해 못할 바가 없지는 않으나, 촛불집회에 대한 선관위의 불법 규정이 헌법상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처럼, 인터넷에서의 정치적 의사표현에 대한 선관위의 개입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보다 선거법을 앞세우는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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