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1998 기타(sw) 1998-12-10   1781

주거권 토론회와 주거기본법 입법운동

주거는 인권인가?

이 주제는 우리 사회에서 그리 익숙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택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고 경제적 능력에 따라 주거를 향유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주거를 인권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 주거와 관련된 인권문제라고 하면 폭력적인 강제철거 정도를 연상하지, 일정한 수준의 주거자체가 바로 참정권이나 신체의 자유에 대한 권리처럼 기본적인 인권이라고 보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주거는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한국도시연구소(소장 하성규 교수)와 천주교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위원장 이기우 신부)는 지난 11월 6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IMF시대 서민주거안정을 위한 국제토론회"를 개최했고, 이 토론회의 주제가 바로 '집 ― 인간의 권리, 국민의 권리', '한국 사회의 주거권'이었다.

주거권의 원리

주거에 대한 권리는 어떤 근거와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 것일까? 주거권을 비롯한 사회복지 혹은 사회보장과 관련된 권리는 근대 사회의 성립과 함께 등장한 근대적 시민권이나 정치적 기본권과 구분하여 사회적 기본권이라고 여겨진다. 한 사회의 존재 의의는 그 구성원들의 권리를 실현하고 이를 신장시키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시민적 권리, 정치적 권리, 사회적 권리는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다른 것의 실현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완전한 인권의 실현을 위해서는 모든 권리의 보장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로 여겨진다.

주거는 인간의 생활에 매우 기본적인 것이고, 생명과 가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토대이다. 이것이 해체되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고, 다른 모든 권리의 실현도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기본적인 수준의 주거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고, 이를 보장하는 것은 그 사회의 책무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토론회의 내용

토론회의 취지와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역시 국민복지의 가장 기본이 되는 영역의 하나인 주거가 인권이라는 것이다. 스코트 레키(Scott Leckie) 철거 및 주거권센타 대표는 주거권이 각종 유엔결의나 선언은 물론이고 많은 나라에서 헌법적인 권리로까지 인식되고 있으며, 주거권이 보편적 인권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주거권의 내용을 법률로 정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성을 높이는 중요한 일이고, 토론회에서 제안하고 있는 주거기본법과 한국사회의 주거권 실현을 위한 노력은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취약한 계층의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가 더욱 노력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토론회에서는 주거가 기본적 인권의 하나이고 이를 실현하는 것이 국가의 과제임에 모두 동의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주거가 기본적 인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이에 관한 법적인 장치를 마련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일 터이다. 키르티 샤아(Kirtee Shah) 세계주거연합 총재는 이와 관련하여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이라고 꼬집었다. 그 동안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강제철거와 같은 주거권 침해가 계속 나타나고 있고, 부와 빈곤, 높은 시민적 가치와 기본권의 무시라는 극단적인 양면성을 보이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 주거권 침해가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 몇몇 사람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사회 전체가 가지고 있는 속성과 관련이 있고, 한국사회 전체가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토론에 나선 김영준 주거연합 사무총장도 한국사회가 주거권을 보장할 수 있는 충분한 경제적 부를 이룩한 나라라는 말이 매우 생소하게 들리는 것이 우리나라의 주거권 실현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으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서 철거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권 침해, 비닐하우스를 비롯한 주거빈곤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절박한 요구, 임대아파트 주민의 관리 참여권 요구 등을 조목조목 들어가며 우리사회의 주거권 침해 상황을 제시했다.

사실 우리사회 전체는 물론이고 시민사회조차도 주거문제와 관련하여 그리 민감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회복지 분야에서도 주거문제를 복지정책으로 다루는 것에는 소홀했으며, 시민단체들도 급격한 주거비 상승이 사회문제화되었을 때에는 목소리를 높이고 여러 가지 정책 대안을 제시했지만 일상적으로 주거권 실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또 철거를 비롯한 심각한 인권의 침해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도 우리 대부분은 사회 일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해관계의 다툼 정도로만 여겨 왔다.

사실 이 문제의 해결은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생활과 운명을 결정하는 주체로 나설 때 가능한 것일 수 있지, 다른 누구에 의해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에두아르도 호르게 안조레나(Eduardo Jorge Anzorena) 신부는 근본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하고, 그들이 다양한 차원의 계획과 결정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보장되지 않고, 국가도 재정문제로 인하여 충분히 자율적이지 못한 상황에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NGO, 정부 및 전문가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문제해결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가난한 사람 자신의 참여와 조직화에 있고, NGO, 정부 및 전문가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공동체를 강화하여 스스로 주거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하였다.

김수현 한국도시연구소 연구부장도 주거권의 실현과 신장을 위해서는 주거권 운동의 발전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면서, 그 동안의 철거반대운동과 같은 피해에 대한 대응 중심의 활동에서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고 하였다. 개별화되어 있는 지하셋방의 실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을 비롯하여, 서울시의 주택조례(1998.3.19)나 최저주거기준을 활용하여 이를 실현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등 지방정치의 장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는 다양한 활동의 모색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토론회에서는 특별히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도 강조되었다. 하성규 소장은 국민생활 최저선을 확보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적합한 주거환경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주거권 실현을 위한 정책방향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먼저 최저주거기준을 설정해야 하며, 주택공급 및 배분에서 공공 역할을 증대시키고 재개발사업 등에서 나타나는 강제철거를 중지하며, NGO나 시민단체, 지역사회의 자구적 노력을 지원하며, 노숙자, 노령자, 빈민, 장애인 등 주거극빈층을 더욱 적극적으로 배려하며, 복잡하고 상충되는 주거 관련 법률의 정비와 주거권을 보장하는 기본법의 제정을 주장했다.

주거기본법 제안

이러한 취지에서 제안된 주거기본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전 국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국가의 책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주거정책의 기본이념을 밝히는 것이 이 법의 골자임을 선언하고 있다. 아울러 주거정책의 부문별 정책방향으로 주거기준 설정의 법제화, 주택금융제도의 정비, 저소득층의 주택매입에 대한 조세 감면, 주거 관련 정보의 제공, 부당한 퇴거의 위협으로부터 임차인과 철거민들의 보호 등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주거권의 법제화에는 아직 몇 가지 쟁점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주거권이 독자적인 기본적 인권으로 존재하는가의 문제, 주거권을 주거기본법상에 명시할 것인가의 문제가 걸려 있다. 토론회에서 주거기본법을 제안한 정태용 법제처 법제관은 주거가 기본적 인권임이 분명하고 헌법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제안된 주거기본법에서는 주거권을 법적으로 명시하는 것보다는 '적절한 주거'라는 개념을 통해서 그 내용을 표현하고자 했다. 즉, 적절한 주거라는 개념을 주거 정책의 이념으로 제시하면서 그 개념을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과정에서 주거권이 실현되어 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기본적 인권으로서의 주거권은 헌법 차원에서 도출되어야 할 것인데, 주거기본법에서 독자적인 하나의 권리로 인정하는 것은 법 체계상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안된 주거기본법에 대해 건설교통부의 강교식 과장은 시민사회의 주거기본법 제정을 위한 노력이 기존의 주거정책의 부족한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그 동안의 공급위주의 주택정책이 변화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에 대해서 의견을 같이 했다. 또 주거기본법의 세부조항과 관련하여 다소 이견이 있지만 입법취지나 대체적인 내용에는 동의한다고 밝혔다.

김정호 국토개발연구원 주택도시연구실장은 주거기본법 제정 노력은 시기적으로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하였다. 즉, IMF 경제위기에 따른 소득감소와 실업으로 인해 집없는 사람들의 고통이 더욱 깊어지고 확대되는 경향을 띠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택 매매가격이나 전세가격이 떨어져서 주거와 관련한 부담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소득은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으며, IMF조치 이후 나날이 늘어가는 노숙자는 주거위기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사회도 사회안전망을 갖출 때가 되었고, 실직을 당해도 기본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도와주는 주거와 교육, 의료는 사회적인 보장장치가 필요한 분야로 인식되어야 하며, 따라서 개인의 삶을 가능하게 하고 가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주거는 저소득층 복지대책의 핵심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주거기본법 입법운동 전개

토론회가 끝나고 주거기본법 제정을 위한 입법추진위원회 결성이 있었다. 이 모임은 주거권과 주거기본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주거기본법안을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다듬어서 만드는 일을 할 것이다. 부디 그 활동이 좋은 결과를 거두고, 주거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어깨가 가벼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자료문의: 한국도시연구소. 02)701-9004).

서종균/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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