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2년 10월 2022-09-29   787

[이슈] 모두가 지하를 판다


조준희 전 녹색당 서울시당 정책팀장

“동부간선도로, 강변북로,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신속 추진”
“지하철 1·2·4호선, 경의선, 중앙선 지상구간의 지하화”
“홍제역을 코엑스처럼…언더그라운드 시티 개발”

지하단면도

선거 공약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정책 발표에서 지하개발에 대한 내용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하를 파는 일은 도시 정책에 있어서 정당 간 차이를 발견하기 가장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거대양당은 물론이거니와 때로는 진보정당 소속 출마자의 자료에서도 지하개발에 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기업들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지하를 120m 가까이 파내 아이스링크나 물류운송로 등을 만드는 계획을 구상했으며 지금도 대규모 지하개발 민간투자사업을 따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말 그대로, 모두가 지하를 판다.

도시를 수직으로 갈라 그 단면을 한번 들여다보자. 대체로 도로에서 2m 밑으로 상수도와 가스배관이 묻혀 있다. 반지하나 지하실은 보통 1~4m 깊이지만, 요즘은 지하주차장 등을 만들기 위해 지하 30m 아래까지 뚫는 신축현장도 있다. 지하철 노선 중에 가장 먼저 지어진 서울 1호선 청량리역의 경우 지하 6m쯤 위치한 반면, 공항철도 서울역은 지하 51m 아래에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통신, 전력시설이 도시의 땅 밑에 흐르고 있다. 시민 안전과 관련이 깊은 지하수층은 서울을 기준으로 대략 4~20m까지 다양하게 분포한다.

도시의 지하 공간은 이처럼 각종 인공구조물과 지하수층, 퇴적물로 이미 빽빽하다. 땅에 드릴을 대는 순간 관할 기관을 호출해야 하고 일정 깊이 이상 드릴을 밀어 넣으면 별도의 안전평가를 받아야 한다. 지하의 개발 비용 또한 깊이가 깊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런데도 왜 도시는 지하를 파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서울은 지하도 만원이다

서울을 놓고 보면 지하개발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불도저 시장’으로 불리던 김현옥(1966-1970년 재임)이 “동양에서 제일 크고 아름다운 지하보도”라고 자찬한 세종로 지하도를 시작으로 지하도, 지하상가, 지하철, 지하도로 등 서울의 땅 밑을 파는 것은 모든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이었다. 오죽하면 김현옥의 뒤를 이어 서울시장이 된 양택식(1970~1974년 재임)의 별명이 ‘두더지’였겠는가.

뿐만이 아니다.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와 지하철 노선들이 차례로 개통되던 70~80년대에는 지하 공간을 주거용으로 쓸 수 있도록 건축법이 개정되면서 소위 ‘반지하’ 주거가 일반화되기에 이른다. 그전까지 이동이나 상업, 기반시설 용도로 쓰이던 지하가 본격적으로 주거공간의 지위까지 획득한 것이다. 이렇게 지난 60여 년간 지하는 좋든 싫든 시민들에게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2020년대에도 지하를 파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도시에서 지하를 개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지상공간이 비좁다’, ‘지상공간에 가리고 싶은 것이 있다.’ 전자는 도시계획 관점에서 수용 가능 인구를 넘어섰다는 판단과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자본이 팽창할 여유 공간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모두 포함한다. 후자는 말 그대로 지상에 두면 주변에 피해가 되는 시설물을 가린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은유적으로 특정 계층이나 기능에 대한 축출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상뿐 아니라 지하개발에도 시민의 개입이 필요하다

지하개발에는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될뿐더러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될 경우 지하공간의 사유화 위험도 상존한다. 지하개발은 원상복구가 어렵고 급격히 바뀌는 사회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도시 회복력을 낮출 위험도 있다. 땅 꺼짐 현상 등 지하를 개발하는 과정에서의 안전 문제부터 화재, 누수 등 이용 과정 상 방재의 어려움도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시설물의 지하화는 곧 그 지하 공간 자체의 임대 수익이나 통행료를 ‘창조’해내고 인근 지상구간의 부동산 가격 상승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지하개발에도 지상과 마찬가지로 시민의 감시와 개입이 필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공간의 특성상 시민들이 지하개발에 관심을 갖기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육안으로 확인이 쉽지 않을 뿐더러 각종 전문 용어와 비공개 정보가 난무한다는 점에서도 지하개발은 시민에게 ‘보이지 않는’ 개발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이 시민들은 땅 아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계속 던져야 한다. “지하개발의 과정은 안전한가”, “지하공간은 인간이 머무르기에 적절한가”, “지하공간은 누구의 것이고 누가 개발을 결정하는가”, “지하개발로 인한 수혜자는 누구인가” 등. 대규모 지하개발 사업 토론회에서 한 토목 전문가는 “시민의 주장은 공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공학적 문제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1 그의 말대로 시민들은 공학적 지식 없이도 안전 문제와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질 충분한 권리와 역량을 갖추고 있다.

도시를 수직적으로 바라보자!

도시를 이해하는 보편적인 방법은 공중에서 바라본 평면도를 통해 도시를 수평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도시를 이해할 때는, 도시를 수직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하나 더 필요하다. 즉 초고층 아파트의 공제선부터 지표면을 거쳐 그 아래의 주거 및 상업 공간, 교통시설과 기반시설을 훑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수직적으로 도시를 바라보면, 도시 조망을 독점하고 있는 펜트하우스 거주자와 기본적인 안전조차 위협받는 저지대·지하 거주자 간의 수직적 불평등, 도로나 철도를 지하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본의 이익 등을 인지할 수 있다.

GTX 개통, 철도 지하화, 반지하 주거 등 지하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천착하는 이들은 소수의 정책 입안자와 기업, 부동산 소유주들이다. 이제라도 시민사회 내부에서 도시를 수직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도시를 수직적으로 바라보면, 지하 공간에 대해 시민들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

1 국회토론회, GTX-A 과연 안전한가?, 2019.04.15. 자료집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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