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1998 기타(sw) 1998-12-10   1819

의약분업, 어디까지 왔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몸이 아플 때, 가는 곳도 많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약을 구입해 먹는다. 크게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면 우선 약국에 들러 간단한 증상을 이야기하면 약을 받을 수 있다. 조금 심하면 동네의원을 찾고, 심각한 병이라고 생각되면 큰 종합병원을 찾는다. 여기에서도 의사가 주는 약을 먹는다. 물론 가벼운 감기 같은 질병으로도 3차 진료기관을 찾는 경우가 허다해 대학병원의 외래는 늘 바쁘고, 환자들은 진료를 받기 위해 많이 기다린다. 이 모든 기관에서 의사, 약사 모두가 환자 치료를 위해 병에 대한 처방을 내리고 약을 조제하여 환자들에게 준다.

의약분업은 '먼저 진료는 의사에게, 그리고 나서 약은 약사에게'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의사도 약을 조제하고, 약사도 처방을 하는 상황을 막자는 것이다. 환자들이 약을 먹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교통정리하자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의사는 약의 전문가가 아니고 약사는 진료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들도 약에 대해 공부를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약사도 진료를 해 왔다. 하지만 이제 바꾸자는 것이다. 의사와 약사가 서로 전문적인 능력이 미치지 않는 분야에서는 '손을 떼고' 전문적인 능력이 미치는 분야에 집중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 사실 국민들로서는 불편해질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말이다. 약을 먹기 위해서는 매번 병·의원과 약국을 두 군데 다녀야 하는데도 말이다.

무엇보다도 약의 오남용을 막자는 것이다. 조제의 비전문인인 의사가 의약품을 조제하고, 진단·처방의 비전문인인 약사가 의사의 처방없이 임의로 조제하는 비전문적 의료행위가 제도적으로 방치되는 상황에서 의약품 오용(誤用)이 발생한다. 또한 의사, 약사 모두 경쟁적으로 약을 처방하게 되어 남용(濫用)이 발생한다.

의약품이 오남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통계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의약품 오남용을 하게 되면 내성(耐性)이 증가한다. 우리나라의 페니실린 내성률(약을 투여하였으나 균이 소멸되지 않을 확률)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10% 대를 훨씬 뛰어넘어 70% 대라는 세계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의약품 남용의 증거로 우리나라의 약제비 비중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총의료비 중 약제비 비율은 30%를 넘고 있다. 이는 미국, 영국 등 의약분업을 실시하고 있는 나라들의 10% 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료기관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서 1만 원을 지불했다면, 그 중 3천 원 이상을 약값으로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보건의료계 내에서도 이 문제는 지속적인 과제였다. 사실 그 동안 의약분업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미뤄져 왔다.

이미 1963년에 약사법상에 의약분업을 명기하였지만 지난 35년 동안 미뤄져 왔다. 1966년 '의약분업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유야무야 되었고, 1980년대에는 수 차례에 걸친 약국폐문시위, 의사들의 면허반납행위 등 관련 전문직의 반대 속에서 시행되지 못하였다. 의약분업 시범사업도 이미 1984년에 실시된 바 있어, 의약분업은 다른 어느 의료관련 제도보다도 긴 준비기를 거친 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한약분쟁 이후 1994년 1월 개정된 약사법에 '이 법 시행 후 3∼5년의 범위 내에 대통령령이 정한 날로부터 의약분업을 시행'하도록 명시함으로써 다시 한번 의약분업이 현실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약사법 시행 유예기간인 6개월을 합쳐 5년 6개월 째가 되는 내년도 7월부터는 의약분업을 실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1965년 약사법 개정 이후 이미 30년 이상이라는 긴 유예기간을 경과한 셈으로, 의약분업시행을 더 이상 연기할 합리적 명분이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올해 들어 보건복지부에서는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병원협회 등의 보건의료관련 단체, 시민, 소비자 단체가 참여하는 '의약분업추진협의회'(이하 분추협)를 구성하여 의약분업 실시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8월 24일 분추협 제4차 회의에서 의약분업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의약분업의 실시시기를 99년 7월 1일로 하는 등의 기본원칙과 외래처방전, 일반명/상품명, 병원급 의료기관 의약분업 포함문제를 포함한 세부사항 등에 대해 합의문 형식의 결론을 내었는데, 병원 기관분업(병원에서도 외래 처방에 대해서는 원외처방전을 발행하고, 병원 내 조제실을 통한 원내처방을 금지하는 의약분업 형태)은 하지 않고, 생물학적 동등성 검사(약의 효능이 서로 같다는 것을 증명하는 검사)를 받은 약품에 대해서는 의사가 특정 약을 처방하더라도 약사가 대체권을 갖도록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의료계 내에서는 분추협 제 4 차 합의안을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일반인들이 의약분업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우선 용어가 어렵다. 처방이니 조제니 하는 것도 그렇고, 일반명이니 상품명이니 하는 말도 생소하다.

또한 의료계 일각에서는 몇 가지 이유로 의약분업을 연기하자는 주장도 심심찮게 들려 온다. 의약분업 추진에 따라 의료보험에서 돈이 더 들어가야 하고, 의원과 약국을 번갈아 가야 하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도 돈을 더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 경제도 어려운데 가능하면 하지 말자고 한다. 여기에다 의약분업은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하지 말자고 거든다. 국민입장에서는 맞는 말처럼 들린다.

누구는 의약분업을 하자고 하고, 누구는 의약분업을 연기하자고 한다. 혼란스럽다. 국민들은 어떻게 판단을 해야 할까? 무슨 기준으로 누가 바른 말을 하고 있는지를 판가름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국민들은 어떤 집단이 의약분업을 해야 한다거나 의약분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의 이면에 주목해야 한다. 논리의 뒤편에 숨겨진 각 이해당사자들의 이해득실을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인들에게 약은 곧 돈이다. 물론 일부 의료인들은 약에 붙어 있는 돈 때문은 아니라고 한다. 전문인으로서 약을 다룸으로써 사회적으로 얻는 전문인으로서의 권위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에는 역시 약의 소비를 결정하는 데에 따른 수익이 자리잡고 있다. 약을 많이 처방하거나 조제하면, 그만큼 많은 수익을 얻는 구조가 되어 있다. 그래서 서로 약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약의 소비 결정권한을 누가 갖느냐의 문제로 바라보면 문제는 더 쉽게 풀린다. 약사들이 왜 일반명 처방을 주장하고, 의사들은 왜 상품명 처방을 주장하는지, 왜 병원에서는 국민불편을 들어 의약분업을 실시하지 말자고 하는지(기관분업을 반대하는지), 왜 일각의 제약회사는 의약분업을 반대하는지 등 …. 약의 소비를 누가 결정하느냐를 중심으로 보면, 이해가 된다.

분명히 의약분업은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의약분업은 일정하게 국민들을 불편하게 함으로써 의약품의 오남용을 막자는 것이다. 그런 불편함을 통해 국민들은 수없이 처방조제되는 약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다. 질적으로 나은 의약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강영호/ 의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약분업 대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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