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1998 기타(sw) 1998-12-10   1323

복지국가- 그 의미의 되새김

20세기가 시작된 이래, 맑시스트와 시장 찬미론자들 양쪽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는 가운데, 질적 성장을 거듭하던 복지국가가 '성공의 위기'(perils of success)로 일컬어지는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는가 했더니, 설상가상으로 신 자유주의적 사조(思潮)에 휘말리면서부터는 아예 복지국가의 전면 개편론 또는 무용론까지 거론되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생 이래 어느 한 시절도 국가로부터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비정한 시장원리가 활개를 치는 척박한 현실 속에 살아온 우리네 복지 후진국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복지국가는 여전히 지적, 실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화두(話頭)임에 틀림없다.

사실, 복지국가가 겪는 성공과 위기의 교차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성공의 위기'와 같은 이율배반적 수사를 동원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즉, 자본주의 체제가 갖고 있는 내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이룩한 괄목할 만한 업적에 대해서는 성공의 찬사를 던져야 하는가 하면, 그와 동시에 그것의 위기 또한 그 성립 기반이었던 케인스적 관리방식 자체가 가지고 있던 논리적 모순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인즉, 전반적인 경기부양과 수요창출을 전제로 한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가 인플레를 유발함으로써 국민들의 실질 소득을 저하시켰고, 또 산업 경쟁력 하락에서 기인한 저성장은 또다시 고물가와 실질소득 하락과 같은 악순환을 겪게 만들었으며, 누적되는 재정적자는 국가의 개입능력과 수단을 제약하였고, 이 결과는 전체사회의 효율성·생산성마저 저하시켰던 것이다.

그럼 과연 이것으로 끝이란 말인가?

사회주의적 실험과 더불어, 인류의 귀중한 역사적 선택 중의 하나인 복지국가.

이것이 직면하게 된 위기에 대해서,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에 대한 케인스적 관리능력이 마침내 한계를 드러낸 것일 뿐이라고 냉정하게 정리하고 외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숙명적인 대립관계에 있는 양대 계급간의 역사적 타협을 기반으로 해서 보편주의적 복지제도를 구축하고, 자유시장의 폭력성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그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측면에 대해서는 무엇이라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여기에 '절반의 성공'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장구한 역사의 도정에서 '절반의 성공'을 바탕으로 해서 진보의 경로를 계속 개척해 나갈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금세기까지 목격되었던 여러 종류의 정체(政體) 가운데 자유와 평등이라는 상충적인 가치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비록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복지국가만큼 성공을 거둔 예는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즉, 뚜렷한 대안적 진로를 찾을 수 없는 현 시점에서 자본주의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노동계급과 물질적 풍요를 함께 나눔으로써 자본주의에 내재된 비인간적 착취 기제를 어느 정도 순화시킬 수 있었던 복지국가의 실용성에 대해서는 그 의미를 곰곰이 되씹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자유와 평등이 균형을 이루는 사회를 추구하여, 시장의 잔인성을 완화하거나 '자본주의의 인간화'를 위한 복지정책을 개발해 왔던 복지국가의 노력은, 자본의 한없는 탐욕성에만 기대어 복지배제적 성장가도를 달려오기만 했던 한국이 특히 주목해야 할 덕목으로 생각된다.

임종대/ 한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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