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2년 04월 2022-04-02   1336

[인터뷰] 왜 ‘골리앗’ 푸틴과 싸우냐고? “지금 안 싸우면 또 지배당해요”

왜 ‘골리앗’ 푸틴과 싸우냐고? “지금 안 싸우면 또 지배당해요”

[인터뷰]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 

참여연대_월간참여사회_2022년04월호 올레나 쉐겔 교수
올레나 쉐겔 교수 ⓒ참여연대

시간은 상대적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 깜짝할 새 가는 시간이,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는 지옥처럼 더디게 흐른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지구에서 가장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 중 하나다. 지난 2월 24일 이곳을 무력 침공한 러시아는 키이우Киïв, 마리우폴Марiуполь 등 주요 도시들을 포위하고 무차별 포격을 쏟아붓고 있다. 3월 20일(현지시각) 유엔인권사무소OHCHR에 따르면 러시아 침공 이후 발생한 민간인 사망자가 902명(어린이 75명), 부상자 1,459명로 확인되며, 살 곳을 잃은 난민도 1천만 명에 육박한다.

밤에만 이뤄지던 포격은 이제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 3월 15일 북부 도시 루츠크Луцьк에서는 빵을 사려고 상점 앞에 줄을 서던 우크라이나 시민 20여 명이 대낮에 벨라루스에서 날아온 러시아제 미사일에 목숨을 잃었다. 그보다 앞선 13일에는 남부의 항구도시 마리우폴Марiуполь시 당국이 확인한 도시 내 민간인 사망자만 2,187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학교와 병원은 오히려 폭격의 목표물이 되는 분위기다. 각자 살던 도시에 머물며 결사 항전 의지를 밝히던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생존을 위해 리비우Львiв 등 폴란드 국경과 가까운 서쪽 도시로 모여들고 있다. 

이 전쟁의 끝은 어디일까. 피해자인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 전쟁을 어떻게 겪어내고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침공 21일째인 3월 17일, 경기도 남양주 한 카페에서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를 만났다.   

“민간인 2만 명 학살 소문…날 따뜻해지는데 시체 묻지도 못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1일째다. 현지에 있는 가족들은 안전한가. 연락이 되다 말다 한다고 들었다. 

부모님과 여동생, 여동생이 낳은 아기가 우크라이나에 있다. 처음에는 키이우 근처에 있었는데 러시아의 폭격이 너무 심해서 아기가 밤마다 잠을 못 자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부모님은 키이우를 지켜야 한다는 쪽이었는데, 애가 아프니까 어쩔 수 없이 폴란드와 가까운 리비우로 옮겼다. 며칠 걸려서 겨우 도착했는데 러시아군이 거기도 폭격을 하더라. 방공호 생활을 며칠 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폴란드로 넘어갔다고 한다. 지금은 안전하다. 

민간인들이 키이우에 머무른다고 해서 도시를 지킬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아버지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 

60대 후반이다. 우크라이나 지역군에 등록하러 갔다가 고령이라 세 번 거절당했다고 하더라. 지역군은 동네 지킴이, 검문소 운영, 직접 전투부대 이렇게 세 부류로 나뉘는데 결국 세 번 거절당한 끝에 집지킴이로 배정받았다. 집지킴이는 무기를 지급받지 못한다. 남부 미콜라이우 주Миколавська область에 외삼촌 가족이 사는데 외삼촌은 전투 부대에 합류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무기가 부족해서 부대원 10명 중 1명만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월간 참여사회 2022년 4월호 (통권 294호)
러시아 폭격을 맞은 우크라이나 키이우 시내 건물 ⒸUnsplash

러시아는 세계 군사력 2위 강대국, 쉽게 맞서기 어려운 상대다. 그럼에도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사람들 대부분 상당히 강하게 저항한다는 느낌이 있다. 타국 사람들이 모르는 특별한 배경 같은 게 있나.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에 당한 게 많다. 외국에서는 우크라이나 역사를 잘 모르고 그냥 소비에트 연방 소속이었다가 연방이 붕괴하면서 1991년 독립한 나라로 알더라. 우크라이나는 18세기 말부터 반복해서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아왔고, 틈이 날 때마다 독립 시도를 해 왔다. 앞서 1917년에 한 차례 독립에 성공해서 5년 동안 독립 국가를 유지했었고. 지난 2014년에는 오렌지 혁명을 겪으면서 시민들 사이에 주권의식도 상당히 강해져 있는 상황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번 전쟁에서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싸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안 싸워서 또 러시아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면 이게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군이 학교나 병원 등 민간 시설까지 공격하고 있다. 현지 상황은 어떤가. 

우크라이나군이 지키고 있는 도시와, 러시아에 점령당하거나 포위당한 도시의 차이가 크다. 일단 도시 자체가 점령되지 않은 곳들은 음식 공급이 된다. 가게들이 영업을 하고, 가서 돈 내고 물건을 살 수 있다. 시민들이 가게 부수고 물건 훔쳐 가는 그런 일이 없다. 그런데 포위당한 곳은 음식 공급이 안 된다. 이미 러시아가 포위를 마치고 포격을 쏟아붓고 있는 마리우폴 같은 곳은 그저께(3월 15일)만 해도 2만 명 이상 민간인이 학살됐다는 소식도 나왔다. 

너무 가슴 아픈 건 이제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다는 거다. 시체를 묻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인력도 도구도 없다. 누가 언제, 어디에 묻혔는지 기록을 할 수도 없다.  

“나토 가입 포기 할 수 있어…근데 그럼 러시아가 거기서 멈출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휴전 협상이 진행 중이다. 나토 가입을 포기하라는 러시아 요구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수용 가능한 내용인가.

나는 정부 관계자가 아니지만 그 부분은 우크라이나가 충분히 협상 카드로 활용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면 러시아가 거기서 멈출까? 국제 사회에 큰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우크라이나가 생각하는 나토와의 바람직한 관계는 가입을 하는 게 아니라 협력하는 수준이다. 나토에서도 우크라이나를 가입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 

그렇게 간단하게 얘기하기에는 우크라이나 헌법에 유럽연합EU, 나토 가입 계획이 명시되어 있다

전후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헌법에 그 내용이 들어간 것은 2019년 2월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 시절이다. 그런데 그 직전 대통령이 친러 성향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 시절 황당한 일이 많았다. 가장 직접적인 계기가 됐던 것은 그가 국민적 찬성 여론이 높았던 EU와의 협력 협정을 취소하고 친러시아 행보를 보였다는 점이다. 협력 협정이 취소되자 많은 국민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반대 집회를 벌였다. 그러자 야누코비치는 텐트를 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을 만들었다. 

갑자기 텐트 치는 건 왜 금지한 건가?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집회를 하면 일단 텐트를 친다. 그리고 거기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버틴다.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집회 금지법을 만든 셈이다. 이것 이외에도 정말 경찰 국가에서만 통과 가능한 법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시민들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2013년 유로마이단 혁명이 발생했고,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로 피신을 했다. 우크라이나 내에 반러 분위기가 고조되자 러시아가 2014년 크름 반도를 침공했다.

월간 참여사회 2022년 4월호 (통권 294호) 피난을 떠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시민들 모습
피난을 떠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시민들 모습 ⒸUnsplash

상황이 이러니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는 정말 강력한 반러 분위기가 형성됐다. 특히 친러 정치인이 정권을 잡았을 때 생길 문제에 대해 상당히 우려하게 됐다. 유럽연합 가입 관련 내용이 있는 헌법 개정은 이 모든 것들이 압축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싸움을 건 게 아니라 러시아가 촉발한 반러 정서로 생겨난 불가피한 반작용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나. 우크라이나는 국회의원이 총 450명인데, 당시 헌법 개정에 334명이 찬성했다. 

“우크라이나 원래 민주주의, 자유 갈망하는 사회…끝까지 싸울 것”

지금 러시아가 노리는 게 우크라이나에 친러 정부를 세우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어떻게 보면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같은 강대국과 끝까지 싸우려고 하는 게 좀 특이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우리가 러시아라는 나라와 푸틴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푸틴을 잘 알고 있다. 이번에 끝까지 싸우지 않으면 또 푸틴의 꼭두각시 같은 정치인이 집권할 것이고 나라를 또 잃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합리적인 조건이 아니라면 끝까지 싸우자는 얘기들이 많다. 

우크라이나는 오랜 기간 소비에트 연방 소속이었고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시민 개개인이 자유를 갈망하는 수준은 매우 높은 것 같아 놀랍다. 

한국에도 고유의 민족 정서가 있듯, 우크라이나에도 공동체가 공유하는 정서가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우크라이나는 민주주의와 매우 관련이 깊다. 이 땅에서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어졌던 코자키Козаки국가는 국가수반을 선거를 통해 뽑고 탄핵과 비슷한 절차가 존재했던 유럽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스타르시나starshyna라고 하는 국회 비슷한 집단도 있었고, 입법기관, 헌법도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이념과 국제정세 흐름 속에서 러시아와 묶였을 뿐이다. 

이번 전쟁의 원인을 ‘나토가 러시아 뒷마당을 침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제사회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뒷마당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

가장 답답한 부분 중 하나다. 우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뒷마당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크라이나는 오히려 모스코비아(지금의 러시아)와 계속 군사적 긴장 관계였다. 우크라이나 국가國歌인 ‘붉은 가막살나무’나 많은 우크라이나 민요의 내용이 우리 코사크들이 모스코비아 침략군을 막으러 나가는 내용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항상 외세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려고 했었고, 지금 러시아와의 전쟁도 그런 맥락이다. 

냉전이 끝나고 동유럽이 여러 개의 국가로 쪼개진 후에, 미국이 러시아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상당한 예산을 들여 민주주의 착근着根을 촉진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그게 우크라이나에서는 효과가 있었고, 러시아에서는 큰 효과가 없었다. 우크라이나 사회 자체가 이미 문화적으로 자유, 민주주의와 가까웠던 탓이다. 미국이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지금 전쟁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게 바로 자유다. 전쟁을 피해자인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한번만 생각해달라.

“우크라이나 난민 1천만 명…국제 사회 도움 절실하다”

침공 이후 세계 각국이 다양한 제재를 하고 있지만 러시아가 큰 타격을 입은 것 같지는 않다. 지금 당장 국제사회가 어떤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미국이나 유럽연합이 이번 전쟁을 종료시키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다른 나라들도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좋겠지만, 한국 같은 경우는 우크라이나와 사정이 비슷하지 않나. 강대국들 사이에 껴 있어서 일단은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이걸 해달라는 말을 못 하겠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의료 지원이나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는 차원의 후원을 많이 해주면 고마울 것 같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정교회 등이 만든 ‘우크라이나 전쟁난민 긴급 구호연대’에서 운영위원과 민간대사를 맡고 있다. 전쟁 난민과 관련한 현안은 무엇인가.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가장 심각하다. 우크라이나 남자들은 입대해서 싸우고 있고 여자들, 아이들, 노인들은 전 세계로 흩어지는 상황이다. 1천만 명 넘는 난민이 발생하면 당장 먹을 것부터 문제다. 가장 가까운 창구가 폴란드인데, 현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처음 폴란드에 도착했을 때 식사량과 지금 식사량이 상당히 차이가 난다고 한다. 점심시간이 1시에 시작하는데 1시 10분쯤이면 음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하더라.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사람들 입장에서 정말 고마운 나라다. 그렇지만 이웃 국가에서 그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는 없지 않지 않겠나. 

당장 일자리도 어려운 문제다. 부모님과 동생이 난민으로 머무는 폴란드 도시는 전체 인구가 1만 5천 명밖에 안 된다. 나이가 젊고, 현지인들과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내 동생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아는 한국 분들이 난민 후원을 많이 도와주고 있다. 

전쟁이 끝나도 우크라이나는 당분간 첨예한 갈등 지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폴란드로 피신한 부모님은 어떻게 한다고 하던가.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깔아놓은 지뢰를 제거하는 데만 2년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 이미 많은 것들이 파괴됐고, 아마도 전쟁이 끝나면 우크라이나 국민 90%가 빈곤에 시달리게 될 거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전쟁이 끝나면 하루 빨리 우크라이나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키이우의 집은 사라져 있겠지만 다시 세우면 되고, ‘우리나라를 우리가 비우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신다. 부모님 같은 생각을 가진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많다. 

향후에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지금 하고 있는 긴급구호연대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국제사회도 국가 재건이라든지 지원이라든지 여러 프로그램을 시작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 한국도 같이 참여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그런 프로그램에서 열심히 일하고 싶다. 우선은 러시아가 하루 빨리 전쟁을 끝내길 바란다. 


 김동환 참여사회 편집위원

사진 미디어홍보팀 이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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